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호

“새마을운동 정신 바탕으로 친환경·과학도시의 미래 열겠다”

‘영일만 르네상스’ 디자이너 박승호 경북 포항시장

  • 이권효│동아일보 대구경북취재본부장·철학박사 boriam@donga.com

    입력2011-11-23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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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의 빛 새로 받은 ‘연오랑 세오녀 설화’의 고향
    • “영일만에 빠져 죽는 한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우향우 정신
    • 친환경 녹색 도시 만드는 테라노바 프로젝트
    • 노벨상 사관학교 ‘막스 플랑크 연구소’ 유치한 ‘사이언스 포항’
    “새마을운동 정신 바탕으로 친환경·과학도시의 미래 열겠다”
    “포항제철소의 멋진 야경을 보면서 북부해수욕장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상당히 느낌이 좋았어요. 바다를 끼고 있어 그런지 답답하지 않고 발전 가능성도 큰 듯합니다.”

    포항 북부해수욕장에서 만난 한 관광객은 “호미곶 영일만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여름 겨울이면 꼭 포항에 온다”며 이같이 말했다.

    ‘갈매기 나래 위에/시를 적어 띄우는/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수평선까지 달려 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거친 바다를 달려라/영일만~친구야.’(최백호,‘영일만 친구’)

    새마을운동 정신

    박승호(54) 경북 포항시장에게 ‘영일만’은 각별한 뜻이 있다. 포항제철소로 상징되는 ‘영일만 신화(神話)’를 이어 꿈꾸는 ‘영일만 르네상스’ 때문이다. 박 시장은 이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른다. 포항시에 전화를 걸면 이 노래가 흘러나올 정도로 영일만은 곧 포항의 현재이며 미래다. 포항(浦項)은 ‘큰 바닷가’ 정도의 뜻이지만, 영일(迎日)은 더 깊은 뜻을 품고 있다. 가수 최백호씨는 지난해 명예포항시민이 됐다.



    박 시장은 최근 9일 동안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를 비롯해 베트남과 필리핀을 방문해 ‘포항표’ 새마을운동을 선보였다.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마다가스카르에 메디컬센터도 지어줬다. ‘새마을운동’과 ‘포항제철소’ ‘영일만 신화’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는 “이들 나라가 우리보다 경제력이 약하지만 뭘 도와줬다기보다는 포항이 오히려 스스로 힘을 키우는, 새마을정신 중에 ‘자조(自助)’를 더욱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꿈꾸는 영일만 르네상스는 새마을운동의 연장선이다. 제2, 제3의 영일만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에너지도 모두 새마을운동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박 시장은 “새마을운동은 곧 영일만 정신”이라고 했다.

    1971년 9월 박정희 대통령은 국무위원과 전국 시도지사, 시장 군수와 함께 경북 포항시(당시 영일군) 북구 기계면 문성마을에 들러 “문성동 같은 새마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시가 이 마을을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당시 전국적인 가뭄으로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 상황에서도 이 마을 주민들은 지하수 개발 등으로 이를 극복하고 마을 모습을 크게 바꾸었다. 마을 주민들은 1972년 4월 마을 입구에 박 대통령 시찰 기념비를 세웠다. 포항시가 2009년 이곳에 새마을운동 기념관을 짓고 동남아 등 국내외 새마을지도자 교육을 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영일만 신화’는 1970년대 전국 3만3000여 개 마을 가운데 문성리가 가장 모범적이라는 평가에서 싹을 틔웠는지 모른다.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는 상황에서 이장을 중심으로 “서로 도우면서 힘을 모아 잘사는 마을로 가꾸자”며 마음을 모은 것은 포항제철소 탄생 정신과 다를 바 없다. 박 시장이 “문성리의 새마을운동은 마을 단위 일이었고 포항제철소는 국가적으로 중대한 문제였지만 ‘우향우 정신’이 없었다면 둘 다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향우 정신은 1968년 포항제철소 건립을 시작할 때 박태준 현 포스코 명예회장이 “해내지 못하면 모두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고 한 데서 유래한다. 제철소 오른쪽이 영일만이다.

    ‘산업의 쌀인 제철소가 필요하다’는 당위성 외엔 가진 것이라곤 거의 없던 상황에서 제철소를 설립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1973년 국내 첫 용광로에서 흘러나오는 쇳물을 볼 때까지 포항시민들은 “정말 제철소가 생기긴 하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 시장은 “지금은 나라를 먹여 살리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포스코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없던 어촌마을이 이렇게 된 과정을 생각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뭉클해진다”며 “외국에 가서 ‘포스코가 있는 도시’라고 하면 바로 통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고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영일만 르네상스의 꿈

    박 시장이 영일만 르네상스를 잠시도 잊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늘의 포항을 있게 한 토대는 포항제철이지만 거기에만 머무르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포항제철은 우리나라 산업화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포항을 철강도시로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박 시장의 꿈과 욕심은 멀리는 신라시대 연오랑·세오녀 부부의 설화에서 시작된 영일(해맞이)의 뜻부터 가깝게는 새마을운동과 포항제철소까지, 영일만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 산업 경제를 계승하는 것이다. 포항시와 포스코가 새해 첫날 호미곶광장에서 일출 행사를 열고 여름에는 영일만을 수놓는 국제불빛축제를 여는 것도 영일만 정신을 통한 포항 발전을 염원하는 뜻에서다. 일회성 지역축제가 결코 아니다.

    ‘영일만 르네상스’의 주요 정책이 왜 나왔는지, 무엇을 추구하는지는 ‘영일’이라는 단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영일만항 컨테이너 부두가 개항하고 곳곳에서 도시 모습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바탕에는 ‘새로운 해(日)’ 즉 ‘새로운 빛(光)’을 향한 꿈과 열정이 담겨 있다. 박 시장은 “포스코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철강으로 상징되는 포스코만으로는 영일만 르네상스가 부족하다”며 “더 멋진 철강도시 브랜드를 위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것이 곧 포항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테라노바(Terra Nova·새로운 기회의 땅) 포항’이다.

    작은 사례지만 북구 중앙동 중앙상가 실개천을 보자. 1960년대 형성된 중앙상가는 한동안 포항의 대표적인 번화가였지만 유통환경이 바뀌면서 상권이 크게 후퇴했다. 2007년 8월 상가 중심부에 길이 650m(포항역~육거리), 깊이 20~50㎝, 폭 30~90㎝의 S자 모양 미니 물길을 만들었다. 콘크리트 도로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자 상가 일대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면서 상권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작은 변화가 포항 옛 도심의 분위기를 확 바꾼 것이다. 이 실개천은 지난달 유엔 인간거주위원회 일본 후쿠오카 본부가 주최한 도시경관상을 받았다. 박 시장은 “작은 실개천이 주민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 점을 좋게 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좀 더 큰 사례는 동빈내항 복원 사업. 1962년 북구 동빈내항이 개항했을 때는 항구와 형산강이 이어져 포항의 대표 항구 구실을 했으나 10년 뒤 포항제철소가 가동하고 주택지 조성을 위해 형산강 쪽을 매립하면서 물길이 끊어져버렸다. 영일만에서 동빈내항으로 들어온 바닷물이 40여 년 동안 중간에 갇히면서 지금 동빈내항 하면 악취와 오물부터 떠오르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테라노바 포항

    당초 이 사업은 2012년까지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보상 문제로 1년가량 늦어져 2013년이면 지금과는 100% 달라진 동빈항구 해상공원이 될 전망이다. 남구 송도동~해도동 형산강 1.3㎞ 구간 주변의 건물을 철거하고 매립지를 걷어낸 뒤 폭 18~30m, 깊이 2m가량으로 물길을 연결하는 사업이다. 이 물길을 따라 보트와 작은 유람선이 오가고 수상(水上) 카페에서 영일만 풍경을 즐기는 유럽풍 도심 수변(水邊) 공원으로 가꾸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영일만을 오가는 보트가 동빈내항으로 들어와 형산강을 따라 올라가는 국내 유일의 풍경이 등장할 수 있다.

    사업 구간 주변은 이미 상당 부분 정비가 끝나 깔끔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부근 송도해수욕장도 옛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복원해 나갈 예정이다. 고운 모래로 유명하던 이 해수욕장은 수십 년 동안 모래가 쓸려나가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박 시장이 동빈내항 복원에 팔을 걷어붙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포항시민뿐 아니라 관광객들 입에서 ‘정말 괜찮다’는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확 바뀔 동빈내항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 잠을 못 잘 정도죠.”

    박 시장이 이 사업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철강기업 포항제철소’ 하면 딱딱한 쇳덩어리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포스코도 ‘녹색 제철소’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파이넥스 공법 등의 제철 과정도 친환경적이지만, 공장 주변도 생태공원과 비슷하다. 최근에는 제철 공정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을 이용해 생태 서식장을 만들고 낚시대회까지 개최했다. 포스코는 하루 90t가량 나오는 온배수를 길이 1.2㎞, 폭 10~15m, 깊이 2~4m 규모 서식장에 모아 물고기를 기른다. 돔 숭어 농어 등이 서식하는데 길이가 30㎝가량 되는 것도 적지 않다. 890만㎡ 제철소 부지 안팎에 나무가 수십 만 그루여서 멀리서 보면 숲 속에 제철공장이 숨어 있는 듯한 느낌도 준다. 포스코와 협력업체들은 최근 포스코에서 구룡포까지 22㎞를 ‘호미(虎尾)사랑 둘레길’로 조성했다.

    포항의 새 관문 영일만항

    ‘테라노바 포항’은 실개천이나 항구 복원 같은 도심 재생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는다. 이 같은 공공디자인이 미시적 테라노바라면 경제를 튼튼히 하고 일자리를 늘려 주민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은 거시적 테라노바다. 2009년 북구 흥해읍 영일만에 개장한 영일만항은 컨테이너 부두여서 포항이 국제항구로 발돋움하는 출입구로 성장이 기대된다. 개장 초기에는 컨테이너 이용 실적이 미미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잖이 나왔지만 올해 10월 말 현재 10만7000여 TEU(일반적으로 쓰이는 길이 6m 컨테이너) 처리를 달성했다. 국내외 해운업체의 항로가 꾸준히 개설돼 올해 말까지는 13만 TEU 정도를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컨테이너 선박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규모(4선석)지만 2020년까지 16선석에 방파제 길이는 7㎞가량으로 조성해 명실상부한 국제항구의 위용을 갖출 계획이다. 여기에 2014년에는 서울-포항 사이 고속철(KTX)이 개통돼 서울까지 지금의 절반인 1시간50분 만에 도착할 수 있게 된다.

    컨테이너 항구가 개항하면서 배후 산업단지 조성과 기업 입주도 활발하다. 항구 배후지역에는 이미 자유무역지역 70만9000㎡가 조성됐고 69만㎡를 추가 조성할 계획이다. 2015년까지는 배후산업단지 632만6000㎡가 대부분 산업단지로 바뀔 전망이다. 영일만항 활성화는 포항의 미래를 먹여 살릴 큰 축이다. 박 시장은 “러시아와 북한, 중국, 일본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중요한 교두보”라며 “포항이 환동해권 중심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계획이 매우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올해 7월 포항 인구가 52만명을 넘은 데 대해 시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정주(定住) 여건이 좋아지고 기업 환경이 나아지면서 인구의 ‘질적’ 성장이 시작되는 신호가 아니냐는 것이다. 1995년 1월 영일군과 통합했을 당시 포항시 인구는 51만800여 명이었다. 52만명을 넘기는 데 무려 16년이 걸렸다. 그 사이 인구가 50만명 대로 떨어진 적도 있어 “이러다간 40만명대로 주저앉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많았다.

    인구의 질적 성장 신호 ‘52만명’

    “새마을운동 정신 바탕으로 친환경·과학도시의 미래 열겠다”

    박승호 포항시장이 지난 7월 태어나 포항의 52만 번째 시민이 된 아기를 안고 기뻐하고 있다.

    50만~51만명 사이에서 들쭉날쭉하던 인구가 증가세로 접어든 시기는 2007년. 이 무렵부터 조금씩 늘어나다 올해 7월 북구 흥해읍에서 52만 번째 아이가 출생신고를 했다. 박 시장을 비롯한 포항시 간부들은 ‘포항에 복덩이가 생겼다’며 총출동해 아이의 부모에게 출산용품과 쌀을 안겨주며 축하했다. 흥해읍은 영일만항과 배후산업단지가 있는 곳으로 지금 포항에서 가장 역동적이다. 1960~ 70년대에는 포항제철소 가동과 해병대 주둔이 포항 인구 성장을 이끌었지만 그 외 특별히 인구 성장 요인이 생기지 않아 제자리걸음을 했다. 영일군과 통합 직전 포항 인구는 32만명 정도에 불과했다. 박 시장은 “인구가 급성장하는 시대는 이제 기대하기 어렵다”며 “기업이 성장하고 교육 등 주거환경이 좋아지면서 꾸준히 인구가 느는 모델을 포항이 보여주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사이언스(과학) 포항’은 테라노바의 또 다른 중심이다. 과학기술 경쟁력은 산업 분야뿐 아니라 주민의 삶의 질과 생활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포항시의 관심과 노력이 남다르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재단 한국연구소가 포항에 설립되는 것은 과학도시 포항의 위상을 말해준다. 포항시와 포스텍(포항공대), 경상북도가 2008년부터 연구소 유치를 위해 노력한 지 4년 만에 거둔 결실로 포항을 넘어 대한민국의 과학 경쟁력을 위해서도 획기적인 사건이다.

    1948년 설립된 막스플랑크 연구재단은 지금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17명 배출해 ‘노벨상 사관학교’ 불리는 지구촌 최대 최고 과학연구기관이다. 자존심이 높아 해외 연구소를 거의 설치하지 않는다. 포항 연구소는 2009년 미국 플로리다 연구소에 이어 두 번째 해외연구소라는 명예를 안았다.

    천안함 추모하는 호국 도시

    국내 최고 수준의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인 포스텍과 국내 유일 동양 최대 규모 빛 공장인 방사광 가속기도 포항에 있다. 1986년 개교한 포스텍은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방사광 가속기는 첨단과학기술 개발에 필수적인 설비다. 또 포항지능로봇연구소와 산업체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등은 과학도시 포항을 위한 핵심 기반이다.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한국에서 탄생한다면 그 발상지는 포항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지자체 이기주의를 뛰어넘는 호국(護國) 마인드도 영일만 정신이다. 포항시는 얼마 전 ‘해병 지원조례’를 만들었다. 현역과 예비역 장병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을 비롯해 외출·외박 때 여가활동 지원, 공공시설 이용 편의, 부대 환경개선 지원 등의 내용을 담았다.

    1955년 경기도에서 창설된 해병대는 1959년 3월 포항시로 해병1사단이 이전한 이후 52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철강도시와 함께 포항을 ‘해병도시’라고 하는 이유다. 해병대를 배출하는 교육훈련단도 포항에 있다. 농번기 일손이 부족하거나 각종 재해로 시민이 불편을 겪을 때면 언제나 빨강 모자를 쓴 해병대가 달려온다. 포항시민들에게 해병대는 그야말로 ‘영일만 친구’다.

    지난해 3월 백령도 해역에서 발생한 천안함 폭침은 포항과는 별 관계가 없는 사건이었지만 포항시의 마음은 남달랐다. 마침 천안함과 같은 크기의 포항함이 퇴역한 뒤 진해항에 있는 것을 알고 지난해 6월 동빈내항으로 옮겨 함상공원으로 만들었다. 천안함 사건 때 수몰 장병 구조작업 중 숨진 고(故) 한주호 준위를 실물 크기 동상으로 만들어 포항함에 세운 것도 이런 맥락이다. 천안함 사태 관련 자료 등을 전시한 포항함에는 지금까지 15만명 이상이 찾아 포항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됐다. 박 시장은 “이 같은 관심 또한 나라를 생각하는 새마을정신이고 영일만의 자존심”이라고 했다.

    포항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이지만 ‘대통령 도시’라는 브랜드에 처음부터 안주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사업 추진에 따른 국비 지원인데도 ‘형님(포항이 지역구인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을 지칭) 예산’이라며 논란이 일고 ‘영포라인’(영일 및 포항 인맥)이라는 말이 세간에 오르내린 데 대해 박 시장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보였지만 억울해하거나 해명성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영일만 르네상스를 향한 긴 항해에 비춰보면 이 같은 일들은 모두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지속 가능한 영일 DNA

    2008년 구성한 포항시 장학회 기금은 올해 300억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여러 지자체가 비슷한 장학회를 운영하지만 이만한 규모의 기금은 흔하지 않다. 형님 예산이나 영포라인 논란이 불거질 때면 장학회 기금은 더 늘었다. 인재를 키워 실력으로 포항의 미래를 그려나가겠다는 시민들의 뜻이 결집되는 것을 보여준다.

    기업인 자녀를 위한 포항외국인학교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사정과 관련 있다. 박 시장은 “형님 예산이니 형님 과학벨트니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했지만 일희일비하지 않았다”며 “이럴수록 영일만을 새롭게 가꾸는 노력을 차분하고 성실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소명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신라 8대 아달라왕 4년(157) 포항 쪽 동해안에 살던 연오랑·세오녀 부부는 해초를 따던 중 갯바위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러자 신라는 해와 달의 빛을 잃었다. 연오는 일본으로 온 부부의 운명이 하늘의 뜻이라고 믿고 세오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면 신라가 빛을 다시 찾을 것이라고 했다. 세오의 비단제사로 다시 빛을 찾은 이야기가 전해오는 연못 일월지(日月池)는 지금도 영일만에 남아 있다. 이런 역사적인 인연 때문인지 일제강점기에 남구 구룡포읍에 살았던 일본인 집단거주지가 원형대로 잘 보존돼 있어 일본 관광객의 필수코스가 됐다. 일본 기업 유치도 활발하고 일본 언론의 포항 취재가 잇따르는 것도 영일의 뿌리 덕분인지 모른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박 시장은 “영일에 얽힌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설화가 아니라 새마을운동과 포항제철소, 영일만 르네상스 비전 속을 흐르는 포항의 DNA”라며 “빛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는 것처럼 영일의 정신이 없다면 어제의 포항, 오늘의 포항, 내일의 포항을 약속할 수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영일만 르네상스가 포항만의 과제가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빛’이라는 기대감이 들고 영일만 친구처럼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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