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형과 B형의 난도 조정은 매우 복잡한 난제다. 수능에서 학생들은 원점수 이외에 표준점수를 받는다. 난도와 학생들의 점수 분포를 고려해 산정하는 표준점수는 상이한 난도의 사회탐구 및 과학탐구 과목들을 단일 선상에서 평가하는 데 유용하다. 표준점수는 그 시험을 치른 학생들의 평균과 표준편차로 결정되는데, 만약 시험이 어려워 전체 평균이 낮아지면 만점의 표준점수는 높아지고, 표준편차가 작아져도 표준점수는 높아진다. 만일 중하위권 학생들이 보는 A형의 문제가 약간 어려워 전체 평균이 낮아지면 만점의 표준점수는 높아지기 때문에 A형의 고득점자에게 유리해진다.
이런 상황이 알려지면 B형을 선택하려던 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A형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B형을 치르고 대학 입학 전형에서 가산점을 받는 것보다, A형을 선택해 높은 표준점수를 받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B형을 치르려던 학생들이 A형으로 옮겨가게 되면 응시자가 줄어든 B형에선 등급을 받기가 어려워져 수능 최저기준을 못 맞추는 사례가 속출할 수도 있다. 이처럼 A형과 B형의 난도와 학생들의 향방에 따라 유형에 따른 유불리(有不利)가 달라지고, 매번 예측 불가능한 카오스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래도 원안대로 시행해야
선택형 수능안은 2011년 1월에 발표됐지만, 교육과학기술부는 새 정부 출범 후에 실시되는 수능이라 수수방관했고,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만점자 비율과 EBS 강의 연계율을 맞추느라 허덕이면서 새 수능에 대비하지 못했다. 선택형 수능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대학들은 이제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무관심과 방치가 현재의 총체적 난맥상을 가져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강행에 따른 부작용’과 ‘유보에 따른 혼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래도 전자가 바람직할 것이다. 단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몇 가지 보완조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모의평가 횟수를 늘리는 것이다. 올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모의평가는 6월과 9월로 예정돼 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특별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서라도 그 횟수를 늘려야 한다. 모의평가라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출제자들은 A형과 B형의 난도와 변별력을 조정할 기회를 갖고, 수험생은 유형에 따른 시험 난도와 표준점수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의평가 후 A형과 B형의 성적 분포를 상세하게 밝혀 수험생에게 판단을 위한 정보를 충실하게 제공해야 한다.
둘째는 유형에 따른 가산점 부여 방식을 측정학적으로 객관화하는 것이다. 현재 A형과 B형을 모두 허용하는 중하위권 대학에서는 B형에 5~30%의 가산점을 부여하는데, 이런 일률적인 방식이 아니라 정교한 보정 공식을 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A형과 B형에는 공통문항이 있으므로 A형과 B형을 치른 수험생 집단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반영해 B형의 가산점을 합리적으로 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수시가 대세이니만큼 수시에서 수능 최저기준을 없애 수능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도 선택형 수능의 부작용을 줄이는 우회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선택형 수능과 관련된 현재의 딜레마 상황에서는 묘안이 없어 보인다. 이럴 때는 최악(最惡)이 아닌 차악(次惡)을 고르는 게 최선이다. 선택형 수능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수험생의 예측 가능성과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서는 보완 대책을 세우면서 원안대로 실시하는 것이 최악을 막는 현실적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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