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밝혀지지 않은 연서(戀書)의 주인공
그 주인공 찾는 내용 그린 ‘불멸의 연인’
인생 역정 되짚으며 작품에 담긴 베토벤 고뇌 보여줘
좌절하며 쓴 ‘월광’, 혁명에 감명받은 ‘영웅’
불운한 개인사 내려놓고 세상과 화해하는 ‘합창’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 귀가 멀어 피아노에 귀를 대고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는 베토벤(게리 올드먼 분). 네이버영화
얼마 전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12월 6일부터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주장한 ‘체포자 명단’ 메모는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혐의의 핵심 증거이자 논란의 중심에 선 뜨거운 감자였다. 거듭되는 진술 번복으로 혼탁해진 이 메모 건은 급기야 대필 논란까지 불거지며 진실 공방에 불이 붙었다.
사실 편지나 메모는 작성자가 불분명하고 작성 시점이 모호해 조작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중요한 메모는 ‘필적감정(筆跡鑑定·handwriting analysis)’이라는 기법을 통해 진실을 규명한다. 필적감정은 단순한 글씨 비교가 아니라, 쓰는 이의 심리 상태, 필체 습관, 필기 속도, 필압(筆壓)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기법이다. 그만큼 공신력도 높다. 1983년 히틀러의 가짜 일기를 판별해 낸 기법이 바로 필적감정이다.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인 로마노프 왕가의 편지도 필적감정으로 진위를 판별해 냈다. 설사 시간이 흘러 당사자가 한 줌 흙으로 사라진다 해도 남은 필적은 진실 규명의 단초가 됐다.

버나드 로즈 감독의 영화 ‘불멸의 연인’(1995) 포스터. 네이버영화
영화로 재탄생한 베토벤의 메모
작곡가 루드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 남긴 편지도 필적감정의 대상이 됐다. ‘불멸의 연인에게’로 시작하는 메모지 10장으로 이뤄진 편지. 베토벤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악필이다. 그가 남긴 메모는 해석조차 힘들다. 난해한 악필인 만큼 그의 필체를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19세기 이후 여러 학자가 베토벤의 필체를 분석했고, 10장의 연서를 두고 베토벤이 직접 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편지에 숨겨진 비밀이 남아 있다.
편지에는 수신자가 적혀 있지 않다. 편지를 받아야 할 사람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베토벤은 이 메모들을 1812년 7월 6~7일 체코 북서부에 위치한 온천 도시 ‘테플리체(Teplice)’의 한 호텔에 체류하며 작성했다. 이 편지는 베토벤의 친구이자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가 갖고 있다가 쉰들러가 죽은 후 경매에 넘겨졌고, 1880년부터 베를린 주립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다.
버나드 로즈(65) 감독은 1994년 이 편지의 수신인을 찾는 영화 ‘불멸의 연인’을 세상에 내놓았다. 영화는 1827년 3월 26일 눈보라가 몰아치던 오후 3시, 병색이 완연한 작곡가 베토벤(게리 올드먼 분)을 비추며 시작한다. 죽음의 문 앞에서 운명의 사자가 문을 두드리는 듯한 ‘교향곡 5번(운명)’의 역동적이고 긍엄한 첫 선율엔 죽음을 앞둔 베토벤의 심경이 잘 드러난다.
그의 사후, 쉰들러(예룬 크라베 분)는 유품을 정리하며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편지에는 구구절절 애절한 구애 문구와 자신의 유산을 모두 그녀에게 남긴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나를 사랑해 주시오. 오늘도, 내일도, 그대, 그대 그대를 향한 눈물겨운 그리움, 내 생명, 내 모든 것이여, 안녕! 내 진심을 잊지 말아주오!” 편지에 빽빽이 담긴 사랑의 밀어는 괴팍한 성격의 베토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영화는 쉰들러가 편지 속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동시에 베토벤의 음악과 함께 그의 삶을 플래시백 형식으로 직조한다. 영화는 비단 베토벤의 불멸의 사랑만 그리지 않는다. 유럽 신분제의 붕괴, 전쟁, 혁명 등 불안한 시대 속 베토벤의 고뇌를 보여준다.
베토벤은 당시 유럽 최초의 프리랜서 작곡가였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등 베토벤의 이전 세대 작곡가들은 황실이나 귀족에게 주제를 받아 곡을 썼다. 반면 베토벤은 자신이 원하는 주제로 곡을 써서 발표했다. 자신의 의지로 만든 작품이니 베토벤은 곡에 자신의 인생관을 담았다.

요제프 카를 슈틸러가 그린 베토벤 초상화(오른쪽)와 그의 교향곡 9번 ‘합창’ 악보 육필 원고. 위키피디아
가문의 반대로 헤어진 연인 ‘줄리에타’
영화 속 쉰들러는 베토벤이 ‘월광 소나타(Piano Sonata No.3 in C sharp minor Op. 27 No. 2 ‘Moonlight’ )’를 헌정한 줄리에타 귀차르디를 가장 먼저 찾아간다. 그녀는 베토벤과 ‘썸을 타던’ 수많은 여제자 중 한 명으로 이내 베토벤과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둘은 빈 사교계가 들썩일 정도로 유명한 커플이었다. 하지만 백작가의 영애였던 줄리에타의 가문에서 둘 사이를 반대했다. 베토벤의 청각에 문제가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두 사람이 헤어지는 원인이 됐다. 줄리에타는 평생 독신이었던 베토벤이 유일하게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사랑한 사람이다. 실제 학계에서도 그녀를 편지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있다.
영화에서 줄리에타는 결혼을 반대한 아버지와 베토벤의 청력을 실험하는 내기를 한다. 당시 청력을 완전히 잃어가고 있던 베토벤은 음악적 활동을 전혀 못 하는 장래가 암울한 빈털터리였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베토벤은 마음 편하게 혼자 연주를 시작한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눈으로 건반을 보며 연주해야 한다. 베토벤은 이내 피아노 뚜껑에 귀를 댄다. 각각의 음이 발산하는 각기 다른 진동을 느끼며 월광 소나타를 연주한다.
운명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그의 눈물겨운 분투는 보는 이들의 눈망울을 젖게 만든다. 영화 밖 현실 속 줄리에타는 결국 신분이 맞는 남자와 결혼한다. 이후 유럽을 누비며 귀족 부인의 화려한 삶을 영위한다. 만약 그녀가 편지의 주인공이라면 미련이 남은 베토벤이 멀쩡하게 잘 사는 유부녀에게 집착한 셈이 된다. 그래서일까. 감독은 후보자에서 과감하게 그녀를 제외한다.
이어 쉰들러는 안토니 브렌타노(이사벨라 로셀리니 분) 부인을 찾는다. 그녀는 예술과 철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베토벤의 음악을 누구보다도 이해했던 여인이다. 베토벤은 음악에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혁명, 자유,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그는 음악이 정치적·사회적 격변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당시 오스트리아 빈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 아래 있었으며, 귀족과 예술가들이 활발한 교류를 하던 유럽 음악의 중심지였다. 오스트리아의 옆 나라 프랑스는 혁명으로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절대 왕정을 무너뜨렸다. 혁명의 횃불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베토벤은 혁명의 이상에 깊이 감명받았다. 프랑스혁명 전쟁을 승리로 이끈 보나파트르 나폴레옹의 이름을 딴 교향곡 3번 ‘영웅(Symphony No.3 in E flat Major, ‘Eroica’ op.55)’을 작곡해 그에게 헌정했을 정도.
한데 유럽을 자유주의 사상으로 해방시킨다던 나폴레옹 군대는 베토벤이 사는 빈에 침공해 무자비하게 살생을 저질렀다. 전쟁광 나폴레옹에게 환멸을 느낀 베토벤은 악보 앞장에 적혀 있던 나폴레옹의 이름 ‘보나파르트’를 펜으로 거칠게 지워버린다. 브렌타노 부인과 베토벤은 함께 빈에서 나폴레옹 군대의 만행을 목격한다.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오랜 시간 서로 존중하고 신뢰했지만 브렌타노 부인도 결국 불멸의 연인은 아니었다.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베토벤은 프랑스혁명의 영웅이던 그에게 교향곡 ‘영웅’을 헌정했다. 위키피디아
연대와 평화는 진정한 화해로 시작
베토벤의 어린 시절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테너 가수이자 음악 교사였던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자로 아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겼다. 아버지는 베토벤의 남다른 재능을 이용해 ‘제2의 모차르트’로 만들어 돈방석에 앉을 생각뿐이었다. 매일 베토벤을 가혹하게 연습시키며 가차 없이 체벌을 가했다. 17세 때 결핵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베토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사실상 소년가장이었던 베토벤은 평생 두 동생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간혹 책임감이 과해 동생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일도 했다. 반면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한 동생들은 형 베토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4살 터울의 첫째 동생 카스파 판 베토벤은 결혼 문제로 형과 큰 갈등을 빚고 의절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이후 폐결핵으로 몸져눕고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다. 베토벤의 가족에 대한 집착은 동생의 하나뿐인 혈육인 카를 판 베토벤에게 향했다. 끈질긴 법정다툼 끝에 그는 기어이 동생의 아내 요한나에게서 조카의 양육권을 반강제적으로 빼앗았다.
베토벤은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맞춤형 개인교습은 언감생심이었고 공부에만 매달릴 수 있는 집안 환경도 아니었다. 그게 한이 됐을까. 베토벤은 조카의 음악교육에 맹목적으로 매달린다. 베토벤의 교육방식은 강압적이던 자신의 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조카 카를은 자살을 시도했고, 직업군인으로 진로를 바꾸며 삼촌 베토벤과 거리를 둔다. 베토벤은 조카에게 모든 애정을 쏟았지만, 그의 비뚤어진 애정은 오히려 조카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감독은 상상력을 발동해 ‘불멸의 연인’을 카를의 엄마 요한나로 설정하고 카를을 베토벤의 친아들로 만들어버린다. 영화 스토리상 ‘운명적 여인’이라는 전개는 그럴 듯하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베토벤은 요한나를 혐오했다. 요한나의 도벽과 잦은 외도에 치를 떨었을 정도다.
교향곡 9번 ‘합창’(Symphony no.9 in D minor, op.125 ‘Choral’)의 웅장한 선율이 화려하게 울려 퍼지는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그의 삶과 사랑이 음악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환희의 송가’로 잘 알려진 이 곡은 연대와 평화를 강조한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사랑, 청각장애 등으로 그동안 베토벤이 감내해야 했던 분노. 베토벤은 이 곡으로 한스러운 인생과 화해한다. 절절한 사랑의 문구를 쓴 베토벤은 그 심경과 교향곡 9번을 연결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 베토벤의 메모는 그의 마지막 교향곡 합창으로 승화됐다.
메모의 필적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면 홍장원 차장의 메모는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현 탄핵 정국으로 반토막 난 국민 여론은 당장의 위로가 필요하다. 양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기보다는 화해가 필요한 시국이다. 영화 ‘불멸의 연인’에선 베토벤뿐만 아니라 베토벤에게 상처를 입은 사람들까지도 교향곡 9번의 선율을 들으며 세상의 모든 분노와 증오를 내려놓는다. 화합된 미래로 전진하기 위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같은 음악이 필요한 시점이다.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