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약진은 ‘계파 소멸 위기’를 반전시킨 것이어서 더욱 극적이었다. 한나라당에서 친박 인사는 겨우 38명만이 공천권을 받았다. 김무성, 김재원, 한선교, 송영선 등 친박 성향 국회의원 상당수는 낙천의 고배를 마셨다. 박근혜 전 대표는 낙천 친박 의원들을 위로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내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총선을 불과 보름여 앞두고 거짓말 같은 ‘박근혜의 마법’이 현실화했다. 공천 탈락자들이 친박연대와 무소속 연대를 구성해 출마하고 박 전 대표가 ‘지원유세 없는 지원’을 시작하자 영남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친박 돌풍’이 불어 닥쳤다. 여론조사에서 배 이상 뒤처져 있던 비(非)한나라 친박 후보들은 한나라당 후보들을 무섭게 추격, 앞질렀다.
거짓말 같은 ‘박근혜 마법’
선거 사상 유례 없던 일도 벌어졌다. 친박후보가 출마하지도 않은 한나라당 텃밭 지역구에서 ‘평소 박근혜를 괴롭혔다’는 이유로 한나라당 막강 실세 이방호 의원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진 것이다. 이재오, 정종복 의원 등 박근혜계 공천 탈락의 주역으로 지목된 실세 의원들도 낙선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2008년 한국 정치지형이 그려낸 최대의 의문인 ‘친박돌풍’에 대해 강원택 숭실대 정외과 교수, 박찬욱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양승함 연세대 정외과 교수, 임혁백 고려대 정외과 교수, 정진민 명지대 정외과 교수 등 정치학 교수 5인으로부터 거침없는 진단을 들어봤다.
이들 교수는 한결같이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은 불공정하게 진행됐으며 친박연대와 무소속 연대의 당선자들이 한나라당에 복당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표는 원칙을 지킴으로써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 측과 한나라당 지도부는 정치 개혁·정당 민주화를 후퇴시켰으며 한나라당의 과반 의석 확보에도 불구하고 리더십에 타격을 받았다”고 했다.
원칙…원칙…상식…원칙…
이들은 “박근혜의 ‘말’에 주목하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대선 이후부터 이번 총선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전 대표는 특별한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다. 선거기간에도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만 머물렀다. 그런데 그는 오직 ‘몇 마디 말’로 위기를 수습하고 돌파구를 만들어나갔다는 것이다. 선거의 판도를 바꾸어놓은 박근혜 어록을 시간대 순으로 정리해봤다.
“이번 선거에서 꼭 한나라당이 이겨 정권교체가 되었으면 좋겠다.”(2007년 12월19일 대선 투표 소감)
“나는 정치를 하면서 당연히 지켜야 할 원칙과 상식을 지켜온 것뿐이다.”(12월27일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 소감)
“(당권-대권 분리는) 당헌·당규에 나와 있는 대로 해야 한다. 당연한 것이다.”(12월28일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정상적으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당에서 가장 중요한 공천을 그렇게 뒤로 미룬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당선인이 분명히 늦추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2008년 1월2일 한나라당 대구·경북 신년 하례회 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