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살사회복지회에서 화요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할머니.
아마도 내가 왜 평택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부터 이야기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그 이야기는 초등학생 시절 평화로웠던 고향 마을 충북 제천시 청풍면 단돈리가 댐 건설로 호수로 변해 사라져가는 과정을 목격했던 어린아이가 자라서 지명이 호수(평택(平澤))인 마을에서 어린 시절 자기 마을을 만난 것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상처를 간직한 사람 하나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알아보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글에서 경기도 평택의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지원이, 법률이나 조례를 통하든, 혹은 개인의 독지에 의한 것이든 지금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호소하려 한다.
포털 사이트에 ‘기지촌’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자 가장 먼저 평택시민신문 허성수 기자가 보도한 기사가 검색된다. “기지촌 할머니들 지원조례 제정 시급해요! 햇살사회복지회, 염동식 도의원 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이라는 제목이다. 입력 시간은 2014년 04월 02일 (수) 15:33:13. 그리고 여기에는 사진 한 장이 실려 있다. ‘▲ 우순덕 햇살사회복지회 대표(오른쪽)가 염동식 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장(왼쪽)에게 4월 도의회에서 기지촌 여성지원 조례를 상임위에 상정할 것을 촉구한다’라는 설명과 함께. 우 대표는 염 위원장에게 조례안을 상임위에 상정해달라고 요청했다.
핵심은 이렇다. 주한미군이 기지를 경기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하면서부터 이 지역의 땅값이며 집값이 뛰었고 그 때문에 최저 생계비로 살아왔던 기지촌 독거노인들이 현재 사는 쪽방에서마저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도 평택지원특별법에는 이들을 위한 지원금이 단 한 푼도 없고 누구 하나 이들의 삶을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 이 여성들은 한때 미군을 상대로 클럽에서 일하면서 밑천이 들지 않는 외화벌이 역군, 민간 외교관으로 한몫을 한 사람들인데 말이다.
산업화의 그늘

우순덕 대표(오른쪽)가 염동식 위원장(왼쪽)에게 기지촌 여성들의 지원방안을 담은 조례안을 도의회 상임위에 상정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허성수 기자의 기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염 의원은 4월 임시회에 상정할 것을 요구받고 ‘위원장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경기도의회가 국회에 상위법 제정 촉구결의안을 보냈으니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이에 햇살사회복지회 측과 시민단체들은 통과되지 않더라도 위원장 직권으로 상임위에 발의할 수 있지 않으냐며 할머니들이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어 빨리 관련 조례를 제정해 지원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염 의원은 기지촌 할머니들의 사정에 대해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4월 도의회에서는 어렵다는 뜻을 밝히고 자칫 8월 차기 도의회로 넘어갈 수 있다며 좀 더 기다려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서 서로 평행선을 달리며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나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허 기자가 지켜본 그 현장을 함께 보았다. 허 기자는 기자로서 이날의 풍경을 객관적으로 보도했지만 나는 그날을 객관적으로만 기록할 수 없다. 도의원들이 절차를 밟는 동안 그녀들의 고통은 점점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할머니 한 분에게 나중에 마음이 어떻더냐고 물었다. 그녀는 “안정리에만 있다 막상 그곳에 가보니 마음이 다르더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이 당사자로서 나서야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막상 당사자로서 바깥세상에 나서서 사람들을 만나보니 참으로 비참한 마음이 들더라는 뜻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봉사자들은 돌아오는 길에 그녀들을 지원하는 조례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노력이 도리어 그녀들을 더 상처받게 한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지촌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생계비 지원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우덕임 할머니는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고 냉소했지만 누군가 “당사자가 나서야 사람들이 지원해주지” 하고 말하자 기대하는 표정이 어리는 것을 스스로도 어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