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강남 중산층, ‘교육비 착시현상’에 붕괴 초읽기

“아파트 7억, 예금 3억,연수입 1억? 당신은 69세에 빈털터리가 됩니다”

  • 글: 조진표 와이즈멘토 대표이사 jpcho@wisementor.net

    입력2005-06-27 1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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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계 지출 20~40%가 자녀 교육비… 중산층 노후에 적신호
    • 10년 뒤 미국처럼 중산층 몰락 조짐
    • 부모 경제력 하강할 때 교육비는 증가
    • 조기 유학 보낸 두 자녀 대학졸업까지 8억원 소요
    • 환율하락 믿다 큰코다친다
    강남 중산층, ‘교육비 착시현상’에 붕괴 초읽기
    국내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허진수(가명·44) 부장은 시가 6억7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다. 은행엔 2억8000만원이 예치돼 있고, 연간 수입은 1억4000만원이다. 별탈이 없다면 그는 앞으로 10년 동안 회사에 근무할 것이고, 퇴직할 때 2억5000만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슬하엔 고1, 중1 두 자녀를 뒀다. 이만하면 성공적인 삶이다.

    경제적으로 계층을 나눈다면 허 부장은 어디에 속할까. 부자 연구의 대가 토머스 스탠리의 재산기대치 공식에 대입해봤다. 재산기대치보다 실제 재산이 많으면 부자라고 할 수 있다.

    허 부장의 재산기대치는 ‘나이×연간소득÷10=44세×1억4000만원÷10=6억1600만원’이다.

    허 부장은 재산기대치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갖고 있으므로 부자인 셈이다. 그런데 앞으로 자녀 교육비, 결혼비용 등을 고려해 미래의 자산변동을 예측한 결과 허 부장이 69세가 되는 해 그는 집까지 팔아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허 부장이 죽은 뒤엔 그의 아내가 자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부자 허 부장의 비참한 말로



    우선 그의 현재 지출 상황을 보자. 그는 다달이 생활비로 800만원을 쓰는데, 이중 200만원은 두 자녀의 학원비다. 그의 희망대로 10년 동안 회사에서 더 근무한다고 가정하고, 근무기간의 소득증가율은 7%로 잡았다. 퇴직한 뒤 그는 생활비로 월 500만원을 쓸 예정이다. 강남에서 살면서 품위를 유지하자면 이 정도는 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금부터 허씨 부부가 죽을 때까지 재산이 어떻게 변동하는지 살펴보자(다음 페이지 참조).

    허 부장이 퇴직하는 55세, 그의 보유자산은 최고조에 이르며 그후부터는 연금 수령액을 고려해도 생활비가 턱없이 모자라 자산이 급격하게 감소한다. 두 자녀가 결혼해 목돈이 나가면서 급기야 허 부장이 69세가 되는 해엔 살고 있는 집까지 팔아야 한다. 그의 아내는 남편 사후 더욱 비참한 생활이 예상된다. 자식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한 가지 변수가 더 있다. 만약 자녀가 취직을 하지 못해 국내 대학원이나 해외 유학이라도 가게 된다면 가계는 급속하게 붕괴된다. 게다가 부부가 노년에 병이라도 들면 재산 감소세는 더욱 빨라진다.

    노후의 삶 문제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더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은 상당액의 돈이 자녀 교육비로 지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가 유아원에 들어가서부터 대학 졸업까지 한 가정에서 지출하는 돈의 20~40%가 교육비다. 그만큼 한국 가정은 노후 준비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선진국도 고령화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 터에, 산업구조가 취약한 ‘어설픈’ 경제대국이자, 비정상적인 교육비를 지출하는 우리에게 고령화와 노후 대책은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국가경제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중산층이 과다한 교육비 부담으로 붕괴할 위험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는 서울 강남에 사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강남 중산층을 겨냥한 폭풍이 될 수 있다.

    강남 중산층, ‘교육비 착시현상’에 붕괴 초읽기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하는 가정이늘면서 서울 강남의 초등학교 교실은 어디나 만원이다.

    ‘교육비가 문제’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죄인이 된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억울한 일이다. 중산층의 교육열은 우리나라만 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의 글을 읽어보자.

    “중산층과 상류 중산층의 많은 가정이 부부와 자녀를 위해 세상과 보조를 맞추라는 위협을 받고 있다. 그들은 경제가 어려워도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고민에 빠져 있다. 그들은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주거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으로 이사한다.”

    얼른 읽으면 특목고나 서울대, 연·고대 같은 명문대 진학을 위해 너나없이 서울의 강남으로 전학하려는 한국의 세태를 꼬집는 말 같다. 그러나 미국 하버드대 법학 교수 엘리자베스 워런과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의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가 저술한 ‘맞벌이의 함정-중산층 위기와 그 대책’이라는 책에 나온 대목이다. 사랑스러운 자녀를 ‘학교 폭력이 덜한 학교’ ‘상급학교 진학률이 높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도 있는 일이다.

    파산법에 정통한 법대 교수와 공교육 컨설턴트 출신인 두 저자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부(富)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중산층이 자녀교육에 과도하게 투자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산층은 실제로 무너지고 있다. 이들은 더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 집값이 비싼 지역으로 이사하고, 공교육기관보다 학비가 비싼 사교육기관에 자녀를 보낸다. 약간의 경제적 여유밖에 없는 중산층이 무리하게 교육에 투자하다보니 가계가 부실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처럼 경제력이 탄탄한 나라도 교육문제로 중산층 붕괴 현상을 겪고 있는데, 한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이 미국보다 10년 뒤져 있다고 후한 점수를 매긴다면 10년 뒤 한국은 미국이 경험한 중산층 붕괴에 직면할 것이다.

    교육비용의 착시현상

    중산층이 자녀를 위해 돈을 쏟아붓는 것은 ‘교육비용의 착시현상’ 때문이다. 가정의 경제력과 자녀 교육비 지출 비중을 자녀 나이에 따라 그래프로 그려보자( 참조). 자녀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는 회사에서 차장, 부장으로 뛰고 있다.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할 때다. 때마침 자녀가 대학입시라는 큰 관문을 눈앞에 두고 있어 부모는 사교육에 과감하게 투자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 교육비를 지출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는 착각이다. 자녀 교육비는 대학 입학 후에 더 많이 들어가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대학등록금은 늘 물가상승률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상승한다. 현재 대학 재학생은 등록금으로만 매월 50만~80만원(사립대학)을 내야 한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비싼 대학 교재비, 취업용 영어 학원비, 기본이 되어버린 해외 어학연수비, 배낭여행비, 늘어난 용돈 등을 더하면 대입 준비로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중·고등학교 재학 때보다 훨씬 초과한다. 요즘엔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해서 석사학위가 예전의 학사학위와 같아 자녀가 대학원까지 간다면 교육비는 가볍게 예상치를 뛰어넘는다.

    이때쯤이면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명예퇴직이니, 정년이니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가정 경제력은 하강기에 들어선다. 높은 언덕을 남겨놓고도 작은 언덕을 빨리 넘느라 에너지를 소진한 마라톤 선수처럼 아버지는, 중산층은 무너지는 것이다.

    경제학에는 특별히 ‘과소비’란 정의가 없다. 단지 소득수준에 비해서 소비가 지나치하면 ‘과소비’한다고 말한다. 연 수입 20억원의 부자가 1억원짜리 외제차를 사는 것은 과소비가 아니다. 5000만원 연봉자가 2000만원짜리 국산 중형차를 사는 것이 과소비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교육 분야의 최대 과소비 계층은 중산층이다. 중산층은 자기보다 경제적으로 못한 빈곤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향하는 부자와 견주려고 한다. 부자와 견주려고 하는 데서 중산층의 무리가 시작된다.

    빚 얻어 유학 보내는 중산층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한 과목 수강료로 월 30만원을 받는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또는 사회 등 네 과목을 수강하면 학원비는 월 120만원이다. 이 금액이 강남에 사는 중산층 가정의 가구당 평균 지출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집이 있고, 월 수입이 500만원인 가정에서는 지출할 만하다고 판단되는 금액이다. 자녀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만 투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저소득층은 생각도 못할 금액이다.

    만일 자녀가 영어와 수학이 부족해 유명한 가정교사에게 개인지도를 받으면 과목당 100만~150만원이 지출된다. 두 과목은 학원, 두 과목은 가정교사에게 과외를 받으면 월 360만원이 사교육비로 나간다.



    월 소득 500만원인 중산층과 월 소득 2000만원인 부유층을 비교해보자. 자녀 교육비로 월 100만원을 지출한다고 하면 중산층은 소득대비 20%를, 부유층은 5%를 교육비로 지출하는 셈이다. 만일 교육비를 150만원으로 늘리면 중산층은 소득대비 교육비 지출이 20%에서 30%로 10%포인트 증가하지만, 부유층은 5%에서 7.5%로 2.5%포인트만 증가한다. 사교육비가 400만원까지 올라가면 중산층의 교육비 지출은 소득대비 80%로, 100만원일 때보다 무려 60%포인트 증가한다. 그러나 부유층은 월 400만원을 지출해도 5%에서 20%로 15%포인트 증가한 선에 그친다. 중산층 가정 경제는 부유층보다 교육비에 민감하게 움직이며, 전반적으로 소득대비 과소비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가정경제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아들 중현이를 영국으로 유학 보낸 박민식씨의 말을 들어보자.

    “국내 경기가 너무 안 좋잖아요. 가게를 운영해서 나오는 수익의 대부분을 중현이에게 송금하고 있습니다. 가게를 내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은 갚을 엄두도 못내요. 중현이의 유학자금이 고스란히 부채로 쌓이는데, 아이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할 수도 없고….”

    이처럼 유학을 보내놓고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고민하는 중산층 가정은 나날이 늘어나는 추세다. 유학을 결정할 때 가정의 경제력을 고려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결정해서 그렇다. 최근 유학이 급증하는 원인은 사회 전반적인 ‘국제화’ 추세와 기업의 ‘글로벌 인재’ 추구 현상에 있다. 이는 지금의 국내 교육 시스템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1달러 1000원이면 유학이 만만하다?

    자녀를 미국으로 조기유학 보낸다고 가정해보자. 미국 시민권이 없는 경우 공립학교에 다닐 수 없어 대개 기숙사를 갖춘 사립학교로 간다. 기숙사비를 포함해 학비는 1년에 3만~3만3000달러이고, 여기에 왕복항공료,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안 다음 학기를 위한 선행학습 비용, SAT(미국대학 입학시험) 준비를 위한 학원비용 등을 감안하면 1년에 나가는 돈은 50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중산층 중에서도 ‘상류 중산층’ 가정에서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경제적으로 굉장히 우려할 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장기 플랜을 세우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1년에 5000만원? 해볼만 하네!’ 이렇게 생각하고 유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보통 미국의 9학년으로 유학을 가는데, 이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4억원 정도가 든다. 형이 가면 동생도 가는 것이 보통이라고 보면 유학 비용은 8억원이다. 중간에 예기치 못한 일이라도 발생하면 이는 가정 경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액수다.

    강남 중산층, ‘교육비 착시현상’에 붕괴 초읽기

    조기유학 상담을 받으러 온 학생들로 붐비는 유학 박람회장. 빚 얻어 자녀를 유학보내는 중산층 부모가 문제다.

    이렇듯 쉽게 유학 결정을 내린 이유중 하나는 유학원의 상술에 속아 ‘알뜰한 유학’을 예상해서다. 더구나 요즘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유학을 만만하게 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중산층에서 인기 있는 미국 공립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1년 생활비가 학비 포함 8000달러다. 얼마 전 환율이 1달러에 1400원 할 때는 1120만원을 쓰는 셈이었으나, 올해처럼 1달러에 1000원이면 800만원에 1년을 지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내 물가는 지속적으로 올라가는데 환율은 점점 떨어져 사실상 유학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데도 상대적으로 비용이 싸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중산층이 과거보다 자녀의 조기유학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통 중산층은 국내 사교육비로, 상류 중산층은 해외유학비로 가정의 미래가 붕괴되고 있지만, 이런 착시현상 탓에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중산층이 교육비 착시현상에서 벗어나 경제력에 알맞은 지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일은 자녀의 적성에 맞는 목표를 찾는 것이다. 가령 자녀의 미래를 위한답시고 무리하게 조기유학을 보내놓고 2년쯤 지나 자녀가 갑자기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미국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이 의대에 들어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또 외국에 몇 년 나가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입시를 거쳐 국내 의대에 가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렇게 돈은 돈대로 들고 자녀는 자녀대로 꿈을 이루지 못하는 황당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유학이 필요한 직업과 유학이 필요없는 직업, 대학원 진학이 필수인 직업, 그렇지 않은 직업 등 목표에 따라 교육절차가 다르다. 목표를 정하고, 최적의 경로를 설계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사랑은 가득하게 주머니는 가볍게

    자녀가 중·고등학생일 때 가정의 재정 진단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보통 중산층은 종신보험에 가입해 있거나 주거래 은행이 있게 마련이다. 종신보험에 가입해 있다면 담당 컨설턴트에게서 재정플랜을 다시 받아보자. 재정상황이 보험에 가입할 때와 비교해 많이 변해 있을 것이다. 만일 한 은행과 집중적으로 거래하여 우대받는 고객이라면 은행에서도 비슷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런 다음 사교육비의 포트폴리오를 효율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유명한 학원 강사는 과외를 하지 않는다. 학원에서 돈을 잘 벌고 있는데 불법 과외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유명한 교사는 대형 학원에 있다. 자녀가 아주 못하는 과목은 소규모 보습학원에 보내 집중지도를 받게 하고, 자신 없는 과목은 유명 강사가 있는 대형 학원, 자신 있는 과목은 인터넷 강의를 받게 하자. 강남의 최고 강사들이 진행하는 강남구청 인터넷 강의는 교재비만 들 뿐 강의료는 없다. 가격이 싸다고 품질이 낮은 것은 아니다.

    자녀는 가난하게 키우는 것이 좋다. 압구정동에서 나고 자란 ‘압구정 세대’ 아이들이 이젠 성장해서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 청담동에서 9000원짜리 커피에 1만5000원짜리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자란 아이들이다. 어렵사리 취업해도 신입사원의 연봉 2000만원에서 4대 보험료를 빼고 나면 대학 시절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명문대 나와 회사에 취직하더니 몇 년 다니다 말고 “대학원 가겠다” “고시 준비하겠다” “MBA 따고 싶다”며 회사를 떠난다. 이 모든 비용은 부모가 떠맡게 돼 있다. 한 유명 로펌의 대표는 집에 돈이 많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숨기기 위해 일부러 고급차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자녀와 부모 모두 나중에 행복한 생활을 하려면 사랑은 가득하게, 주머니는 가볍게 키워야 한다.

    그러나 한국 교육의 현실상 개개인의 노력만 가지고는 근본적인 문제를 풀 수 없다.

    우선 대학입시 개선을 위한 대학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대학개혁은 정말 시급하다. 필자는 한국에서 투자대비 효율이 가장 떨어지고 무책임한 곳 중 하나가 대학이라고 감히 말한다. 조금씩 나아지곤 있지만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을 공부하지 않고 놀게 만드는 곳이 한국 대학이다. 잠재력이 있는 학생을 발굴해 인재로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우수한 학생을 뽑아다가 ‘쉽게 쉽게’ 대학의 명성을 유지하려는 안이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강남 중산층, ‘교육비 착시현상’에 붕괴 초읽기

    취직이 어려워지자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 공무원, 교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취업 사교육’ 역시 부모에겐 커다란 재정적 부담이다.

    그래서 조금 더 우수한 학생을 편하게 뽑기 위해 일렬로 줄을 세워야 하고 그러다 보니 ‘본고사’가 유일한 해결책인 양 외쳐댄다. 비판적인 전문가들은 이렇게 묻는다. “하버드, 예일, MIT가 본고사를 봐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세계적인 명문을 유지하는 것인가?” 대학은 이렇게 맞받아친다. “그러니 대학에 자율권을 달라는 것이다. 하버드처럼 SAT, 내신, 에세이, 과외활동을 종합해서 뽑을 수 있게 해달라.”

    막가는 한국 대학

    대학은 고등학교의 내신처리 과정을 못 믿겠다며 본고사 실시를 주장한다. 마치 대학은 공정한 것처럼 말이다. 이는 남을 선제공격해서 자신의 약점을 감추는 효과를 누리기 위한 것이다. 최근 모 사립대에서 빚어진 입시부정을 목격한 국민은 고등학교나 대학 모두 신뢰하지 않는다.

    이런 사례는 또 어떤가. 대학원생들이 교수가 학생에게 돌아가야 할 연구비를 착복했다며 교수를 부패방지위에 고발하는 현실. 신고한 학생들에게 “학생들이 독하네. 사회생활이 그게 아닌데. 앞으로 그쪽 분야로는 못 나가겠네” 하는 주변의 걱정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현실. 학생 통장으로 돈이 지급된 후 다시 교수의 비자금 통장으로 들어가는 파렴치한 작태. 성희롱, 연구비 유용, 친일 행적이 들통나도 벌하지 못하는, 그래서 ‘자정(自淨)기능’을 상실했다고 비판받는 대학. 기껏해야 감투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보직 사퇴’로 해결되는 모럴 헤저드 집단이 바로 우리 대학이다.

    이런 대학들이 한 가지 잣대로 일렬로 줄 세워 가능한 한 앞줄에 있는 우수한 학생을 많이 데리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사교육비는 결코 줄지 않을 것이다.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욕심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더욱 우수하게 만들고, 학생의 감춰진 잠재력을 발굴해 우수한 학생으로 거듭나게 만들어야 한다. 대학마다 특성 있는 교육 시스템을 겨뤄 명문대학을 가려야 한다. 아울러 대학의 도덕적 해이를 감시하고 고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 그래야 본고사든 대학별 독자 전형이든 논의할 수 있고 중·고교생이 겪는 입시지옥이 사라질 수 있다.

    기숙사형 완전자율 사립학교를 육성해야 한다. 기숙사형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에 다니는 학생의 경우 사교육비가 대폭 절감된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니까 학원에 다니기 어렵고,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이 잘 운영돼서다. 학원을 다녀도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해 돈이 적게 든다. 그러나 특목고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알면서도 못 갈 뿐이다.

    대안은 있다. 성적이 중상위권인 학생을 위한 사립학교를 많이 세우는 것이다. 미국의 보딩 스쿨 같은 기숙사형 사립학교 말이다. 정부가 운영 자금을 규제하지 않는, 재단 전입금이 없어도 등록금만으로 운영될 수 있는 영리 학교도 적극 허가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성적이 중상위권인 중산층 자녀를 많이 흡수할 수 있다.

    강남 집값이 오르는 이유가 교육여건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집값은 내려가지 않는다.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녀교육 문제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만일 사립학교가 기숙학교 형태를 띠면 민족사관고처럼 지방에 생길 것이다. 그것을 전제로 사립학교를 허가한다. 그렇게 되면 집값 상승 논란과 교육에 관한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이 사라질 것이다.

    입학금 일부는 ‘공교육 기금’으로 환수해 저소득층 자녀의 학비와 교육여건 개선에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돼야 공립학교가 사립학교와 경쟁할 수 있고, 사교육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교육열은 최고, 교육산업은 꼴찌

    이와 더불어 국제학교를 신설해 해외 유학생을 유치해야 한다. 대학개혁을 통한 입시제도의 개선과 기숙사형 사립학교의 확대가 중산층의 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면 국제학교 신설 확대는 조기유학 수요를 국내에서 해소하는 방안이다.

    한국의 많은 어린 학생들이 유학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엄청난 외화가 해외로 나가서 안타깝고, 한국의 역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재로 커나갈 것을 생각하니 안타깝다. 또 무리한 유학으로 망가질 부모의 노후가 안타깝다.

    교육열이 세계 최고라는 한국에서 왜 세계적인 교육기업은 나오지 않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왜 우리는 아랍이나 동남아시아의 귀족 자녀와 중국의 신흥 갑부 자제를 한국으로 끌어들이지 못할까. 만일 아랍의 왕족 자제가 우리나라에 와서 중·고등학교를 다닌다면 그들은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갈까. 그 돈은 고스란히 우리 경제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국제학교와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게다가 내국인은 국제학교에 다닐 수 없는 규정 탓에 국내에서 소비될 수 있는 돈이 국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유학생을 유치해 벌 수 있는 돈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한류 열풍과 국력을 이용해 외국 유학생을 유치한다면 외국의 상류층이 자연스럽게 ‘지한파(知韓派)’가 될 것이다.



    영국의 한 유학원 원장은 “영국은 한국 유학생을 좋아한다”며 “한국 유학생 한 명이 올 때마다 적어도 영국의 가난한 학생 다섯 명이 공부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많은 선진국의 마인드가 저럴진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반복되는 근시안적 교육행정과 입시제도, 21세기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로막는 정체 모를 위화감, 뒤처지는 대학의 국제 경쟁력, 교육산업에 대한 정부의 몰이해가 한국의 교육을 아사(餓死) 직전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 피해자는 국가경제의 중추가 돼야 할 중산층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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