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양 연안의 포틀랜드는 우리에겐 낯선 도시지만, 미국 서부 개척의 전진기지로 위상이 높다. 이곳에 120여 년 역사의 포틀랜드 미술관이 있다. 지금은 인근 대도시 미술관에 밀려 외로운 신세가 됐지만, 고흐와 모네의 그림, 브랑쿠시의 조각, 한국과 일본의 예술품까지 두루 볼 수 있는 저력 있는 미술관이다.
서부 最古 미술관
포틀랜드에는 일찍이 아름다운 미술관이 들어섰다. 1892년에 세워진 포틀랜드 미술관(Portland Art Museum)이다. 미국 전역에선 일곱 번째, 서부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이다. 서부 개척 막바지에 서민들의 사랑을 한껏 받은 민들레 같은 미술관이다. LA,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에 크고 훌륭한 미술관이 많이 들어서면서 현재는 외로운 민들레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그러나 결코 만만하게 볼 미술관이 아니다. 크기는 미국에서 25번째에 불과하지만 소장품은 4만2000점이 넘는다. 소장품 중 일부는 항상 외부에 순회 전시 중일 정도로 볼 만한 작품도 많다. 건물 밖에는 조각정원도 조성돼 있다. 연간 관람객은 50만 명을 넘는다.
지금의 오리건, 아이다호, 워싱턴, 와이오밍, 몬태나,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는 1800년대 전반까지 미국과 영국이 공동으로 관리했다. 1846년 두 나라는 합의 아래 이 지역을 분할하는데, 브리티시컬럼비아는 당시 영국령인 캐나다에, 나머지는 미국에 귀속시켰다.
같은 해 미국은 자신이 차지한 땅에 ‘오리건 통치지역(Territory of Oregon)’이라는 공식 지명을 붙이고 직접 지배하기 시작했다. 1859년에는 ‘오리건 통치지역’에서 지금의 오리건 주를 분리해 미국의 33번째 주로 편입시켰다. 주도는 세일럼(Salem)으로 정했다. 하지만 오리건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포틀랜드다. 1830년대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해 서북부 개척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교통 요충지 기능을 했다.
오리건 삼림지대에서 벌목한 목재를 중심으로 관련 산업이 번성했다. 도시는 급성장했고, 한때는 범죄가 횡행하고 불법적 거래가 판치는 매우 위험한 도시로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8위에 올라 있다. 기후 조건이 장미 재배에 최적이라 ‘장미의 도시(City of Roses)’라고도 불린다. 현재 포틀랜드 및 인근 지역 인구는 300만 명이 넘는다. 미국에서 17번째로 인구가 많은 곳이다. 오리건 주 인구의 60%가 이 지역에 사는 셈이다.
포틀랜드 유지들의 꿈
먼저 오리건 주 개척자이자 이 지역 최고 사업가인 코르베가 1만 달러를 내놓아 첫 소장품으로 그리스·로마 시대 조각상 100여 점을 사들였다. 역시 7인의 발기인 중 한 명인 윈슬로 에이어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보스턴 미술관으로부터 조언을 받아 구매했다. 이 수집품은 ‘코르베 컬렉션’으로 명명돼 오랜 기간 미술관에 전시됐고, 곧 포틀랜드의 가장 소중하고도 인기 있는 예술작품으로 부각됐다. 학생들과 많은 단체 관람객이 미술관으로 찾아들었다.
코르베는 포틀랜드 미술관을 세우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으로, 이후로도 미술관에 큰돈을 기부했고 미술관 이사회 초대 의장을 지냈다. 그는 본래 동부 매사추세츠 주 출신으로 그의 조상은 필그림 파더스(1620년 뉴잉글랜드 최초의 영국 식민지인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정착한 사람들)보다 불과 30년 후에 매사추세츠에 도착한 미국 개척의 선구자다. 매사추세츠에서 대대로 살다가 아버지가 사업을 하며 뉴욕 주로 옮겨갔는데, 그는 신개척지 오리건의 포틀랜드로 옮겨와 사업 기반을 닦았다.
스물세 살의 코르베가 포틀랜드에 당도한 1850년, 이 서북부 오지에는 생필품과 공산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커피, 설탕, 담배, 의약품, 총, 화약 등을 동부에서 가져올 수만 있다면 황금알을 낳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코르베는 뉴욕에서 당시 화폐로 2만5000달러어치에 해당하는 다양한 생필품, 잡화, 무기류 등을 배에 실어 포틀랜드로 보냈다.
배는 뉴욕에서 출항해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치고 인도양과 태평양을 건너 포틀랜드로 갔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정이다. 하지만 당시엔 대륙 횡단철도가 없었고, 파나마 운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코르베가 죽고 10년 후에 개통됐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코르베의 화물을 실은 배는 해를 넘겨 1851년 5월 포틀랜드에 입항했다. 코르베는 이보다 두 달 앞서 포틀랜드에 들어와 화물 처분을 준비했다. 그는 이 화물에서 2만 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냈다. 100%의 수익률을 낸 것이다.
신개척지 찾아온 인상파
이후 코르베는 무역상인에 그치지 않고 은행, 금융, 보험, 선박, 철도, 텔레그래프, 철강, 건설, 부동산 등 온갖 사업에 손을 대 포틀랜드 최고의 사업가로 등극했다. 포틀랜드에서 이뤄지는 자선사업에서는 늘 1등이었다. 이런 기반을 바탕으로 남북전쟁 직후에는 공화당으로 연방 상원의원(1867~1873)까지 지냈다.1905년 포틀랜드에서 개최된 미국 서부 최초의 국제 박람회인 루이스-클라크 박람회(Lewis & Clark Centennial Exposition)는 이 미술관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미술관은 이 행사를 계기로 새 건물로 이전해 전시회를 열었다.
성공한 미국 미술관 대부분은 설립 초기에 유능한 관장이나 큐레이터가 오랜 기간 근무하며 초석을 닦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포틀랜드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1909년 큐레이터로 포틀랜드 미술관에 합류한 안나 크로커는 1936년 은퇴할 때까지 27년간 헌신하며 미술관을 크게 발전시켰다.
크로커는 1909년 ‘미술관 예술학교(Museum Art School)’를 만들어 초대 교장까지 맡았다. 이 학교는 오늘날 ‘태평양 서북 예술대학(Pacific Northwest College of Art)’으로 발전했다. 1913년에는 뉴욕에서 유럽의 현대미술을 미국에 소개하는 ‘Armory Show’가 열렸는데, 포틀랜드 미술관은 이 쇼가 끝나자마자 쇼에 출품된 주요 작품들을 가져와 큰 전시회를 개최했다. 세잔, 고흐, 고갱, 마티스, 마네, 르누아르 등의 작품이 전시돼 신개척지 주민들에게 예술의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했다. 당시 전시에는 큰 논란을 일으킨 마르셀 뒤샹의 ‘Nude Descending a Staircase’도 전시됐다. 이 작품은 현재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쟁쟁한 현대·컨템퍼러리 작가들
미술관은 1920년대에 급성장했다. 포틀랜드 유지 집안의 딸 샐리 루이스는 유럽 및 뉴욕의 유명 화가들과 교유하며 이들 작품을 가져와 전시회를 개최했다. 1923년에 개최한 첫 전시회에는 피카소, 마티스, 드레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당시 유명한 미국 현대 작가 작품까지 총 44점을 유치해 전시회는 대성공을 거뒀다. 1년 후 열린 두 번째 전시회에서는 브랑쿠시(Brancusi)의 조각 작품 ‘A Muse’를 가져왔다. 이 작품은 루이스가 소장하다가 1959년 포틀랜드 미술관에 기증했다.지금의 미술관 건물은 1932년에 마련됐다. 시내 한복판이고 바로 옆에 공원이 있다. 건물명은 에이어 윙(Ayer Wing)인데, 에이어가 10만 달러를 내놓아 건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후 사업가이자 정치인인 솔로몬 허쉬의 딸이 아버지를 기려 희사한 돈으로 허쉬 윙(Hirsch Wing)을 증축했다. 1943년 소장품 재고조사에 따르면 항구적 소장품이 3300점이고, 장기 계약으로 소장하고 있는 작품도 750점이나 됐다.
1950년대에는 유명한 전시회가 수차례 열렸다. 1956년에는 크라이슬러 자동차 창업자 월터 크라이슬러가 수집한 컬렉션을 유치해 6주간 전시회를 열었는데, 5만5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아왔다. 1959년에는 고흐 전시회가 열려 8만 명 이상이 찾아왔다. 미술관은 고흐 전시회의 수익금으로 모네의 ‘수련’을 구입할 수 있었다.
2001년에는 미술관 역사상 최고의 미술품 구매가 있었다. 뉴욕의 저명한 예술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개인 소장품 159점을 사들인 것이다. 여기에는 케네스 놀랜드, 줄스 올리츠키, 앤서니 카로 등 쟁쟁한 20세기 현대 작가와 컨템퍼러리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돼 있었다. 미국은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의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관도 이처럼 대단한 저력을 지녔다.
1908년 포틀랜드 미술관은 미국의 대표적 인상파 화가이자,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차일드 하삼(Childe Hassam)의 ‘Afternoon Sky, Harney Desert’를 확보했다. 이 작품은 미술관이 소장한 첫 번째 회화다. 미술관에서 하삼 전시회를 연 뒤 이 작품을 바로 구매했다.
하삼은 미술관 설립 발기인 중 한 명인 C.E.S 우드와 가까운 친구였다. 그는 동부 보스턴 출신으로 1908년 우드의 집에 벽화 패널을 설치하기 위해 포틀랜드를 찾았다. 그해 여름 오리건 주 하니 카운티(Harney County)에 머물며 이 지역의 아름다움에 도취해 3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Afternoon Sky, Harney Desert’도 그중 하나다.
모네의 ‘좋은 수련’
1898년 미국 동부에 ‘미국화가 10인방(Ten American Painters or The Ten)’이라는 모임이 있었다. 이들은 뉴욕, 보스턴 등에서 20여 년간 그룹전을 개최하며 화단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모두 인상파 화가들이었는데, 하삼이 이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다작하는 작가인 만큼 미국의 미술관 대부분이 하삼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포틀랜드 미술관에서는 브랑쿠시의 조각 ‘A Muse’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깜찍한 인형처럼 아주 작은 크기지만, 현대 조각의 거장 브랑쿠시의 냄새를 그대로 맡을 수 있는 작품이다. ‘A Muse’는 그의 작품 중에서 사람의 모습이 가장 분명하게 묘사된 작품으로 꼽힌다.
브랑쿠시는 루마니아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28세이던 1904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파리까지 걸어서 프랑스로 건너가 남은 평생을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정규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손재주가 뛰어난 그의 재능을 어느 독지가가 알아보고 그를 예술학교에 보냈는데, 그때부터 재능을 십분 발휘했다. 파리에서는 피카소, 뒤샹 등 당대의 수많은 유명 작가와 교류하며 지냈다.
브랑쿠시는 늘 향수에 젖어 있었지만 낙천적이고 쾌락적인 생활을 했다. 시가와 와인을 즐기고 여러 여자와 어울렸다. 아들이 하나 있었으나 자기 아들로 인정하진 않았다. 재능이 뛰어난 만큼 필요한 가구와 도구를 스스로 만들어 조달했다. 그의 작품 한 점이 경매에서 3720만 달러에 낙찰되면서 당시 조각 작품으로는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모네의 ‘수련(Water Lilies)’ 연작은 전 세계 유명 미술관이라면 대부분 소장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같은 ‘수련’ 시리즈라도 작품의 크기, 가치, 의미, 작품성이 각각 다르다. 세칭 ‘좋은 수련’도 있고, ‘그렇지 않은 수련’도 있다. 포틀랜드 미술관이 소장한 ‘수련’은 그 나름대로 큰 작품(160.7×180.7cm)이라 미술관은 ‘좋은 수련’이라고 자부한다. 모네는 1899년부터 ‘수련’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포틀랜드의 그것은 1915년 작품이다.
2007년 포틀랜드 미술관은 고흐가 1884년에 그린 ‘The Ox-Cart’(‘Cart with Black Ox’라고도 불림)를 기증받았다. 서북 아메리카 지역 최초의 고흐 작품이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색깔이 어둡고, 게다가 주위에 까마귀가 날고 있기 때문인지 분위기도 어둡다. 황소도 늙었고 수레도 낡았다. 이 그림은 1950년 어떤 가족이 직접 구매해 소장하고 있다가 2007년 포틀랜드 미술관에 기증했다. 2010년까지는 이 미술관에 들어온 기증 작품 중 가장 값진 것이었다.
서북부 예술가 발굴, 지원
포틀랜드 미술관은 지역적 특색이 아주 강하다. 미국 원주민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작품도 많다. 중국, 일본, 한국 등의 작품을 상설 전시한다. 전시실이 많아 시간을 꽤 할애해야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초창기 미국 작가들의 서부 지역 풍경화들은 특히 이 미술관이 자부심을 가지는 작품이다.미술관은 설립 당시 ‘Crumpacker Family Library’도 만들어 4만 점이 넘는 미술 관련 카탈로그를 소장했고, 지금도 잘 보존하고 있다. ‘Northwest Film Center’ 역시 이 미술관의 부속 기관이다. 미국 서북부 지역의 미디어 아트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1978년에 설립한 곳이다. 미디어 예술, 영화 예술을 연구·진흥하려는 목적으로 각종 전시회와 교육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또한 미술관은 2007년부터 2년 간격으로 ‘CNAA 쇼’를 연다. 일종의 비엔날레로 오리건, 워싱턴, 아이다호, 와이오밍, 몬태나 주의 예술가 중 한 사람에게 1만 달러의 ‘Arlene Schnitzer 상’을 수여한다. 이 지역 예술가를 발굴하고 키우기 위한 행사다.
최 정 표
●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건국대 상경대학장
● 저서 :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 ‘재벌들의 특별한 외도’
‘한국재벌사연구’ ‘공정거래정책 허와 실’ ‘한국의 그림가격지수’ 등
● 現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