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가짜 친서민 예산이라고요? 청계천 철거민·상고 출신이 만들었습니다”

‘서민 희망예산’ 총괄한 김동연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 박은경│신동아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0-10-28 17: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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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육문제 정부가 책임지겠다
    • ‘전문계고, 전문대 정부 장학금’ 교육희망 사다리
    • ‘2012년 대선, 총선 감안 편성 지적도’
    • 156명 예산실 ‘오케스트라 단원’ 지휘 309조6000억 편성
    “가짜 친서민 예산이라고요? 청계천 철거민·상고 출신이 만들었습니다”
    해마다 연말이면 국회를 뜨겁게 달구는 ‘핫 이슈’ 가운데 하나가 다음해 예산안이다. 올해는 예년보다 이른 시기에 예산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다. 9월16일 과천 기획재정부 대회의실에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2011년 예산안, 서민희망 3대 핵심과제’를 논의하면서부터다. 이후 10월1일 ‘친(親)서민 어젠다’를 선점한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친서민’ 논쟁에 불이 붙었다. 야당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포퓰리즘이다” “재정건전성을 해친다” “가짜 친서민이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연말 예산 국회가 열리기 전부터 정부예산안이 이번처럼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총선과 대선이 2012년에 있고 2011년 예산안이 그 전해의 예산이라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서민희망 예산’을 비롯해 내년 정부예산안 편성을 총 지휘한 사람은 지난 8월 중순 친정으로 돌아온 김동연(53)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다. 예산실에 부임하기 전 김 실장은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과 국정과제비서관으로 2년여 동안 일했다. 지난 29년의 공직생활 기간에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국장과 예산실 산업재정단장 등 정책부서와 예산부서를 번갈아 근무하면서 양쪽을 실무적으로 경험한 그는 이번에 네 번째 예산실 근무를 하고 있다.

    매해 6월부터 9월까지 예산편성 철이면 156명의 예산실 직원은 밤샘 작업으로 날을 밝히기 일쑤다. 예산실 직원들이 여름 한철 올빼미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부 각 부처 공무원들부터 지자체장, 국회의원, 정부투자기관·정부출연기관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가 사업설명과 예산 협의를 위해 찾아오기 때문이다. 예산실 직원 1인당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하는 이들을 만나 의견을 조율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예산편성 등 업무를 위해 야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309조600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편성하기 위해 이처럼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난 김 실장을 과천 집무실에서 만났다.

    ‘미래 대비 예산’



    ▼ 2011년도 예산안의 특징을 한마디로 얘기한다면….

    “재정의 기본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면서 건전성을 회복하려 했다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 정부가 펼치고자 하는 내년도 국정운영의 방향에 맞춰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재정건전성을 감안해 각 부문 사업별로 재원을 배분하는 데 역점을 뒀습니다. 그에 따른 주요 특징을 꼽자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서민희망 예산’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대비 예산’입니다.”

    ▼ 서민희망 예산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

    “전체 복지예산 86조 가운데 32조1000억원을 서민희망 예산으로 배분했습니다. 무작정 사업 범위를 넓힐 수 없으니까 범위를 좁히는 대신 서민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을 8대 과제로 나누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습니다. 과제 선정은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했습니다. 우선 생애 단계별로 볼 때 국민이 제일 힘들어하는 게 뭘까 고민해서 영유아 시기의 보육과 아동안전, 청소년 교육, 중·노년 시기의 주거와 의료, 이 네 가지를 찾아냈습니다. 또 취약계층별로 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유형화했는데 장애인과 노인, 저소득층과 다문화가정입니다. 그중 보육과 전문계고, 다문화가족 등 세 가지를 핵심과제로 선정해 집중 지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면 월 소득인정액(소득과 재산을 합쳐 환산한 금액)이 4인 가족 기준으로 450만원 이하 가정에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또 맞벌이 가구에 대한 무상보육 지원도 확대했습니다. 보육 문제만큼은 국가가 확실히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거죠.”

    이번 예산안을 살펴보면 교육 부문이 특히 강조돼 있다. ‘교육희망사다리’도 그 하나다. 이는 돈이 부족한 저소득층 아이들도 공부에 전념해서 대학에도 가고 좋은 직장에도 갈 수 있도록 하는, 계층 간 이동이 가능토록 하는 방안이다. 전문계 고교생 전원에 대해 교육비 전액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고, 처음으로 전문대 장학금도 만들었다. 이전에 없던 특별한 대책이다. 또 다문화가정엔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보육료를 전액 지원키로 했다.

    “가짜 친서민 예산이라고요? 청계천 철거민·상고 출신이 만들었습니다”

    ‘친서민 희망예산’이라 불리는 2011년 정부 예산안을 두고 야당의 공격이 거세다. 사진은 9월15일 자리가 텅빈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김 실장에 따르면 이번 예산안에 처음으로 반영된 전문대 장학금을 두고 내부적으로 논란이 많았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곤 일반적으로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전문대를 지원하는데 장학금을 주는 것은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 실장의 생각은 좀 달랐다.

    “미국에선 우리의 전문대 정도 되는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에 갔다가 하버드대 등 명문대에 편입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빈곤한 집 아이들이 성적은 우수하지만 형편상 전문대를 갈 수도 있고, 또 학생들의 잠재력은 대학에 가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대 학생들에게도 장학금 혜택을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청와대와 교감 있었다’

    ▼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예산 편성 시즌 중간에 예산실장으로 옮겼는데 ‘서민희망 예산’ 어젠다는 청와대와 미리 교감이 있었던 건가요.

    “부임 직전까지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으로 있으면서 국정운영 전반과 국정과제 전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국정운영 방향과 정책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산실장으로 그것을 예산에 어떻게 접목하느냐 하는 작업을 했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충분히 교감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겠죠.”

    ▼ 서민희망 예산 외에 내년도 예산에서 강조점을 둔 사항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신성장동력 확충과 차세대 수출산업 육성, 기후변화 대응, 중소기업·소상공인 경쟁력 제고, 일자리 창출 등을 8대 핵심과제로 선정한 ‘미래대비 예산’입니다.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훼손된 성장잠재력 회복에 중점을 두었는데,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은 올해 대비 14.1%를 증액한 23조7000억원을 배정했습니다. 미래에 대비한 투자는 사실 앞으로 우리 경제를 살릴 먹을거리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도 서민희망 예산과 마찬가지로 신경을 써 굉장히 많이 배분했습니다.”

    ▼ 앞서 예년의 예산안과 다른 점을 잠깐 언급했지만, 이번 예산편성 방식이 종전과 많이 달랐다고 들었습니다. 예산편성에 대한 특별한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누가 예산을 짜든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사실 전체 예산규모입니다. 두 번째는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둘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느 나라든 예산은 세 가지 부분으로 편성됩니다. ‘Macro-budgeting(거시재정정책)’과 ‘Micro-budgeting(미시적 예산의사결정)’이 있고 그 둘을 연결하는 ‘Integration(통합)’ 파트가 있어요. 거시재정정책은 내년 또는 5년 이후를 내다보고 확대재정, 긴축재정, 중립재정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향후 우리 경제, 나아가 정치와 사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다양한 변수를 감안해서 예산을 짜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가장 중요한 게 예산 총량인데, 내년도 예산 총량인 309조6000억원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가 거시재정정책에 포함되죠. 또 다른 축인 약 8300개에 달하는 개별 사업단위의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미시재정정책입니다.

    재정 건전성 때문에 SOC 예산 줄어

    거시와 미시적 사업단위별 의사결정단계가 어디선가 합쳐져야 되는데, 그 부분이 통합 파트입니다. 이전의 예산안이 미시재정 영역의 수천 개 개별 사업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거시재정 영역에 좀 더 중점을 뒀습니다. 정책 방향의 밑그림을 먼저 그린 후 사업별로 의사결정과 조율을 거쳤는데 이것이 정책과 예산편성을 연계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봅니다. 사실 ‘Macro-budgeting’과 ‘Micro-budgeting’ ‘Integration’ 이 세 가지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박사학위 논문에서 썼던 표현이기도 합니다. 국정운영 방향의 틀에 맞춰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재원을 조화롭게 배분하자는 게 저의 예산편성 철학입니다.”

    “가짜 친서민 예산이라고요? 청계천 철거민·상고 출신이 만들었습니다”
    김 실장은 경제기획원 예산실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199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시간대에서 정책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정책결정론을 전공한 그는 한국의 정책 의사결정 과정을 정책과 예산의 연계 측면에 초점을 맞춰 연구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정책과 예산을 연결시킨 영어 논문 가운데 한국인이 쓴 첫 논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이 제 논문 주제가 학위를 받기 쉽지 않은 주제라고 충고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선택한 주제를 끝까지 파고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존의 계량모델을 전혀 활용하지 않고 논문을 완성했는데, 거기서 정책결정 모델 하나를 제시했습니다. 그 결과 오히려 예정보다 더 빨리 논문을 마무리할 수 있었고, 지도교수는 제 논문을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의 학업계획서에 넣기도 했습니다.”

    이후 김 실장은 2002년부터 약 3년간 세계은행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하면서 정책과 예산의 연계, 총액배분자율편성(Top-down)제도 도입, 중기재정계획 등의 업무에 주력했다.

    ▼ 예산안 발표 후 야당 쪽에서 ‘서민절망 예산’ ‘지방 죽이기 예산’이라는 비판이 나왔고, 일각에선 선심성 복지예산을 늘리는 데 대해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진짜 서민희망 예산은 전체 예산의 1%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전체 예산의 1%라는 얘기는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내년도 전체 예산 가운데 복지예산이 86조원이고, 이 가운데 서민희망 예산 지원규모는 32조1000억원입니다. 32조원은 내년도 전체 예산대비 거의 10%에 가까운 비율입니다. 올해 서민예산 규모가 29조1000억원이었는데 내년도는 3조원이 늘었습니다. 이게 올해 대비 1% 정도 늘었는데 아마 이 부분을 두고 잘못 얘기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방 죽이기 예산’이라는 평가는 SOC 사업부문 지원규모를 줄인 걸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내년도 예산안의 12개 부문별 예산증가율이 5.7%입니다. 그중 유일하게 예산증가율이 마이너스가 된 게 SOC 부문이고 나머지는 모두 플러스입니다. 그런데 예산을 짤 때 재정총량이 정해지면 그걸 가지고 부문별로 어떻게 할당하느냐를 정합니다. 재원이 한정돼 있으니까 모든 사업에 돈을 풍족하게 쓸 순 없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거기서 SOC 부문이 밀렸습니다.

    재정건전성 문제는 이번에 특히 더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당장이 아니라 향후 5년 동안의 중기재정계획상 내년도 전체 12개 사업부문의 110개 프로젝트가 앞으로 어떻게 연계돼서 우리 재정건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따졌습니다.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속가능하게, 우리 재정이 그 프로젝트를 감내할 수 있는지를 살폈습니다. 선심성 예산은 재정건전성이나 사업의 중장기 지속성 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기영합적으로 돈을 배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내년도 예산안은 선심성 예산과는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 4대강 사업 예산을 줄여서 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4대강 예산은 3조3000억원이고 지난해보다 약 600억원이 늘었습니다. 강 공사의 경우 그 특수성을 인정해서 공기를 단축해야 합니다. 예컨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우기가 시작되면 공사가 늦춰지거나 새로 다시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4대강 사업은 시너지효과를 내기 위해 공사를 빨리 진행해야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고 돈도 덜 드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미 4대강 사업은 올해 공사가 많이 진행됐고 계획대로라면 내년까지 주요공정이 거의 끝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을 줄이거나 공사를 중단한다는 건 무리입니다.”

    내부 소통 강조

    김 실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산실장으로 부임한 뒤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예산편성 철에 예산실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들의 생각이 타당성이 있든 없든 진심으로 소통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전에 부하 직원 몇 명에게 톨스토이 단편집을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 이런 글이 나와요. 어느 왕이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신하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언제냐?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뭐냐? 신하에게서 답을 얻지 못하자 왕이 변장을 하고 저잣거리로 나가는데 거기서 해답을 얻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선과 사랑을 베푸는 일’이라는. 예산실 부임인사 때 직원들에게 그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여러분이 지금 나와 여기에,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다. 함께 열심히 일하자’고 팀워크를 강조했습니다.”

    가난이 스승

    그는 또 예산실 직원들에게 일을 통해 성취감을 안겨주는 방식의 리더십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산을 짤 때 구체적으로 어느 사업에 얼마의 돈을 배분하라고 지시 하는 것보다는 정책과 예산이 어떻게 연계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더 훌륭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 예산편성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는지요.

    “예산편성보다 국민경제대책위원회 이틀 전에 서민희망 예산 3대 핵심과제를 정리한 최종보고서를 대통령께 드렸는데 그 작업을 할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예산실에서 작업이 완료된 뒤 불과 하루 반 만에 보고서 준비를 마쳐야 했거든요. 잠시도 못 쉬고 정신없이 작업을 했지만 그 순간 뭐랄까, 굉장히 생산적이고 자극적인 ‘흥분’ 같은 걸 느꼈습니다. 물론 직원 대부분은 너무 시간이 부족해 ‘경악’ 수준이었답니다. 돌이켜보면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 예산편성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었던 부분을 꼽자면 무엇인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교육희망사다리를 꼽고 싶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돈에 구애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북 음성이 고향인 김 실장은 1970년대 청계천 철거민 출신이다. 청계천 판자촌은 요즘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생활환경이 열악했다. 비가 오면 말 그대로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사는 동네’였다. 기름종이를 바른 합판으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하꼬방(판잣집)’이다 보니 집에 화장실이 없어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며 살았다. 불이 나면 순식간에 수십 채의 집이 한꺼번에 잿더미로 바뀔 정도로 위험한 동네였다. 중학 2학년 때인 71년 청계천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그의 가족은 지금의 성남시 단대동으로 쫓겨가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해준 20평 부지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 얼마 뒤 시멘트 벽돌로 집을 짓고, 고교 졸업 몇 년 뒤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중학시절 부친이 사업에 실패한 뒤 돌아가시고, 집안형편이 크게 기울어 4남매의 장남이던 그는 어린 나이에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근무하면서 고시공부를 하고, 야간대학까지 마쳤다. 동생들 학비도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는 개인적 이력과 이번 예산을 연계시키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이번 예산 편성에 개인적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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