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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행기 마니아 진중권의 비행 예찬

세상의 돼지들이여, 한번 날아보지 않으련?

  • 진중권 중앙대 독어독문과 겸임교수 mkyoko@chol.com

경비행기 마니아 진중권의 비행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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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에 찌든 필자는 라디오 방송을 그만둔 어느 날 홀연히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교습 등록을 하고 내친김에 중고 비행기를 질러버렸다. 그리고 40여 일의 교습 끝에 홀로 하늘을 날았다. 모형 비행기를 가지고 놀던 소년이 30여 년 만에 비행의 꿈을 이룬 순간, 구름과 바람은 그의 친구가 됐다. 광활한 자연을 향한 외경, 그는 황홀함에 빠져든다. 운전면허는 없지만 비행면허는 있다는 진중권씨. 그가 우리에게 하늘 소풍을 권한다.
경비행기 마니아 진중권의 비행 예찬
“프롭 클리어!”

시동을 걸기 전에는 큰 소리로 외쳐 주위 사람들에게 경고를 한다. 시동이 걸리면 활주로로 진입한다. 그러려면 먼저 활주로 양쪽 하늘을 보며 착륙하는 비행기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활주로의 어느 쪽 끝에서 이륙할지는 윈드색을 보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결정한다. 이륙이나 착륙은 당연히 맞바람을 받으며 하는 게 유리하다.

왼손으로 스로틀을 밀어 서서히 출력을 올리면, 엔진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비행기가 달리기 시작한다. 최대출력에 도달하면 활주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체의 진동도 심해진다. 그러다가 오른손으로 스틱을 가볍게 당기면, 심하던 진동이 갑자기 사라진다. 기체가 땅에서 떨어지고, 드디어 비행이 시작된 것이다. 마침내 중력을 이겼다는 느낌. 이처럼 황홀한 쾌감이 또 있을까.

이륙하면 곧바로 상승선회를 해야 한다. 일정한 고도에 도달하면, 양력을 더 받기 위해 내려놓은 플랩을 해제해야 한다. 플랩은 양력만이 아니라 항력도 늘리기 때문이다. 플랩을 해제하면 약간 속도가 빨라진다. 고도계의 바늘이 600피트를 가리키면 출력을 내리면서 기수를 약간 숙여 수평자세로 돌아간다. 이를 ‘순항’이라고 한다. 내 비행기의 순항속도는 90마일, 즉 시속 144km 정도.

구름아, 바람아 놀자!

시속 90마일은 지상에서라면 꽤 빠른 속도라 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정작 하늘에 올라가면 속도감을 느끼지 못한다. 투명한 공기말고는 주위에 비교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순항할 때 비행기는 마치 잔잔한 호수에 뜬 나룻배 같은 느낌이다. 불어오는 바람에 가끔 출렁이는 정도랄까. 물론 그러다가 돌풍이 불어 기체가 크게 흔들리면 화들짝 놀란다.

원래 초경량 비행기는 규정상 600피트의 고도로 날게 되어 있다. 하지만 산이나 철탑 같은 지상 장애물이 있는 경우 거기에 600피트를 더하게 된다. 비행장 근처에 500피트짜리 송전탑이 있으므로 원래 규정에 따르면 1100피트까지 올라갈 수 있는 셈. 하지만 가끔은 그보다 좀 더 올라가보기도 한다. 고도가 높아지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지상의 풍경도 달라진다.

비행기를 몰고 구름 속에 들어가본 적이 있다. 구름이 낮게 깔린 날 고도를 2000피트까지 올려보았다. 하지만 구름은 아직도 머리 위에 있다. 포기하고 내려가려는데, 바로 캐노피 옆으로 조각구름이 한 자락 흘러간다. 거기서 다시 500피트 정도 더 올렸더니, 드디어 눈앞에 거대한 뭉게구름 덩어리가 나타난다. 하지만 구름과 오래 놀 수는 없는 일. 구름 속에서는 시계(視界)가 0이기 때문에 빨리 나와야 한다.

처음에는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긴장해 스틱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바람이 드센 날 비행을 마친 초보 비행사의 손은 땀으로 젖어 있고, 그의 어깨는 뻐근하다. 하지만 비행에 익숙해지면 외려 바람을 즐기게 된다. 바람이 없는 날 호반을 미끄러지듯이 비행하는 것도 환상적이지만, 스틱으로 불규칙한 바람의 난동을 제압하면서 날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바람이 초속 5m 이상으로 부는 날에는 되도록 하늘에 올라가지 않는다. 그런 날에는 막사에서 바람이 잦기를 기다려야 한다. 거센 바람도 오후 4시쯤 되면 대개 얌전해진다. 아무리 바람에 익숙해져도 바람이 아찔할 때가 있다. 가령 착륙하다가 돌풍을 맞는 경우. 그때는 당황해 실수할 수 있으므로, 웬만하면 착륙을 포기하고 복행을 하는 게 좋다.

비행에 꽤 익숙해졌지만, 바람은 아직도 사람을 놀라게 한다. 지난주의 일이다. 바람이 좀 거센데도 하늘에 올라갔다. 고도 1200으로 날고 있는데, 낮게 깔린 구름이 섹시한 자태로 나를 유혹한다. 그녀의 품속에 안기려 고도를 올리다가 돌풍을 만났다. 기수가 들린 상승자세에서 거센 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그만 심한 요동에 캐노피에 머리를 연거푸 두 번 찧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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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중앙대 독어독문과 겸임교수 mkyoko@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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