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호

[시마당] 사바아사나

  • 여세실

    입력2025-04-1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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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간다 공중의 등을 
    ‌토닥여 재우듯이
    숨을 쉬라고 잠에 들라고
    기다린다

    의미가 지워지고 입이 지워지기를
    오롯이 손이 남기를 기다린다

    쌀이 밥이 되고, 밥이 죽이 될 때까지 
    ‌천천히 냄비 속을 젓는다
    아이는 대답할 수 없는 것만을 묻는다
    밥이 대신 대답하는 것

    걸쭉해질 때까지 밥을 끓인다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젓는다
    김이 난다

    내게 유일하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기다린다
    아이가 나를 실망시키기를
    방문을 잠그기를
    나의 말을 무시하기를
    너를 먹이려는 내 가슴을 발로 차기를

    기다린다

    너를 달래려는 내 뺨을 올려붙이고
    오롯이 네 몫의 슬픔을 향해 박차고 
    ‌나가기를

    기다린다고 되지 않는 것
    기다리지 말라는 음성을 기다린다

    아이가 스스로의 이름에 의심을 품기를
    이 완성에 균열을 내기를
    한 김 식혀 작은 입에 한 숟갈씩 밥을 떠넘긴다
    아이는 내 얼굴에 밥을 던지고 그릇을 깨뜨린다

    아늑하고 뭉근한 화
    따뜻하고 조마조마한 화

    악착같이 오늘을 먹이는 손과
    마디마디 울음을 훔쳐내는 손이 모여
    여기를 호령한다

    내가 가장 손쉽게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나를 아끼는 이라는 것을 저버린 채

    거울 속의 모든 기다림이 잊혀지고
    마침내 너의 입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무엇도 믿지 않은 채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체

    한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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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세실
    ‌● 1997년 경기 안양 출생
    ● 2021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 등단
    ● 시집 ‘휴일에 하는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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