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체력·머리·근성 갖춰야 고수”

‘살아 있는 전설’ 이준기 한국미드아마추어골프연맹 회장

  • 글·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2012-11-22 10:1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체력·머리·근성 갖춰야 고수”

    이준기 회장은 파워풀하지만 보기 드문 독특한 스윙 동작을 갖고 있다. 이스트 코스 파4 2번홀.

    ‘한 라운드에서 이글 4개, 베스트 스코어 61타(양산 통도파인이스트CC).’

    진기록을 갖고 있는 이준기 한국미드아마추어골프연맹 회장(70)은 아마추어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골프를 시작한 지 4년 만인 1978년 ‘대구칸트리클럽’에서 처음 싱글을 기록했고, 1985년 경주신라컨트리클럽 챔피언이 된 이후 클럽챔피언에 6차례 올랐다. 이후 송암배 한국미드아마추어선수권·세계시니어아마추어선수권 우승 등 국내외 대회에서 40회 이상 우승을 기록해 아마추어 골프 부문에서 최다승 기록 보유자가 됐다. 지난해에도 볼빅골프대회에 참가해 챔피언티에서 67타를 기록했다.

    10월 31일 경북 상주시 블루원 상주CC(파 72, 6737m)에서 이 회장과 골프 라운드에 나섰다. 블루원 상주는 설계할 때 자연적 조건을 최대한 살리고 인공적 요소를 덜 가미한 골프장이다. 맑은 날씨에 단풍으로 물든 산자락과 10여 종의 억새, 자연 계곡과 호수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켰다. 같은 형태의 홀이 하나도 없고, 그린의 언듈레이션이 심하며, 벙커가 많아 실력자들이 선호하는 남성적 코스다.

    “체력·머리·근성 갖춰야 고수”

    20년 전 순간근육경련증(입스증후군)이 찾아온 뒤부터 그는 롱 퍼트를 사용하고 있다.

    스팅어 미사일 같은 아이언 샷

    이스트 코스 1번홀 파 4의 티잉 그라운드에서였다. 이 회장의 드라이브 스윙을 보고 자칫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아마추어의 꿈인 에이지슈트(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더 적은 스코어)를 하루가 멀다 하고 기록하는 실력의 보유자인데도 스윙 동작은 좀 엉뚱했다. 교과서적인 스윙 동작이 아니라 클럽이 수직으로 들리고 임팩트 공간을 지나면서 숙인 상체가 그대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럼에도 드라이브 샷은 ‘짱짱’했고, 아이언 샷은 스팅어 미사일처럼 위협적으로 그린을 향해 날아갔다.



    “세계에서 저 같은 스윙 동작을 가진 이는 거의 없어요. 허리를 잘 못쓰는데 임팩트 존을 유지하려다보니 지금과 같은 동작이 나옵니다.”

    라운드 내내 그는 골프 정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그는 골프를 잘하는 것과 골프공을 잘 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골프를 잘하려면 공을 잘 쳐야겠지만 그보다 먼저 규칙과 에티켓을 잘 지켜야 해요. 룰을 무시하고 남을 속이는 사람은 결코 골프가 늘지 않아요. 아마추어라고 룰을 따르지 않고 공을 대충 치면 골프의 진정한 묘미를 느끼기 힘듭니다. 영국 왕립골프협회(R·A)도 골프의 정신이 ‘정직, 진실, 공손함’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20년 전 순간근육경련증(입스증후군)이 찾아온 뒤부터 그는 롱 퍼트를 사용하고 있다. 롱 퍼트가 크지 않은 그의 몸에 붙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이날 그는 73타를 기록했다. 필자가 라운드 내내 붙어 다니며 질문을 해대고, 카메라 셔터가 정신을 산만하게 했음에도 그는 버디 두 개와 12개의 파를 기록했다.

    “체력·머리·근성 갖춰야 고수”

    블루원 상주CC는 그린의 언듈레이션이 심한 편이다.

    골프 치며 폐암도 극복

    그의 골프 사랑은 끝간 데 없다. 십수 년 전 골프 라운드를 한 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길이었는데 깜빡 졸다가 건너편 가로수를 들이받아 차가 한 바퀴 굴렀다. 겨우 정신을 차린 뒤 차문을 열고 내려서 그가 한 첫 동작은 너무 엉뚱했다.

    “앞으로 골프를 계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돼서 골프 스윙 동작을 해봤어요. 몸이 부드럽게 돌아가는 걸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하하.”

    2008년 그는 감기인 줄 알고 병원에 갔다가 폐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다른 조직으로 암이 전이되지 않아 오른쪽 중폐만 떼어내고 1주일 만에 퇴원했다. 퇴원 뒤 열흘 만에 그는 다시 골프장을 찾았다. 이후 여러 차례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골프를 치며 잠시나마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골프지론은 체력·머리·근성의 삼위일체다.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부족하면 안 돼요. 특히 강한 정신력이 중요해요. 또 계산을 잘해야 합니다. 퍼트는 오차범위로 mm를 따지고, 아이언 샷은 cm를 따질 수 있어야 해요. 드라이버의 좌우 오차범위는 5~10m, 장단은 2, 3m를 봐야 합니다.

    “체력·머리·근성 갖춰야 고수”


    “체력·머리·근성 갖춰야 고수”

    이스트 코스 파4, 5번홀. 핸디캡 2번.

    ▼ 알쏭달쏭 골프 규칙

    “체력·머리·근성 갖춰야 고수”
    라운드 중의 조언은 2벌타 _ 국내 골퍼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라운드 중간에 남을 가르치려드는 것이다. 특히 싱글 진입을 앞둔 보기 플레이어들은 자신보다 하수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 것을 무슨 시혜인 양 여기기도 한다. 이는 골프 규칙 제8조를 어기는 일이다. 이 조항은 정규 라운드 중간에 클럽의 선택이나 스트로크의 방법에 영향을 주는 조언이나 제안을 상대 플레이어에게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정규 라운드 동안 자기의 캐디, 파트너 및 그의 캐디에게서만 어드바이스를 구할 수 있다. 즉석에서 익힌 지식은 체화되기 쉽지 않아 오히려 리듬을 깨뜨리기 십상이다. 이를 어기면? 중징계다. 매치 플레이는 그 홀의 패. 스트로크 플레이는 2벌타를 먹는다.

    ▼ 골프백 들여다보니

    엘로드 드라이버와 S야드 우드, 혼마 웨지, 코스코 아이언. 퍼터는 밴디로드 롱 퍼터를 사용한다. 롱퍼터를 사용하는 이유는 입스(순간근육경련증) 증후군 때문이다. 퍼터는 침실이나 화장실 갈 때도 들고 다닐 정도로 애지중지해야 실력이 는다고 이 회장은 믿고 있다.

    “골프장서 골프 치다 죽겠다”

    경북 김천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고려대 농대 산림학과를 졸업하고 유엔개발계획(UNDP)의 한국 4대강 지질조사 업무를 맡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부친이 관리하던 조림사업에 뛰어들어 김천 일대에서 300만 평의 조림단지를 운영하기도 했다. 1973년엔 구미 한국수출산업공단의 영어통역원으로 시작해 홍보과장, 조경과장으로 일했다.

    “당시 공단이 조경경진대회에서 3년 연속 대통령상을 받자 박승도 이사장이 저에게 수고했다며 ‘파워빌트 골프채’를 선물로 줬어요. 그런데 당시엔 변변한 골프 연습장이 없었고, 공직자 신분이어서 골프장 드나드는 것도 눈치가 보였어요. 궁색하나마 낙동강 백사장을 골프 연습장으로 사용했지요.”

    그는 모래밭에 50m 단위로 거리를 표시한 뒤 매트를 들고 이동하며 샷을 하거나, 모래 위에서 아이언 샷을 연습했다. 그린은 핀 대신 낚싯대를 꽂아 표시했다.

    그런 열정으로 그는 프로 못지않게 탁월한 실력을 갖췄지만 사업관계 등으로 아마추어에 머무르면서 많은 프로 골퍼를 길러냈다. 또 전국체전에 15년 동안이나 출전하는 등 선수로서의 생활도 즐겼다. 홀인원은 생애 두 차례만 기록했다. 한때는 중원의 검객처럼 전국의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긴장감 넘치는 승부를 겨루기도 했다. 그는 두 아들과 아내에게도 골프를 가르쳤는데, 막내아들과는 3년간 경북 대표로 전국체전에 함께 나갔다. 2010년 6월엔 25세 이상 성인 아마추어 골퍼들의 뜻을 모아 미드아마추어골프연맹을 발족시켰다.

    “미드연맹 결성을 계기로 학생 등 엘리트 아마추어가 아닌 순수 아마추어 골프가 제도권에 진입할 수 있게 됐어요. 3년 만에 회원이 2500명으로 늘었어요. 그동안 학생을 제외한 25세 이상 남성만 회원 자격이 있었는데, 내년에는 여성회원도 받을 계획입니다. 앞으로 골프 문화가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앞으로 그는 일본, 중국 등 이웃 국가와의 미드아마 국제경기를 추진하는 등 민간외교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 회장은 “골프장에서 골프 치다가 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체력·머리·근성 갖춰야 고수”




    On Green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