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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의 ‘영화사회학’

‘베를린’의 너무 매력적인 北 스파이

  • 노광우│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베를린’의 너무 매력적인 北 스파이

‘베를린’의 너무 매력적인 北 스파이
영화 ‘베를린’(류승완 연출)이 말 그대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영화는 남북 분단의 스파이 액션을 한반도와 아시아가 아닌 유럽이라는 비교적 중립적인 지대로 옮겨놓는다. 내용으로 보면 할리우드 스파이 액션 영화인 ‘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그리고 영국의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비견되는 꽤 완성도 높은 총격전, 권격(拳擊)으로 긴장감을 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북한 스파이’라는 등장인물의 독특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007 시리즈에도 북한군이 등장하지만 다분히 전형적이다. ‘악의 축’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베를린’은 매우 인간적으로, 개성적으로, 매력적으로 북한 스파이를 그리고 있다. 전 세계 블록버스터 중 북한 스파이를 이렇게 섬세하게 묘사한 영화는 아마 없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세습독재의 나라, 국민은 굶어죽는데 핵무기로 미국과 대결하는 나라인 북한은 세계인의 관심 대상이다. 자연히 ‘이런 나라의 비밀첩보원은 어떤 사람일까’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베를린’은 이 호기심을 ‘류승완 식으로 해석한 북한 스파이 상(像)’으로 채워준다.

이명박-박근혜 권력교체기와 유관

베를린의 북한 스파이는 엘리트 공직자, 인텔리겐차, 코스모폴리탄으로 등장한다. 이는 최근의 남북관계 변화 움직임과 교묘하게 맞물린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기인 2008~2012년엔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됐다. 이 시기 북한 권부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영화는 거의 없었다. 이런 점에서 영화라는 장르는 확실히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염두에 둔 발언을 해왔다. 대북 강성인 이명박 정권에서 조금 덜 강성인 박근혜 정권으로 넘어가는 권력교체기에 ‘베를린’이 나온 것은 우연으로만 보기 어렵다.

이는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스파이 영화 ‘쉬리’가 1999년 개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쉬리의 북한 공작원 이방희(김윤진 분)는 이지적인 도시 여성이면서 한국 국가정보원 직원 유중원(한석규 분)과 사랑에 빠지는 비극적인 존재로 관객에게 다가왔다. 이 영화가 나온 1999년은 김대중 정권 시절 남북 화해 무드가 무르익던 시점이었다. 이후 진보정권 집권기에 나온 ‘공동경비구역’‘웰컴 투 동막골’과 같은 영화들은 북한군을 ‘선(善)한 존재’로 묘사하기에 이른다.

‘쉬리’에서 그려진 남북 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 사랑을, ‘베를린’에서는 북한 통역관 련정희(전지현 분)와 북한 공작원 표종성(하정우 분)이 담당한다. 멜로드라마 성격은 같으나 비극적 사랑의 주체가 남-북에서 북-북으로 바뀌었다. 남측 등장인물은 이들의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도와주는 존재에 그친다. 이런 점에서 ‘베를린’은 북한 스파이를 보다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의 또 다른 북한 공작원 동명수(류승범 분)는 북한 군부 내 유력 가문인 동씨 집안의 자제이고 독일어와 영어에 능통하며 각국의 첩보국 및 테러리스트들과 자유자재로 교류하는 인물이다. ‘쉬리’의 북한 공작원 박무영(최민수 역)의 활동범위가 한반도에 국한돼 있는 데 비해 동명수의 활동범위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확대된다. 동명수가 국제 감각을 지닌 스파이로 그려진 것인데, 이는 북한 권력이 유럽 유학파 김정은으로 옮겨간 상황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쉬리’ vs ‘베를린’

‘베를린’의 너무 매력적인 北 스파이
노광우

1969년 서울 출생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 :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인물의 세계관에 있어 ‘쉬리’의 박무영은 남북한의 부패 정치인을 혐오하고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을 구하려는 낭만주의적 이상주의자인 반면, ‘베를린’의 동명수는 물욕과 권력욕으로 가득 찬 세속적 인물이다. 유럽에서 액션 활극이 벌어지게 된 동기는 어떤 이념적 가치나 애국애족 같은 것이 아니라 오직 물욕과 권력욕이었고, 그래서 폭력성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국제 감각을 가진 엘리트이면서 본능적 욕망에 종속되는 인간이 바로 ‘베를린’에서 류승완이 해석한 북한 스파이다.

신동아 2013년 3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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