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人’ 되려는 노력에 민심 응답
- 더민주당, 야권 분열 해결해야 미래 있다
“대구 시민이 새 역사를 쓰셨습니다. (…) 여야 협력을 통해 대구를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우라고 대구 시민이 명령하셨습니다. 저 김부겸, 그 명령에 순명하겠습니다. (…) 오늘은 여러분이 승리하셨습니다.”
당선이 확실시된 4월 13일 밤 김 당선인이 밝힌 당선 소감문에서 보듯, 새누리당 텃밭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된다는 건 바싹 마른 불모지에 장미꽃을 피운 격이다.
지역주의 깨며 대권 도약
정통 야당 후보가 대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은 31년 만이다. 1985년 중선거구제로 치러진 12대 총선에서 신한민주당 소속 유성환, 신도환 2명이 당선된 바 있다. 지금과 같이 한 지역구에서 한 명의 의원만 뽑는 소선거구제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된 건 1971년 이래 45년 만의 일이다.수성구는 ‘대구의 강남’으로 불린다. 부동산 가격이 서울 강남과 부산 해운대에 이어 전국에서 3번째로 높고,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가 많이 거주하며, 자녀 교육열 또한 높아서다. 특히 수성갑 선거구는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이한구 의원이 3회 연속(17~19대) 당선된 곳이다. 이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이곳에서 맞붙게 된 두 사람은 경북고-서울대 선후배 사이. 각기 여야의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정치적 생명을 걸고 도전장을 던졌지만, 명운은 크게 엇갈렸다.
김부겸 당선인은 2012년 1월 당시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뽑혔다. 대구·경북(TK) 출신으로 40년 만에 첫 선출직 야권 지도부의 일원으로 합류한 것. 그에겐 이번 총선이 대구에서의 3번째 도전이다. 경기 군포시에서 3선(16~18대) 의원을 지낸 그는 2012년 19대 총선 때 수성갑에서 첫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이한구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대구광역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역시 새누리당 후보(현 권영진 대구시장)에게 밀려 낙선했다. 하지만 19대 총선의 39.9%, 지방선거에서 얻은 40.3%라는 높은 득표율은 김 당선인이 ‘삼세판’을 외치며 이번 총선에 도전하는 원동력이 됐다.
“일당 독점보다 경쟁의 정치”
이번 총선은 내년 12월 실시될 제19대 대통령선거를 1년 8개월 앞두고 치러진 전초전 성격이 짙다. 대선 판도를 가늠케 할 여야 거물급 인사들의 운명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남지역에 기반이 없는 제1 야당 후보가 새누리당의 ‘정치적 심장’으로 통하는 대구에서 여권 대권주자를 꺾고 승리했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지닌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상징성 외에도 대선으로 향해 가는 권력 재편기에 험지(險地) 중 험지에서 4선 의원이 된 점에서 김 당선인은 단번에 손색없는 야권 대권주자로 도약할 수 있다. 총선 종료와 더불어 펼쳐진 대선 가도에 안착한 셈이다.반면 수도권 험지에 출마해 전국의 총선을 함께 이끌자는 새누리당의 요청을 거절하고 자신이 택한 선거구에서 ‘자력 생존’에 실패해 치명상을 입은 김문수 후보는 3선(15~17대) 의원과 연임 경기지사라는 화려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차기 대권주자 그룹에서 존재감이 옅어질 공산이 크다.
다음은 총선 이튿날인 4월 14일 김부겸 당선인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20대 총선에 대한 총평과 소회는.
“이번 총선은 거대한 민심의 표출이었다. 소통 없이 일방통행하는 정부와 집권 여당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 것으로 본다. 대구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어려운 경제 문제가 여전한 데다,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지역민을 무시한 태도 등에 민심이 흔들렸다.
대구에서 3번째 출마했는데, 이번엔 정말 느낌이 다르더라. 선거운동 첫날부터 표심(票心)을 적극 드러내는 수성구민의 반응에 많이 놀랐다. 또한 사전투표율 16.27%, 최종 투표율 68.5%라는 기록적인 참여도를 보였다. 대구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깊은 속내를 솔직하게 내보였다고 생각한다. 앞선 2번의 선거에서 쓰라린 경험을 했지만, 5년 가까이 수성구민과 대구시민이 되려 애써온 데 대한 주민들의 응답이라 생각한다.”
▼ 총선 이후 정국을 어떻게 전망하나.
“이번 총선이 야권에 큰 과제를 남겼다. 야권 분열, 계파정치에 대한 경고가 그것이다. 국민께서 주신 숙제에 대한 정치권의 통렬한 반성과 고민이 절실하다. 새로운 정치를 보여드려야 한다. 지금껏 여와 야 혹은 각 정당 내부에서 진영을 만들어 후퇴 없는 싸움을 했다면, 이젠 공존과 합리적 상생에 대한 고민들이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 민생을 앞세워야 한다. 대구만 하더라도, 제가 먼저 낮은 자세로 여당과 손을 마주잡을 것이다. 일당 독점보다 경쟁의 정치가 시민들께 훨씬 이롭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는 정치, 경쟁하면서 협력하고 대안을 내는 정치, 이 숙제를 푸는 정치집단에 미래가 열린다. 야당도 변하지 않으면 반드시 국민의 버림을 받을 것이다. 야당이 먼저 거듭나야 한다.”
“우리가 잘해서? 아니다”
▼ 앞으로의 행보와 계획은.“2014년 지방선거 이후 2년가량 대구 선거에 집중하느라 중앙 정치권과 교류가 적었다. 그래서 아직 당 분위기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 국회에 들어오는 이들 중엔 잘 모르는 분들도 있고. 시간을 갖고 여러분을 만날 계획이다. 각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려 한다. 그간 당내 일각의 날 선 목소리, 큰 목소리가 우리 당의 전체 분위기로 과대 표출된 면이 없지 않다. 그 목소리에 가려진 합리적 의견도 많다. 저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토론하는 시간을 좀 갖고 싶다. 그 이후의 판단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 대선 승리를 위한 더민주당의 방향성에 대해 조언한다면.
“이번 총선에서 얻은 좋은 성적표는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다. 상대방이 잘못한 데 따른 어부지리다. 호남에서 우리 당에 심각한 경고를 던졌다. 그간 우리가 호남민의 한결같은 지지를 이용만 한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선에서 우리 당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야권 분열, 해결해야 한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역사를 같이하는 정당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더민주당 의원 수가 더 많다고 행세해선 안 된다. 당리당략이 앞서면 그 피해는 반드시 국민과 서민에게 돌아온다. 3당 체제라는 새로운 정치적 환경이지만, 민생을 먼저 생각하고 협력·경쟁한다면 새 활로가 열릴 것이다. 계파정치도 적당한 선에서 자제해야 한다.”
▼ 대권 잠룡(潛龍)으로서의 포부는.
“우선은 수성구민께 보여드려야 할 것, 지켜야 할 약속이 많다. 대구에서 뽑아놓은 야당 의원이 얼마나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제가 실천으로 보여줄 큰 책임이 있다. ‘정치인 김부겸’이 아니라 ‘지역구 국회의원 김부겸’으로 인정받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대구 경제가 어렵고, 상황이 심각하다. 선거 기간에 제가 드린 말씀, 밝힌 약속 중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꼼꼼히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것 없이 뛰어다니면 대구 분들이 크게 실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