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식 환자’ 된 대한민국
- 흙수저와 헬조선…‘세대’는 가고 ‘계급’만 남아
- “받는 대로 갚아줘야” 대중심리 확산
- 힐링은 그만…‘취향공동체’로 문화적 치유를
이러한 예측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저성장, 저물가, 고용불안, 무한경쟁의 확대 등과 같은 불황경제가 지속될 것이고,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쉽게 해소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디지털 문화의 확장 속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과잉 연결은 대중으로 하여금 ‘진정한 관계’의 결핍을 느끼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서적 허기는 단순히 배고픔을 의미하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 대중은 몸의 배고픔이 아닌, 마음의 배고픔에 빠져 있다.
무기력증에 빠진 한국
정신의학자 로저 굴드는 탐식 환자들을 심리치료하면서 ‘왜 사람은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가’를 탐구했다(‘Shrink Yourself : Break Free from Emotional Eating Forever!’·2007). 그를 찾아온 환자들은 아무리 탐욕스럽게 먹어대도 배가 고프다고 호소했다. 환자들의 탐식 기저에는 ‘무기력증’이 있었다. 멈추지 않는 식욕은 무기력증을 해소하려는 시도였다. 따라서 무기력증을 치유하지 않으면 탐식증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굴드는 ‘정서적 식욕’의 문제를 제기했다. 탐식이란 먹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우리 사회는 이러한 탐식 환자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 지금 한국 사회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과거 한국의 경제성장을 지칭하는 용어는 ‘압축성장’, 마음의 상태를 함축하는 단어는 ‘역동성’이었다. 이 둘은 ‘가능성의 실현’을 의미했다. 모든 것이 다 가능해 보였다. 압축성장은 희생을 요구했지만, 대중은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역동성을 잃지 않았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파이’의 크기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장기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낙관의 세계관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비관의 세계관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대중이 느끼는 정서적 허기의 강도는 세질 수밖에 없다. 점점 더 마음이 고픈 사회가 되고 말았다.
정서적 허기는 크게 두 갈래, 즉 경제적 결핍과 문화적 결핍에서 나온다. 지난 5년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5~3.5% 수준에 머물렀다.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기조엔 변화가 없었다. 가계부채는 1200조 원대를 돌파했고, 퍼플 칼라(purple collar, 비정규직 시간제 근로자)에서만 고용 증가가 나타났다. 청년 일자리, 질 좋은 일자리는 늘지 않았다. 고용 불안감이 60%에 육박할 만큼 고용의 불안정성 또한 심화했다.
경제적 결핍은 문화적 결핍을 초래하지만, 그렇다고 문화적 결핍이 경제로만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세대 간 단절, 신보수화의 확대로 인한 이념적 단절, SNS에서 나타나는 관계의 과잉, 새로운 관계 맺기를 통해 밖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가상공간 속에서 이어지는 불안감 등 또한 문화적 결핍을 야기한다.
가능성을 잃어버린 현실로부터의 ‘탈주’는 가상의 관계에 집착하게 만들고, 가상의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불안감은 새로운 관계 맺기를 부추긴다. 이 모순은 심리적으로 가상의 관계에 집착하게 만든다. 이것은 빠르게 붕괴하는 관계에 대한 불안 심리를 완화해주는 듯하지만 실은 일시적인 위로에 불과하다.
우리 시대의 초상을 조금 과장해 표현하자면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달팽이’와 같다. 우리 사회는 거미줄에 매달린 것처럼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불안하게 흔들린다. 하지만 대중은 우리가 거미줄처럼 다양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스스로 밖으로 확장하지 못하고 달팽이처럼 웅크리고만 있다. 지나친 비유이지만, 최근 드러나는 다양한 정서적 허기 ‘현상’을 보면 과장됐다고만 할 수는 없다.
‘위로의 맛’에 탐닉
정서적 허기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은 음식이다. 지난해 방송에서 가장 두드러진 장르는 요리 프로그램이었다. 요리 프로그램의 인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먹방은 한국만의 독특한 트렌드다. 아프리카TV의 먹방 중계는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즐기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카타르시스에 기댄다. ‘먹는다’는 것은 육체적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보자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보다는 대중의 마음속에 있는 무기력한 배고픔이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채워지는 것이다. 탐식 환자와 유사하게 대중이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요리 프로그램이 카타르시스와 교감을 나누는 것이라면, ‘단맛의 인기’는 직접적으로 내 입을 통해 허기를 채우려는 시도다. 사람은 갑자기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맛을 찾지만,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되면 단맛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단맛이야말로 ‘위로의 맛’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식품업계는 단맛이 지배했고, 최고의 인기를 누린 요리연구가는 ‘슈가보이’ 백종원 씨였다(김난도 외, ‘트렌드코리아 2016’, 28~29쪽).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 열풍, 칵테일 소주의 인기 역시 단맛이 그 바탕에 있다. 카페 등에서 디저트 판매량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빙수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프랜차이즈만 해도 50여 개에 이를 정도였다(김난도 외, ‘트렌드코리아 2015’, 36쪽).
2014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컬러링북 ‘비밀의 정원’이 선풍을 일으키면서 한국에서도 컬러링북의 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문가가 그려놓은 예쁜 도안에 자기 마음대로 색을 칠하는 컬러링북은 컬러 테라피(color therapy)의 일종으로, 어른을 위한 색칠놀이다. 명시나 고전을 베껴 쓰는 필사 책, 명화를 직접 그리는 미술 DIY 제품, 스크래치 나이트뷰도 떴다. 스크래치 나이트뷰란 밑그림을 따라 뾰족한 펜으로 종이를 긁어내 도시 야경을 그리는 것이다. 가로, 세로 8mm 크기의 초소형 블록으로 다양한 모양을 만드는 나노블록도 지난 한 해 사이 10배 이상의 매출 증가세를 보였다.
이러한 ‘나 홀로 문화’는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나 마음의 편안함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소중한 추억과 기억을 되살리며 현실로부터 도피해 위로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중은 자존감을 되찾는다. 불안한 미래를 그리기보다 작은 취미를 통해서 자신을 위로하는 문화 현상은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다.
분노의 희생양 찾기
2015년 한 해 가장 화제가 된 용어는 ‘금수저’ ‘흙수저’다. 이른바 ‘세대계급론’의 부상이다. 그간 세대문화는 계급과 분리되는 경향이 있었다. 특정 세대는 그 시대에 맞는 자기만의 유사한 문화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세대문화는 나이보다는 계급에 기초하게 됐다.세대계급론은 자기혐오이면서 동시에 사회에 대한 분노다. ‘흙수저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기 혐오는 무기력증의 다른 표현이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고, 그러므로 ‘헬조선’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N포세대’라는 자기 정의다. 이러한 세대계급론은, 젊은 세대가 취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이상을 드러낸다. 가능성과 희망의 상실이라는 점에서 세대계급론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 더욱 심각한 갈등으로 드러날 것이다.
2015년 ‘메갈리아’의 등장에서 보듯 젠더와 관련해서도 혐오와 분노가 표출됐다. 그간 일간베스트 등에서 남성이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혐오하고 비난했기 때문에 메갈리아의 분노 폭발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이제는 누구도 더 이상 인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받은 대로 돌려줘야 한다.’ 이것이 대중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러한 분노와 혐오는 개인이나 젠더를 넘어 사회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방식으로든 분노와 혐오는 확대될 것이다. 그 대상이 정치권이나 경제계가 될 수도 있고, 상류층을 향해 폭발할 수도 있다. 혹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특정 인물이나 대상을 희생양 삼아 사이버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날 것이다.
과연 치유는 가능할까. 한때 유행한 ‘힐링’은 약효가 떨어졌다. 마음의 힐링만으로는 질병을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멘토들이 대중에게 한 위로도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위로와 치료는 다르다. 위로가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라면, 치유는 병적 징후에 대한 처방이다.
무기력증이라는 병적 현상에 대한 가장 분명한 치유법은 경제성장, 부의 재분배, 질 좋은 일자리의 확대일 것이다. 그러나 2016년에 경제적으로 치유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터널경제’ 속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치유책으로는 복지 확대나 노동환경 개선 등이 있지만, 이것들이 오는 4월 총선에서 핵심 의제로 설정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불행하게도 정치, 경제, 사회제도로부터 정서적 허기를 치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혼자 놀기’에서 벗어나야
따라서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치유법을 찾아야 한다. 대중이 정서적 허기에 빠진 심리적 요인은 무기력증이지만, 동시에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실존적 불안, 즉 심리적 안정감을 잃고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는 인정욕구가 좌절됐기 때문에 발생한다. 인정욕구는 말 그대로인정받고 싶은 욕구다. 불안감은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하는 데서 자라난다. 따라서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는 것에서부터 문화적 치유법을 찾아야 한다.그 방법은 ‘문화 게릴라’가 되고 ‘놀이족’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문화 게릴라란, 체 게바라와 같은 이념적 게릴라를 의미하진 않는다. 문화 게릴라는 권력과 제도 속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제도화한 틀 속에 갇히는 것을 거부하면서 자신만의 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또한 놀이란 일생생활의 이해관계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지속적으로 즐기는 자유로운 행위다. 따라서 놀이족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하나의 놀이터로 바라보면서 자신이 특수한 상황 속에서 타인과 함께 있다는 감정,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공유하는 감정을 가지면서 긍정적이고 즐기는 태도를 추구하는 것이다.
최근 혼자 놀기나 분노를 터뜨리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대중이 적지 않다. 그 한 예가 취향(취미)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들 공동체는 공통의 가치나 기준을 갖고 서로 유사한 문화를 선택한 사람들의 집단이다. 대중은 아무거나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이나 심미적 기준을 개입시키며 자신의 취미를 만든다. 실로 다양한 취향 공동체가 있다. 산행과 같은 운동, 스스로 물건을 제작하는 활동, 춤이나 노래 같은 여가활동, 사회봉사 등이 그것이다. 혼자 놀기, 집 안 칩거, 세상에 대한 혐오와 분노에서 벗어나는 길은, 공유와 참여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공동체에 참여하며 스스로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갈 때 성취할 수 있다.
주 창 윤
● 1963년 대전 출생
● 영국 글래스고대 박사
● ‘한국언론학보’ 편집위원장
● 저서 : ‘허기사회’, ‘사랑이란 무엇인가’, ‘대한민국 컬처 코드’ 등
● 現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