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호

〈새 연재〉 바리스타 박영순의 커피 인문학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커피,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갔을까

  • 박영순 | 바리스타,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입력2016-05-24 14: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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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는 커피를 정말 사랑한다. ‘세상에서 원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많은 원자재’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한국인에게도 커피는 물처럼 많이 마시는 음료다. 성인 1인당 1년에 484잔을 마신다. 그런 커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까. 커피가 주는 행복은 맛과 향뿐만이 아니다. 커피는 그 뛰어난 향미만큼이나 풍성한 이야기를 피워내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커피는 누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이를 두고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오래도록 경합을 벌였다. 아프리카(에티오피아)냐 아라비아 반도(예멘)냐, 그리스도 국가(에티오피아)냐, 이슬람 국가(예멘)냐의 자존심이 걸린 논쟁이기도 했다. 공방 끝에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했지만, 최초로 재배한 곳은 예멘”이라는 쪽으로 절충안이 나왔지만, 모를 일이다. 언제 어떤 숨은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기록된 역사가 반드시 진실이라곤 할 수 없다. 어떤 역사는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더욱이 기록하는 자가 사건의 당사자라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기록을 남기려는 유혹에 빠지리라.



    칼디의 전설

    커피 입문자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재미난 이야기는 ‘염소지기 칼디(Kaldi)의 전설’일 것이다. 내용인즉 이렇다.

    “아주 먼 옛날, 에티오피아의 계곡에 칼디라는 목동이 살았다. 염소를 계곡에 풀어놓았는데, 어느 날 늙은 염소가 힘이 솟구치는 듯 활발히 움직이며 젊은 염소들을 제압하는 게 아닌가. 가만히 살펴보니, 빨간 열매가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늙은 염소는 빨간 열매를 먹으면 기운차게 움직였다. 칼디는 그 이유가 궁금해 열매가 많이 달린 가지를 꺾어 마을의 지혜로운 사람(대체로 ‘수도승’으로 기록함)에게 가져다줬다.



    칼디는 ‘어르신! 염소가 이 열매만 먹었다 하면 날뜁니다. 이유를 알려주세요’ 라고 청했다. 지혜로운 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거기에 두고 가거라’ 했다. 며칠이 지나 칼디가 지혜로운 자를 다시 찾았다. 그는 칼디를 보자마자 버선발로 뛰어나와 칼디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는 ‘열매를 더 갖다달라’고 애원했다. 그 열매를 먹고는 밤새 졸지 않고 기도를 잘 올렸다면서 마치 열매에 중독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칼디의 전설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우리네 구전동화 같은 이야기인데, 커피의 기원을 설명하는 정설처럼 굳어졌다. ‘칼디’라는 이름을 내건 카페나 원두 상표를 세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칼디가 어느 시대 사람이고, 언제부터 그들이 커피씨를 볶는 법을 깨우쳤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커피가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전해진 9세기보다 훨씬 이전이며, 어쩌면 기원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커피의 기원과 관련해 칼디나 에티오피아가 언급되면 그 시기를 구체적으로 적지 않고 ‘아주 먼 옛날’이라고만 한다.

    칼디에 대해 말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지면서 역사적 사실처럼 커피 애호가들을 매료시킨다. 비록 칼디가 우리를 관능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커피의 향미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칼디의 존재 덕분에 커피 마시는 자리의 이야깃거리는 더욱 풍성해진다. ‘스토리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버전으로 전해지는 칼디 이야기의 허점을 파고 들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칼디를 양치기라고 해놓고는 커피 체리를 먹고 춤추는 염소를 봤다고 말하는 모순. 2~3세기의 일이라면서 칼디가 이슬람 수도승에게 커피를 전했다는 역사적 착각.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것이 610년이니, 7세기 초 이전엔 이슬람 수도승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에티오피아 기원설

    우리도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1896년 아관파천 때라면서 고종황제에게 융드립한 커피를 제공하는 어느 영화 속 한 장면은 커피 애호가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커피를 필터링해 마시는 것은 그로부터 12년 뒤인 1908년 독일의 멜리타 여사가 도구를 만듦으로써 가능해졌다.

    어쨌든 아랍의 적지 않은 역사학자가 자신들의 논문이나 저서에 칼디를 예멘의 목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계인을 열광시키는 커피가 ‘자랑스러운 이슬람의 문화’라는 논리를 완성하려면 커피의 기원 역시 이슬람 국가 어느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세월이 드러내주는 법. DNA 분석을 통해 커피나무의 기원이 아랍인들이 주장하듯 인류사에서 커피를 처음 경작한 자신들의 땅 예멘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고원이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힘을 잃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티오피아 고원에선 재래종 커피나무가 속속 발견된다. 커피의 기원지라고 말하려면 이처럼 원종(native variety)이 있어야 설득력을 지닌다.

    에티오피아는 3000년 전 이스라엘의 솔로몬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메넬리크 1세가 초대 황제가 됐다는 건국신화를 가진 그리스도 국가다. 지금도 크리스마스에 염소를 잡아 가족과 함께 나누며 축하하는 풍습이 있다. 에티오피아가 외세의 지배를 받은 것은 16세기 이슬람 교도에게 14년, 20세기 이탈리아에 5년뿐이다. 앞서 6세기쯤엔 당시 아비시니아(현재의 에티오피아)가 예멘을 포함한 아라비아 남부지역을 공격했다. 아마도 이때 예멘으로 커피가 전파됐을 것이란 게 에티오피아의 시각에서 본 커피의 역사다.

    그렇다면 에티오피아인은 왜 커피의 기원에 대한 자신들의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야기를 만들긴 했지만 퍼트리지 못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4대 커피 기원설(뒤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중 칼디, 오마르, 마호메트의 전설은 ‘커피의 각성효과’를 토대로 이슬람 쪽에서 만든 이야기라고 본다. 나머지 하나인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각성효과가 아니라 ‘에너지 원천으로서의 커피’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로 흐른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유래설은 기록이 아니라 구전인 탓에 생명력을 지니기엔 부족했다.

    커피의 기원에 대한 인류의 첫 기록은 이탈리아 로마대 언어학 교수인 안토니 파우스트 나이로니가 1671년에 쓴 ‘잠들지 않는 수도원’이다. 이 책에 “이슬람 수도승이 칼디가 준 커피 열매의 쓰임새를 몰라 불에 내던졌는데, 기분 좋은 향이 나자 볶은 콩을 갈아 따뜻한 물에 타서 먹었다”라고 적혀 있다. 칼디 때 이미 커피씨를 볶아 먹는 단계를 깨우쳤다는 말인데, 비약이 이 정도면 대단한 이야기꾼임에 분명하다. 이 이야기는 1922년 커피의 기원을 심도 있게 추적한 윌리엄 유커스의 ‘커피의 모든 것(All About Coffee)’에 인용되면서 정설처럼 됐다.

    반면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커피나무 열매를 다른 곡류와 함께 갈아 식량으로 먹었다”는 기록 말고는 별 재미가 없다. 그렇다보니 칼디나 오마르, 심지어 지극히 종교적인 마호메트 기원설보다도 파급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뿌리가 더 깊고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커피 그 자체에 대한 첫 기록은 나이로니보다 700년 이상 앞선 서기 900년쯤 페르시아 의사 라제스가 남겼다. 그는 커피를 ‘번컴(Bunchum)’이라고 적었는데, ‘따뜻하면서도 독한, 그러나 위장에 유익한 음료’라고 표현했다. 이어 1000년경 무슬림 의사이자 철학자인 아비세나는 커피나무와 생두를 ‘분(Bunn)’, 그 음료를 ‘번컴’이라고 구별해 적으면서 약리효과도 기술했다.

    두 사람의 기록은 커피의 기원지가 에티오피아임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지구상 어디를 뒤져도 커피를 ‘분나(Bunna)’ ‘부나(Buna)’ ‘분’ ‘번컴’이라고 부르는 곳은 에티오피아밖에 없다. 커피 원산지로 꼽히는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에선 지금도 커피를 지칭할 때 ‘c’나 ‘k’는 발음조차 하지 않는다. 에티오피아인들이 스토리텔링을 잘했다면 커피는 오늘날 번컴으로 불렸을지 모른다. 에티오피아인들 사이에 전해지는 커피 기원설도 꽤 흥미롭다. 사연은 이렇다.


    승리의 상징  ‘커피 당구공’

    에티오피아에 소를 키우며 사는 갈라(Galla)족이 있었다. 유목민인 이들은 자주 이동해야 했기에 간편하게 지니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것을 잘 만들었다. 그러던 중 체리처럼 빨간 열매를 씹으면 힘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열매를 통째로 먹다가 그것의 에너지가 씨앗에 농축돼 있음을 깨닫고, 오랜 세월을 거쳐 열매를 동물성 기름과 섞어 볶아 당구공처럼 뭉쳐 가지고 다니며 힘을 써야 할 때 꺼내 먹었다.

    이 방법은 여러 면에서 유용했다. 사냥을 하거나 새 주거지를 찾으려고 산속을 헤맬 때 ‘커피 당구공’은 비상식량으로 제격이었다. 입에 쏙 넣으면 곧 에너지가 불끈 솟아오르고 집중력도 바짝 높아지는 커피의 놀라운 능력은 다른 부족과의 전투를 앞뒀을 때 더욱 요긴했다. 칼디 시절에 에티오피아 부족들은 대부분 유목민이었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주거지를 옮겨야 했기에 부족 간 마찰이 일었고 크고 작은 전투는 부족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했다.

    목숨을 건 전투를 앞두고 각 부족은 커피의 각성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찾기에 골몰했다. 전투에 앞서 커피를 마시는 성스러운 의식(儀式)도 생겨났다. 의식은 커피 마시는 방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들은 그 효과가 씨에 농축돼 있음을 깨닫고 씨만 골라내 볶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기분 좋은 향기는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키웠고 ‘톡톡’ 터지는 크랙 소리는 그들에게 승리를 약속하는 신의 응답이었다.

    갈라족은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커피 당구공 식문화’를 퍼트린다. 갈라족보다 고지대에 살던 오로모족에게 커피가 전해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커피나무는 해발고도가 높을수록 향미가 좋아진다. 오로모족이 더 좋은 커피 열매를 구하게 되면서 커피를 즐기는 문화는 급속히 퍼져나갔다.

    에티오피아를 ‘커피의 고향’이라고 일컫는 것은 인류의 기원을 아프리카로 보는 관점과 비슷하다. 유전학적 측면에서 모계 유전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역추적해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아프리카 대륙의 한 여성이 현 인류의 기원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 Eve)’라고 명명된 이 여성은 약 2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오래된 물증은 화석인데,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계곡에서 발견된 350만 년 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뼈 화석이 그것이다. 발굴단이 당시 비틀스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다이아몬드를 지닌 하늘의 루시)를 듣고 있다가 발견한 것이 인연이 돼 ‘루시’라는 이름을 얻은 이 화석의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현재까지 인류의 기원으로 대접받는다. 루시가 발굴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커피가 처음 발견된 지역으로 알려진 카파가 있다. 오늘날엔 짐마(Djimmah)라고 불린다.



    ‘생명의 고향’ 에티오피아

    45억 년인 지구 나이를 24시간으로 가정하면 루시를 선두로 인류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오후 11시 58분이다. 지구 역사 24시에서 인류가 등장한 것은 불과 2분 전의 일이다. 하물며 커피가 발견(6~7세기로 추정)된 지는 눈 깜짝할 사이보다 짧은 100분의 4초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

    커피나무는 아마도 인류보다 훨씬 먼저 생명력을 얻어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지금까지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깊은 계곡이 많다. 식물학자들이 새로운 종자를 찾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 에티오피아이고, 3000여 종의 종자가 그 유래를 에티오피아에 두고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가 세계 각지로 퍼지면서 커피 품종의 다양성은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만 품종 개량이 이뤄진 탓이다. 품종의 획일화는 종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렇기에 야생 품종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커피의 기원지 에티오피아가 갖는 진정한 가치다.

    압달 카디르가 1587년에 쓴 ‘커피의 합법성 논쟁과 관련한 무죄 주장’이란 문헌이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이 문헌에 칼디와 오마르(Omar)가 처음으로 언급된다. 칼디에 대해선 시기를 적지 않고 이집트 북부 또는 아비시니아 지방의 염소지기라고 소개하면서, 그에게서 열매를 받은 수도원 원장이 효능을 알게 된 후 수도사들에게 커피 열매 달인 즙을 마셔 밤새 기도하게 했다고 적었다.

    이슬람권에서 칼디의 전설은 ‘불면(不眠)의 수도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마르에 대해선 1258년이라고 시기를 못 박으면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커피 열매를 달여 마신 사연을 적었다. 마호메트가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커피 열매를 알게 됐다는 이른바 ‘마호메트 기원설’은 그 출처를 알 수 없다. 무슬림들 사이에 구전돼 신화로 굳어진 듯하다.



    마호메트의 커피

    커피의 유래에 관한 에티오피아의 멋진 스토리텔링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이슬람 문화권의 메카를 방문하는 ‘하지(Hajj)’라는 풍습에 무릎을 꿇고 만다. 당시 ‘커피를 몸속에 넣고 죽는 자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스토리가 만들어져 커피는 순식간에 전 세계 이슬람 국가에 퍼졌고, 결국 커피는 이슬람의 문화가 됐다. 그리스도 국가인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원조이면서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역사적 사실은 일면 “콘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유통(전파)이 약하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교훈을 준다.

    커피가 마호메트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는 종교적이어서 커피 관련 교재에선 언급만 할 뿐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않는다. 요지는 이렇다.

    “마호메트가 동굴에서 수행을 하는데, 거의 죽을 지경이 됐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기력이 다해가는 상황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로 안내했다. 열매를 따먹은 마호메트는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2년간 가브리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따라 읽으라며 이야기를 해주는데, 살아가는 데 매우 긴요한 것이었다고 한다. 마호메트는 꿈에서 깨면 천사가 해준 말을 잊지 않도록 양피에 적었다. 이것이 코란(Koran)이 됐다.”  

    이슬람 국가에선 커피의 유래가 마호메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따라서 무슬림에게 커피는 아무리 일찍 잡아도 7세기를 넘지 못한다. 마호메트는 570년 4월 메카에서 이 지역을 지배하던 쿠라이시족의 하심(Hashim) 가문에서 태어났다. 유복자라 삼촌과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이 부족은 구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일의 자손이라고 주장한다. 아브라함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직계로 묘사되며, 따라서 마호메트는 하느님(무슬림에게는 알라)이 창조한 성스러운 아담의 핏줄이 된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 제단을 짓고 알라신에게 기도를 올렸는데, 노아의 방주를 거치면서 흔적이 사라졌다. 그것을 다시 찾아 신전으로 꾸민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다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위치를 잃어버린 신전을 되찾은 사람이 마호메트의 할아버지다. 마호메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 사망했기에 신전을 찾은 전설의 주인공은 할아버지가 됐다.

    신전은 찾아냈지만 다신교가 횡행하면서 메카의 신전은 온갖 잡신을 모아둔 공간으로 전락했다. 잡신을 모두 쫓아내고 유일신 알라만을 이곳에 모신 인물이 마호메트다. 그리고 이 신전이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Kaaba) 신전이다.       

    5~6세기 아라비아 반도의 신앙 형태는 다신교였다. 애니미즘적 성격이 강한 원시 종교였다. 이에 앞서 서기 70년경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유대교인들이 아라비아 반도로 내려와 유일신의 맥락을 이어갔다.



    최고급 커피 名所 된 예멘

    6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사산왕조 간 전쟁으로 말미암아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왕래하던 대상들은 아라비아 반도를 지나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 덕분에 메카는 교역의 중심이 됐다. 570년경 메카를 지배하던 부족이 마호메트가 속한 가문이었고, 마호메트는 25세 때 부유한 미망인 카디자에게 고용돼 사업을 크게 성공시켰다.

    그는 40세 때 카디자와 결혼해 경제적 안정을 얻으면서 영향력 있는 지위를 얻었다. 610년쯤 그는 신들린 상태의 종교적 체험을 한다. 꿈에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알라 이외엔 신이 없다는 유일신 사상을 갖게 되고, 이 사상을 주변에 전파해 종교적으로도 ‘성공’했다. 바로 이 대목에 커피 유래설이 끼어 있다. 무슬림은 마호메트에게 건강을 되찾게 해준 커피를 신성하게 여겼다. 커피를 몸에 담은 자는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팽배해져 무슬림이라면 모두 마셔야 하는 ‘이슬람의 음료’처럼 됐다.   

    커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예멘은 아예 커피를 직접 재배하기에 이른다. 최우성 박사(감리교 태은교회 목사)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선 2가지 이론이 전해진다. 6세기 고대 에티오피아는 국력이 강해 홍해 건너 아라비아반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바왕국(지금의 예멘지역)을 식민통치했는데 그때 자국의 야생 커피를 예멘 지역에 옮겨 심었다는 고대 에티오피아 식민지설, 1450년 에티오피아를 여행한 제말 에딘에 의해 커피 관목의 경작법과 음용법이 예멘에 전해졌다는 커피 경작법 유래설이다.

    어느 이야기도 예멘을 커피나무의 고향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예멘의 토질과 기후가 커피 경작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에 예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최고급 커피를 생산하는 명소로 찬사를 받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 대목을 종교적 시각으로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공통 경전인 구약성경 창세기에 따르면 태초에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 신은 세상의 모든 동·식물을 만들었고, 땅엔 각종 씨 맺는 채소와 나무가 자라났다. 신은 세상을 창조한 후 에덴이라는 동산을 만들고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 동산을 다스리게 위임했다.

    에덴동산엔 4개의 강이 흘렀는데 기혼, 비혼, 힛데겔, 유브라데다. 유브라데 강은 현재 이라크의 유프라테스 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혼 강은 구스온 땅에 두루 흐르고 있었는데, 그 곳은 아프리카 남부인 에티오피아 지역이다. ‘구스’는 에티오피아의 옛 이름이다. 이로 미뤄볼 때 에덴동산은 작은 지역을 의미하지 않고,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아프리카 남부까지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커피나무 고향은 에덴동산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이 성립된다.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티오피아다. 에티오피아는 에덴의 강이 흐르던 곳이다. 그러므로 커피나무의 고향은 에덴동산이다.’ 구약성경의 구절을 추적해도 커피나무의 고향이 예멘이라는 주장은 에티오피아만큼 단단한 토대를 지니지 못한다.

    이슬람도 구약성서를 믿는다. 더욱이 무슬림은 아담과 아브라함, 이스마일로 내려오는 혈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에 태초부터 커피나무가 있었다는 믿음은 설령 그곳이 자신들의 텃밭인 아라비아 반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국가인 에티오피아라고 할지라도 그리 서운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닐 성싶다. 

    박 영 순


    ● 충북대 미생물학과 졸업, 고려대 언론대학원 석사
    ● 세계일보 기자, 메트로신문사 취재부장, 포커스신문사 편집국장  
    ● 現 인터넷신문 커피데일리 발행인, 커피비평가협회장,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경민대 평생대학원 바리스타과정 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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