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부, 대외연락부, 통일전선부 등 북한 정보기관이 모여 있는 평양의 노동당 3호 청사 위성사진.
관계자들에 따르면, 40대 중반인 Y씨는 평양의과대학을 졸업한 외과의사로 해외에서도 의사로 신분을 위장해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초반 해외에서 활동할 공작원을 물색하던 35호실 관계자들에 의해 발탁된 Y씨는 이후 1년여 동안 ‘밀봉교육’을 받고 해외로 파견되어 주로 구소련권 국가들에서 정보수집 및 공작활동을 해왔다. 1990년대 초반은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구소련 지역에 대한 첩보역량을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북한 정보당국이 이 지역에서의 정보망 강화에 힘을 쏟던 무렵. 그때껏 긴밀하게 진행되던 구소련 정보기관들과의 ‘업무협조’가 어려워지자 자체 조직을 활성화하던 시기다.
Y씨는 이후 10여 년간 35호실 본부의 지령을 받으며 활동하다가 지난해 말 서울 망명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처와 자녀를 동반해 ○○○ 주재 한국공관에 망명을 신청한 것. 이후 수주일간 현지 대사관에 거처하던 Y씨 일가는 올해 초 국정원 요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뒤 3개월가량 안전가옥에서 조사와 진술을 마친 Y씨는 봄부터 국정원의 보호 아래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며 서울살이에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Y씨가 소속돼 있던 35호실은 해외공작을 담당하는 부서로 한국의 국정원 해외파트에 해당한다. 창설 당시 ‘조사부’로 불리던 35호실은 1980년대 초반 북한이 대외공작부서를 전면개편하면서 ‘대외조사부’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980년대 말 대외정보조사부로 확대 개편됐다.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대외정보조사부’라는 명칭은 사용되지 않으며 현재는 ‘35호실’로만 통칭되고 있다고 전했다.
“KAL기 사건 관련 ‘내부 정보’ 확인”
해외 현지 정보수집이 주요 임무인 35호실은 우리에게도 낯익은 이름이다. 1987년 KAL858기 폭파사건을 일으킨 김현희와 바레인공항에서 사망한 김승일이 35호실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태생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를 거쳐 1984년 한국으로 건너온 전 단국대 교수 무하마드 깐수(한국명 정수일)를 포섭한 것도 35호실이다. 1978년 홍콩에서 납북됐다가 1986년 미국으로 탈출한 최은희·신상옥 부부에 관한 공작도 35호실 요원들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300명 내외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35호실은 내부 요원을 훈련해 해외로 내보내 정보수집과 공작활동을 벌이고, 해외인사를 포섭, 제3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침투시키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이외에도 북한 노동당 내에는 대남침투 실행부서인 작전부, 고정간첩을 담당하는 대외연락부, 공개적인 대남활동을 책임지는 통일전선부가 있다. 이들 기관은 평양 모란봉구역 전승동에 있는 노동당 3호 청사에 본부가 있어 ‘3호 청사’로 통칭되지만, 35호실 본부는 당 중앙위원회가 있는 창광거리의 노동당 본청사에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