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호

복선과 도발의 저격수 - 이불

몸 오브제로 역설의 하이브리드 똥침 날리다

  • 정준모 미술비평가 curatorjj@naver.com

    입력2008-02-11 18: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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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취향이든, 재테크든 미술품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지식의 뒷받침이 없는 미술품 구입은 ‘묻지마 투자’일 뿐이다. 독자의 미술지식 함양을 위해 세계적 미술전문 사이트 아트택틱(ArtTactic.com)이 전세계 작가들을 대상으로 매긴 평가순위에서 상위에 오른 젊은 한국 작가들을 매달 한 명씩 소개한다. 이들은 그야말로 세계의 미술전문가들이 검증한 미래의 블루칩 작가들이다.
    복선과 도발의 저격수 - 이불

    ▼ 1964년 강원도 영월 출생<br>▼ 홍익대 미대 조소학과 졸업<br>▼ 베른미술관, 르 콩소시움, 뉴 뮤지움, 글래스고 현대미술센터, 오하라 미술관, 캐나다 파워플랜트 갤러리, 시드니 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회<br>▼ 후쿠오카 아시아 트리엔날레, 아시아 태평양 트리엔날레, 이스탄불 비엔날레, 사라예보 2000 등에 참여

    세계 미술계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이불(44)은 ‘백남준 이후’를 기대하게 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그는 1980년대 중반 그룹전 ‘뮤지엄’과 각종 기획전에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아니 도저히 작품이라고 볼 수 없는 기괴한 작품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88년 열린 개인전에서도 도발적인 작품들을 내놓아 ‘튀는’ 작가로 회자됐다.

    언론은 줄곧 그의 도발적인 작품과 퍼포먼스, 행동에 주목했지만 그는 이에 신경 쓰지 않고 내공을 다졌다. 그 결과 이제 아무도 그의 이름 앞에 ‘세계적인’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데 토를 달지 않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미술을 단지 바라보는 것, 아름다운 것으로만 생각해온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받아들이기가 어색하다. 아니,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이 알고 있는, 그간 보아온 미술과는 거리가 너무도 멀기 때문이다.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시세를 거스를 수도, ‘왜, 무엇 때문에 그런 거창한 말을 붙이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이불과 이불의 작품은 불편한 존재다. 그들은 그의 작품과 이렇듯 불편하지만 불편하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어색한 공존을 하고 있다.

    이불의 작품이 낯설고 때로는 괴이하게 보이는 것은 미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미술이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고, 그 아름다움이란 마치 꽃과 같아서 늘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실제와 얼마나 똑같이 그렸느냐가 그림의 유일한 평가기준이었다. 사과를 그린 그림을 보고 진짜 사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야만 잘 그렸다고 하는 ‘눈속임 기법(Tromp e d’Oeil)’ 회화가 우리의 그림 평가 척도였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잘 그렸다고 하는 그림, 명작이라고 하는 것들은 거의 모두 이렇게 닮은, 또는 진짜와 똑같이 그려진 작품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면서 사람들이 눈에 의해 속아왔음을 인식하면서 미술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런데 그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가상현실 세계에 머물고 있어 이불의 작품에 대해 “당최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당찬, 그리고 야심만만한

    1997년경 이불이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프로젝트 룸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MoMA’는 전세계 미술인에게 꿈의 무대다. 하지만 국내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마침 뉴욕 출장을 앞두고 있었다. 출장 목적은 다른 데에 있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그의 전시를 둘러볼 참이었다. 아침 일찍 미술관이 문을 열자마자 프로젝트 룸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갤러리는 텅 비어 있고 입구에 조그만 안내문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미술관 사정상 전시를 진행할 수 없어 작품을 철수했다’는 내용이었다. 아, 그 허무함이란. 그때는 황당하고 아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또한 이불의 의도된 복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선과 도발의 저격수 - 이불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프랑스 파리 카르티에 재단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On Every New Shadow’ 전시장 전경.

    당시 그의 작품에 담긴 의미 중 하나가 ‘도발’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미술관이, 동양에서 온 젊은 여성작가가 은근슬쩍 날린 펀치 한 방에 공간을 비워야 했고, 그것을 결정하기까지 미술관 관계자들이 얼마나 고민했을까. 최고의 미술관이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우왕좌왕했을 것을 생각하면 이 또한 이불의 의도된 기획이 아닐까 싶었다. 그는 ‘MoMA’라는 권위에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미학을 실천했을 뿐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미술품 공동묘지’의 썩어들어가는 현실을 작품을 통해 역설적으로 풍자, 현대미술에서 미술관의 의미를 되물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때 출품된 작품이 ‘화엄(華嚴)’이다. 1991년 ‘성형의 봄’이라는 전시에 출품된 작품의 ‘시즌2’쯤 되는 작품이다. ‘성형의 봄’ 전시를 위해 화랑을 주선했던 필자는 이 작품으로 인해 곤욕을 치러야 했다. “썩는 냄새를 도저히 참을 수 없으니 작품을 당장 치우라”는 것이었다. 철거당하진 않았지만 전시장은 이후 방향제와 향수와 생선 썩는 냄새가 뒤섞인 독특한 현장이 되고 말았다.

    이 작품은 생선에 스팽글이라고 하는 반짝이는 장식물을 핀으로 꽂고 백합이나 비녀, 가발 등으로 생선 몸통을 장식한 후 비닐 팩에 넣어 벽에 걸거나 매다는 형식의 설치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이 부패하기 시작했다. 결국 비닐 속에는 생선 썩은 물이 고이고, 생선 썩는 냄새가 퍼져나가면서 관객이 발을 돌리는 사태로 번졌다.

    한겨울 자연 속에 있었으면 이불의 작품은 멀쩡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술관은 미술품의 안전한 보존 관리를 위해 항온항습 상태를 유지한다. 불후의 명작이라고 하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같은 작품의 보존을 위해 이불의 ‘화엄’은 비닐 속에서 썩은 물로 남고 말았고 결국 이런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이불 작품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불은 이 작품을 통해 관용과 화해, 공존과 평화라는 낱말들이 얼마나 허망한 구호이며 위선에 지나지 않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미술품의 권위와 우상화에 ‘똥침’을 날린 것이다. 게다가 아름다움과 메스꺼움, 유혹과 거부감이 공존하는 하이브리드한 오브제로서의 몸을 강조했다.

    하지만 발언 수위가 좀 높다고 해서 그가 특별한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었다. 보편적인 것들의 위선과 위장을 들춰내는 일이야말로 당시 이불이 지닌 가장 큰 목표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MoMA에서 철거된 작품 ‘화엄’으로 그는 이듬해 구겐하임 미술관과 휴고 보스사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휴고 보스상(賞)을 수상한다.

    일상의 부조리에 침 뱉기

    이불의 작품은 도발적이다. 그는 1980년대 초에 대학에 몸담은 세대다. 그 답답하고 꽉 짜인 가마솥 같은 세상에서 청춘을 보낸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게다가 절제하면서 초연하게 자신을 관조하는 당시 미술 동네의 교조적인 분위기에 동조하거나, 민주화를 이야기하면서 민중의 삶을 그려내겠다는 ‘현실을 모르는 현실주의자’들의 그림, 즉 민중미술 대열에 서는 양자택일 외에는 할 게 없던 시절이었다.

    이불은 전공인 조소나 학교생활을 등한시한 채 연극에 몰입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현실을 외면한 셈이다. 그런 그에게 졸업이란 자유와 같았다. 이즈음부터 그는 간섭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저지르기 시작했다. 파격적이고 선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때로는 민중미술계열 작가로 오인되기도 했지만, 그의 행위는 어느 작가건 갖게 마련인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 같은 것이었다.

    그는 몸에 관심을 가졌다. 사실 몸은 현대미술의 화두이자 소재다. 몸이란 모든 것의 복합체이자, 정신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의 현현(顯現)이기도 하다. 당시 그에게 신체는 도구이자 수단이었으며 ‘말’ 자체이자 자신을 말하는 ‘입’이었다.

    복선과 도발의 저격수 - 이불

    설치조각으로 세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불의 작품 세계는 ‘도박’ ‘몸’ ‘이분법적 동시성’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는 벌거벗은 채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문지로 뒤를 닦고, 임신한 모습으로 한복을 입고 방독면을 쓴 채 부채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통해 그를 옥죄는 억압의 기제들로부터 해방되고자 했다. 1990년엔 인간과 괴물의 형태가 결합된 괴이한 모습으로 김포공항에서부터 일본 나리타 공항, 그리고 도쿄 시내를 장장 12일간 활보하는 퍼포먼스 ‘수난유감-당신은 내가 산보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알아?’를 벌였다. 괴물과 조우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과 태도를 통해 몸이 수용되는 과정을 살펴보기도 했다.

    1996년부터 약 3년간 이어진 대형 풍선 작품들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컴프레서의 바람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거대한 풍선은 그 자체가 남근(男根)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는 대형 풍선작품들을 통해 남근 중심인 현대사회 가치에 대한 전복을 꾀한다.

    이것은 단순히 남성 중심 세계에 대한 반기라기보다는 남성으로 상징되는 보수성과 왜곡된 전통성에 대한 반기였다. 이불은 바람이 빠지면 형체를 잃는, 다분히 바니타스(Vanitas·무상함, 허무, 덧없음을 뜻하는 라틴어)적인 의미를 지닌 거대한 풍선을 전혀 기념비적인 구실을 할 수 없는 기념비(모뉴먼트)처럼 세웠다.

    그런데 이 풍선은 근대화와 서구화 과정에서 관광기념품으로 개발된 부채춤 인형을 원형으로 마치 종이인형 옷 갈아입듯이 왕비, 여신, 게이샤, 무당, 여자 레슬러 등으로 분하면서 등장한다. ‘나는 당신이 필요해’ ‘히드라’(1998) 시리즈는 일시적인 가공의 형상, 물신을 만들어 세우지만 바람이 빠지고 나면 껍질밖에 남지 않는 덧없는 육신을 보여주면서, 이런 덧없는 육체로 인해 파생되는 욕망의 바닥을 들여다보게 하는 이분법적 동시성을 보여준다.

    몸이란 전통적으로 도구이자 수단에 불과했다. 몸은 정신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종속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몸이 없다면 정신은 어디에 있을까, 지능은 과연 존재할까, 이런 생각들이 늘어지면서 몸 자체가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데 이르렀다.

    이불은 이처럼 도발적인 행위와 모뉴먼트를 통해 길들고 일상화한 부조리, 부당한 시선과 맞서는 한편 몸을 강조함으로써 정신에 종속된 신체가 아닌, 스스로 욕망하고 움직이는 주체로서의 신체에 주목했다. 그리고 관습과 사회적 구조, 정치체제 안에서 길든 몸의 회복, 몸의 해방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는 정신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사실 그간 과학이나 인문학 모두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고 구분해 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몸과 정신은 하나의 개체에 속한 두 개의 가치다. 이불은 그의 히드라를 닮은 생물체를 통해 괴물이 아닌, 정신과 육체가 공존하는 우리 몸의 실상을 보다 확연하게 보여줌으로써 굳이 구분하고 경계선을 그으려는 관습적인 시각에 변화를 요구했다.

    그리하여 경계를 사라지게 하고 남성과 여성의 성징(性徵)을 무시하는 히드라 형태의 자웅동체 생물을 등장시킨 것이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미가 있으며, 습관적인 구분으로 상처를 주기보다는 남다른 점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관용적 태도를 보인다.

    몸에 대한 그의 관심과 몸을 도구화하는 작품의 특성에 근거해 여성주의자들은 그를 페미니스트 또는 남근 혐오주의자, 여성해방론자로 분류한다. 하지만 필자의 의견은 다르다. 그의 작품은 관습과 전통 또는 습관화한 일상의 부조리 모두에 침을 뱉는다. 여성주의라는 틀에 가두기에는 그의 작품이 펼쳐내는 스펙트럼이 워낙 넓고 크다.

    실체인 동시에 환상

    복선과 도발의 저격수 - 이불

    이불의 작품 ‘HydraⅡ(Monument)’.

    홍익대 조소학과 시절, 대학을 지배하던 유교적 모더니즘(?)에 감자를 먹이고 그들의 위선적 권위를 피해 소위 ‘홍대 앞 문화’에 몸을 맡기기도 한 그는 대중문화의 가볍고 천박한 진실, 욕망에 충실한 감각적 리듬에 관심을 가졌다. 대중문화를 통해 그는 시대를 읽는 눈을 갖게 됐으며 대중의 코드를 파악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한국 사회를 휩쓸던 일본 문화에 관심을 보이면서 가볍고 편안한 대중문화적 속성과 현대미술의 무거운 담론을 결합시키고자 했다. 현대미술의 권위로부터 탈출해 직접 대중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형식은 가볍지만 내용은 녹록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모뉴먼트와 히드라 같은 정체불명, 성징불상의 작품들이다.

    이후 그의 작품은 외형적으로 다듬어진 간결하고 완벽한 표면을 지닌 오브제로 화한다. 1997년경부터 거친 들판을 내달리던 히드라는 사라지고 ‘사이보그’가 그의 상징이 된다. 여기서 사이보그란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이자 그들의 공생 공존을 의미한다.

    생명을 가진 유기체와 과학이 만나 이루어진, 초인적인 힘을 과시하는 사이보그는 인간이 꿈꾸던 강한 인간의 모습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언제나 약자, 소수자인 여성은 이불을 만나 아름다운, 그러나 가공할 파워를 가진 사이보그로 화한다. 물론 성징이 불분명한 사이보그는 때때로 힘없는 남성에게도 무한한 힘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로봇은 강인하고 힘도 세지만 사고를 못한다. 반면 강한 몸과 정신이 결합된 사이보그는 고대 사람들이 상상하던 이무기나 용, 불가사리처럼 초월적 힘을 지닌 상징물의 현대적 대체재다.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은 의지할 어떤 초월적 존재를 통해 위안을 얻고자 하는데, 그런 속성은 과학이 발전하고 경제 규모가 커졌음에도 여전하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욕망이 욕망을 낳고 충만함은 또 다른 부족함을 불러일으키는 욕망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불의 사이보그는 인간의 욕망을 대체하는 초월적 자아라기보다는 인간의 형태에 기계적인 강인함을 보완했음에도 여전히 완벽한 사이보그,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는 절대적인 사이보그를 갈망하는 모습을 지닌다. 즉, 보다 강한 사이보그를 희망한다는 점에서 인간 그 자체이자 불완전한 몸으로서의 신체다. 그래서 이상적인 사이보그로 완성되거나 아니면 차라리 연약했던 과거의 육신으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을 불러일으킨다.

    실리콘으로 제작된 그의 초기 ‘사이보그’는 기존의 히드라 같은 육신을 벗고 미끈하고 멋지게 기계화한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신체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여전히 인간은 불안정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아무리 과학적인 보강을 한다 해도 언제나 불안정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거울이 되는 셈이다. ‘몬스터’ 시리즈 또한 몸 없는 기관으로서 유기체의 속성을 통해 신체의 유약함과 한시적인 존재라는 의미를 반영한다.

    이런 작품들은 그의 장인적인 태도와 작품에 대한 열정으로 더욱 완벽하게 나타난다. 작업에 대한 그의 결벽증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는 작품의 설계도면이라 할 드로잉 하나하나에도 완벽에 완벽을 기한다. 그래서 드로잉이 하나의 완벽한 작품이 된다. 그는 드로잉을 통해 기괴한 것, 불편한 것들을 조합시켜 새로운 사이보그와 몬스터를 만들면서 에로티시즘과 테크놀로지의 환상적인 힘, 그리고 관객을 일체화함으로써 환상을 심어주는 동시에 그 환상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지하는 것이다.

    껍질로 남은 몸과 그 후

    이불은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작가로 참가해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이때 작품은 이상적인 사이보그의 대체재로 노래방을 통해 몸과 정신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것이었다. 일인용 노래방 캡슐은 낯선 곳이기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한편으론 두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동시에 혼자라는 점에서 누구의 눈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밀폐되고 은닉된 공간이자 안도감을 주는 공간이다. 하나의 공간에서 인간은 상반되는 여러 가지 체험과 감정의 혼돈을 겪게 된다.

    무중력 캡슐 속에서 반복되는 유행가 가사처럼 평범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과 그 일탈이 주는 두려움의 경계, 즉 경계선상에서 인간의 속성은 흔들리는 화면처럼 불안정하다. 인간은 ‘사이보그’가 되어 인생의 프로가 될 수도 있지만 삶이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적인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이보그는 실체인 동시에 환상이다.

    도발적인 작가로 등장한 이불에게 예술이란 고통이자 희열이고 아름다운 동시에 그로테스크한 것이다. 늘 서로 밀쳐내기만 할 것 같으면서도 한몸인 자석처럼 이불의 작품은 불편한 것들이 자웅동체를 이루면서 출발한다. 그의 작품은 보다 확장되어 도회의 기계적인 이미지가 인체에 녹아들어 사이보그로 나타난다. 그리고 1월27일까지 카르티에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거울이 등장해 더욱 더 확장된 공간 속에 존재하는 신체들을 보여준다.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의 반복과, 반복되고 서로 중첩되면서 공간으로 한없이 확대되어가는 기계 부품, 대형 설치작업의 스케일은 자신의 작품을 보고 있는 관객을 숨어서 지켜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는 이불을 보는 듯하다.

    복선과 도발의 저격수 - 이불
    정준모

    1957년 서울 출생

    중앙대 서양화과 졸업, 홍익대 석사 (미술학)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 국립 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덕수궁 미술관장

    現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중앙대·고려대 강사

    논문 : ‘미술품은 땅인가’ ‘제3의 미학, 새로운 출구’ ‘한국의 모던이즘, 모더니즘’ 등


    그의 화려한 이력에 한층 무게를 실어줄 카르티에 미술관 전시는 세계를 향한 또 다른 도전이자 자신에 대한 실험이다. 이번 작품들은 그가 지난해 PKM갤러리에서 보여준 콘셉트와 드로잉의 실천의 장이지만 큰 변화는 ‘신체의 실종’이다. 사이보그도 사라지고 몬스터도 없다. 아름답고 반짝이는 인공보석과 시퀀스로 장식된 신체들은 외피만 남았을 뿐 신체가 없다.

    앞으로 이를 대신해서 그가 또 어떤 화두로 우리 삶의 공허를 메워줄지 궁금하다. 수공예적 섬세함, 반짝이는 인공의 보석들이 대신하는 인체가 자아내는 아름다운 빛과 공간의 조화 속에서 욕망의 신체를 넘어 허무의 신체로 나아간 이불의 다음 세계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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