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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치의 달인

내 말인 듯, 내 말 아닌, 내 말 같은

말의 정치학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내 말인 듯, 내 말 아닌, 내 말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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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의 워딩

지난해 말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인내심(patient)’을 갖고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기존의 ‘상당 기간’을 ‘인내심’으로 대체했을 뿐인데 효과는 만점이었다. 러시아 디폴트 우려로 출렁이던 글로벌 금융시장은 반색했고 곧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옐런의 발언은 좋은 워딩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수위로, 조금만 개성 있게 단어들을 구성하라’라는 워딩의 기본 원칙에 잘 따른 것이다. 이렇게 의사를 전달하면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영향력은 곧 권력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4년 초 옐런 의장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도 과거 ‘파워 워딩’으로 위기를 돌파한 바 있다. 2008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공천에서 친박계가 많이 탈락하자 “저는 속았습니다. 국민도 속았습니다”라고 말해 무소속 친박연대 후보들의 무더기 당선을 이끌었다.

“마음으로 낳은 내 아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장인의 좌익 경력으로 공격받을 때 “대통령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아내를 버려야 한다면 차라리 후보직을 버리겠습니다”라고 말해 공세를 무력화했다.

지난해 배우 차승원의 아들 관련 언급도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경우다. 차승원 씨는 “노아는 마음으로 낳은 내 아들”이라고 말함으로써 친자 논란을 잠재웠고 오히려 ‘상남자’ 이미지를 쌓았다.

사람은 중요한 국면에선 준비된 발언을 하기 마련이다. 데이트 신청할 때, 청혼할 때, 가정에서 중대 발표할 때, 직장에서 작심 발언할 때가 이런 경우다. 이때는 말로써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늘 성공하진 못한다. 워딩이 어려운 이유다.

기분 내키는 대로 쏟아내면…

기분 내키는 대로 말을 쏟아내는 것을 워딩이라고 할 순 없다. 워딩은 일련의 정제 작업을 말한다. 단어의 의미를 엄밀하게 규정하고, 그 미묘한 차이를 분류하고, 최적의 단어와 문구를 추출하는 작업이다. 외교는 워딩을 중요시한다. 잘못된 워딩 하나로 외교 분쟁은 물론 전쟁까지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적 발언은 그래서 모호하고 미묘하다.

“어떻게 보니 예쁘시네요”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과거사 사과 발언이다. 1990년 아키히토 일왕은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는 문장을 썼다. 1995년 무라야마 총리는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한다”고 했는데, 이후 일본 총리들은 이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는 표현을 썼고, 2010년 간 나오토 총리도 이와 비슷하게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심정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외교적 발언은, 얄밉게 들릴 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논란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정치인은 가끔 논란도 유발해야 한다. 지지 세력을 결집하거나 상황의 극적 반전을 노리는 경우다.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워딩의 실천 규칙은 다음과 같다.

중언부언, 미사여구 버려라

첫째, 더함 없이 덜함 없이. 모든 단어에는 어감이 있다. 거친 것이 있고 부드러운 것이 있다. 알싸한 것이 있고 달달한 것이 있다. 최적의 어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사람에 따라 어감에 대한 느낌이 조금씩 다르긴 하다. 그래서 최적에 대한 판단도 차이가 난다.

그래도 통상적인 용법을 따라 가장 적합한 단어를 골라야 한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같은 단어라도 조금씩 달리 들리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남자는 소개팅 자리에서 처음 만나는 여성에게 “어떻게 보니 참 예쁘시네요”라고 말한다. 자기 딴엔 솔직하게 말한 거다. 여성은 예쁘다는 말인지 안 예쁘다는 말인지 헷갈릴 것이다. 두 사람이 잘될 리가 없다.

상호배제, 전체포괄

둘째, 중복 없이 누락 없이. 매킨지 컨설팅이 사용한다는 ‘상호배제와 전체포괄’ 원칙은 워딩에서도 중요한 방법론이다. 말을 채로 걸러보라. 중언부언은 모두 버려야 한다. 실질적 정보가 없는 미사여구도 버려야 한다. 이를 제외한 필수 문장과 단어! 순도 100%! 그것만으로 이뤄진 것이 좋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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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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