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호

김용철 변호사 2005년 ‘오프 더 레코드’ 인터뷰

“서울중앙지검장 때문에 X파일 수사 제대로 안된다”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7-12-10 1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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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파일 녹취록엔 ‘떡값 검사’ 이름 다 안 나왔다”
    • “아는 검사들에게 식사, 골프 접대했다”
    • “잘나가는 검찰 간부 80% 이상이 ‘삼성 장학생’”
    • “후계구도 방어 차원에서 법무팀 강화”
    • “남기춘 검사, 끝까지 ‘이학수 구속’ 주장했다”
    • “삼성이 내 통장 관리하고 있다”
    • 삼성 “김 변호사 주장은 터무니없는 음해”
    김용철 변호사 2005년 ‘오프 더 레코드’ 인터뷰
    김용철(金勇澈·49) 변호사가 언론을 상대로 삼성 비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8월초, 김 변호사는 ‘신동아’ 기자와 만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삼성의 ‘비밀’을 귀띔했다. 그가 삼성에서 나온 지 1년2개월 됐을 때였다.

    민감한 시기였다. 삼성의 불법 로비 실태가 드러난 이른바 ‘X파일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애초 기자를 안 만나려 했다. 몇 차례 설득한 끝에 어렵사리 만났다. 그가 몸담고 있는 법무법인 서정의 사무실에서였다.

    당시 기자는 삼성과 검찰의 관계를 취재하고 있었다. 취재에 협조해준 법조인 중 몇 사람이 그의 존재를 알려주며 꼭 만나보라고 권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검사 출신으로 삼성에 직행했다가 퇴사한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희소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인터뷰에 응하면서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내걸었다. 그의 처지를 고려해 대체로 약속을 지켰다. ‘대체로’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의 발언 내용 중 일부를 기사화했기 때문이다.

    한 달쯤 지나 그는 ‘한겨레’ 비상근 기획위원이 됐다. 삼성의 임원을 지낸 사람이 삼성에 가장 비판적인 언론사에 입사한 것이다. 전례 없고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그와 삼성의 충돌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백담사 가 있는 전두환도 지원”

    그가 ‘한겨레행(行)’을 앞두고 기자에게 들려준 얘기는 최근 폭로한 내용만큼 구체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고갱이가 같고 얼개가 비슷했다. 11월12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공개한 ‘떡값 검사’ 3명 중 한 명의 이름을 그때 이미 언급했다. ‘비자금 차명계좌’의 존재를 암시한 대목도 있다. 최근 일련의 언론 인터뷰에서 하지 않은 얘기도 꽤 있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된 내용이 대표적이다.

    현 시점에서 그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그의 ‘양심 고백’으로 ‘오프 더 레코드’의 의미가 사라졌다고 판단해서다. 삼성에서 나온 지 갓 1년이 지났을 때 털어놓은 얘기라는 ‘신선감’도 감안했다. 지금과 달리 그의 언행을 두고 이런저런 의혹이 제기될 이유가 없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의 사무실은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전망 좋은 자리였다. 그와의 인터뷰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광경이 있다. 책상에 올려놓은 손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싱글벙글 웃던 모습이다. 결혼을 일찍 하고 자식을 빨리 낳아 벌써 손자를 봤다면서. 그때 그의 나이 47세였다.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일부 겹치는 얘기도 있었다. 두 번째 인터뷰에서 좀더 구체적인 문답이 오고간 까닭이다. 그의 생생한 육성을 살리기 위해 가감 없이 공개한다. 다만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할 소지가 있는 표현은 에두르거나 뺐다.

    김 변호사의 주장을 두고 논란이 있는 건 사실이다. 진실은 아마도 수사나 재판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의 발언을 소개하는 것은 그것이 다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의 ‘양심 선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상황에서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기사화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이는 의혹 제기를 통해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의 기능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첫날 대화의 시작은 “삼성은 성역(聖域)”이라는 그의 말이었다. 표정은 심각하지 않았지만, 표현은 비장했다. 삼성의 영향력에 대해 묻자 그의 발언이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중 삼성 돈 안 받은 사람이 몇이나 있나. 검찰도 받고 언론도 받는다. 백담사에 가 있는 전두환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삼성의 힘은 자본”이라며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서야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나 대우는 삼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영향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 안 듣는 놈으로 찍혀”

    김용철 변호사 2005년 ‘오프 더 레코드’ 인터뷰

    2005년 8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검찰의 X파일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검사를 그만둔 계기를 묻자, ‘사과상자’ 얘기를 꺼냈다. 1995년 서울지검 특수2부 소속이던 그는 특수3부에 파견돼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에 참여했다. 쌍용 김석원 회장 집에서 사과상자를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사과상자엔 김 회장이 관리하던 비자금이 들어 있었다. 수사를 확대하려 했으나 상부에서 막았다고 한다. 그 이유로 부천지청으로 좌천성 발령을 받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수사를 하라 했다가 하지 마라 했다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때 내가 몇 가지 못한 게 있다. 사과상자에서 김석원이 관리하던 비자금을 찾은 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계속 수사하겠다고 했다가 검찰고위관계자한테 질책을 들었다. ‘하명상복(下命上服)’하냐고 했다.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라는 얘기도 들었다. ‘너는 약점이 없느냐’면서. 그 일로 ‘말 안 듣는 놈’으로 찍혔다. 나는 수사하느라 건강도 잃고 가정도 잃었는데….”

    전두환 비자금 수사 때 외압이 있었다는 그의 주장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3부장으로 수사팀을 이끈 사람이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다.

    “무슨 압력을 받았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의 수사능력은 인정한다. 사과상자를 찾아냈을 때도 격려해줬다. 그런데 비자금 수사는 김용철 혼자 한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한 것이다. 수사과정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김 변호사가 따로 뭘 수사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DJ 정권 들어서자 이용가치 커져”

    김 변호사는 삼성에 간 동기에 대해선 이렇게 밝혔다.

    “공무원말고, 대한민국에서 망하지 않고 봉급 나올 데를 찾으니 삼성밖에 없었다.”

    그가 삼성에 들어간 것은 1997년 8월이다. 연말이 되자 ‘IMF 사태’가 터졌다. 모든 기업이 어려웠다. 삼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형편없이 어렵던” 시절, 그를 챙겨준 사람은 구조조정본부장(현 전략기획실장)이던 이학수 부회장이었다.

    “나는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 이학수 부회장의 신임으로 (구조본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DJ 정권이 들어서자 이용가치가 커졌다.”

    그는 이 부회장에 대해 “나 정도가 얘기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엄청난 파워를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삼성에서도) 아주 특별한 경우”라면서. 그의 증언에 따르면 “삼성에서 핵심적인 일은 이건희, 이재용, 이학수가 함께 처리한다”는 것이다.

    그는 X파일 사건과 관련해 “박인회가 돈 달라고 협박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학수를 조사하면 모든 걸 알 수 있다. 왜 이학수를 수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검찰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박인회씨는 X파일을 MBC 이상호 기자에게 넘겨준 재미동포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김 변호사가 당시 인터뷰에서 이미 이종백 현 국가청렴위원장을 ‘삼성 장학생’으로 언급한 점이다. 그는 “이종백 때문에 수사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X파일) 녹취록에는 (‘떡값 검사’ 이름이) 다 나와 있지 않다”면서. 이 위원장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X파일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지난 11월12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기자회견을 갖고 김 변호사로부터 건네받은 ‘떡값 검사’ 명단의 일부를 발표했다. 세 명의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의 실명이 공개됐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위원장도 명단에 포함됐다. 그러나 세 사람은 모두 삼성으로부터 돈 받은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공보관을 통해 “삼성으로부터 로비를 받거나 부정한 청탁을 받은 일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또한 “김용철 변호사는 검찰 재직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같이 근무하거나 만난 사실이 없고 통화 한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김용철 변호사 2005년 ‘오프 더 레코드’ 인터뷰

    2004년 3월 대선자금 문제로 검찰에 공개 소환된 이학수 삼성 부회장.

    관련자들이 부인하자 사제단이 즉각 언론을 통해 반격에 나섰다. “김 변호사의 증언뿐 아니라 금품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문서’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애초 삼성에서 변호사 업무를 맡지 않으려 했다. 재무팀에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전공’을 살리게 됐다. 삼성그룹의 법률적 문제를 지휘하고 조정하는 구조본 법무팀장을 맡게 된 것이다. 그는 구조본 법무팀장으로서 검찰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묻자 별것 아니라는 투로 답했다.

    “(삼성에 재직하던) 7년간 서울지검에 가본 적이 없다. 로비스트 노릇 안 하려고 애 많이 썼다. 검사들에게 식사나 골프 접대를 한 적은 있지만. 내가 아는 검사라고는 검찰 재직할 때 동료들밖에 없다.”

    그가 삼성에서 나오게 된 계기는 2003년 대선자금 수사였다. 당시 삼성의 최대 관심사이자 목표는 이건희 회장 소환을 막는 것이었다. 김 변호사는 “그건 내 능력으로 안 되는 일이었다”고 했다.

    당시 그와 남기춘 대검 중수부1과장 사이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물어봤다. 현 서울북부지검 차장인 남 검사는 김 변호사의 사법시험 동기다. 그런데 두 사람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김 변호사가 동기 덕을 보기는커녕 망신만 당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일종의 해프닝이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남 검사가 좀 꼬장꼬장하지. 당시 삼성에서 하도 로비를 하니 좀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이학수 부회장이 조사받으러 갈 때 내가 동행했다. 검사실에 따라 들어가려 하자 남 검사가 나보고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선임계를 냈냐?’면서.”

    그는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방어 전략을 두고 삼성 고위층과 충돌했다고 털어놓았다.

    “비자금 문제에 대해 나는 고위층과 생각이 달랐다. ‘검찰에 가서 사실대로 털어놓으라’고 조언했다. 털어놓을 때가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에 공범이 되기도 싫었다. 고위층에선 ‘조직에 도움이 안 되는 놈’이라고 여겼다. 그 후 그 업무에서 배제됐다. 이용가치가 없어진 거지.”

    검찰 내 ‘삼성 장학생’에 대해 묻자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만 있나. 국세청에도 언론사에도 다 있다. 왜 검찰에 대해서만 묻나.”

    X파일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이학수 삼성 부회장의 대화를 안기부가 도청한 것이다. 시점은 대선이 있던 해인 1997년. 두 사람은 당시 중앙일보 사장, 삼성그룹 비서실장이었다. 녹취록에는 ‘떡값 검사’ 7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1997년 이후엔 어땠을까.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이학수한테 물어보라”며 입을 닫았다.

    두 번째 인터뷰에서는 기자가 보충 취재한 내용과 관련해 좀더 구체적인 문답이 오갔다. 먼저 X파일의 제보자 박인회씨가 삼성과 거래하려 했던 일에 대해 물어봤다.

    “명절 때 인사는 기본”

    “나는 협조할 생각이 없었다. 그게 원본인지 사본인지 어떻게 아나. 갈취범한테 한번 물리면 끝이 없지. 배고플 때마다 달라 할 것 아닌가. 그걸 어떻게 감당하나. 그건 공개하지 않을 때만 무기지, 공개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 거지.”

    ▼ 그쪽의 요구조건은?

    “나한테는 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엊그제 보도를 보니, 이학수 부회장한테는 돈 얘기를 했다 그러더라. 뭔가 좀 이상하다.”

    ▼ 돈이 아니면 뭔가.

    “친구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자기한테는 그 파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면서.”

    박인회씨는 통신비밀보호법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재판과정에서 그는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을 찾아간 이유에 대해 “안기부에 근무하다 해직당한 친구 임모씨의 구직을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 검찰 조사를 받았나.

    “내가 왜 거기를 가나. (검사가) 내 사무실로 와서 조사했다. 검찰에서 조사받은 걸로 해달라고 하더라.”

    ▼ 녹음 테이프 내용을 들어봤나.

    “녹취록을 봤다.”

    ▼ 박씨가 찾아온 이유가 정확히 뭔가.

    “난 알 수가 없다. 박인회는 먼저 이학수 본부장을 만났다. 그 후 이 본부장이 나한테 (박인회를) 만나보라 하더라고. 그런데 내가 무슨 재량이 있나.”

    ▼ 박씨가 자기 친구의 사업을 도와달라는 얘기를 했나.

    “나도 법정에 나가 증언해야 하니, 그 얘긴 그만하자.”

    그는 X파일 사건에 대해 “맞을 매는 맞아야 한다. 삼성이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삼성이 검찰 간부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주나.

    “다 아는 얘기지. 검사만 먹었나. 국회의원도 먹었고. 예전엔 5000만원 먹어도 괜찮았는데….”

    ▼ 어떤 검사장은 삼성과 별다른 연고가 없는데, 검사장 승진 때 삼성으로부터 난(蘭) 선물을 받았다고 하더라. 집으로 배달돼 왔는데, 이건희 회장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다 간다고 봐야지.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명절 때 인사하는 건 기본이다. 난 내용을 다 알지만…. 각계에서 잘나가는 사람들과는 다 관계를 맺어둔다. 검찰도 그렇다. 잘나가는 검찰 간부의 80% 이상이 ‘삼성 장학생’이다.”

    그는 삼성 최고위 인사가 직접 한 말이라며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줬다.

    “일본 미쓰비시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아나? 도쿄검사장의 첩까지 관리했다. 그렇게 해서 발전의 터를 닦았다.”

    ▼ 삼성이 무리수를 두는 이유가 뭔가.

    “아들(이재용) 때문이다. 후계구도 세우기 위해. 이건희 회장의 방침이다. 후계구도 공격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법무팀을 강화했다.”

    “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그는 삼성의 막강한 정보력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참여연대의 내부 회의록이 곧바로 입수된다. 내가 기자에게 한 얘기가 리얼타임으로 나한테 되돌아오더라. 모 방송사 기자와 검찰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다음날 구조본 팀장회의에서 내가 한 얘기가 공개적으로 언급돼 깜짝 놀랐다.”

    ▼ 삼성 관련 소송이 제대로 진행된 적이 있나.

    “없지. 국가기관이 이미 삼성에 접수됐다. 영속불변의 절대왕자다. 이건희 회장은 처족과 외족을 꼼짝 못하게 해놓았다. 주식도 몇 주 없으면서 회사의 모든 걸 지배한다. 그 비정상적인 지배구조를 정부에서 덮어준다. 국세청도, 금감원도, 검찰도.”

    ▼ 대선자금 수사 때 수사팀이 ‘이학수 구속’ 의견을 냈다고 들었다.

    “맞다. 남기춘 검사가 끝까지 ‘이학수 구속’을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시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수사는 거기서 멈췄다. 노 대통령은 대선 전 사석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이 이학수’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김·장의 박정규 변호사도 이학수 부회장과 가깝다고 하던데.

    “돈 가진 사람은 누구와도 가깝게 마련이다. 알아서들 접근한다. 무제한의 부를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두 사람은 다 부산 출신이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박정규 변호사는 부산고를 나왔다. 이학수 부회장과 노 대통령은 부산상고 동문이다. 박 변호사는 노 대통령과 함께 절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검찰 주변에 따르면 대선자금 수사 당시 수사팀은 ‘이학수 구속’과 ‘삼성 구조본 압수수색’을 밀어붙이려 했다. 하지만 상부에서 허락하지 않아 좌절됐다고 한다.

    기자는 당시 남기춘 대검 중수부1과장이 그 일로 사표 낼 생각까지 했다는 얘기를 법조계 고위관계자한테 들었다. 이에 대한 김 변호사의 증언이다.

    “남기춘이 밀어붙였던 건 맞다. 그게 사시 동기인 나한테는 나쁘게 작용했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검사가 수사한다는데 누가 막을 수 있나. 그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수사가 지나치다거나 부당하면 따질 수는 있겠지만. 남기춘의 수사 스타일이 깔끔하지 않고 세련되지도 않았다.”

    당시 대검 중수부의 삼성 수사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먼저 검찰이 최선을 다했다는 시각. 삼성이 창사 이래 가장 ‘악질적인’ 수사를 당했다는 평이다. 반면 막판에 검찰이 봐준 면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여당 후보측에 건넨 돈을 다 캐내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주로 한나라당 쪽에서 나온 얘기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던 안대희 현 대법관은 수사팀과 지휘부의 갈등설에 대해 “그런 일 없었다”고 부인했다. 남기춘 서울북부지검 차장은 2년 전과 마찬가지로 무뚝뚝한 어조로 “말할 게 없다”며 입을 열지 않았다.

    ▼ 검찰이 이학수 부회장을 압박할 때 이종왕 변호사가 도왔나.

    “나는 초기에 바로 빠졌다. 이학수 부회장이 조사받으러 갈 때 한 번 따라간 것뿐이다. 이미 이종왕 변호사가 선임돼 있었다. 그는 나와 생각이 달랐다. 끝까지 버텨라, 피하라고 조언했다. 그 바람에 지휘부가 마비됐다. 이건희 회장도 외국에서 못 들어오고. 그게 뭔 짓이냐. 나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대희 의식해 이종왕 선임”

    ▼ 당시 삼성이 겁을 내긴 냈나.

    “이종왕을 선임한 건 안대희 중수부장과 사시 동기라는 점을 고려해서다. 안대희도 한계가 있었다. 남 검사가 강공을 폈던 건 삼성 사람들이 다 안다.”

    이에 대해 이종왕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취급했던 일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삼성에서 나온 만큼 삼성과 관련된 어떠한 얘기도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삼성그룹 법무실장(사장급)이던 이 변호사는 11월9일 갑자기 사직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법무실장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김용철 변호사의 파렴치한 행위에 같은 변호사로서 자괴감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삼성에 입사한 것은 2004년 7월이다. 그 직후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에서 나왔다.

    대선자금 수사에 정통한 검찰 관계자는 “당시 이종왕, 김용철 변호사가 열심히 뛰었지만 검찰의 강공으로 별 소득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이 변호사와 달리 김 변호사는 선임계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검찰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고발사건을 재배당한 것은 남기춘 검사를 의식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애초 에버랜드 사건을 수사한 곳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였다. 2004년 6월 이 사건은 금융조사부로 넘어갔다. 남 검사가 특수2부장으로 부임한 직후였다.

    2003년 12월1일 특수2부는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인 허태학·박노빈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건희 회장 부부에 대해서는 참고인중지결정으로 기소하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검찰이 사건을 축소해 분리기소라는 편법을 썼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분리기소 덕분에 이건희 회장 부부는 법망에서 벗어나게 됐다. 하지만 남 검사가 부장으로 오니 위험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수사 부서를 바꾼 것이다.”

    ▼ 삼성 관련 소송에서 어떤 일을 했나.

    “삼성은 소송이 생길 때마다 따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나는 주로 재무팀에서 재정관리를 맡았다. 변호사 안 하려 그런 거다. 삼성에선 나를 검찰 로비스트로 활용하려 했다. 노조 분쇄 문제를 두고 내게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 대부분의 삼성 관련 사건에 대해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는데.

    “한마디로 수사 의지가 없는 거다. 수사는 의지다. 논리는 만들어내는 것이고. 검사가 어떤 의지를 갖고 하느냐고 가장 중요하다.”

    인천지검이 수사한 대상그룹 비자금 사건도 넓게는 삼성 관련 사건으로 분류된다. 대상 임창욱 회장과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사돈이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대상 수사과정에 삼성측의 로비가 있었다. 검찰은 임 회장에 대해 참고인중지결정으로 불기소했다.

    법원이 이것을 뒤집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임 회장의 공모 혐의를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검찰의 ‘봐주기’를 인정한 것이다. 결국 검찰은 재수사에 나서 임 회장을 구속했다.

    “쓸데없이 입 열면 불행해진다”

    ▼ 대상 1차 수사팀이 임 회장을 구속하려다 검찰 지휘부와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임 회장은 조사할 필요도 없이 구속감이었다. 당시 변호사들 사이에서 그런 얘기가 돌았다. 수사 초기 송정호(전 법무부 장관), 심재륜(전 부산고검장) 등 쟁쟁한 변호사가 많이 붙었다. 김·장 박정규 변호사가 대표적인 변호인이었다. 당시 대상에서 변호사비로만 50억을 썼다는 얘기를 들었다. 열심히 한 검사는 물먹고, 말아먹은 검사는 잘 풀렸다. 원칙대로 수사하려 했던 송해은 부장은 좌천됐다.”

    그는 삼성의 막강한 영향력에 대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부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특정 기업이 독주하면서 국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의원들이 국회에서 왜 삼성 문제를 제기하는지 아나? 용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는 또 “대학이나 국가기관도 수시로 삼성에 지원과 협찬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대학들이 줄을 서 있다. 삼성 돈 받으려고. 그 돈 주면서 영향력 확대하는 거다. 서울대엔 1000억, 고려대엔 수백억…. 언론도 마찬가지다. 광고로 영향력 행사한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겠나. 시장이란 기업을 말하는 거다. 삼성을 두고 한 얘기지.”

    그는 삼성측에서 자신이 퇴사한 후 1년간 연락 한 번 하지 않다가 X파일 사건이 터진 후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다.

    “창사 이래 구조본 팀장이 스스로 나간 경우는 나밖에 없다. 호남 출신도 처음이고. 삼성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내게 ‘쓸데없이 입 열면 불행해진다’고 하더라. 구조본 핵심인사의 뜻이라면서. 삼성에 맞서 불행해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정말 무서운 조직이다. 삼성생명이 있어 개인의 금융거래를 파악할 수 있다. 삼성카드가 있으니 카드 사용내역 조회가 가능하다. 삼성은 당사자 동의를 얻어 직원 e메일도 검색한다.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그는 쓸쓸한 표정으로 “나도 삼성에 쌓인 게 많다. (삼성에서) 건강을 잃었다”고 했다. “내 통장을 삼성이 관리하고 있다”고도 털어놓았다. 하지만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최근 그가 폭로한 ‘비자금 차명계좌’에 대한 최초 언급이었던 셈이다. 그는 “김인주(현 전략기획지원팀장)가 실세로 밀실 비자금을 다룬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한편 삼성은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나 근거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떡값 검사’ 명단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무근으로 악의적이고 터무니없는 음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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