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호

‘명품 세미나’, SERI CEO 조찬회 현장취재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마법에 걸린다”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입력2008-05-08 13:5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새벽 신라호텔 앞 대형 승용차 몰려드는 진풍경
    • 첫 모임 65명에서 1000명 규모로 급성장
    • 엄격한 ‘물관리’, 당장 써먹을 실무강연으로 인기 상한가
    • 경제 현안 공부+인맥 쌓기 일석이조
    • 매월 말 모임, 인터넷으로 선착순 접수
    • 비공식 세계 최대 조찬회…한국 경영인 열정 돋보여
    ‘명품 세미나’, SERI CEO 조찬회 현장취재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앞. 날이 채 밝기도 전인 이른 아침에 에쿠스, 벤츠 같은 검은색 대형 세단들이 줄지어 몰려든다. 어림잡아 700대는 된다. 오전 7시경엔 벌써 주차장이 만차 상태가 됐다. 차에서 내린 말쑥한 양복 차림의 중년 신사는 운전기사에게 “9시10분경에 오라”고 말한 뒤 호텔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호텔 2층으로 올라가 다이너스티홀 앞에서 안내원에게서 자신의 이름이 쓰인 태그를 받아 상의 윗주머니에 넣고 홀 안으로 들어선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매월 말 진행하는 ‘SERI CEO 조찬회’가 열리는 장소다. 오전 7시10분인데 홀은 벌써 거의 다 찼다. 둥근 테이블마다 의자 10개가 놓였다. 그런 테이블이 90개나 마련됐다. 손님이 모두 앉으면 900명이 되는 셈. 조찬회 참석자는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끼리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건넨다. 자주 참석하는 SERI CEO 회원끼리는 구면이어서 명함을 교환하지 않고도 얼굴을 알아보고 악수를 한다.

    SERI CEO 조찬회가 열리는 아침 풍경이다. 조찬회야 다른 곳에서도 숱하게 열린다. 웬만한 호텔에는 크고 작은 조찬 간담회가 열리지 않는 날이 드물다. 그런 가운데서도 SERI CEO 조찬회는 단연 돋보이는 ‘명품 조찬회’로 자리 잡았다. 아무나 갖기 어려운 명품처럼 SERI CEO 조찬회에도 아무나 불쑥 들어갈 수 없다. SERI CEO 정회원들만 사전에 예약하고 참가할 수 있다. 참가 신청은 인터넷으로 하고 선착순으로 인원을 제한한다.

    SERI CEO 클럽은 원래 삼성경제연구소가 삼성그룹 임원 1000여 명에게 경제·경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것. 2002년 9월부터 최우석 당시 삼성경제연구소장의 용단으로 외부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연회비는 개인 120만원, 법인 100만원. 문호를 개방할 때는 외부 회원 인원 목표를 5000명으로 잡았으나 반응이 좋아 회원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현재는 1만명에 육박한다. 개인 회원보다는 법인 회원이 대부분이다.

    ‘족집게’ 강연으로 인기



    회원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각종 정보를 제공받는다. 경제·경영 동향은 물론 유머, 독서, 영화, 인물정보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다. 회원들이 모여 함께 등산을 가는 ‘시애라 클럽’이라는 오프라인 동아리도 만들었다. 시애라 클럽 멤버들은 4월엔 충남 청양군에 있는 칠갑산에 39회째 등산을 간다. 사이트를 열면 ‘SERI CEO는 긴 인생, 아름답게… 함께 껴안을 CEO 라운지’라는 감성적인 문구가 나타난다.

    SERI CEO 회원들이 누리는 혜택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조찬 강연회. 매월 1회씩 열리는데, 경제·경영 현안을 ‘족집게’처럼 집어내 설명해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다른 연구소 주최의 조찬회는 너무 무거운 주제를 다루거나 기업인들에게는 별 쓸모없는 이론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데 비해 SERI CEO 조찬회는 실용주의에 초점을 맞췄다. 듣고 나면 실무적으로 당장 참고할 게 많다. 또 시기에 맞는 주제를 잘 고른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현안을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순발력은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최우석 당시 소장이 연구원들을 닦달하면서 길러졌다. 시시각각 벌어지는 ‘뉴스 싸움’을 수십년간 벌여온 최 소장의 눈에는 ‘느려터진’ 연구원들의 태도가 탐탁지 않았다.

    모임의 날짜는 미리 고지된다. 강연 주제는 1주일 전쯤 인터넷 공지사항으로 전달된다. 관심을 끄는 주제가 보이면 인터넷 또는 전화로 참가 신청을 한다. 회원 이외의 다른 사람이 대리 참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CEO 또는 임원급 인사들이 둘러앉은 테이블에 실무자급 직원이 대신 출석하면 ‘물을 흐리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강연 청취뿐 아니라 인맥 넓히기도 주요한 참석 목적으로 삼고 있다.

    ‘명품 세미나’, SERI CEO 조찬회 현장취재

    강신장 삼성경제연구소 상무. 이화경 온미디어 대표, 박재갑 서울대 의대 교수, 심갑보 삼익THK 부회장 (왼쪽부터 차례로)

    ‘명품 세미나’, SERI CEO 조찬회 현장취재

    오세훈 서울시장(좌) 조영주 KTF 사장(우)

    삼성경제연구소는 조찬 세미나 슬로건으로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마법에 걸린다’를 내세운다. 슬로건부터 감성적 언어로 잘 포장했다. 슬로건 부제는 ‘분야별 최고 전문가들의 발표도 듣고! 나와 어울리는 마음도둑들도 사귀고! 대한민국 최고의 ‘CEO 네트워크’ 월례 세미나에서 만나요!’라고 붙였다. 이를 보면 경영자들은 귀가 솔깃하지 않겠는가.

    제72회 SERI CEO 조찬회가 열린 3월28일. 이날도 새벽부터 신라호텔 앞이 대형 승용차들로 붐볐다. 참가자들의 편의를 위해 주차권 발매기를 작동하지 않고 ‘프리패스’ 시킨다. 이날 강연 제목은 ‘긴급 점검! 4대 경제 불안 이슈와 산업별 영향’으로 경영자들의 입맛을 당기는 주제다. 4대 경제 불안 이슈는 금융, 경기, 물가, 환율. 각 이슈가 초미의 관심사여서 CEO들은 이른 새벽에 이불을 박차고 달려온 것이다. 연단 옆에는 ‘SERI CEO 조찬세미나-CEO를 위한 상상력 발전소’라고 글을 쓴 큼직한 플래카드가 걸렸다.

    “1000명 넘으면 어떡하나”

    이날 행사를 준비한 삼성경제연구소와 신라호텔 관계자들은 여느 때와는 달리 긴장했다. 신청자가 무려 1070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신청자 인원 기준으로 1000명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7년 5월29일 ‘구글의 창조 경영 이야기’란 연제로 SERI CEO 조찬회 연사로 참여한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이른 아침에 적잖은 경영인이 모인 것은 한국 경영인들의 독특한 문화인 듯하다”면서 “경영자가 이처럼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원동력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은 3개로 이뤄져 있다. 손님 규모에 따라서 칸막이를 걷고 2개 또는 3개를 한꺼번에 쓸 수 있다. 3개를 동시에 쓰면 최대 900명까지 수용한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인원이 이 정도면 대단한 규모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등 대형 국제회의 때에는 이렇게 칸막이를 모두 걷고 최대 면적을 활용한다. 참가 신청자가 모두 참석한다면 자리가 모자란다. 물론 매월 출석률은 80% 안팎이므로 이날도 800명가량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다. 최종 집계된 참가 인원은 791명. 다행히 준비에는 차질이 없었다.

    아침식사 시간은 오전 7시20분부터 40분간. 식사를 하면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회원들과 사업 동향, 건강 문제, 골프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기자가 앉은 테이블에는 허노중 SK경영경제연구소 상근고문, 김윤 모토로라코리아 부회장, 황동준 SMI 안보경영연구원장, 계명재 ㈜한광 대표, 삼성경제연구소의 강신장 상무와 권순우 거시경제실장 등이 앉았다. 경제관료 출신인 허노중 고문은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 등 경제부처 요직과 한국증권전산 사장을 거친 인물이다. 기자가 주니어 기자 시절부터 가끔 접촉하는 취재원인데 오랜만에 조우했다.

    식사는 컨티넨탈 조찬이 제공된다. 메뉴는 크루아상, 베이컨, 소시지, 달걀 프라이 등이다. 음료는 주스와 커피. 상당수 회원들은 몸무게 걱정 때문인지 쟁반에 올라온 음식을 조금씩 남긴다. 식성이 좋은 어느 회원은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크루아상이 입맛에 맞는지 빵 바구니에서 3개나 꺼내 먹는다.

    테이블 위에는 강의 교재, 참석자 명단이 인쇄된 A4 용지, ‘수중혜(手中慧)’란 이름의 쪽지 등이 놓였다. 일부 회원은 자리 옆 회원과의 대화 대신에 교재를 들춰본다. 교재는 80여 쪽에 달하는 도톰한 A4 용지 책자다. 화려한 컬러 출력물이 눈길을 끈다. 물가변동 추이, 환율 추이 등 각종 경제 지표 그래픽이 많이 들어가는데, 컬러로 제작해 시각효과가 크다. 여느 간담회에서 제공되는 흑백 교재와는 차원이 다르다. 컬러 출력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 다른 데에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교재 표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한국후지제록스가 협찬 제작했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SERI CEO 조찬회 내역
    횟수 날짜 제목 강사 참석 인원(명)
    1 2002.4.23 Digital is Feeling 윤순봉 65
    9 12.27 한·미·일 히트상품 분석 신현암 70
    132003.4.25 상상력과 창조경영 강신장 144
    156.27 Winners & Losers 스티브 포브스 239
    312004.10.22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 제언 윤순봉 263
    362005.3.29 미리 알아보는 소비 트렌드와 히트상품 키워드 류한호 320
    512006.6.27 글로벌화 시대! 아시아회랑을 공략하라 정구현 505
    5611.24 21세기 메가트렌드를 잡아라 존 나이스비트 550
    662007.9.21 서브프라임 사태 종합분석 및 2008년 경제산업전망김경원, 전영재803
    722008.3.28 긴급점검! 4대 경제불안 이슈와 산업별 영향 권순우, 김재윤791


    手中慧, ‘내 손안의 지식 은장도’

    참석자 명단은 가나다 순으로 정리됐는데 일련번호로는 1000명을 넘었다. 가재산 조인스HR 대표이사, 강문석 LG텔레콤 부사장, 강병직 호텔신라 부사장, 강석현 이엑스이씨엔티 대표이사 등의 순이다. 불참률이 평균 20%라니 명단과 실제 참석자는 다를 수 있다. 기자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어느 참석자가 “CEO 1000명이 참석했으므로 각자 거느린 직원을 1만명으로 잡으면 오늘 이 자리엔 직간접적으로 1000만명이 동참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아마 조찬 간담회 규모로는 비공식 세계 최대 규모일 것”이라고 화답했다.

    넓은 홀 곳곳의 테이블을 유심히 살펴보니 명사 여럿이 눈에 띈다. 오세훈 서울시장, 박재갑 서울대 의대 교수 등 비(非) 경제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원로 경영인으로는 윤병철 한국FP협회 회장, 김항덕 중부도시가스 회장이 자리에 앉았다. 경제관료 출신인 강정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원장, 김병일 김&장법률사무소 고문, 정재호 LG경제연구원 부사장 등은 민간 경제인으로 변신해 옆 자리 회원들과 열심히 대화를 나눈다. 왕성한 경영활동을 펼치는 김종훈 한미파슨스 사장, 김준희 웅진씽크빅 대표, 박기석 시공테크 회장, 조영주 KTF 사장 등도 부지런한 경영인임을 확인시켰다.

    여성 경영인으로는 문애란 웰커뮤니케이션 대표, 이경순 누브티스 대표, 이종선 이미지디자인컨설팅 대표, 이화경 온미디어 대표 등이 참석했다. 한국에서 조찬간담회 참석 횟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조찬 간담회의 산 증인’ 심갑보 삼익THK 부회장도 어김없이 동참했고 최근 독창회를 가진 아마추어 성악가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도 경제 동향을 파악하고자 신라호텔을 찾았다. 웬만한 농구 선수 못지않은 장신인 최동수 신한은행 고문은 건장한 신체 덕분에 어디에 앉아 있어도 눈에 띈다.

    2월 신입 회원은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 남궁훈 생명보험협회 회장, 박영일 이화여대 교수(전 과학기술부 차관), 조웅기 미래에셋증권 대표 등 164명이다. 신입 회원 가운데 고명진 수원중앙교회 목사, 김기원 기원오페라단 단장, 백윤재 법무법인 한얼 변호사, 유정훈 요한동경교회 목사, 윤상룡 윌치과 원장, 전창범 양구군수, 최문기 스마일디자인치과 원장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도 다수 포함됐다.

    식사 도중 강신장 상무가 연단 쪽으로 걸어나갔다. 조찬 행사를 진행하는 최고 책임자여서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 마이크를 잡은 강 상무는 인사말에 이어 “자리에 놓인 수중혜를 펼쳐 보시면 봄을 알리는 시(詩) 두 편이 실려 있다”고 소개했다. ‘수중혜’는 각종 정보를 빼곡히 담은 가로 40㎝, 세로 12㎝ 크기의 종이쪽지. 6등분으로 접으면 와이셔츠 왼쪽 주머니에 쏙 들어가기에 안성맞춤인 크기가 된다. ‘내 손안의 지식 은장도’라 불린다. 이번에 배포된 것은 36호. ‘수중혜’는 SERI CEO 조찬회 참석자들에게 단연 인기 품목이다. 이것을 갖고 다니며 어느 자리에서나 슬며시 들춰보며 인용하면 한 달 내내 ‘스타’가 된다.

    수중혜 36호에는 ▲인생에 필요한 5가지 끈 ▲즐겁고 느리게 사는 법 4가지 ▲중년의 필수품 7-up ▲인연 활활 4기(氣) ▲행복 부부 4원칙 ▲성공 리더의 7가지 필수품 ▲즉시 탈출 6가지 감옥 등이 실렸다.

    인생에 필요한 5가지 끈은 매끈(성품이 매끈한 사람이 되자), 발끈(오기 있는 사람이 되라), 화끈(미적지근한 사람이 되지 마라), 질끈(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 따끈(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라)으로 정리했다. 즐겁고 느리게 사는 법 4가지는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기(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폭삭 늙기 시작), 젊은 사람과 경쟁하지 말기(대신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며 그들과 함께 즐겨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기기(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가까이 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기(죽음은 확실히 오는 것이므로 일부러 맞으러 갈 필요 없다)다.

    협찬도 골라 받는다

    오전 8시부터는 본격적인 강연이 시작됐다.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이 높다란 무대 위에 올라가 대형 스크린에 파워포인트 자료를 비추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금융, 경기, 물가, 환율 4대 이슈가 모두 불안한 양상을 보이는 배경과 전망에 대한 간결한 발표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 사태 때문에 빚어진 세계 금융혼란상은 금융공황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이런 궁금증에 대해 권 실장은 “고통스러운 기간이 1~2년 지속되겠지만 금융공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4.7%로 전망돼 국내 경기는 하강국면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란 비관론이 제시됐다. 물가에 대해서는 상반기에는 상승 압력이 가중되는 반면 하반기에는 상승세가 약간 꺾일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 달러화 가치는 상반기에는 약세를, 하반기에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권 실장이 30분간 발표한 데 이어 ‘산업별 영향 전망’에 대해서는 오전 8시30분부터 김재윤 삼성경제연구소 기술산업실장이 발표를 맡았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대해서는 철강 업종은 국내 가격 인상으로 대응 가능한 것으로, 건설 업종은 원자재 가격 급상승 부담이 되지만 건설원가에서 원자재 비중이 높지 않아 원자재 이외 변수가 관건인 것으로 전망됐다. 조선은 중소업체의 채산성 악화가, 자동차는 중소 부품업체의 수익성 악화가 우려됐다. 오전 9시에 특강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장으로 바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이너스티홀 앞에서 진행요원들이 나눠주는 선물꾸러미를 한아름 건네받았다. 누런 대봉투 안에 든 ‘이달의 선물’은 책 5권으로 ‘신념의 마력’(비즈니스 북스), 격월간지 ‘유니타스 브랜드’, ‘러브 마크’(서돌), 경제월간지 ‘포브스 코리아’, ‘엘리베이터 스피치’(갈매나무) 등이다.

    출판계에서는 SERI CEO 조찬회의 위력이 잘 알려져 있다. 유력한 경제계 인사들 사이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입소문이 나면 판매에 큰 도움이 되므로 이 모임에 책을 기증하려는 출판사들이 줄을 선다. 삼성경제연구소 측은 그래서 엄격한 내부 심사를 거친다. 공짜 책이라고 해서 아무것이나 받지 않는다.

    SERI CEO 조찬회는 2002년 4월23일 처음 열렸다. 첫 강연 주제는 ‘Digital is Feeling(디지털 경영전략)’으로 윤순봉 당시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이 맡았다. 참석 인원은 65명으로 조촐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그 후 한 번도 빠짐없이 매월 1회씩 열려 70회가 넘는 연륜이 쌓였다. 참석 인원이 처음으로 100명을 돌파한 것은 2002년 10월25일 ‘긴급진단! 2003년 경영 여건 전망과 분석’이란 주제로 열린 제7회 조찬회(101명)였다. 시작한 지 3년이 지나자 안정적으로 300명을 넘어섰다. 2006년 6월27일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이 ‘글로벌화 시대! 아시아 회랑을 공략하라’라는 주제로 강의했을 때 505명이 모여 처음으로 500명을 넘어섰다.

    6년간 한 번도 안 빠지고 열려

    2007년 4월 이후엔 600명 이상 인원이 모여 다이너스티홀이 거의 만원이 되다시피 했다. 2007년 9월21일 ‘서브프라임 사태 종합분석 및 2008년 경제 산업 전망’ 주제의 조찬회에는 803명이 참석해 최다 인원 기록을 세웠다. 당시 서브프라임 사태 때문에 국제금융 시장이 요동치는 바람에 관심이 높았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출연한 강사는 류한호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로 9회나 강의했다. 류 상무는 ‘대한민국 중산층 마케팅’(2007년 11월23일, 648명 참가), ‘2007년 경영환경 및 글로벌 선진기업 동향’(2007년 1월30일, 609명 참가) 등의 강연을 펼쳐 인기 강사로 자리 잡았다.

    삼성 전략기획실 홍보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윤순봉 박사는 SERI CEO 조찬회를 정착시키는 데 주인공 역할을 했다. 첫 강의를 맡은 데 이어 초기에는 자주 ‘등판’했다. ‘붉은악마 신드롬이 경영에 주는 시사점’ ‘1시간 만에 배우는 시나리오 플래닝’ ‘복잡한 세상 흐름을 쉽게 읽어내는 복잡계 이론’ 등은 지금껏 ‘명강 중의 명강’으로 손꼽힌다.

    금융 전문가인 김경원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도 6차례나 출연해 고정 팬들을 확보했다. 그는 몇 개월 이후의 금융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 금융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정구현 소장은 ‘2015년 메가트렌드와 한국의 대응’(2007년 8월26일) 등 큰 흐름을 소개하는 주제에 5차례 등장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대표인 만큼 그의 지명도에 이끌려 새벽 잠을 설치고 장충동으로 나오는 회원이 적잖다. 연세대 교수로 오랫동안 강단에 섰기에 강의 솜씨는 ‘진정한 프로’로 인정받는다.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 등 외국인 강사가 출연하면 통역 서비스가 제공된다.

    3월28일 오전 9시15분, 신라호텔 앞은 대형 승용차들로 몸살을 앓았다. 조찬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CEO를 태운 차량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차량 뒷좌석에 앉은 CEO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한다. 제73회 조찬회가 열리는 4월25일 금요일 아침에도 비슷한 광경이 벌어질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