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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삼성’에 숨은 뜻 일은 빠르게, 인력은 가볍게?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스타트업 삼성’에 숨은 뜻 일은 빠르게, 인력은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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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새 슬로건 ‘스타트업 삼성’…야근 줄이고 직급 단순화
  • ● ‘보고하다 지치고, 회의하다 날 새고’ 없어질까?
  • ● 美 실리콘밸리로 구심점 이동…‘대규모 인력’ 불필요?
  • ● “창업가 정신은 고위 임원의 책임”
‘스타트업 삼성’에 숨은 뜻 일은 빠르게, 인력은 가볍게?


‘가볍게, 그리고 빠르게’.

 3월 삼성전자가 ‘스타트업 문화’로 거듭나겠다고 천명하면서 밝힌 내용은 이렇게 요약된다. 삼성전자는 연공서열, 잦은 야근과 회의 등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관행을 과감히 떨쳐”냄으로써 “스타트업 기업처럼 빠르게 실행하고 열린 소통의 문화를 지향해 지속적으로 혁신해나가겠다.” 그 실천 방안으로 직급을 단순화하고 호칭도 ‘○○○ 부장님’에서 ‘○○○님’으로 바꾼다. 습관성 잔업, 눈치 보기 잔업이나 주말 특근도 금지 대상이다. 보너스도 연차(年次)보다는 성과를 기반으로 지급한다.

‘골리앗’ 대기업이 스타트업이라는 ‘다윗’을 배우려는 시도는 물론 삼성전자가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삼성에 ‘식스 시그마(6 Sigma)’를 전도한 GE도 소규모 팀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주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패스트 웍스(Fast Works)’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자동차 제조 강자 BMW, 포드, 도요타 등도 미국 실리콘밸리에 연구개발센터(R&D Center)를 세우는 등 스타트업 정신의 ‘내재화’에 나섰다.

BBC라디오는 최근 ‘스타트업 숭배(The Cult of the Start-up)’ 제하의 기사에서 “모든 산업의 성장이 멈춘 요즘, 한 가지 예외가 테크 인더스트리(Tech Industry)”라며 “전통 제조기업들도 온라인 및 모바일 쪽으로 관심을 돌리며 스타트업들이 어떻게 기업을 이끌어가는지 앞다퉈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숭배’

‘스타트업 삼성’에 숨은 뜻 일은 빠르게, 인력은 가볍게?


‘스타트업 삼성’에 숨은 뜻 일은 빠르게, 인력은 가볍게?

미국 실리콘밸리 내 삼성전자 미주 총괄 신사옥. 반도체 칩 3개가 쌓인 모양을 형상화한 건물로, 삼성전략혁신센터가 입주해 있다.

삼성전자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간 자율 출퇴근제, 자기계발 휴직제, 소프트웨어 사업에 주력해 근태가 비교적 자유로운 별도 사업부인 디지털미디어센터(DMC) 등을 운영해왔다. 2013년부터는 사내 창의 아이디어 육성 프로그램인 C랩을 운영하고, 현재 9개 프로젝트를 스핀오프(Spin Off)해 별도 벤처기업으로 독립시키고 지분 투자 등으로 지원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도 3개의 중요 조직을 설립, 기능을 강화해나가는 추세다. 삼성전자 전사 소속의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 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GIC)와 디지털솔루션(DS) 사업부 산하의 삼성전략혁신센터(SSIC)가 그것이다. SRA는 혁신 기술 연구를, GIC는 인수합병(M&A), 전략적 투자 등 혁신 기술 ‘사냥’을 맡는다. SSIC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삼성전자 부품 사업의 미래 성장동력 개발을 담당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GIC의 데이비드 은 사장은 만 49세인 지난 1월 삼성전자 최연소 사장으로 승진했다.

실리콘밸리 현지 멤버들이 최근 언론에 발언한 내용을 보면 요즘 삼성전자의 고민이 읽힌다. “기술 흐름을 잘못 파악하면 아무리 큰 기업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손영권 SSIC 사장),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와 신중하게 통합해 시장에서 계속해서 최고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GIC는 스타트업과의 협력에 집중할 것”(데이비드 은 GIC 사장).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는 실리콘밸리 현지 조직들을 통해 팀 단위로 빨리 결정하고 움직이는 스타트업 문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며 “이번 ‘스타트업 삼성 컬처 혁신’은 이러한 영향을 전사적으로 확대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내가 하는 일들을 보면 ‘전략 기획’이라는 명칭이 참으로 민망해졌다. 하루 종일 보고서 줄 간격 조절하고, 사람들 자료 취합하고, 파일 바인더 정리하고 회의실 컨퍼런스콜 전화기 고치고…. 어쩌면 업무명이라도 근사하게 지어서 위안이나 삼으라는 것 같기도 했다. -티거 장, ‘초일류 사원, 삼성을 떠나다’(렛츠북), 43쪽

전현직 ‘삼성맨’들이 말하는 삼성의 조직 문화는 한국 대다수 기업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블로그 플랫폼 ‘브런치’(brunch.co.kr)에서 삼성전자 재직 경험을 솔직하게 연재해 7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한 티거 장 씨는 “비단 삼성뿐만 아니라, 국내 대기업 전반에 해당하는 내용이라서 많은 이가 내 글에 공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2년 전 삼성전자에서 부장급으로 퇴직한 한 인사는 이렇게 털어놨다.

“하루 네댓 시간씩 회의하는 날이 많았다. 상무 주재, 부사장 주재, 사장 주재 회의를 준비한다며 파워포인트에 내용을 어느 위치에, 어떤 색깔로 배치할 것인지를 놓고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회의란 물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그는 물리학을 전공했다) ‘관찰하는 행위’인데, 관찰 받는 대상은 관찰 자체에 영향을 받아 상태가 변한다. 관찰당하면서 나오는 결과와 그렇지 않을 때 나오는 결과는 다르다. 회의에 치여 일을 제대로 못할 때마다 ‘고구마를 찔 때 궁금하다고 자꾸 열어보면 천천히 익고 맛도 없어지는데…’ 하며 한숨을 쉬곤 했다.”



부품의 부품의 부품

삼성전자 출신들은 상명하복식 문화, 성과 중심 문화가 창의와 혁신을 막는다고 말한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출신 A씨는 “회의 때 윗분들이 ‘얘기해, 얘기해’ 해도 다들 꼭 다문 입을 열지 않는다. 과장이 사원 말을, 상무가 차장 말을 경청하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은 삼성전자에서 10여 년간 박사급 연구원으로 일한 B씨의 말이다.

“회의 때 상사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그거 몇 년 걸리는데? 나 집에 간 다음에 결과 나올 텐데?’이다. 부하 직원들이 ‘그래도 사과나무는 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면 ‘난 열매가 필요한 사람이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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