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실체적 오류에 대해 살펴보자. 의미론적 오류가 복합적이거나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소통을 가로막는 오류라고 한다면, 실체적 오류는 논증에 부합하지 않는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생겨나는 오류를 말한다. 아마 사례를 보면, 아, 이런 오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먼저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the fallacy of argument ad verecundiam)가 있다. 라틴어 ‘verecundiam’이란 수줍음, 겸손, 부끄러움이란 뜻이다. 이 오류는 좀 어처구니없긴 하지만 효과가 큰 수사법으로, 곧잘 상대방을 기 죽게 만들기도 한다. 반대의견을 유지하려면 뭔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느껴야 한다.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공자(석가, 하느님)가 말씀하시길’ 등으로 시작하는 논법이 여기에 속한다.
한때 모 대학교 석·박사학위 논문의 첫 문장은 “조선후기 사회는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고 농업분야에서 상업적 경영이 이루어져 신분제가 붕괴되는 중세 해체기였다”로 시작하고, 저명한 입론자의 논문(저서)을 1번 각주로 달면서 시작하던 때가 있었다. 자기들이 배운 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게 흠이랄 것은 없지만, 지나치게 한결같아서 조금 보기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특히 조선후기가 서양 봉건제의 해체와 같은 양상을 보인다는 증거도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엔 다음과 같은 변종들이 있다.
① 현학적인 단어에 호소하기 : ‘~주의’ ‘~적’과 같은 어미를 수반한 용어를 쓰는데, 대개 의심, 혼동, 비논리, 부정확성, 무식함을 슬쩍 감추고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방편으로 이용된다.
② 참고문헌에 호소하기 : 부적절하거나 과도한 참고문헌을 각주에 달아서 논증하는 방식이다.
③ 인용문에 호소하기 : 언젠가 어떤 학생이 낸 리포트가 거의 모두 인용으로 되어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인용문임을 정확히 표현하는 점에선 정직했으나, 자기 논리가 부족한 건 곤란하다.
④ 길이에 호소하기 :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가 떠오른다. 국내 동서문화사에서 14책으로 출간했는데, 아마 많은 독자가 기념비적인 저술의 분량 때문에 설득되지 않았을까. 이와 함께 ‘세부 사실에 호소하기’도 지적해두고 넘어가자.
수학으로 기죽이기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한 장면. 사람들은 수학 공식으로 제시된 질문이나 답변에 대해 기죽는 경향이 있다. 과학적 증명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드로는 유물론자였고, 무신론자였다. 에카테리나는 그의 사상이 젊은이에게 퍼지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고, 모종의 음모를 꾸몄다. 어느 날 신의 존재를 증명한 수학자가 있으니 원한다면 공개적인 곳에서 그 증명을 보여주겠다는 소식을 디드로에게 전했다. 디드로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으나, 그가 상대할 사람은 당대 최고의 수학자인 오일러였다. 독실한 신자였던 오일러는 디드로에게 말했다.
“(a+b^n)/n=X이다.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디드로 씨! 답해보시오.”
“…….”
전하는 말로는 수학을 몰랐던 디드로가 한마디 대꾸도 못해 망신당했으며, 에카테리나 2세는 디드로에게 그만 프랑스로 돌아가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화는 실화가 아니다. 원래 이 이야기는 티볼트(Tiebault)의 ‘베를린에 머문 20년의 추억(Mes souvenirs de vingt ans de sjour Berlin)’에 나온 일화를 바탕으로 한 개작이라고 한다. 수학자 오일러가 아니라 그냥 러시아 철학자였으며, 디드로는 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수학이나 통계숫자가 종종 근거 없는 주장을 감추려는 방법으로 쓰인다는 점을 확인하는 일화로 보고 싶다. 또한 이 일화는 수학 수식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수학 공식에 대한 거부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필자가 학부생, 석사생이었을 때는 워드프로세서가 보급되지 않아 리포트를 펜으로 써서 발표했다. 다행히 복사기는 활용할 수 있어서 함께 읽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다 20MB, 40MB의 하드 용량을 가진 컴퓨터를 구입한 것이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할 무렵이었다. 이때 가진 착각이 하나 있었다. 바로 출력을 해서 보면 마치 훌륭한 리포트를 쓴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런 느낌이 많이 사라졌지만, 한동안 이는 일부러라도 현혹되지 않도록 조심했던 일이다.
하지만 반대 경우도 있다. 인쇄물을 믿지 않는 것이다. 마르크 블로흐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4~1918년, “참호에서는 인쇄된 것을 제외하고 무엇이든 진리라는 여론이 퍼져 있었다. 선전이나 검열이 상당히 강화됐기 때문에 거꾸로 사람들은 인쇄된 것을 믿지 않았다”라고 했다.(The Historian´s Craft, New York, 1953)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때의 미국이 그러했고, 1980년대 신군부 치하에서의 한국 사회가 그러했다. 이 경우엔 오류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민심(民心)의 영역에서 다뤄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