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러피언투어에서 우승한 안병훈.
갑작스러운 귀국 결심은 180cm가 훌쩍 넘는 덩치 큰 미국 선수와의 동반 라운드 때문이었다. 최상호의 볼이 발목까지 차오르는 깊은 러프 지역에 떨어졌다. 170cm의 단신인 최상호는 풀이 너무 자라 샌드웨지로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국 선수는 같은 러프 지역에서 5번 아이언으로 샷을 했다. 볼은 거침없이 빠져나와 그린 위로 올라갔다. 최상호는 “그 광경을 본 순간 ‘아! 나는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파워의 차이가 극복할 수 없는 벽으로 다가왔다”고 털어놨다.
스윙 크기부터 달라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1996년과 1998년 아시안투어 상금왕에 오른 강욱순은 2004년 PGA 2부 투어인 네이션와이드투어로 옮겼다. PGA투어 진출을 위한 ‘일보 후퇴’였다. 그런데 미국의 소도시를 돌며 열리는 네이션와이드투어는 일정을 소화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입이 짧은 강욱순에게 얼마 안 가 체력의 한계가 찾아왔다. 대회가 열리는 도시엔 대개 한식당이 없었다. 마땅히 먹을 만한 음식이 없었다고 한다. 모텔급 숙소는 방음이 안돼 숙면을 취하기 어려웠다. 이동 거리도 엄청났다. 결국 삼성그룹의 든든한 후원에도 강욱순은 아메리칸 드림을 접고 소리 없이 국내 무대로 유턴했다.
이후 강욱순은 1999년부터 3년 연속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4년 연속 평균타수 1위에 올랐다. 강욱순은 미국 생활에 대해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건강이 나빠지는 것 같았다. 골프에 대한 흥미마저 떨어졌다. 후원사인 삼성전자에서 잡아주지 않았다면 아마 그때 골프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호와 강욱순의 실패는 왜 한국남자선수들에게 PGA투어의 벽이 높은지 잘 보여준다. 평균적으로 한국 남성은 서양 남성에 비해 신체적으로 열세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서양인에 비해 어깨가 좁고 팔 다리가 짧다. 골프의 스윙 크기와 직접 관련되는 부분이다. 밸런스를 잡는 데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골프 스윙에서 파워의 원천인 등 근육도 서양인에 비해 작고 약하다.
필자는 어니 엘스나 프레드 커플스 같은 세계적 선수들과 악수를 하며 두 가지에 놀랐다. 엄청나게 큰 손, 그리고 악력이었다. 골프 스윙에서 그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면 그들이 얼마나 유리한 신체 조건을 갖췄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유명 교습가들은 골프 스윙의 핵심을 ‘그립과 템포’로 정의한다. 한국 남성은 서양 남성에 비해 ‘타고난 밑천’이 달린다고 봐야 한다.
반론도 있다. 국가대표를 거쳐 일본 프로골프투어에서 선수로 뛴 김주형은 “체격으로 공을 치는 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김주형은 한국 남자프로 중 최장타를 친 선수다. 하지만 그는 187cm의 키에 골프장갑 사이즈가 27, 두 팔을 벌린 길이가 자신의 키보다 12~14cm가 긴 서구적 신체를 가졌다.
골프에선 공을 멀리 보내는 체격 못지않게 공을 홀 주변에 붙이는 쇼트게임의 잔 기술이 중요하다. 신체 조건이 뛰어난 흑인이 골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후자 때문이다. 흑인들은 무산소운동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다. 골프는 유산소운동인 것처럼 보여도 스윙하는 순간은 무산소운동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흑인 골퍼는 드라이버는 잘 쳐놓고도 이후 쇼트게임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흑인 골퍼 중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있지만 그는 군계일학의 슈퍼스타일 뿐 골프 역사를 지배해온 이들은 대부분 백인이다. 단적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게리 플레이어, 어니 엘스, 레티프 구슨, 루이 우스투이젠, 찰 슈워첼 같은 메이저 챔피언을 끊임없이 배출했는데 이들은 모두 백인이다. 뛰어난 흑인 캐디는 많지만, 뛰어난 흑인 선수는 아직 드문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