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전인 1970년대에 발생한 일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의 보도 통제까지 더해져 지금 우리나라의 40대 이하 세대는 잘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선 ‘워터게이트’에 비견되어 ‘코리아게이트’로 불릴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1976년 10월 24일자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첫 보도와 이후 미국 의회 조사에 따르면 재미실업가 박동선 씨는 1970년대 32명의 미국 전·현직 의원에게 85만 달러의 로비자금을 제공했다. 워싱턴에 한국 정부에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해선 상반된 의문이 제기돼왔다. 박동선은 애국자인가 로비스트인가, 그가 봉사한 대상은 한국인가 유신 정권인가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지금 이런 역사적 평가를 재론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기자는 최근 이와 관련한 새로운 정보를 접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선에 출마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주된 내용은, ‘박동선 씨 로비자금의 출처는 박정희 정권의 스위스은행 비자금’이라는 점이다. 근거로 제시된 것은 박동선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미 의회 증언록, 박동선 계좌 사본이다.
박동선 “청와대서 19만 달러 받았다”
이에 따르면 박동선 씨는 1972년 3월 경 쌀 중개권을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회수당했다 다시 돌려받으면서 19만 달러를 함께 받았다고 미 의회에서 증언했다. 이 같은 말은 박종규 대통령경호실장에 관한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온 것이어서 19만 달러를 준 주체는 박 실장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김형욱도 “‘박종규 실장 수하인 김성태 씨를 통해 박 실장이 주는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박동선 씨로부터 들었다”고 미 의회에서 증언했다.
자료는 19만 달러 수수 경위도 밝히고 있다. 박동선 씨가 누군가로부터 ‘眞’이라는 서명이 적힌 19만 달러 예금인출서를 받아 수하의 류재신 씨에게 주었고 류씨가 이를 가지고 스위스 취리히 소재 BAGEFI 은행으로 가서 박동선 씨의 미국 볼티모어 에쿼터블 트러스트 계좌로 19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것이다. 박씨의 해당 계좌 사본에는 1972년 3월 29일 BAGEFI로부터 19만 달러를 이체받은 내역이 기록돼 있었다.
1972년은 서울의 주택 매매가가 200만~300만 원 하던 시절이므로 19만 달러는 요즘으로 치면 100억 원도 넘는 고액이다. 그러나 이 돈마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1회 송금액만 19만 달러이므로 해당 계좌의 전체 예금액이나 거래액은 그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충분히 추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경호실장이 대통령도 모르게 독단적으로 해외 비밀계좌를 운영해 대미 로비자금으로 썼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박동선의 미 의회 증언은 당시 한미 정부 간 조율의 산물이었으므로 스위스은행 비밀계좌 건도 정권 차원에서 이미 인지·관리해오던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판단해보자면, 박정희 정권이 1970년대 스위스은행 비밀계좌로 거액의 비자금을 운영해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유신은 박정희 본인도 모르게 갑작스러운 종말을 맞았다. 그렇다면 이 스위스은행 계좌는 어떻게 되었을까? 1979년 10월 26일 밤까지 계좌가 살아 있었고 잔고가 남아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신 이후 비밀계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6년 3월 18일 12·12사건 공판에서 “박정희 시해사건 수사 중 청와대 사금고가 발견돼 열어보니 9억여 원이 들어 있었다. 이 중 6억 원은 유족 대표인 박근혜에게 전달했다. 2억 원은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 5000만 원은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에게 전달한 뒤 나머지 1억 원은 합동수사부 수사비로 썼다”고 진술했다. 박정희 사후 전두환·박근혜 등에 의해 금품에 관한 정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사람 중 누구도 스위스은행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 침묵이 고의적 은폐일 수 있다는 의구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체의 한 자락이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 박정희 정권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의 개설, 폐쇄, 거래내역의 전모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이 미스터리를 푸는 것도 현재의 문제와 연결되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