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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치닫는 DJP 이인제가 최대 변수

파국으로 치닫는 DJP 이인제가 최대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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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시민연대가 공천 반대자 명단을 발표하기 나흘 전인 지난 1월20일 오전. 이날 열리는 민주당 창당대회를 목전에 두고 자민련은 이양희 대변인 명의로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창당대회가 열리기 직전까지도 자민련(혹은 JP)은 민주당(혹은 DJ)이 내각제 강령을 수용하거나, 내각제 강령 삭제에 따른 성의 있는 제스처나 자민련이 명분을 세울 수 있는 카드를 보내오길 바랐던 것일까.

“우리 당은 오늘 오전 9시30분 당 총재실에서 이한동 총재 주재로 긴급 당 5역회의를 열고 새천년민주당의 창당을 축하하기 위하여 김현욱 사무총장이 참석하기로 결정하였다. 김종필 명예총재와 이한동 총재는 참석치 않기로 하였다.”

논평 아닌 성명을 낸 것부터가 자민련다운 어법이었다. 아니 JP식 어법이었다. 총재단의 불참 성명 뒤에는 토가 달려 있었다.

“1997년 ‘제15대 야권 대통령 후보 단일화 선언 및 합의문’에 명시된 바 있는 내각책임제 추진과 관련된 사항들이 신당의 강령에 포함되지 않고 있음에 대하여 유감을 뜻을 표한다. 내각책임제는 공동정권의 기반이며 대국민 약속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창당대회에 민주당 총재의 자격으로 참석해 정치 개혁과 총선 승리를 고취하던 그 시각에 자민련 이한동 총재권한대행은 남산 자유센터의 깃발이 휘날리는 장충동 타워호텔에서 한국의 보수단체 대표자 100여명을 초청해 오찬을 베풀며 보수의 기치를 내걸었다. 이총재는 이 자리에서 본인의 정치적 소신인 보수대통합의 구상을 설명하고 자민련이 주축이 돼 보수대통합을 이룩할 터이니 보수세력들이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말 것을 부탁했다.



이번 선거를 보수 대 진보 혹은 보혁 대결구도로 이끌어 가려는 자민련의 차별화된 전략이었다. 이한동 의원을 당총재로 영입한 것부터가 그런 선거구도를 선명하게 유지하려는 전술이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초의 ‘연내 내각제 개헌’ 약속이 지난해에 DJP 합의로 유보됨으로써 DJP 연합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그 이후 추진된 합당 혹은 거대 신당 프로젝트마저 무산될 때부터 JP와 자민련으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길 생존전략이기도 했다.

민주당과의 합당이 물 건너 간 뒤로 자민련은 당장 지난해 말부터 독자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제는 전적으로 정부에서 당으로 복귀한 JP의 몫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연내 내각제 개헌 유보 이후 지금까지 실시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자민련의 정당 지지율은 한번도 10%대를 넘어선 적이 없다. 심지어 지난 1월에는 그때까지 정식으로 창당하지도 않은 민주노동당(창당준비위)보다 지지도가 훨씬 더 낮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바닥권인 자민련의 지지도가 내각제라는 존립 기반을 유보함으로써 당에 대한 지지 또한 유보된 것이다.

그런 여건에서 JP의 운신의 폭은 크게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번 물린 내각제를 되돌릴 수도 없으니 뾰족한 대책이 있을 수도 없다.

그런 과부(JP) 사정을 뻔히 아는 홀아비(DJ)가 이런 와중에 내각제 강령을 배제함으로써 자민련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JP로서는 여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홀아비 사정도 있을 법했다. 내각제 강령을 승계하지 않은 그 진의는 내심 의심스러웠지만, 어차피 내각제 개헌이란 것이 민주당 강령에 들어 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강령에 없다고 해서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YS는 금고에 보관해둔 내각제 합의각서마저 휴지조각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그깟 종이조각보다는 DJ의 의지와 결단이 더 중요한 것이다.

JP의 처지에서 그보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은 자신이 길 들이려고 했던 이인제라는 ‘새끼 호랑이’를 DJ가 선대위원장으로 기용한 것이었다. 이위원장은 그 누구보다도 드러내 놓고 내각제를 반대해온 대통령제 주창자이다. 내각제 강령은 빼고 차기 대통령 후보를 선거 사령탑으로 앉힌다? 이건 제 갈 길을 가자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이위원장은 자민련과의 합당이 무산된 뒤로는 JP의 텃밭인 고향(논산) 출마 의지를 내비쳐 오지 않았던가. 총선시민연대로부터 당한 ‘명예로운 은퇴’ 권고라는 불명예는 어찌 보면 참고 또 참아야 할 평생의 업보지만 이건 생존의 문제였다. 어, 최형우 대신 이번에는 이인제인가? JP로서는 그런 생각이 퍼뜩 들 만도 했다. 과부 사정 빤히 아는 홀아비가 장성한 양자까지 들인 격이라고나 할까.

JP냐 이인제냐 양자 택일하라는 시위

그것은 JP의 시나리오를 한꺼번에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런 판에 때 마침, 어차피 보수세력과는 거리가 먼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공천 반대자 명단을 들고 나온 것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었다. 보수대통합과 신보수주의는 아무리 외쳐도 지지율에서 표가 나지 않지만 DJ 혹은 그 홍위병들이 시민단체들을 동원해 ‘JP 죽이기’에 나섰다는 음모론은 굴릴수록 커지는 지역감정의 ‘눈덩이 효과’를 낳는 묘약이었다. 겉보기에는 DJ에게 진보세력을 동원한 ‘JP 죽이기’를 중단하라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포장한 ‘JP의 홀로서기’였지만 실제로는 JP냐 아니면 이인제냐를 양자 택일하라는 시위였다.

물론 JP는 그때까지도 말을 삼갔다. JP는 아직까지 공조 중단이니 공동정부 철수니 하는 말은 일절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그런 쪽으로 분위기가 휩쓸릴 규탄대회나 비상 당무회의 같은 민감한 자리에는 아예 참석하지도 않고 있다. 그 대신 이한동 권한대행과 김현욱 사무총장을 내세운 막후 수렴청정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평시(平時)라면 원래 청와대에서 DJP 회동을 가졌을 날인데 이미 전시(戰時)나 다름없었다. 이한동 권한대행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국회 헌정기념관 앞에서 개최한 ‘헌정질서 파괴책동 규탄대회’에서 “공동여당(민주당)에 대해 더 이상 약속을 구걸하지 말고 양당 공조니 연합공천이니 공동정권이니 하는 미련을 오늘을 기해 떨쳐버리자”고 기염을 토했다. 또 이날 열린 자민련 의원총회에서는 “말로만 공조 중단을 주장할 게 아니라 총리(박태준) 철수를 논의해 단안을 내리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더 논의되지 않았다.

사실 자민련이 공조를 중단하거나 공동정부로부터 철수한다면 그 핵심은 박태준 총리의 철수인데 박총리가 그런 요구를 받았거나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기색은 없다. 그런 점에서 위장전술이니 제한전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JP의 반DJ 드라이브 목표는 권력 핵심으로부터 탄압 받는 2인자 이미지를 되살려 자신의 텃밭(충청권)을 지키고 연합공천의 몫을 늘리려는 일종의 마조히스트적인 자팽(自烹) 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DJ로서는 JP의 진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DJ는 김봉호 국회 부의장(1월25일)과 한광옥 비서실장(1월28일)을 차례로 청구동으로 보내 내각제에 대한 자신의 충심(衷心)을 전달하고 JP의 이해를 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 협상 등 한시가 급한 DJ로서는 JP가 하시모토 류타로 전 일본 총리의 초청으로 방일(2월3~8일) 하기 전에 연합공천 문제 등 현안을 매듭지어야 했다. JP는 그럴수록 느긋해 보였다.

자물통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두 사람의 입에서는 JP와 나눈 구체적 대화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다. “JP가 언제 공조가 깨졌다고 한 적 있느냐”(자민련 이덕주 공보특보) “자민련에서 공조를 깨지 않겠다고 한 것은 의미 있다”(남궁진 정무수석) 같은 고공 탐색전만 오갈 뿐이었다.

그러나 일부 신문에 JP가 수도권 연합공천 배분비율을 둘러싸고 DJ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자민련은 2월1일 보도자료를 내고 “JP는 한광옥 비서실장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공동정권이면 그쪽에서 6을 가져갈 때 4는 자민련에 베풀어야지, 당신들은 8을 가져가고도 2를 베풀려고 하지 않는다’고 자민련의 소외감을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연합공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는 주장.

JP는 일본으로 떠나기 전날인 2월2일 이한동 권한대행과 함께 합동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이의원이 자민련에 들어온 뒤로는 일절 기자들과 따로 만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JP는 2여 공조에 대한 입장과 연합공천에 대한 전망 등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어디에 원인이 있건 간격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신의를 지키려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도리 없는 것이다…앞으로의 과정을 놓고 얘기하기 어려운 좌표에 서 있다. 좀더 지켜봐라.”

JP가 일본에 가 있는 동안 정가 일부에서는 JP가 DJ에게 이인제 선대위원장의 배제나 적어도 이위원장의 충청권 출마 포기를 요구한 것으로 관측했다. 자민련 의원들은 이제 공은 청와대로 넘어가 있다고 말했다. JP는 선거법 협상 막바지에 일본에서 돌아와서도 여전히 본심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JP가 일본에서 가져온 보따리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비록(秘錄)’이라는 책을 읽어보라는 선(禪)문답이 전부였다. 중국 대륙을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만든 문화혁명 시절의 마오쩌둥과 홍위병은 그가 한국 정치에도 곧잘 대입해온 화두였다.

이인제의 스윙전략과 인물 대망론

그러나 청와대를 겨냥한 JP의 침묵 공세가 이어지는 동안 이인제 진영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JP를 딛고 일어선다는 중대한 결단이 무르익고 있었다. 이른바 인물 대망론과 스윙 전략으로 JP를 정면 돌파한다는 이인제 선대위원장의 결단이다.

이위원장의 핵심 측근은 이위원장이 선대위원장으로서 청와대에 들어가 자신의 지역구 출마 결심을 밝히고 김대통령 앞에서 선거 전략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직접 그렸다는 한반도 지도와 S자 모양의 화살표가 그려진 스윙(Swing) 전략 메모를 보여주었다. 스윙 전략의 핵심은 한마디로 말해 호남-충청-수도권-강원으로 이어지는 벨트를 구축한다는 것인데 이를 지도상에서 보면 S자 형태이다. 여기에 바람몰이라는 의미를 덧붙여 스윙이라는 말이 된 것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우선 영남에서 올라오는 한나라당의 기세를 이 벨트를 구축해 차단한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스윙 전략의 이론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 주는 당의정이다. 다른 하나는 수도권 승리를 위해서 이 벨트를 통한 바람몰이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 본거지인 목포·광주에서부터 바람을 일으켜 대전·논산의 충청권을 경유, 수도권을 거쳐 강원도로 빠져 나가는 바람몰이 전략이다.

스윙 전략의 핵심은 역시 충청권. 충청권 본거지에서 이인제 바람을 일으켜야 충청권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충청권표가 결집한다는 논리이다. 그렇게 JP 아성인 충청권에 깃발을 꽂으려면 이인제 위원장의 지역구 출마가 불가피하고 결과적으로 JP와는 각을 세우고 충청권에서 대치 전선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위원장은 구체적으로 자신을 주축으로 한 참신하고 경쟁력 있는 후보로 논산-대전벨트를 형성하고 당에서도 동교동계가 직접 지원해 줄 것을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동석한 정치학 교수 출신의 장을병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이 “역시 이인제 위원장”이라며 무릎을 쳤고 DJ도 고개를 끄덕거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DJ로서도 현실적으로 다른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는 셈이다.

JP와의 또 다른 정면 돌파 전략은 이른바 충청권 인물 대망론. 이 또한 스윙 전략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수도권 인구에서 충청권 인구 비율은 20% 선이다. 어느 일방의 압도적 우세를 점할 수 없는 수도권의 접전 양상에 비추어 그 20%가 자민련이나 한나라당으로 가면 민주당의 수도권 석권 전략은 깨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인제를 충청권 대표주자(인물 대망론)로 내세워 수도권의 충청권 표를 민주당으로 가져와야 하는데 그럴려면 본거지(충청권) 민심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 본거지 연고 없는 표는 날아가기 십상이다. 따라서 자신이 충청권에서 JP와 각을 세우고 대치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윙 전략이 아니더라도 DJ에게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자민련이 선거법 협상·표결에서 1인2표제를 거부하는 바람에 민주당의 숙원사업인 전국 정당화의 길은 어렵게 되었다. 불리한 선거법 협상의 결과로 의석수가 줄어든 민주당으로서는 한 석이 아쉬운 판이다. 쉽게 말해 이번 선거가 지역구도대로 간다 해도 영호남 의석수 차이는 36석. 수도권을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모두 분점한다 해도 영호남 의석수 차이를 극복하려면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을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눌러야 한다. 그런 점에서 DJ에게 보고한 이위원장의 스윙 선거전략은 일단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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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당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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