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호

Interview

“정체성만 찾다간 집권 못한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

  • 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입력2016-05-26 11: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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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감 찾기 굉장히 힘들다
    • 문재인 전 대표와 특별한 관계 아니다
    • ‘킹 메이커’ 하다 실망…다시는 안 해
    • ‘右클릭’ 아니라 국민 따라가는 것
    만날 때마다 사실 좀 불편하다. 너무 날카롭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데 정말 재주가 있다. 늘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인상의 이면이다. 김종인 대표와 가까운 전직 고위관료는 그의 지시형, 명령형 말투에 질렸다고 토로했다. 기자가 “더 대중적인 정치인이 되기 위해 어투를 부드럽게 바꿔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자 김 대표는 “그게 내 특성인데 어떡하겠어”라며 단박에 자른다.

    “나는 복잡한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얘기를 분명히 해야지. 말을 이렇게 저렇게 돌려서 하는 거, 난 절대 못해. 정치인의 말은 정직해야 된다고 생각해. 여러 가지 수사(修辭)를 쓰는 건 옳지 않은 거지.”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촌철살인 유머가 떠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4월 30일 공화당 대권주자 도널드 트럼프를 이렇게 비꼬았다. “공화당 지도부가 트럼프에게 외교정책 경험이 없다고 걱정한다죠? 하지만 트럼프는 수년 동안 세계의 지도자들을 숱하게 만났잖아요. 미스 스웨덴, 미스 아르헨티나….”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내가 바칠 것은 피와 땀과 눈물밖에 없다”며 전란에 지친 국민의 마음을 위로했다. 수사가 정치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하지만 김 대표는 그런 스타일이 아닌 것이다.



    “난 말 돌려서 못해”

    “그러니까 남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말을 뱅뱅 돌려서 하지 않는다는 거지. ‘대중적 정치인’이란 개념도 과연 옳은 것인지 납득이 잘 안돼. 남 앞에서 적당히 웃기도 하고 비위도 맞춰줘야 대중적인 정치인이 된다면 난 그걸 닮을 생각이 없어.”

    김 대표의 어투, 어법, 성정은 그의 리더십 유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좋게 말하면 강력한 리더십, 나쁘게 보면 독선적 리더십.

    “하여튼 내게 ‘책임을 지고 당을 구해내고 선거를 이끌라’고 해서 내 방식대로 했을 뿐이야. 누구한테 물어보지도 않았고. 내가 평소 생각하던 대로, 정당을 어떻게 끌고 나가면 될지 내 머릿속에 나름대로 그림이 있었거든. 그것대로 선거를 치른 거지. 우리나라에서 야당의 리더십은 굉장히 강력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힘을 발휘할 수 없어.”

    이런 생각이야말로 독선이 아닐까.

    “그게 독선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독재를 한 것도 아니고, 비대위원들한테 다 물어보고 의견을 들으며 이끌어왔다. 내 멋대로 뭘 했다고 그러는데, 내 나름의 특성을 갖고 이끌어온 것뿐이다. 리더십은 각자 고유의 것이 따로 있는 거지. 리더십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문제해결 능력이 있느냐는 거다. 화합한답시고 논의만 하고 해결하지 못하면 그건 리더십이 아니야.”

    자신을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과 주변에서 그를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처음엔 김종인 대표의 어법이 신선했으나 이제 누구나 그의 의도를 안다”며 “당 대표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대표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읽힌다”라고 꼬집었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 김 대표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경제 해법 내놓겠다”

    5월 11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김 대표는 “당 대표엔 절대 관심 없다” “더민주당이 수권정당이 되려면 안정 속의 변화가 필요하다” “킹 메이커 했다가 실망해서 다시는 안 하겠다” “대통령감 찾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말을 쏟아냈다. ‘시한부’ 비대위 대표로서의 고민과 더민주당의 미래에 대해 민낯으로 토로했다. 당 대표 추대, 전당대회 개최 시기 등으로 갈등을 빚은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선 “나하고 특별한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며 선을 그었다.

    ▼ 4월 25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 참배하며 방명록에 ‘희망의 수권정당이 되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수권정당의 희망이 밝다고 보나.

    “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제1당이 됐다. 와해될 뻔한 정당을 안정시켜 총선을 치렀고 123석을 얻어냈다. 그러니 수권정당의 바탕이 마련된 거다. 물론 지금부터 내년 대선 때까지 당이 어떻게 변모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실현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 총선 직후 누구를 당 대표로 세우냐는 문제로 시끄러웠다. 추미애 의원은 “호남 참패를 가져온 현 비대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더민주의 심장인 호남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고, 이용득 당선자는 “먹튀 투기자본이 우리당에 들어왔다”고 비판했다.

    “정당엔 항상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사람이 많으니 이런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당 대표를 추대하느니 경선을 하느니 하는 얘기들이 있었다. 내가 당선자 연석회의에서도 ‘전당대회 연기를 바라지 않는다’ ‘비대위 해산하고 떠날 용의도 있다’고 했다. 왜냐고? 솔직히 나는 당 대표에 추호도 관심이 없으니까. 그러니 뭐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는 것 아니겠나.”

    ▼ 전당대회가 8월 말~ 9월 초에 열리는데, 전당대회 시기와 수권정당 만들기는 무슨 관계가 있나.

    “전대(全大) 시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전대를 하면 새로운 지도부가 생겨날 거고, 그러면 그들이 수권정당이 되기 위한 노력을 스스로 해야 한다.”

    ▼ 김 대표가 새로운 지도부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지도부에 속하지 않고 어떻게 수권정당 만들기에 나서겠나.

    “나의 1차적 과제는 끝났다. 당을 안정화하고 원내 제1당이 됐으니까.”


    베일 속 ‘수권정당 플랜’

    ▼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문 전 대표가 찾아와서 당을 잘 이끌어달라고 했고, 선거도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는 상황이라면 서로 더 긴밀한 사이가 돼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두 분은 물과 기름 사이인 듯하다.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있는 사람을 놓고 뭐, 추대니 경선이니, 비대위 기한을 짧게 하느니 길게 하느니 그런 얘기를 할 이유가 없는 거 아닌가. 내가 그런 거 해달라고 한 적도 없고. 나를 자극하지 않으면 지금 더민주당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게 아무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 전당대회가 끝난 뒤 당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보나.

    “수권정당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당이 옛날처럼 내부가 균열돼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절대 보여줘선 안 된다. 당이 안정된 모습으로 지속적으로 변모해가면 국민이 ‘저 당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수권정당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수권정당 만들기 전략 같은 게 있나.

    “남한테 가르쳐주면 나는 빈 사람 돼버리게? 허허.”

    김 대표의 측근에 따르면 그는 지난 1월 더민주당에 합류할 때 수권정당 플랜을 갖고 왔다고 한다. 다만 이 시점에 그것을 공개할 경우 당내 분란을 자초할 수 있어 큰 방향만 제시하고 세부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

    ▼ 당선자 연석회의에서 나온 경제비상대책위원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지금 우리 경제에 대해서 걱정하는 국민이 너무 많다. 경제 각 분야가 무슨 절벽에 부딪혀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니 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구조를 재구성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그것을 누가 어떻게 해낼 것이냐가 중요한 과제인데, 위원회에서 그것을 제시해 국민의 신뢰를 받도록 해야 한다.”

    ▼ 차기 대선에서 더민주당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를 이길 수 있다고 보나.

    “그건 앞에서 얘기했듯 전제가 필요하다. 더민주당이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고 안정 속에 변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

    ▼ 어떤 후보를 내세울 작정인가.

    “당의 대통령 후보를 만드는 과정이 진행 중인데, 특정인을 찍어서 얘기할 수는 없다.”



    “밤낮 ‘뿌리’만 생각해서야…”

    ▼ 4·13 총선에서 더민주당은 호남에서 대패했다. 차기 대선에서도 호남의 역할이 중요할텐데.

    “호남만 놓고 보면 패배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선거 전체를 놓고 보면 더민주당이 제1당이 됐으니 승리한 것 아닌가. 더민주당이 전국 정당이 된 것이므로 호남 외부에서 확장성 있는 대선후보가 나오면 대다수 호남 유권자들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국민의당이 앞으로 어떻게 변하는지에 따라 호남 민심이 바뀔 수도, 안 바뀔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다음 대선이 3당 경쟁구도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 더민주당 지지자들의 성향은 진보인가, 중도개혁인가.

    “정당을 하나의 프레임에 넣어두면 수권을 할 수 없다. 근대 이후 정당은 대중정당화하지 않으면 많은 표를 얻을 수 없었다. 집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정당이다. 그러니 표가 어디에 많이 모여 있는지를 보고 찾아가야 한다. 자신의 특별한 정체성만 내세우는 정당은 영원히 집권할 수 없다. 세상이 자꾸 바뀌고, 그 과정 속에 국민의 생각도 자꾸 바뀐다. 그 변화를 정당이 따라가야 한다. 국민은 변하는데 정당은 독야청청하면 표를 얻을 수 없다.”

    ▼ 대중정당화한다는 것은 더민주당이 ‘우(右)클릭’ 한다는 것인가.

    “나는 우클릭이니 좌클릭이니 하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국민이 바라는 대로 따라간다’는 게 맞다. 늘 이념에 투철한 사람들은 자기가 평소에 믿었던 게 왜 안 일어나느냐고 말한다. ‘강단 이데올로기’를 따르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다.”

    ▼ 더민주당의 ‘뿌리’를 어떻게 분석하는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민당을 이끌어갈 때의 뿌리가 호남이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더민주당으로 발전해온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정치 지형이 많이 변했다. 그렇게 바뀐 것을 전제로 해서 우리 당의 확장성을 생각해야지, 밤낮 옛날 뿌리만 생각해서는 일이 제대로 안 된다.”

    ▼ 더민주당이 종종 중도개혁적 성향을 내비치기도 하지만, 아직도 ‘민주 대 반민주’ 가치노선에 더 집착하는 것 같다.

    “권위주의 통치 시대에는 민주화만 내세우면 득표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87년 헌법으로 5년마다 대통령선거를 한 지 30년이 다 돼간다. 아직도 민주냐 반민주냐를 따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 문재인 전 대표 계파는 아직도 ‘민주 노선’이라고 하는데.

    “그건 옛날에나 하던 소리다. 이제는 그 소리 해서 유권자가 따라오질 않는다. 그런 데서 빨리빨리 탈피해야 더민주당이 변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야당엔 수단이 없다”

    ▼ 지금 조선업과 해운업의 구조조정이 핫이슈다. 더민주당도 본질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가 대처를 소홀히 한 것도 문제지만 더민주당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

    “야당은 구조조정을 할 능력이 없다. 아무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지금 구조조정을 늦추면 우리나라의 잠재력이 점점 더 훼손되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서두르라고 촉구한 거다. 정부가 구조조정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 조선업과 해운업 현장에도 가볼 필요가 있지 않나.

    “현장에는 가봐야지. 구조조정을 하면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도 발생한다. 직원을 해고하면 그들의 생존에 관한 문제가 불거진다. 일시적으로 임금을 지원하는 것뿐 아니라 교육을 통한 직종 전환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니 현장에서 구조조정 대상이 된 분들을 만나 의견을 들어볼 수는 있겠지만, 야당이 정부더러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거다.”

    ▼ 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청문회 개최를 요청했는데.

    “우리 당에서 지금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조사하고 있는데, 청문회가 우리 당 혼자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새누리당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성사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얼마 남지 않은 19대 국회에서 과연 저게 되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김 대표가 국보위 간 이유▼  “5·18 진실 알았지만, 나라 위해 갔다” ▼
    김성주 더민주당 의원은 4월 28일 더민주의 호남 패배 원인으로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셀프 공천’, 비례대표 공천 파동과 함께 김 대표의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참여 전력 등을 꼽았다. 1월 30일 김 대표가 차명섭 5·18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국보위 참여를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지만 ‘국보위 낙인’은 아직도 호남 민심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듯하다.

    신동아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인터뷰에서 김 대표의 국보위 활동에 대해 물었다. 전 전 대통령은 “김 대표와 알고 지내는 사이이긴 하지만 국보위 활동 등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했다.

    ▼ 5공 주요 인사에게 김 대표의 국보위 시절에 대해 물었더니 잘 모른다고 하더라.

    “알 리가 없지, 나를 어떻게 알겠나. 나는 재무위원회의 재무위원, 세무 담당이었다.”

    ▼ 호남에서 국보위 전력으로 문제 제기를 했고, 아직도 논란이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

    “초기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런 구실을 잡은 것이다. 나는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나라 잘되는 일에 내 모든 지식을 투입해 살아온 사람이다. 나는 권력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다.”

    ▼ 어떻게 국보위에 가게 됐나.

    “5·18 직후인 1980년 6월 국보위가 발족됐다. 어느 날 갑자기 ‘윤 중령’인가가 찾아와서 국보위를 발족하니 도와달라고 했다. 부가가치세를 없앨 예정이니 세금 전문가로서 도와달라고 했다. 부가가치세 제도를 시행한 지 몇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걸 없애면 혼란이 올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국보위에 합류했다. 남의 얘기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해석하고, 저렇게도 해석한다. 굉장히 못마땅하다.”

    ▼ 그때 5·18의 진실에 대해선 알고 있었나.

    “그때 나 역시 군인들이 무모한 짓을 했구나 하고 생각한 사람이다. 남을 헐뜯는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데 사실인 것처럼 얘기하고 남을 매도하는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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