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각에선 위기 탈출을 위한 방편으로 ‘손학규 역할론’을 계속 꺼낸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전 민주당 대표)은 지난해 7·30 경기 수원병 보궐선거에서 무명의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 그를 복귀시켜 야당을 추슬러보자는 움직임이다. 그는 전남 강진의 토굴에 부인 이윤영 여사와 함께 칩거 중이다. 정계 복귀에 대해선 한사코 고개를 가로젓는다. 각종 여론조사기관의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자신을 빼달라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최근 옛 참모들에게 “가끔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정치 마음을 산(山)생활로 닦아내고 또 닦아낸다”고 했다. 묘한 뉘앙스다. 그는 잊을 만하면 지인의 결혼식장이나 상가(喪家), 행사장을 찾아 ‘한마디’를 한다. 정치적 메시지는 아니지만 존재감을 알리는 말들이 간접적으로 전해진다.
“인기 급상승! 사람 몰린다”
강진 토굴에 다녀왔다는 야당 정치인도 적지 않다. 허탕을 친 경우도 있지만 이종걸 원내대표,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손 전 고문을 만났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극비리에 만났다고 귀띔하는 사람들도 있다. 5월 10일 토굴 마당에 지지자 수십 명이 음식을 풀어놓고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가운데 손 전 고문이 인사말을 하는 사진이 SNS에 나돌기도 했다.
나흘 후 MBN 기자가 손 전 고문과 대화를 나누는 데 성공했다. 기자가 정계 복귀 여부를 묻자 그는 “자연 속에서 자연하고 같이 사는 맛을 사람들이 알까” “차나 한잔 마시고 얼른 내려가…”라고 선문답만 했다. 그래도 방송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산속으로 자신을 찾아온 건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요즘 야당 사람들은 “은퇴했는데 인기 급상승! ‘손학규 토굴’로 사람 몰린다”고 전한다. 손 전 고문의 생각이 궁금했다. 정말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는 정치 욕심을 산생활로 닦아내고 있을까. 찾아오는 사람들이 귀찮으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살면 될 텐데, 왜 이미 공개된 흙집에서 10개월째 머무르며 방문객들과 숨바꼭질을 할까. 정계 은퇴를 했다면 서울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게 더 진정성이 있지 않을까.
기자는 주말인 6월 5일 오전 지인 몇몇과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의 백련사를 찾았다. 서울~목포 KTX 노선이 개통된 뒤로는 서울에서 백련사까지 4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손 전 고문은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는 토굴에서 해결하고 점심식사는 백련사에 내려와 절밥을 먹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가 거처하는 토굴은 백련사 뒤 산길을 따라 10분쯤 올라가면 나온다고 했다.
토굴 아닌 슬레이트 지붕 집
절 뒤편의 산길은 두 갈래였다. 백련사에서 만난 손 전 고문의 지인은 절 뒤의 한쪽 산길을 손으로 가리키며 “점심 때가 되면 저 길로 대표님이 내려오신다. 개량한복을 입고 천천히 오신다.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신다”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도인(道人)이 홀연히 산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해될 법했다. 기자는 그 한 폭 동양화 같은 광경이 정말 보고 싶어서 그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어두려 했다.
그러나 예정된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그는 내려오지 않았다. 기자의 일행 중 한 명이 “아마 기자가 와 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듣고 일부러 피하는 것 같다”고 했다. 손 전 고문의 지인이 일러준 산길 쪽으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얼마 안 가 한 스님이 “그리로 올라가면 안 된다.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이라고 제지했다. 실제로 산길 입구에는 ‘선원입니다. 절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손 전 고문의 토굴로 가는 길 옆으로 ‘다산초당’으로 가는 오솔길이 나 있었다. 다산초당으로 발길을 옮기며 스님의 눈을 피한 뒤 토굴 쪽으로 슬쩍 방향을 돌렸다. 10분쯤 산길을 따라 걸으니 손 전 고문 부부가 기거한다는 토굴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손 전 고문이 처음 강진으로 왔을 때 일부 언론이 표현한 ‘토굴’과는 거리가 멀었다. 굴은 아니고 산속 오래된 시골집이었다. 흙으로 벽을 쌓아 그 위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