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말, 경찰서에서 출두하라는 전화가 느닷없이 걸려왔다. A씨(여)가 성추행으로 고소했다는 것이다. A씨는 그에게 돈을 빌린 채무자다. 문씨는 경찰서에서 무고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이미 A씨 주장에 무게를 두는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그는 사채업자였다. 누구도 그의 말을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허벅지 만졌다’ 고소했다면…
경찰로부터 문씨 사건기록을 넘겨받은 의정부지방검찰청 오세문(42) 검사와 임상호(45) 수사관은 기록을 검토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10년 이상 성범죄사건을 전담해온 베테랑이다.
“상식적으로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하면 곧바로 고소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기 마련인데, 이 사건은 1년 가까이 지나서야 고소를 했더라고요.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돈 문제가 얽혀 있었어요.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피해자에게 진술을 하러 오라고 했죠.”
A씨는 2011년 11월 초 문씨가 자신을 빚 문제로 불러 차에 태우더니 차 안에서 욕설과 함께 협박을 했으며, 뒷자리에 앉아 울고 있는 자신의 옆으로 와서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왼손으로 음부를 만졌다고 진술했다.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는 반드시 논리적 모순이 있기 마련입니다. 한번 거짓말을 하면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기 때문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죠. 그걸 알아내기 위해 피해자 조사든, 피의자 조사든 조사할 때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히 진술 내용을 확인하면서 진실에 다가서려고 노력하죠. 언뜻 들으면 A씨의 진술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만 깊게 들어가니 허점이 보였습니다.”
임 수사관이 “문씨가 폭언할 당시 어떻게 울고 있었느냐”고 묻자 A씨는 “너무 무서워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울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다시 임 수사관이 “그런데 어떻게 왼손인 걸 알았느냐”고 묻자 A씨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또한 A씨는 “치마를 입고 있어 다리를 오므린 채 앉아 있었다”고 진술했다. 임 수사관이 전문가들에게 문의한 결과 여성이 다리를 오므리고 있는 상태에서 아무런 강제력도 가하지 않은 채 손을 넣어 음부를 만지기는 어렵다는 자문을 받았다.
이렇게 하나하나 진술의 진실 여부를 확인해나가자 A씨는 결국 “사채를 갚지 않으려고 지인과 함께 문씨를 허위로 고소하고 협박했다”고 자백했다. 오 검사는 A씨를 무고 혐의로, 공범을 무고 공모 및 협박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임 수사관은 “만약 A씨가 ‘문씨가 (음부가 아닌) 허벅지를 쓰다듬었다’고 진술했다면 거짓말을 알아내기가 훨씬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냐 ‘합의’냐

의정부지검 오세문 검사(왼쪽)와 임상호 수사관은 피의자 진술을 할 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범죄사건에서 검찰이 무죄에 해당하는 ‘혐의 없음’ ‘죄가 안 됨’으로 불기소 처분한 비율이 평균 2.3%인 데 반해, 성폭력 사건은 평균 11%가 넘는다. 특히 성범죄 관련 개정 법률이 발효된 지난해 하반기에는 16%로 급등했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 중에도 법원이 무죄로 판결한 경우도 적지 않으니 실제 무죄로 확정된 비율은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죄로 판결난 사건이 모두 무고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임 수사관은 “성범죄사건은 의외로 무고가 많다”고 말한다.
고소장이 접수되면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은 무조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더구나 성범죄 사건은 대부분 둘만 있는 장소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강제로 했느냐, 합의하에 했느냐는 결국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찰이나 검찰이 객관적으로 조사한다고 해도 피해자와 가해자로 추정되는 피의자 남성은 출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