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료제도, 건강식품도 아닌 이른바 기능성 건강식품 ‘글루코사민’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퇴행성 관절염 치료효과가 있으면서도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무것도 없다. 대한의학회와 대한보완대체의학회가 그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놓은 가운데, 조만간 발표될 미국 국립보건원의 연구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건강기능식품인 글루코사민을 선전하는 광고 문구들이다. 요지는 글루코사민이 관절과 연골의 구성성분이며 관절과 연골을 튼튼하게 해준다는 내용. 글루코사민이 관절염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5월 어버이날 즈음엔 홈쇼핑사 건강식품 부문 판매 1위를 차지했다.
글루코사민 관련제품도 봇물이 터진 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형 식품업체는 물론 중견 제약회사와 건강식품 업체까지 30여 개사가 앞다퉈 제품을 내놓다보니 종류도 수백 가지에 이른다. 일부 전문병원에서는 아예 병원 이름을 딴 제품을 내놓을 정도다. 시장 규모도 지난해 300억~400억원에서 올해는 1000억원 이상으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글루코사민이 이처럼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루코사민은 과연 어떤 제품이며 그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부작용은 없을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노령화 속도가 빠르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 인구 비율은 9% 정도로 대표적 고령화 사회로 꼽히는 일본의 절반 수준이지만, 2050년경에는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전망이다.
노령 인구 증가와 함께 만성 퇴행성 질환을 앓는 노인이 늘면서 노인 진료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1/4분기 노인 진료비는 1조38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1400억원보다 22%나 급증했다. 이 수치는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은 비용만 합산한 것이다. 다른 의료비용까지 합하면 규모가 훨씬 커진다.
이 같은 추세는 암이나 만성 퇴행성 질환을 앓는 노인이 지속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통의학적 치료법은 이미 한계에 봉착해 있다. 이런 한계를 비집고 환자들의 기대를 모으는 것이 바로 ‘보완대체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다.
75세 이상 대부분 관절염 앓아
정통의학적 방법으로 치료받아온 만성질환자의 상당수는 그동안 뚜렷한 치료효과도 없이 계속된 약물 복용으로 크고 작은 부작용에 시달려왔다. 이런 환자들 중에는 눈에 띌 정도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워도 부작용이 적은 건강기능식품에 기대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특히 섭생을 중요시하는 우리 정서상 몸에 좋다는 식품이나 요법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대표적인 만성질환의 하나가 관절염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뼈마디가 쑤시고 아픈 증상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경우 55세를 넘으면 약 80%, 75세 이상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관절염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7%, 65세 이상 인구의 25%가 치료가 필요한 관절염 환자로 알려져 있다.
관절에는 쿠션 역할을 하는 부드럽고 매끄러운 연골이 있어 단단하고 거친 뼈끼리 서로 맞부딪치는 것을 방지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동안 많이 사용한 관절의 연골이 닳아 없어져 뼈끼리 서로 부딪치게 되고, 이에 따라 염증과 통증이 생기면서 관절 운동도 잘 안 되는 증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한다.
EU에선 ‘치료약’, 美에선 ‘건강식품’
관절염은 우리 몸의 140여 개 관절에 모두 생길 수 있지만, 체중이 가장 많이 실리는 무릎에 생기는 관절염이 대표적이다. 한번 닳아 없어진 관절 연골은 재생시킬 수 없으므로 관절염은 완치가 어렵다. 진통소염제를 복용하거나 스테로이드 또는 하이알루론산을 관절에 주입하는 것이 주된 치료법이다.
하지만 이런 치료법은 일시적으로 통증을 가라앉히고 관절염 진행을 지연시킬 뿐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다. 더구나 스테로이드 주사로 알려진 일명 ‘뼈 주사’는 일시적으로 관절염을 호전시키지만, 남용하면 오히려 뼈를 망가뜨리고 고혈압 등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개의 관절염 환자들은 그때 그때 통증을 완화하면서 살아가다가 통증이 매우 심해지면 인공관절 수술을 받는다. 수술을 꺼리는 환자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 동안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환자들을 파고든 것이 바로 글루코사민과 같은 건강기능식품이다.
글루코사민은 인체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당(糖)과 아미노산이 연결된 형태의 물질이다. 글루코사민은 관절 연골의 주요 성분으로 손톱과 머리카락의 구성성분이기도 하다. 연골은 물과 콜라겐, 프로테오글리칸으로 이뤄져 있는데, 글루코사민은 콘드로이틴과 함께 프로테오글리칸의 기본 성분을 이루는 물질이다.
젊을 때는 글루코사민이 체내에서 잘 합성돼 만들어지지만 나이가 들수록 합성능력이 떨어진다. 그러면서 관절 연골이 닳아 없어져 관절염으로 악화된다. 관련 업체들은 바로 이때 글루코사민을 보충해주면 관절이 닳아 없어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며 글루코사민 성분이 함유된 제품들을 제시한다. 이들 제품은 대부분 합성성분 ‘글루코사민 황산염’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게나 새우 껍데기에서 추출한 키토산을 한 번 더 가수분해, 체내에서 흡수되도록 만든 게 글루코사민 황산염이다.
글루코사민은 유럽에선 십수년 전부터 제약사인 로타사를 중심으로 퇴행성 관절염 치료약으로 이용되고 있다. 미국에선 건강보조식품으로 슈퍼마켓이나 건강체인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글루코사민은 2002년 국내에 첫선을 보였고, 지난해부터 홈쇼핑 등을 통해 일반인 사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겨울, 관절염 제품의 성수기와 맞물려 글루코사민 붐이 조성됐다. 여기에 건강기능식품법 발효 이후 글루코사민을 주원료로 생산한 제품에 ‘관절건강과 연골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기능성 표시가 허용되면서 큰 수혜를 보게 된 것.
현재 시중에는 ‘글루코사민’(일진제약), ‘조인케어 글루코사민’(대상), ‘헬스원 글루코사민’(롯데제과), ‘글루코사민100’(종근당 건강), ‘글루코사민플러스’(이롬) 등 30여 종의 제품이 나와 있다. 업체간 경쟁도 치열하다.
속 쓰림 부작용 거의 없어
최근에는 글루코사민 업체들 사이에 성분과 효능 차이를 둘러싸고 한바탕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업체가 “글루코사민 100%를 내세워 판매하는데, 글루코사민으로만 이뤄진 제품은 별 효과가 없다”며 “상어 연골 추출물 같은 콘드로이틴이 함유된 제품이라야 관절염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콘드로이틴이 글루코사민보다 2~3배 비싸기 때문에 저가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글루코사민 100%를 내세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틴 중 어느 성분이 관절염에 더 좋다는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을 뿐이다. 제조사들은 각기 자사에 이로운 주장을 내세워 판촉경쟁을 벌이고 있다.
글루코사민 제품은 한 달분이 대개 3만원대로 그리 비싼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부담없이 복용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제조사들은 글루코사민이 관절 연골의 생성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퇴행성 관절염의 통증을 완화하고 기능을 향상시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연골을 재생시킨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연골이 닳아 없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보통 하루 1500mg씩 3~6개월간 꾸준히 복용하면 퇴행성 관절염의 통증이 완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글루코사민은 무엇보다 속 쓰림 같은 부작용이 있는 일반 진통소염제와 달리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글루코사민도 여느 건강기능식품과 마찬가지로 치료효과에 대해 아직 과학적인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효과를 본 환자들이 있지만, 같은 질환을 가진 모든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지는 미지수이고, 효과가 확인되기보다 환자의 주관적인 만족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2002년 대한정형외과학회와 동아일보사가 개최한 ‘관절염의 날 선포 기념 걷기대회’에 참석한 의사와 환자들이 함께 걷고 있다.
이 평가에서 글루코사민은 최상 등급인 A등급을 받았다. 효과와 안전성을 대체의학계가 인정한 것. 골관절염에 글루코사민, 홍역에 비타민 A, 전립선비대증에 톱야자, 우울증에 성요한풀의 6개 성분만이 A등급을 받았는데, 이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역시 글루코사민이다.
그런데 지난 5월 대한의학회와 대한의사협회는 국내에 널리 알려진 보완요법과 대량으로 유통되는 건강기능식품을 평가한 결과 글루코사민에 대해 ‘관절염 치료효과가 의문시된다’며 3등급인 ‘권고 고려’ 판정을 내렸다. 보완대체의학회가 안전성과 효능 측면에서 최고등급으로 평가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다.
이처럼 엇갈린 평가는 공정성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글루코사민 자체의 한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글루코사민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여러 차례 이뤄졌는데 그 효능에 대해 상반된 연구결과가 많아 어떤 연구결과가 평가에 포함되는가에 따라 결론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에 따라서도 글루코사민의 효능에 대한 신뢰도는 차이를 보인다. 우리 몸의 관절연골 성분을 보충하는 것이므로 일종의 비타민을 먹는 것처럼 꾸준히 복용하면 관절염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가 일부 있다. 하지만 먹으면 금세 하나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다. 복용기간도 최소 1~2년은 돼야 효과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편 관절염에 쓰이는 약보다 효과가 신속하거나 탁월하지 않아 굳이 권하지 않는다는 의사도 적지 않다. 이들은 그저 환자가 글로코사민을 원할 경우 ‘나쁘지는 않다’고 말할 정도라는 것. 효과는 분명치 않은데, 그렇다고 특별한 부작용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복용해도 굳이 말릴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의학협회지는 지난 2000년, 1966년부터 1999년까지 발표된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틴에 대한 무작위 대조연구 37개 중 비교적 과학적이라고 증명된 15개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틴이 관절에 미치는 효과를 보고한 바 있다.
알레르기, 당뇨 환자는 주의해야
결과는 글루코사민이 관절통증을 덜어주고 관절기능을 개선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논문에서 평가한 대부분의 연구가 글루코사민 제조업체의 후원을 받았거나 제조업체에서 직접 진행했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사실 2000년 이전에 발표된 논문들은 글루코사민이 무릎 관절염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의견의 주류를 이뤘으나, 이후에 나온 논문들은 글루코사민의 효과에 대해 부정적이다. 2002년에 ‘류마톨로지’라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서도 80명의 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글루코사민과 위약(가짜 약)을 투여해 비교한 결과 통증 개선 효과에서 위약과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글루코사민을 복용하고 효과가 있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환자 모르게 글루코사민을 끊었을 때도 증상에 별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관절염 환자 205명을 대상으로 글루코사민과 위약을 투여해 비교한 결과가 미국의학회지에 실렸다. 이 연구 결과 역시 관절 통증이나 관절 기능 개선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글루코사민의 효과에 대해선 상반된 논문이 상당히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국립보건원이 직접 나서 미국 전역의 13개 센터 1588명의 무릎 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틴의 효과를 측정하는 대규모 연구 ‘GAIT’를 진행하고 있다. 치료 6개월 후의 단기적인 효과와 2년까지의 장기적인 효과를 평가하는 이 연구는 지난해 환자 모집이 마무리돼 현재 자료를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결과가 올해 안에 발표될 예정인데, 글루코사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 중 가장 과학적이고 규모가 큰 만큼 글루코사민의 효능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기대된다.
어쨌든 글루코사민은 건강기능식품이기는 하지만 연구자들 사이에서 의약품에 필적할 정도로 그 효능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구미 각국에서도 관절염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이 글루코사민을 복용하기 때문에 미국 국립보건원이 엄청난 비용이 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글루코사민은 간혹 위염이나 위장장애를 호소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 비용도 비싼 편이 아니기 때문에 비타민처럼 영양제로 생각하고 복용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성분을 갑각류의 껍데기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게나 새우 등에 알레르기가 있으면 글루코사민에도 알레르기를 보일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 기본적으로 단당류이므로 당뇨병 환자도 주의해야 한다.
건강기능식품은 말 그대로 건강유지 및 증진을 목적으로 섭취하는 식품이다. 의약품처럼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그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 대다수는 글루코사민을 건강기능식품이라기보다 치료제로 여긴다. 심지어 의약품보다 효과가 더 뛰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도 많다.
의사도 대체요법 인정해야
관절염으로 한번 망가진 관절은 되돌릴 수 없기에 치료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물론 현대의학으로 관절염을 완치할 수는 없지만, 관절이 망가지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현대의학에도 한계가 있지만 완치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건강기능식품에만 의존한다면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엔 부작용은 줄이고 효능을 높인 신약들이 나오고 있다. 자신의 판단으로 치료 방법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늘 전문가와 상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대의학의 틈새를 비집고 보완대체의학의 강점이 부각되고 있지만, 보완대체의학은 기존 정통의학을 보완하는 의미가 강하다는 데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대한의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암 환자의 53%, 당뇨 환자의 65%, 류머티즘 환자의 34%가 보완대체의학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질환자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건강기능식품이나 대체요법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엔 보완요법에 의지하다가 병을 키워 더 큰 대가를 치르는 경우도 많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다. 문제는 정통의학을 선택할 것인지 보완대체의학을 찾아갈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해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완대체요법에 배타적인 의사들의 책임도 크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보완대체요법을 무조건 배척함으로써 치료방법의 선택을 환자에게 내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진단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건강기능식품을 치료보조제로 인정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