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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세월호를 보내며

박근혜는 육영수가 아니었다

정밀 진단 - 구멍 난 대한민국 재난관리 시스템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박근혜는 육영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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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다음에는 해수부와 안행부 간의 갈등이 계속됐다. 해수부는 해경청을 거느린 이유로 전면에 나섰으나, 법적으로는 중대본을 이끄는 안행부가 중심이 돼야 한다. 이 문제는 세월호 사건 내내 해결되지 못해 계속 어정쩡한 상태에 있다. 이는 박 정부의 행정 개혁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다 일을 한다’는 것에만 주목해 해경청을 해수부에 두게 한 박 대통령의 결정은 잘못됐다고 본다.

미국은 지방자치를 중시하기에 오랫동안 재난은 주정부, 안보는 중앙정부가 맡는 체제를 유지해오다, ‘재해와 재난이 전쟁만큼 큰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고 1978년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만들었다. 1991년 유럽 냉전이 끝난 다음에는 군을 ‘전통적인 안보’인 군사작전에만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테러나 국제범죄 등 초국가적 범죄와 재난도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그것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군을 바꿔나가기로 한 것.

그때부터 군은 ‘전쟁 아닌 상태에서도 작전(military operation other than war)해야 한다’며, ‘MOOTW(‘무트와’로 읽음)’란 말이 유행했다. MOOTW는 표현이 생소해서 그렇지 사실 색다른 것은 아니다. 우리 군이 수해(水害)지역에 들어가 민간인을 돕거나 농번기 모심기 등을 지원하는 것이 바로 MOOTW에 해당한다. 미국은 ‘포괄적 안보’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군을 전쟁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안보에만 투입하는 게 아니라 테러와 재난 발생시에도 투입한다는 것이 바로 포괄적 안보다.

충언(忠言) 없는 충성(忠誠)

이러한 준비를 해놓았는데도 9·11을 당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준비가 돼 있었기에 바로 대(對)테러전인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국내 안전을 총괄하는 국토안보부를 만들어 FEMA는 물론이고 우리의 해경청과 비슷한 연안경비대(Coast Guard) 등 여러 정보·안전기관을 거느리게 했다. 국방부는 MOOTW를 포함한 포괄적 안보를 맡고, 국토안보부는 안전기관을 동원해 안전업무를 맡게 한 것이다.



국토안보부와 비슷한 것이 우리의 안행부이고 박대통령은 안전을 중시하겠다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고치게 했으니, 해경청은 안행부 소속으로 해놓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부활한 해수부는 과거의 해운항만청과 수산청을 주축으로 한다. 육지에 비유해 설명한다면 해운항만청은 국토교통부, 수산청은 농림축산식품부와 비슷하다. 해수부는 경제부처인 것이다. 경제부처와 안전을 다루는 부서를 한데 묶어놓을 수 없는 것은 상식인데, 박 대통령은 그것을 무시했다.

이는 안행부 장관이 중대본부장을 맡아 종합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규정해놓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의 제정 정신을 무시한 조처이기도 했다. 해양 사고 발생시 해경청은 물론이고 소방방재청, 경찰청도 함께 대응해야 하니 해경청은 안행부 밑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박 대통령에게 ‘참말’을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충언(忠言) 없는 충성(忠誠)만 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행정 체계가 잘못돼 있어도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큰 혼란이 일어나지 않았었다. 안기부가 통제를 해줬기 때문이다. 안기부는 모든 부처와 공공조직에 IO(정보관)를 보내놓고, 내부에는 각 부처 이상으로 상황판단을 잘하는 전문가가 있어 정확히 진단할 수 있었다. 안기부장은 부총리급이고 실세였으니 총리실을 포함한 모든 부처를 일사불란하게 통제 지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 이후 ‘음지의 대통령(안기부)’에 대한 비난이 거듭되면서, 국정원은 이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 헌법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상화에 관심이 쏠렸다. 사실 민주국가에서는 정보기관이 아니라 NSC가 모든 위기 대응의 중심탑이 돼야 한다.

미국의 NSC는 ‘국가정보국’으로 번역되는 DNI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DNI는 CIA 등 미국 내 모든 정보기관이 판단한 정보를 종합 정리하는 곳이다. NSC는 DNI로부터 받은 정보를 토대로 포괄적 안보 개념에 따라 군을 비롯한 안전 관련 부서를 종합 지휘한다.

꼿꼿장수, 회피장수

노무현 정부는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등을 겪은 후 NSC 기능을 강화했다. 포괄적 안보 개념에 따라 북핵을 포함한 모든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게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문제에 주력했다는 이유로 NSC를 무력화하고, 법적 근거도 없는 안보장관회의로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처하는 무능을 보였다.

이를 재정비한 것이 박근혜 정부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과 동급으로 국가안보실을 만들어, 국가안보실장을 NSC 상임위원장, 국가안보실 1차장을 NSC 사무처장으로 지정했다. 이는 안보실장을 포괄적 안보의 컨트롤타워로 삼겠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4월 16일 박 대통령은 김장수 안보실장으로부터 세월호 사건을 처음 보고받고 김석균 해경청장과 전화통화를 하는 등의 최초 조치를 취했다.

박근혜는 육영수가 아니었다

4월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시작되기 전 속이 타는지 물을 마시는 김장수 안보실장. 그는 세월호 사건 대응을 회피했다. 꼿꼿장수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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