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은 ‘개혁군주’ 정조가 1789년 선친 사도세자의 능을 경기도 양주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조성된 조선 최초의 계획도시다. 정조는 능 주변에 성을 쌓아 ‘화성(華城)’이라 칭하고 대대적인 신도시 건설사업에 나섰다. 자신이 거처할 행궁도 지었다.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를 기리는 효심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당파정치를 근절하고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 구상의 중심지로 이곳을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국정을 농단하는 노론의 근거지 한양을 떠나 이 신도시에 새 정치의 터전을 마련하려 한 것. 정조는 아예 도읍을 수원으로 옮길 생각도 있었으나 젊은 나이에 타계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보수 성향이 강한 수원에서 개혁·진보를 표방하는 야당 후보가 민선 시장에 당선된 것은 민선 5기 염태영 시장이 처음이다. 그를 정조와 연결짓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더욱이 그와 맞붙은 한나라당 심재인(58) 후보는 35년간 공직에 있으면서 부시장을 3차례(과천·포천·파주)나 지내고 경기도 자치행정국장을 역임한 ‘행정의 달인’. 염 시장의 고교(수원 수성고) 10년 선배로 당내 공천에서 12대 1의 경쟁을 뚫은 거물이었다.
“무상급식은 ‘철학’의 문제”
민주당-민노당의 후보단일화, 한나라당의 공천 지연,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들의 무소속 출마 등이 선거전에서 염 시장에게 유리한 형국을 조성했지만, 무엇보다 여당 소속 전임 시장의 8년 장기집권에 변화를 열망하던 시민들이 염 시장의 개혁의지에 주목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사실 수원시장 후보들이 내놓을 만한 공약은 눈에 띄는 차별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수원 화성과 수원천 복원, 수원비행장 이전, 수원시·화성시·오산시 통합 등의 숙원사업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어차피 신임 시장이 한두 해에 걸쳐 끝낼 수도, 크게 흐름을 바꿀 수도 없는 대형·장기 사업일뿐더러 몇몇 세부 사업은 이미 전임 시장 때부터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런 해묵은 카드에 새삼 덧칠을 하기보다는 시민의 일상에 직접 와 닿는 말랑말랑한 ‘생활 공약’의 호소력이 훨씬 클 수 있다.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복지, 환경, 청렴 같은 참신한 카드에 파스텔톤을 입힌 염 시장의 접근법이 제대로 먹혀든 이유다. 6·2지방선거의 최대 쟁점 중 하나였던 초·중학생 친환경 무상급식 공약도 염 시장이 “이것은 경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라며 일관되게 몸을 던지다시피 하자 그저 당론 쓸어담기가 아니라 정치인 이전에 한 개인의 강고한 의지와 신념으로 비쳐졌다. 실제로 이 공약은 그 또래 자녀를 둔 상당수 30~40대 주부의 표심(票心)을 파고들었다는 후문이다. 이 얘기부터 물어봤다.
▼ 공약에선 철학의 문제일지 몰라도 집행에선 분명 경제의 문제일 텐데요.
“무상급식은 무상교육의 연장선에서 추진해야 합니다. 교육의 공공성과 교육복지를 증진하면서 친환경 농업의 기반을 넓히고, 수원과 인근 지역 간에 급식전달체계를 만들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어요.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지역경제도 살리니 일거양득이죠. 한 마디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첫걸음입니다.
다만 먼저 수원시 조례를 개정하고 예산을 확보해야 하기에 연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우선 올해 하반기(10월)부터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합니다. 여기에 드는 예산이 34억원인데, 경기도교육청과 수원시가 50%씩 부담하고요. 이후 2012년엔 초등학교 전체, 2014년엔 초·중학교 전체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 2개 학년을 3개월 동안 먹이는 데 34억원이 든다면 전체 초·중학생을 1년 동안 먹이는 데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겠군요.
“수원의 미래 주역인 아이들을 키우고 아이들에게 투자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전체 무상급식에는 526억원이 필요한데, 수원시가 50%를 부담한다 해도 263억원이니 큰돈이죠. 그래서 무상급식 예산을 교육청 50%, 광역자치단체(경기도) 30%, 기초자치단체(수원시)가 20%씩 부담하게끔 관련법과 도 조례를 개정하도록 관계기관에 건의할 계획입니다.
예산도 예산이지만, 친환경 식자재를 안정적으로 유통시키려면 친환경급식센터 설립도 시급합니다. 여기에 적지 않은 기간이 소요되고, 수원시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농산물이 미나리 등 4종류뿐이라 어려움이 커요. 그래서 화성시, 오산시 등 인근 기초단체와 농산물 생산 및 유통 관계자, 학교, 영양사 등으로 ‘친환경급식추진 준비단’을 구성해 차근차근 준비해갈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