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즈노씨는 구수한 호남 사투리를 구사하는 일본인 학자다. 그는 한국 TV에 자주 출연하면서 ‘친한파’ ‘지한파’ 일본인으로 인식돼 있다. 그러나 필자는 2002년 일본의 한 서점에서 미즈노씨가 쓴 ‘한국인의 일본위사’라는 저서를 본 뒤 그의 이중성을 의심하게 됐다. 그는 한국에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일본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일본에선 각종 기고를 통해 한국을 비하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미즈노씨가 일본 극우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소개한다.
필자는 이 세 잡지에 미즈노씨가 기고한 글을 지난 3월초 와세다대 강동완 박사에게서 입수했다. 이들을 연도순으로 살펴보자.
“한국, 왕인·가야 유적 날조”
위사(僞史)-‘고천원(高天原)’부터 ‘왕인’까지 학술적 정당함을 무시한 관광명소가 속속, 일본 역사의 루트를 한국에 구하는 ‘날조된 유적(捏造舊蹟)’이 늘어나고 있다(‘사피오’ 2002년 5월22일자 26∼28쪽)
‘사피오’는 이 기고문의 저자를 노히라 슈스라고 밝히면서 그의 이력을 “1968년 홋카이도 태생. 천리대학 조선학과 졸.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문학박사. 현재 동 대학 강사로 근무하는 한편, 한국의 TV프로그램에 한국 최초의 일본인 출연자로 출연, 인기를 끌고 있다. 저서에는 ‘한국반일소설 쓰는 법(韓國反日小說書き方)’(亞紀書房), ‘한일전쟁발발!? 한국 엉터리책의 세계(韓日戰爭勃發!?韓國けったい本の世界)’(文藝春秋), ‘한국인의 일본위사(韓國人の日本僞史)’(小學館) 등”으로 소개했다. 소개된 이력을 통해 노히라 슈스가 미즈노 페이씨와 동일인임을 알 수 있다.
미즈노씨는 이 글에서 홍길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전남 장성군이 조성한 홍길동 테마파크를 비난했다. 다음은 기고문 내용이다.
“한국의 서남부, 전라남도 장성군에는 ‘홍길동’에 관한 유적이 있다. 이 ‘홍길동’이 이시가키시마의 ‘홍가와라’와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홍길동과 ‘홍가와라’가 동일인물이라든가, 홍길동이 이시가키시마의 왕이 됐다고 기록한 사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홍길동이 남쪽의 섬으로 건너갔다고 기록한 ‘홍길동전’에는 ‘홍길동이 율도국의 왕이 되어 30년 후인 72세에 죽었다’고 씌어 있다. 이는 ‘홍가와라=홍길동’이라는 장성군의 주장과 전혀 다르다. 장성군의 주장은 ‘조선왕조실록’의 홍길동 관련 기록과 ‘홍가와라’에 관한 일본측 기록을 적당히 결합해서 만든 것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애매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장성군 홈페이지에는 ‘홍가와라’와 ‘홍길동’이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이 확고한 학설인 양 설명되어 있고, 지난해 장성군은 이시가키시마의 시장 등을 초청해서 홍길동에 관한 학술세미나도 개최했다. 현재 장성군은 12억8000만원(약 1억2800만엔)의 예산을 들여 ‘홍길동 테마파크’를 건설 중이다.”
이어 미즈노씨는 고대 백제 문물을 일본에 전해준 왕인의 전라남도 영암군 유적도 한국에서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지는 기고문 내용이다.
“‘일본서기’ 응신기(應神期)에는 백제로부터 ‘왕인’이라는 학자가 파견되어 황태자의 스승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고사기(古事記)’에도 ‘와니키시(和邇吉師)’라는 백제의 학자가 ‘논어’ 10권과 ‘천자문’을 헌상했다는 기술(記述)이 있다. 학계에서는 이 기술의 신빙성에 대하여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신중한 자세는커녕, 왕인의 ‘유적’이 존재하고, 관광명소로 되어 있다. ‘왕인’의 유적은 한국의 서남부에 위치한 전라남도 영암군에 있으며, 정식명칭은 ‘왕인박사 유적지’라고 한다. 이 ‘유적’에는 왕인박사의 위패와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는 ‘왕인묘’, 왕인 박사의 탄생·수학·도일(渡日)·학문전수 등의 기록이 보관되어 있는 전시관, 왕인의 생가터와 왕인이 마셨다는 샘(泉), 왕인이 수학한 학당, 왕인이 면학에 힘쓴 동굴 등이 있다. 한국 역사 기록으로 입증되지 않은 날조인데도 영암군과 왕인 박사 묘소가 있는 일본의 히라카타시(枚方市)가 교류하는 것은 못마땅하다.”
“한·일 지자체 교류, 못마땅”
미즈노씨는 경북 고령군에 있는 고천원 유적지도 한국이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사기’ ‘일본서기’의 신화에는 ‘고천원(高天原)’이라는 세계가 등장한다. 신화의 세계는 천계(天界)인 ‘고천원’, 지상계(地上界)인 ‘위원중국(葦原中國·후시와라노 나카쓰구니)’, 지계(地界)인 ‘황천국’이라는 삼층 구조로 되어 있다. ‘고천원’은 왕권 지배의 정당성·신성성(神聖性)이 유래하는 천상의 신성한 세계였다.
그런데 최근 이 ‘고천원’ 유적이 한국에서 복원(?)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고천원’이 있는 곳은 한국의 동남부 경상북도 고령군이다. 여기에는 ‘고천원고지’라고 새겨진 비석(높이 6m, 폭 2m)과 ‘고천원의 시비(詩碑)’, ‘일본의 와카비(和歌碑)’ 등이 세워져 있다. 이 ‘고천원’은 고령군에 있는 ‘가야대학교’라는 지방대학의 캠퍼스 안에 있다. 왜 ‘고천원’이 대학 구내에 있는가 하면, ‘고천원=고령’이라는 주장을 전개하는 가야대학교 총장 이경희씨 때문이다.”
원래 고천원이 고령에 있었다는 학설은 고령군에 사는 향토사가 김도윤(金道允)씨가 그의 논문에서 주장한 것으로, ‘일본서기’에 나오는 소시머리(曾尸茂梨)는 우두산(牛頭山)으로 우두산이 가야산의 ‘우수리(牛首里)’에 해당한다고 한 것이다. 다시 미즈노씨의 주장이다.
“‘고천원’이 한국에 있다는 주장은 김(김도윤)씨의 학설 이전에 존재했다. 실은 ‘우두산’은 한국의 여기저기에 존재하고, 식민지 시대에는 강원도 춘천에 있는 우두산이 ‘고천원’에 비정되었고, 이기동(李沂東)의 ‘고천원은 조선인가’에서는 경상남도 거창군에 있는 우두산을 근거로 거창군이 고천원이라고 되어 있다. 요약하면 ‘고천원’은 ‘우두산’의 위치에 따라 아무렇게나 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엉터리 근거에도 상관없이, 이 수상한 ‘고천원’에서는 매년 ‘고천원제(高天原祭)’라는 행사가 벌어져, 일한 우호에 대대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즈노씨의 이런 지적은 무모한 측면이 있다. 한국에 산재한 우두산은 모두 실제로 고천원과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에 따르면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중국 동부의 제나라, 노나라 사람들은 물론 서부의 진나라 지역 사람들이 노역을 피하여 조선(고조선) 지역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들은 파도처럼 춘천을 거쳐 거창, 고령 등 한반도 전역으로 이동했는데,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 ‘우두산’ 또는 ‘소시머리’라는 지명이 남게 된 것이다. 이들은 중국에서부터 소머리를 신성시했다.
이들은 한반도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5세기 초엽의 일왕 응신기(應神期)에 이르러서는 백제의 도움을 받아 대거(120현의 백성) 일본 열도로 이주했다. 이들이 바로 ‘바다’를 뜻하는 의미의 ‘하타(秦)씨족’으로, 6세기부터는 교토(京都)의 광륭사(廣隆寺) 주변에 중심을 두니 그곳이 바로 ‘우즈마사(牛頭麻佐)’라 부르는 곳이다. ‘우즈마사’는 소머리를 뜻하는 말이다. 또한 한국어로 ‘우두머리’를 뜻하기도 한다.
고천원이 한반도의 ‘우두산’과 관련이 있음은 일본 고대사 전문가인 오오와 이와오(大和岩雄)씨의 엄청난 저서와 논문을 읽지 않더라도 일본 학자들 대부분이 인정하는 일이다. 전공이 아닌 한일 고대사 분야에서 초라한 지식을 동원하여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은 바로 미즈노씨이다. 그는 한술 더 떠 한국의 고대사 유적 전반을 폄훼하기에 이른다.
“이상, 한국의 ‘수상한 유적’을 조망해보았다. 이런 유적은 조금만 검토해봐도 쉽게 마각을 밝힐 수 있다. 이러한 유적들로 인해 한국인은 일본에 대하여 문화적 우월감을 느낀다. 물론 한국 학계에서도 이러한 유적은 학술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의 자치단체와 교류단체가 일한 우호를 명분으로 이러한 유적지를 방문하는 것은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이런 유적은 ‘일본과 일본인, 일본문화의 루트는 모두 한국이다’라는, 한국인의 기호에 맞는 역사인식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즈노씨가 일본 극우 잡지에 기고한 글들.
-친북 신파-‘사랑은 국경을 넘는다’, ‘CI A공작원이 사랑의 장애’ 등 엉터리 스토리 속속 공개 중. 북조선 ‘미녀군단’에 감쪽같이 속아 농락당한 한국판 ‘멍텅구리·바보 남북 멜로드라마’의 촐랑거림(‘사피오’2003년 10월8일자 23∼25쪽)
이 기고문에선 위 제목에 잘 나타나 있듯 미즈노씨는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여한 북한 미녀 응원단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있다. 또한 북한 미녀 응원단을 소재로 제작된 한국 TV 드라마를 ‘멍텅구리’ ‘촐랑거림’ 등의 용어를 사용해 비난했다. 당시의 남북 화해 무드를 반영해 제작된 ‘남남북녀’와 ‘휘파람공주’와 같은 한국 영화에도 매정하고 차가운 논조로 야유를 보냈다.
한 가지 흥미를 끄는 점은 저자의 프로필이다. 이 기고문의 ‘노히라 슈스 프로필’ 난엔 기존 약력에다 ‘웬일인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인(なぜだかで韓國で一番有名な日本人)이라는 대목이 추가되어 있다. 이 무렵 미즈노씨는 KBS TV의 ‘좋은나라 운동본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많은 한국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한국인이 미즈노씨를 좋아하는 사실조차 ‘웬일인지’라는 표현으로 한껏 비꼬고 있다. 다음은 기고문의 주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북조선 관련 드라마와 영화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국의 북조선 관계 영화’라 하면 ‘쉬리’와 ‘JSA’ 등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요즈음은 그 내용이 확 바뀌었다. 최근의 북조선물은 오로지 남북남녀의 ‘연애’를 묘사하고 있다. 한국의 동맹국이어야 할 아메리카가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할 만하지만, ‘민족의 화해(연애?) 앞에서는 아메리카와의 동맹도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유니버시아드가 끝나고 한국의 ‘북조선 미녀 붐’은 일단락된 모양이다. 북조선의 미녀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은 민족으로서의 일체감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남북 상호 이해의 어려움과 통일에의 길이 아직도 험난함을 좋든 싫든 간에 재확인하게 됐다. ‘남북의 화해’도 ‘남남북녀(영화)의 연애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현재의 엄연한 상황이다.”
“한류에 빠지는 것, 어리석다”
-앙천(매우 놀람)‘여자는 음란, 남자는 비열’- 이래서 방송할 수 없다. ‘후유소나(=후유노 소나타, 겨울연가)’로는 알 수 없는 한국 드라마의 ‘엉터리 일본인’ 열전(‘사피오’2004년 8월18일자 80∼82쪽)
사피오는 기고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에 있는 일본인의 시각으로 최근의 ‘한류붐’을 바라보면, 단순한 ‘놀라움’으로 끝날 수 없다. 복잡한 생각이 끓어오르는 것 같다. 특히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일수록 위화감을 갖는 것 같다. 그것은 한국 작품에 등장하는 ‘일본인’의 묘사방법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 올해(2004) ‘한국 속의 엉터리 일본인(韓國のなかのトンデモ日本人)’을 저술한 노히라 슈스씨가 한류 팬이 깜짝 놀랄 만한 한국의 ‘국내 사정’을 소개한다.”
한류에 열광하는 일본인들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일본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미즈노 페이씨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라는 내용이다. 이 기고는 일본의 한류 붐에 찬물을 끼얹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다음은 미즈노씨의 기고문 내용이다.
“한국 영화·드라마에 나타나는 ‘일본 여성’을 보자. 성격은 조용하고 신중하며 남성에 순종한다. 거의 전원이 기모노를 입고 등장한다. 정월(설)도 아닌데 말이다. 이름은 전부 ‘OO코’로 끝난다. 예외없이 ‘한국 남성’에 홀딱 반한다. 평소엔 얌전하지만 일단 한국 주인공과 만나면 욕정에 불이 붙는다.
가장 오래된 작품은 1963년 ‘행복한 고독’이라는 영화인데 대학 출신의 재원인 도시코(기모노 착용)가 가족의 맹반대를 뿌리치고 한국 청년과 결혼, 결국 한국에 귀화한다는 줄거리다. 1996년 KBS가 방영한 ‘며느리 삼국지’는 일본 여성인 미치코가 한국 가정에 시집온다는 내용의 홈드라마다. 시청률이 꽤 높았다. 미치코는 ‘도쿄대 관광개발학과’ 출신이지만 일본에 유학 중이던 한국 청년에게 한눈에 반해 한국에까지 밀어닥친다는 설정이다.
한국 영화·드라마에 그려진 ‘일본 여성’은 현실과 괴리되어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긍정적이다. 반면 ‘일본 남성’의 이미지는 극히 부정적이다. 한국인이 가진 ‘일본 남성 이미지’는 ‘왜구’, ‘조선인을 고문하는 헌병’ 등이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영화와 드라마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한국의 영화·드라마에서 ‘일본 남성’의 역할이란 ‘야비하고 잔인하며 비열한, 증오 받는 역’이다. 대표작이 ‘장군의 아들’(1990)과 ‘장군의 아들2’(1991)이다.”
미즈노씨는 “한국 영화·드라마에서 일상적으로 일본과 일본인을 왜곡 묘사하고 있는데,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비판이 없는 작품만 보고서 한류에 빠져드는 것은 어리석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인 취향의 수출 작품만을 보고서 ‘한류’에 빠져들어 한국 영화·드라마 팬이 되어버린 분이 많겠지만, 진짜로 한국 영화·드라마 팬을 자칭한다면 ‘일본에서 공개되지 않은(할 수 없는)’ 영화·드라마를 먼저 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글을 맺었다.
미즈노씨의 기고는 제목부터 맺음말까지 전체적인 흐름을 놓고 봤을 때 한류를 거부하라는 선동문으로 봐도 무방하다. ‘사피오’와 미즈노씨의 울분에 찬 한국 영화·드라마 비판은 한류를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키기 위한 일본 우익 세력의 합동작전처럼 느껴진다. 물론 일부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줄거리 전개상 일본인이 부정적으로 묘사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즈노씨는 1990년대에 제작된 일부 작품을 확대 해석해 모든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일본에 대해 왜곡이나 일삼는 수준으로 격하하고 있다.
“배용준과 한류의 허상을 조망한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반일’의 회오리바람. 엣, ‘용사마’마저도 반일!? 고이즈미 수상이 ‘후유소나(겨울연가)’통(通)임을 거드름피우며 요이쇼(얼씨구!)했다. 그러나 용사마는 다케시마 문제 때문에 매우 화가 나 날뛰고 있어요 (‘쇼쿤’ 2004년 8월호 177∼184쪽)
‘쇼쿤’은 일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극우보수 잡지다. 이 기고문에서 미즈노씨는 한류 스타 배용준을 맹렬히 비난한다. 배용준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다음은 미즈노씨의 기고문 내용이다.
“‘배용준씨는 일본의 여성들 사이에서 용사마라고 불리며 인기를 모으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일본의 톱스타보다 더 인기가 높다.’ 지난 6월3일 밤 도쿄에서 열린 국제교류회의 석상에서의 고이즈미 수상의 발언이다·베트남의 판반카이 수상,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전 수상 등을 앞에 두고 고이즈미 수상은 ‘겨울연가의 아시아적 일체감과 친근감, 매력을 조화와 공감을 기초로 한 커뮤니티의 형성에 활용하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아마도 아시아의 지도자들 앞에서 ‘겨울연가’통임을 자랑스레 보여서 친(親)아시아적인 자세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한 발언일 것이다. 확실히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한국 드라마와 배용준은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유행하는 한국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의 극히 일부이고, NHK가 일본인의 기호에 맞는 것을 엄선해서 방영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일본인의 기호에 맞지 않는 드라마도 방영되고 있고, 배용준도 ‘친일가(친일파)’이지 않다. 본고에서는 일본에서는 절대 방영되는 일 없는 ‘일본인의 기호에 맞지 않는 드라마’와 배용준의 ‘속내’를 소개, 한국 드라마 붐의 허상을 조망해보려고 한다.
2002년 7월부터 2003년 9월까지 SBS는 ‘야인시대’라는 대하드라마를 방영했다. 출연자는 504인, 엑스트라를 포함하면 4만명에 이르는 대작이다. 식민지하에서 김두한의 ‘활약’을 그린 것이다. 김두한과 마루오카 경부(警部), 하야시 오야붕이 한판승부를 벌이는 ‘일본과 한국의 대결’이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의 차이는 식민지 해방 이후의 김두한까지를 묘사한 점이지만, 전체적으로 일본과 식민지 시대를 묘사한 부분의 시청률이 높았다. 식민지 시대를 묘사한 제1부의 평균 시청률은 무려 40%, 식민지 해방 이후를 그린 제2부는 25%(닐센 미디어 조사).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장면은 김두한과 하야시의 대결로 무려 51.5%를 기록했다. 이 장면에서 5명의 부하를 데리고 온 김두한은 40명이나 되는 하야시의 조직에 대결을 자청, 놀랍게도 이겨버리고 만다.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어쨌든 시청자는 일본인을 때려눕히는 김두한에 갈채를 보냈다.
이때 일본에선 월드컵 공동개최로 친한 무드 일색이었다. 월드컵 준결승 한국 대 독일전에서는 일본인이 자발적으로 한국을 응원하는 현상마저 있었다. 설마 한국인이 일본인을 때려눕히는 드라마에 박수를 보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고 있을 때였다. ‘야인시대’의 시청률은 같은 시기에 방영된 ‘겨울연가’보다 훨씬 높았다. 한국 방영시 ‘겨울연가’의 최고 시청률은 27.6%, 최종회의 시청률도 25.4%였다.
“배용준, 말을 빙빙 돌리지만…”
여기서 배용준의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본고의 서두에서 ‘배용준은 친일가(친일파)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것은 ‘일본에 알려진 배용준은 드라마 속에서 연출된 것으로, 드라마에서는 실제의 배용준의 속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실 배용준은 자기 자신의 대일감정에 대하여 언급을 피하거나 극히 신중한 발언으로 일관해왔다. 예를 들면 일본의 월간지 ‘겐다이’(2004년 7월호)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반일감정에 관한 질문에 ‘우리들 한국인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과거의 식민지 지배를, 그것은 모두가 옛일이라고 결론내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상처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더욱이 현재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반일감정과는 별도로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은 배우자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을 빙빙 돌려서 답하고 있다.
이처럼 배용준이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일본인의 기호에 맞지 않는 드라마가 일본에서 방영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일본에 대한 ‘(그의) 속내’가 일본인의 기호에 합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물러빠진 상념 버려라”
미즈노씨의 배용준 흠집내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어지는 그의 글이다.
“올해 1월 배용준의 대일감정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은 한국 정부가 다케시마 기념우표를 발행한다고 한데서 시작한다. 일본 정부는 그것에 반발, 한국 정부에 우표 발행 중지를 요구했다. 1월9일 고이즈미 수상이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발언했고 이것을 ‘망언(망령된 말)’이라고 보는 한국에서는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이번에 일어난 반발의 특징은 반일데모 등 종래의 항의행동에 더해 인터넷상의 반일운동이 눈에 띄었다는 점이다. 배용준의 일본 공식 사이트의 게시판에도 한국인이 저급한 말을 올려 사이트가 일시 폐쇄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것은 배용준을 대상으로 한 항의가 아니라 사이트를 이용하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배용준이 튀기는 물을 뒤집어쓴 꼴이 됐다.
한편 배용준 자신은 1월19일 ‘스포츠투데이’라는 한국 일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나도 한국인으로서 독도망언에는 화가 난다’, ‘그러나 홈페이지의 (일본인) 회원들은 망언과는 관계없다. 오히려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이는 작은 공간을 지키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미즈노씨는 한 발짝 더 나아가 “겨울연가를 우호하는 것은 (일본인들의) 짝사랑”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배용준이 고이즈미 수상의 다케시마(독도) 관련 발언을 망언이라고 규정했다는 점이다. 결국 배용준도 한국의 일반적인 애국자로서 ‘독도는 한국의 영토’ ‘고이즈미 수상의 발언은 망언이다’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인, 특히 한국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만일 고이즈미 수상의 발언에 이해를 표시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에서 ‘매국노’ ‘친일파(원래는 일본 식민지 지배에 협력한 조선인을 가리키는 말로 매국노와 같은 의미)’라고 매도 당해 연예활동 중단으로까지 내몰렸을 것이다.
전술한 대로 고이즈미 수상은 배용준이 ‘조화(調和)와 공감을 기초로 한 커뮤니티의 형성’에 기여했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수상에 대해 말한다면, 그런 물러빠진 달콤한 상념은 빨리 버리는 편이 낫다. 고이즈미 수상이 배용준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면 우선 ‘다케시마는 한국의 영토’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배용준도 괴롭다. 혹시 한국인 시청자의 감정을 너무 배려한 나머지 ‘고이즈미 수상의 발언은 잘못된 역사인식에 기초한 망언입니다’라고 ‘속내’를 공언하면 이번에는 일본 내에서 반발을 자초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은 일본에서의 연예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배용준 자신은 ‘속내’를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연예인에게 ‘조화와 공감을 기초로 한 커뮤니티의 형성’을 바라는 것은 다소 기대과잉이란 감이 든다.
“일한 우호 기대는 일본의 짝사랑”
일한 양국의 문화교류라고 하는 시점에서 볼 때, 한국의 영화·드라마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 나쁜 현상은 아니다. 일본의 중년여성이 배용준과 ‘겨울연가’에 이루지 못한 꿈을 기대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을 확대해석해서 ‘일한 우호’와 ‘국제 커뮤니티의 형성’까지 기대한다는 것은 일본인의 짝사랑이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도저히 일본에서 방영될 수 없는 드라마와 영화가 존재하고, 한국인이 그것에 갈채를 보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배용준의 ‘속내’가 그렇듯이 한국인에 있어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영토문제는 증오와 원념(怨念), 반감의 대상으로 일본과 타협할 여지는 없다. 그러한 현실에서 쭉 눈을 돌린 채 일본인의 기호에 맞는 드라마에 도취해서 ‘일한 우호’를 얘기하는 것은 자기만족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한국 영화·드라마, 매우 좋아함’이라는 수준의 문제라면 그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영화·드라마야말로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속내가 잘 표현되어 있다. 배용준의, 아니 한국인의 속내를 알고 싶다면 그러한 영화·드라마는 반드시 봐둬야 한다.”
이중 플레이, 이제 그만
미즈노씨는 이상의 기고문을 통해 일관되게 한류, 한국의 역사를 격하하며 한일 갈등을 조장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독도 문제를 들어 배용준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대목에선 섬뜩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이는 사실 일본 극우보수, 군국주의자들의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 다만 미즈노씨는 한국에서의 자신의 명성을 적절히 활용하고 한국 연예계 상황을 자신의 글에 사례로 인용함으로써 일본 국내 극우 인사보다 더 설득력 있게 한국을 폄훼하고 있다.
미즈노씨가 ‘사피오’ 등 고국의 동류집단과 손발을 맞춰 어떤 글을 쓰든 그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김치를 예찬하는 ‘미즈노 페이’와 극우잡지의 한국 때리기에 선봉이 된 ‘노히라 슈스’ 사이엔 너무나 큰 간극이 있음을 그 자신이 이제 깨달아야 한다. 그가 한국 TV에 출연해 친한파 행세를 하며 한일 우호를 얘기하는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일본 극우세력도 양식이 있다면 이 같은 ‘이중 플레이’는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