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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세무민’ 인터넷 괴담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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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참사가 나자 어김없이 인터넷에서 괴담이 난무한다. 큰일만 터지면 ‘과학의 탈을 쓴 유언비어’가 혹세무민한다. 이런 패턴은 우리 사회에서 거의 정석처럼 굳어졌다. 이로 인한 유·무형의 피해도 적지 않다. 인터넷 괴담의 생산, 유통, 소비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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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직후 정부와 언론은 짬짜미로 ‘전원구조’ 오보를 냈다. 해경의 무능과 직무유기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이러한 먹잇감을 인터넷 괴담이 놓칠 리 없었다.

“세월호가 어뢰에 의해 격침됐다” “침몰한 배 안의 생존자들이 구조 요청을 해왔다” “해경이 고의적으로 구조를 회피했다” “국정원이 사건에 연관되어 있다”는 설이 그럴듯해 보이는 근거들과 함께 인터넷 망을 뒤흔들었다. 심지어 이 중 일부 내용은 MBN을 통해 방송 전파를 타기도 했다.

5월 28일 통합진보당이 국회에서 연 세월호 관련 토론회에서 괴담의 창작자들 중 일부는 얼굴을 드러냈다. 천안함 침몰을 미군 잠수함과의 충돌에 의한 좌초라고 주장했던 신상철 전 서프라이즈 대표는 이 자리에서 어뢰에 의한 세월호 폭침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상호 기자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다이빙 벨이 생존자 구조의 만능열쇠인데 정부가 못하게 한다는 괴담 수준의 의혹을 제기하더니 해경에 의한 이종인 대표 살해위협 의혹까지 주장했다. 이렇게 괴담은 익명의 인터넷에서 출발하지만 곧잘 실명의 실제 세계를 넘나든다.

“어뢰에 의한 폭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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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은 사회 구성원들의 무의식에 내재된 불안을 반영한다. 불안은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최근의 뚜렷한 특징은 과학적 서술이 개입한다는 점이다. 광우병 괴담, 천안함 괴담, 일본 방사능 괴담, 4대강 괴담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괴담은, 언뜻 보기에 상당히 사실적인(factual), 그리고 실증적인(empirical) 증거들(evidences)을 제시한다. 대중은 이들 근거와 결론 간의 인과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뭔가 그럴듯해 보이므로 불안감을 갖게 된다.

공신력 있는 일부 언론기관이 이들 괴담에 동조하면 그 신뢰성은 급격히 높아진다. 광우병 사태가 좋은 예다. 생활과 밀접한 먹거리 문제와 연결되면서 정권이 흔들리는 사회적 파문으로까지 이어졌다. 우리 사회에서 과학의 외피를 쓴 생명 관련 괴담은 극단적으로 비이성적인 행동을 초래한다는 점이 확인된다.

경제와 관련된 괴담도 대중의 불안심리를 쉽게 자극한다. 건강 및 경제 괴담이 인터넷 괴담 중에서도 핵폭탄급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미FTA, 미네르바, 민영화 괴담이 대표적인 경제 괴담에 해당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선 양극화가 심화돼왔다. 중산층과 서민 상당수는 언제라도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산다. 2008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찾아와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자 경제 괴담이 폭증했다. 여기엔 정부의 책임도 없지 않다. 정부는 그 효과를 명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FTA를 충분한 설득 과정 없이 밀어붙인 측면이 있다. 이는 대중의 공포를 증폭했다.

건강과 경제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하진 않지만 정치도 괴담의 주된 소재로 활용돼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암살설, 2012년 대통령선거의 부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진보 성향 사람 중 상당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런 사람들이 주로 괴담에서 위안을 얻는다.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진보와 보수로 극렬하게 분열하는 한 인터넷 괴담은 계속 창궐할 것으로 보인다.

눈여겨볼 대목은 북한 문제가 괴담의 소재로 활용되는 방식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인에게 북한의 침공은 실존하는 공포였다. 그 시절 정부가 제시하는 북한의 도발 정보는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금은 거꾸로다. 정부가 천안함 사태나 북한 무인기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 즉각 정부에 의한 조작설이 인터넷에 난무한다.

현대판 서동요 설화

인터넷 괴담은 삼국시대 백제 무왕이 신라 선화공주를 근거 없이 모함한 ‘서동요 설화’와 유사하다. 특정한 인물이 확고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진실과 무관한 내용을 사회에 확산시키는 것으로 비친다. 괴담이 우연히 만들어져 유포됐다고 가정하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괴담을 생성한다면 도대체 누가, 왜, 그렇게 하는지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 시대는 정권교체와 맞물려 개막했다. 인터넷은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괴담이 폭증하는 데 일조했다. 지난 10여 년 사이에 사회를 강타한 괴담에는 뚜렷한 정치적 색채를 발견할 수 있다.

1990년대 미국드라마 ‘X-파일’이 우리 사회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의 영향은 심대했다. 이후 우리 사회에서 ‘X-파일’은 보통명사처럼 쓰였고 ‘외계인이 사실은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라는 X-파일식 음모론이 곧잘 유행했다.

X-파일식 음모론과 한국식 음모론은 상당히 닮았다. 전자는 유대인이나 프리메이슨 같은 집단이 공화·민주 양당을 모두 조종한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후자는 유대인과 프리메이슨을 친일파의 후예로 대체한다. 이들이 보수정당을 통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서민을 억압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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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윤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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