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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흑역사

‘차별과 배제 넘어 헌법 가치 파괴’

쁠랙크리스트에서 화이트리스트까지

  • 김당 | ‘시크릿파일 국정원’ 저자 dangkim@empas.com

‘차별과 배제 넘어 헌법 가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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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특검,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중대 범죄’
  • ● 일제강점기 토양에서 자란 범죄의 씨앗
  • ● 박정희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격세유전’
  • ● 고위 장교 800명의 옐로리스트
  • ● 정보기관의 정치사찰과 사생활 침해
  • ● 이명박·노무현 정부 때도 편파 지원
‘차별과 배제 넘어 헌법 가치 파괴’

박영수 특검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이하 박영수 특검)가 3월 6일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박영수 특검은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결과를 이어받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공여 사건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 합병 관련 직권남용 및 배임 사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입시 및 학사비리 사건 △최순실 민관 인사 및 이권사업 개입 사건 등에 대해 90일 동안 수사했다.

수사의 한계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박영수 특검이 거둔 큰 성과 가운데 하나가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이에 대한 박영수 특검의 인식은 최종 수사결과 발표에 잘 드러나 있다.

“‘정부가 청와대의 입장에 이견을 표명하는 세력은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여, 정권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려는 행위로 바라보려는 시각에 기인한 것으로서 헌법의 본질적 가치에 위배되는 중대 범죄로 판단됨.”

‘롯데와 CJ 협조 안 해’

박영수 특검은 이미 2월 7일 김기춘(77)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50)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과 관련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및 강요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박영수 특검은 두 사람 외에도 김종덕(59) 전 문체부장관, 정관주(52) 전 문체부 1차관, 김상률(56)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신동철(55) 전 정무비서관, 김소영(50) 전 문화체육비서관 등을 줄줄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했다.

박영수 특검은 당시 김기춘 전 실장 등을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김종덕, 신동철, 정관주, 대통령, 최서원(최순실의 개명 후 이름) 및 문체부 담당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라고 박 대통령을 공모자로 명시했다. 대통령이 문화예술계를 대상으로 작성한 이른바 ‘좌파 척결 블랙리스트’와 ‘우파 지원 화이트리스트’를 운용하는 데 공모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국가정보원의 역할이다. 박영수 특검 수사결과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의 근거를 정책보고서 형태로 청와대에 제공했다. 또한 국정원은 청와대가 문체부에 명단을 통보하면, 그 명단이 배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해주는 방식으로 블랙리스트 운용을 지원했다.

박근혜 정부의 ‘좌파 척결 블랙리스트’가 작성·시행된 배경에는 군사정권 시절에나 존재했을 법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천박한 문화·예술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김 수석의 업무일지에는 김기춘 실장이 수석비서관들에게 “70년대와 같은 열의로 대처해야”라고 지시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김기춘은 또한 ‘문화는 보수이념을 전 사회에 전파하는 하나의 도구’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문화계의 종북세력 확산 차단을 이 정부의 국정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이런 공안적 사고방식과 국정 기조가 실제 정부의 예산지원 배제로 실행된 계기는 국정원이 제출한 보고서였다.

특검이 확인한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대통령의 첫 발언은 2013년 9월 30일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특히 롯데와 CJ 등 투자자가 협조를 안 해 문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국정원 블랙리스트 개입

‘차별과 배제 넘어 헌법 가치 파괴’

박근혜 정부의 사찰과 공작의 단서가 적힌 고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일지[채널A].

모든 안테나를 대통령에게 맞추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자처하는 국정원이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는 대통령 발언의 맥락을 놓칠 리 없었다. 2013년 하반기 국정원은 △예술위의 정부 비판 인사에 대한 자금지원 문제점 지적 △시·도 문화재단의 좌편향·일탈 행태 시정 필요 등 대외비 보고서를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실장에게 보고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윗분의 뜻을 받든’ 김기춘 비서실장의 심기가 불편한 순간에 국정원은 대통령의 심기에 맞춘 ‘정치화된 보고서’를 올린 것이다.

실제로 보고서는 “전국 12개 지자체의 일부 문화재단이 이념편향적인 이사진을 구성하는 등 좌편향·독단적 운영으로 지역사회 이념이 오염되고 ‘문화융성’ 국정과제의 성공적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서 특히 광주문화재단이 대통령을 비판, 풍자한 작가를 지원하거나, 월북예술인 추모사업을 지원한 것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또한 구체적 관리방안으로 감사원이나 문체부가 국비 지원사업 감사 등을 통해 운영 실태를 점검하면서 보조금 삭감·형사처벌 조치 등 ‘정상화’를 견인하고, 건전 언론·단체와 협조해 이념편향과 예산낭비 행태를 알려 국민 공분을 조성하고 경각심을 고취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결국 국정원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화예술계 종북세력을 무장해제할 무기는 ‘돈’이었다.

박영수 특검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청와대는 정무수석 주관으로 ‘민간단체 보조금 TF’를 운영하면서 문체부 산하의 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출판진흥원의 지원심사 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문화예술위 심의위원 후보 19명 선정 배제 △예술위의 해당 예술가 공모사업 325건 지원 배제 △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관련 8건 지원 배제 △출판진흥원 세종도서 관련 22개 선정 배제 등을 강요함으로써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블랙리스트(blacklist)의 사전적 정의는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이다. 흔히 정보·수사기관에서 위험인물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마련하는데 ‘감시대상 명단’ ‘요주의자 명단’으로 순화해 부르기도 한다. 블랙리스트의 뿌리는 일제강점기 경찰의 사상범, 정치범, 무정부주의자 등에 대한 요시찰인(要視察人) 제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뉴스라이브러리에서 ‘요시찰인’으로 검색을 하면, 일제강점기의 관련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예컨대 동아일보(‘3000여의 요시찰인’, 1922년 10월 24일자)를 검색하면, 요시찰-주의(注意) 인물 통계가 나오는데, 조선 사람으로 해외에 있는 요시찰·주의 인물은 총 2161명(일본 거주자 제외)인데 △상해 221명 △중국 각지 1561명 △시베리아 152명 △하와이 54명 △미국 130명 △구주 및 기타 35명 △거소 불명 2명 등이었다. 또 ‘요시찰인 300명 검거’ 기사(동아일보, 1928년 10월 28일자)에 따르면, 경시청은 관할 경찰서를 동원해 일본 천왕 부인의 조선 방문을 앞두고 ‘사회주의 과격사상의 요시찰인’을 예비 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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