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사람들은 그를 알아본다. 서울 중구 을지로 6가 국립의료원 옆 대화호텔과 두산타워 뒤쪽에 자리잡은 거평프레야 사이의 좁은 골목길에 자리한 ‘러시아 타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그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96년 2월에 경찰에 입문한 김성호(金成鎬)경위. 경찰경력은 이제 만 4년밖에 안되지만 서울 중부경찰서에서만 경찰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보직은 외사계장. 러시아와 관련된 범죄가 전공이다. 어느덧 ‘러시안 캅’이란 별명도 얻었다.
김경위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93년부터 1년간 러시아 모스크바대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뒤 95년 외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했고, 이어 모 대기업에서 러시아지역 담당으로 8개월간 활동했다.
그런 김경위의 마음을 돌려 놓은 것은 95년 8월 경찰청에 나붙은 러시아 전문인력 특채. 당시는 러시아인의 한국 진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었고 그에 따라 치안수요도 급증하는 상황이었다. 김경위는 “공직에 투신해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했는데 운좋게 합격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여인들의 매춘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언제부터 입니까?
“95년 경찰에서 처음으로 러시아 매춘부를 적발했지만 사실 그전부터 러시아 여인들의 매춘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당시 검거된 러시아 여자들은 관광비자로 입국해 보따리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본격적인 매춘부는 아니고 재미삼아 몸을 팔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남자를 따라 여관으로 가 화대로 20만원을 받았는데 돈에 끌려 몇차례 윤락을 한 아마추어들이었지요.”
96년 중부경찰서에서도 러시아 여인들의 매춘행위를 적발했다. 대학에 재학중이던 이들은 한국인 5명과 1인당 3∼6차례씩 윤락행위를 해 3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뒤 검찰의 기소유예 조치로 강제출국 당했고 ‘파트너’였던 40대 한국인 5명은 동종 전과가 없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불구속 처리됐다.
―구속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몸을 팔고 사는 것이 죄가 된다면 왜 자신들만 구속하고 ‘재미를 본’ 한국사람들은 불구속으로 수사하느냐며 따져 곤혹스러웠습니다. 러시아 여성들은 윤락행위 방지법 이외에도 출입국 관리법도 위반했다는 사실을 설명했지만 막무가내로 동등한 처벌을 해달라고 소란을 피우더군요. 심지어 미아리나 청량리 윤락가는 버젓이 영업을 하는데 왜 자신들만 처벌하느냐는 항의도 했어요.”
―러시아인들은 윤락을 중대한 범죄라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윤락이라는 단어 자체를 낯설어 합니다. 자기 몸을 팔아 장사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아요. 성(性)이라는 게 소중히 여겨야 하는 성(聖)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은 희박합니다.”
김 경위는 러시아 여자들의 성의식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곁들였다. 러시아인들은 매매춘을 단순히 ‘애정행각’ 정도로 이해하기 때문에 중죄라고 보기는커녕 그다지 수치심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 러시아에서는 매매춘 행위를 단속하더라도 풍기문란과 같은 경범죄로 취급해 10달러 정도의 벌금만 물면 쉽게 풀려날 수 있다고 한다. 김 경위는 “러시아인 중에는 매춘은 삶을 영위하는 한 방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섹스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를 김 경위는 우선 추운 기후에서 찾는다. 동토(凍土)에서는 살을 에는 추위 때문에 외부 활동 자체가 자유롭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관이 발달하지 않은 이들은 서로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는데 익숙하다. 18세를 넘긴 여자가 남자집에 초대를 받아 갈 경우 ‘섹스’를 염두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
실제로 97년 12월 동아일보 해외토픽란에는 AP발로 ‘극동지역 사할린 반도의 유지노―사할린스크 청소년 범죄 세미나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극동지역 10대 중 여자 응답자의 25%가 매춘부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는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5000여명이 전국에 퍼져
―국내 러시아 여인들의 윤락 양태는 어떻게 바뀌었나요?
“처음에는 보따리상 중에 돈이 모자라 물건을 사지 못한 사람들이 우연히 매춘을 했습니다. ‘하룻밤 봉사’의 대가로 20만원(150달러) 이상을 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대단한 매력이었지요. 물건을 사가는 것은 물론 두둑한 용돈까지 벌어갈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에 오려는 러시아인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또 이 사업이 장사가 된다는 것을 안 러시아에 인력송출업체가 생겨나면서 러시아 여인들의 서울행 러시가 시작된 것이지요. 극동지역에서는 한국에 오는 여인들을 위한 전세기까지 등장했을 정도니까요.”
―지역적으로는 어떤 분포를 보입니까?
“처음에는 모스크바 여성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극동의 하바로프스크나 블라디보스토크 사람이 많아요. 모스크바 출신 인터걸들은 대부분 유럽시장으로 진출하고 있기 때문에 극동지방에는 잘 오지 않아요. 한국이 경제위기를 겪던 97년 말부터 두드러진 현상입니다. 모스크바를 서울에 비한다면 하바로프스크나 블라디보스톡은 시골 소도시 정도라고 보면 좋아요. 모스크바 여자들이 패션감각이 좋고 조금은 교활한 면을 보인다면 하바로프스크 여자들은 굉장히 순박해요. 하라는 것은 군소리 않고 하는 촌색시 같다는 비유가 적당할 거예요. 한국에 들어오는 러시아 여인들이 급증하면서 서울과 부산 정도에서만 볼 수 있던 러시아 여인들이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됐지요.”
―인천 대전 등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도시에도 러시아 여인들이 퍼져 나갔다는 얘깁니까?
“현재 정식으로 공연비자(E―6)를 받고 들어온 러시아 여자의 수가 2000명을 넘었습니다. 이 정도 숫자라면 대도시의 관광호텔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숫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공연비자를 받고 온 러시아 여자보다는 관광비자를 받고 입국한 뒤 기한을 넘겨 장기체류하는 러시아인이 더 많다는 데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략 5000명의 러시아 여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 여자들이 전국 방방곳곳의 중소도시에서 술을 따르고 있는 것이지요.”
―을지로6가에 형성된 ‘러시아 타운’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러시아 촌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한때 국립의료원 옆 대화호텔에서 거평프레야 사이 골목은 러시아인들로 넘쳐났지만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요. 러시아인들이 빠져 나간 자리를 몽골 사람들이 급속도로 메우고 있습니다. IMF체제에 든 97년 12월 이후 한국인의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자 러시아인들은 하나둘 이태원으로 장소를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IMF 이전에는 20만원이면 250달러였지만 이제는 150달러밖에 되지 않으니 달러를 더 벌고 싶었겠지요. 미군쪽이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안 것이지요.”
“한국에 가면 대박 터진다”
―미군들을 상대로 한 윤락이 많아졌다는 얘기입니까?
“러시아 여자들에게도 ‘아메리칸 드림’이 있습니다. 세계 최대부국인 미국에 가 미국 시민권을 얻어 살고싶다는 러시아 인을 여러 명 만났습니다. 실제로 미국인과 결혼해 미국으로 간 경우도 있으니까요.”
―러시아 여자들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공연비자를 받고 입국한 러시아 여자들은 한국에 있는 외국연예인 수입업체들이 숙박을 해결해 주는 조건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길거리에 나앉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이태원에 가장 많이 살고 다음으로는 경기도 파주·일산 등에도 모여 산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불법체류하는 러시아 여자들의 경우 대개는 여관에 장기 투숙하고 있지요. 또 폭력조직에 집단적으로 감시를 받는 등 주거형태는 천차만별이지요.”
―러시아 여인들은 어떤 경로로 한국에 들어옵니까?
“인터걸들은 대개 현지 신문의 모집광고나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 현지 조직과 연결됩니다. ‘한국에 가면 대박 터진다’는 광고가 신문이나 방송에 공공연히 실린다고 합니다. 젊은 러시아 여성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경우는 체류기간 6개월에 2년까지 연장이 가능한 공연비자(E―6)가 있고 체류기간이 15∼20일인 관광비자(C―3)가 있지만 몸을 파는 여인들은 대개 신청서류가 간단한 관광비자인 경우지요.”
―공연비자와 관광비자 이외에는 없나요?
“드물게 나오는 것이 방송비자입니다. 방송에 출연한 사람에게 주는 비자인데 체류기간이 2년이라 러시아 여자들이 무척 갖고 싶어하지요. 러시아를 무대로 한 모 방송국의 ‘백야 3.98’이라는 드라마를 찍을 때 국내 체류중이던 러시아 여인들이 대거 몰렸습니다. 대사도 없이 엑스트라로 카메라에 스치기만 해도 2년 체류가 보장되니 너도 나도 촬영장으로 몰려든 것이지요.”
―공연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오는 경로는 어떻떤 겁니까?
“매춘목적의 인터걸이 아니라 미군 영내의 클럽이나 관광호텔, 관광특구 등에서 일하는 댄서들은 국가에서 관리합니다.
이들은 러시아 내의 송출회사를 통해 한국내 외국연예인 공급업체(프로덕션)와 계약을 하지요. 또 한국 영상물 심의위원회 공연심의과로부터 심사도 받습니다. 매춘을 엄격히 관리하는 프로덕션은 이들이 국내에 도착하자마자 에이즈검사 등을 받게 한 뒤 거주등록증을 발급해 줍니다. ‘매춘을 하면 최고 3000달러의 벌금을 문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 ‘프로덕션’은 몇 곳이나 있습니까?
“현재는 59곳이 등록을 마치고 외국연예인을 미군영내클럽이나 관광호텔 등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52곳이던 것이 두 달도 안돼 7곳이나 더 늘어났지요.”
술좌석 팁 5만원
―매춘을 하다 적발된 러시아 여인들에게는 어떤 조치가 내려집니까?
“윤락행위 방지법 위반으로 구속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여자들의 경우 일단 구속한 뒤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지면 그대로 러시아로 추방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문제는 한번 추방된 여자가 다시 국내에 입국한다는 것입니다.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는 매춘행위 때문에 추방된 러시아 여자들은 다시 입국시키지 않고 있지만 여권을 위조하는 방법 등으로 버젓이 국내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입국 관리가 그만큼 허술하다는 증거죠.”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관계자도 “원칙적으로 매춘행위를 하다 추방당한 사람에 대해 재입국은 금지되지만 영어 철자를 교묘히 바꾸거나 여권을 위조하는 등의 방법으로 입국하는 것까지 막을 방법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로 밤에 일하는 러시아 여자들은 낮에는 어떤 생활을 합니까?
“낮 12시부터 밤 9시까지는 자유시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관리를 받기는 하지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은 아니므로 여가를 즐길 정도의 자유는 있어요. 그래서 러시아 여자들은 한국에서 남자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해요. 술을 마시다가 만난 사람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사귀자고 하는 편이지요. 러시아어를 할 줄 알면 금상첨화라고나 할까요.”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요?
“매춘행위로 구속된 러시아 여인을 수사하니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인은 국내에서 휴대폰을 소지할 수 없기 때문에 휴대폰 소유자를 조회해보았더니 모 중소기업 사장이더군요. 술집에서 만나 친구가 됐는데 연락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휴대폰을 사줬다는 거예요. 러시아와 거래를 하기에 러시아어도 할 줄 아는 이 사람을 추궁해 보니 러시아 여자와는 약 1년 정도 사귄 사이더군요. 시간이 나면 교외로 다니며 선물도 많이 사준 모양이더라고요. 어학공부를 했다나요.”(웃음)
―다른 종류의 불법은 이루어지지 않나요?
“최근에 공연비자로 들어온 러시아 여자 중 일부가 불법으로 누드모델을 하고 있다는 혐의가 포착돼 수사중입니다.”
―최근에는 룸살롱에 취직한 러시아 여자들이 급격히 늘어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하던데요?
“경찰과 검찰의 단속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드러내놓고 영업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단골위주로 비밀리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경찰이나 검찰의 함정수사도 있을 수 있으니까 ‘검증된’ 고객들에게만 여인들을 비밀리에 공급하는 것이지요”
―팁은 얼마나 받나요?
“공정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술을 따르는 경우 5만원을 받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한때 10만원까지 몸값이 부풀기도 했지만 이제는 절반입니다. 말도 제대로 안 통하고 또 중간중간 스테이지에 춤을 추러 가느라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아 몸값이 떨어진 것이지요.”
김경위는 “러시아 여인들은 불법체류 등 떳떳하지 못한 신분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법적인 구제를 호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러시아 대사관에서 법률고문으로 활약하는 변호사를 소개해 줬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