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에서 많은 이야깃거리와 진리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시하다고 혹평만 하는 사람이 있다.”
저자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능력은 세상에 대한 경외심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경외심이 없는 사람은 어떤 새로운 것을 보아도 감동하지 못한다. 혹시 영화나 책을 보면서 재미있다고 하거나 눈물을 흘리면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자존심을 버리면 감동을 얻는다.
이 정도로 뜸을 들였으니 요즘 기자를 울린 책에 대해 고백하려 한다. 하도 여러 군데 소개되어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 집어든 책이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이다.
주인공(유정)이 부잣집 딸에다 그럭저럭 대학에 들어갔고 한때 가수로 이름을 날리다 외국 유학을 다녀와서 집안에서 경영하는 대학의 교수가 됐다는 설정이 썩 내키진 않았다. 물론 그녀에게도 열다섯 살 때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수차례 자살을 기도한 상처가 있다. 그런 그녀가 두 사람을 죽인 사형수(윤수)를 만나기 위해 교도소로 간다? 작위적인 구도라며 투덜거리던 기자가 어느새 울고 있었다. 사형이 집행된 윤수의 식어버린 손을 잡으며 유정은 기억한다.
‘온기가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라면, 인간의 영혼에서 온기가 사라지는 순간 또한 죽음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도 한때, 그것도 모르고 살면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이미 죽음이었는지도 모르고.’
지어낸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작가와 독자가 손을 부여잡고 우는 것, 그것이 소설이다.
작가와 독자가 손잡고 운다
실화에 근거한 소설 ‘파이 이야기’(얀 마텔 지음, 작가정신)는 짧은 줄거리만 들어도 극적이다. 캐나다로 가던 화물선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침몰하고 가족을 모두 잃어버린 열여섯 살의 인도 소년 파이. 그가 탄 구명보트에는 하이에나 한 마리, 오랑우탄 한 마리,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한 마리 그리고 200kg이 넘는 벵골호랑이 한 마리…. 호랑이와 227일간 표류하다 극적으로 살아난 인도 소년의 모험담을 읽다가 왜 울었을까? 고매한 성직자라도 절망과 희망, 신과 구원의 문제를 이처럼 담담하게 그러나 감동적으로 설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학생용 소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이경혜 지음, 바람의 아이들)를 읽다가 훌쩍거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타던 재준이는 텅 빈 거리를 자유로운 새처럼 날아올랐다 추락해 부서졌다. 깨진 벽돌처럼, 믿을 수 없는 모습으로. 폭주족 한 명 죽은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애들’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입소문만 요란한 그저 그런 책’이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하는 기자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박경철 지음, 리더스북)을 읽다 슬쩍 눈시울을 적셨다. 공공도서관이라 드러내놓고 울기가 쑥스러웠던 탓이다. 집에서 실컷 눈물 콧물 짜야겠다고 생각하며 인터넷 서점에 주문을 했다. 울고 나면 세상을 향해 마음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