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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국민문학 ‘토지’ 작가 박경리 “행복했다면 문학을 껴안지 않았다”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국민문학 ‘토지’ 작가 박경리 “행복했다면 문학을 껴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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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터뷰 기피 이유? 작가는 작품 내놓으면 그걸로 끝
  • ● ‘토지’의 리얼리티는 상상력과 직관력으로 정확히 때려잡은 것
  • ● 우익·좌익? 진보·보수? 다 편 가르기일 뿐
  • ● 친일규명은 당대에 끝냈어야…지금 해본들 바람 빠진 풍선
  • ● 수도이전? 중심 없는 균형발전이 어디 있나, 서울만한 곳 없다
  • ● 인간은 지구의 악성 바이러스, 생명이 주인 되는 새로운 사조 나와야
국민문학 ‘토지’ 작가 박경리 “행복했다면  문학을 껴안지 않았다”
박경리(朴景利·78)의 ‘토지’는 광복 이후 한국문학이 거둔 최대의 수확이다. 작가는 1969년 집필을 시작해 1994년 8월15일 새벽 2시, 25년 만에 거대한 마침표를 찍었다. 원고지 분량은 3만1200매. ‘토지’가 집필기간, 원고 매수에서 세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박경리 선생은 낯가림을 한다. SBS 드라마 ‘토지’에 출연하는 탤런트 유준상이 원주에 사는 원작자에게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해 연결됐던 모양이다. 유준상이 ‘길상’역을 맡았다고 자신을 소개하자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그래서요?”라는 반문이 되돌아왔다. 작가는 “몸이 불편하다”며 방문도 사절했다.

박 선생은 여간해서 매스컴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다. ‘신동아’ 편집장에게서 2005년 신년호에 선생을 인터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낯가림의 장벽을 뚫기 위해 ‘박경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을 빌렸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62) 교수와 ‘토지’ 21권을 펴낸 나남출판사 조상호(54) 사장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인터뷰는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김 교수는 1983년 토지 1∼3부를 세 번 읽고 선생의 팬이 되어 20년 교분을 쌓았다. 토지문화관 건설위원장, 토지완간(完刊)기념사업회장을 지냈다.

김 교수, 조 사장과 함께 원주로 가는 차 속에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공부를 단단히 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운 ‘토지’ 전문가다. 조 사장은 교정 작업을 하면서 ‘토지’ 21권을 다섯 번이나 읽었다. 그는 “SBS에서 드라마 ‘토지’를 시작한 이후 책 주문이 늘었다”며 표정이 밝았다.

낯가림 심한 老작가

오랜만에 두 사람을 만난 박 선생의 얼굴엔 반가움이 가득했다. 사진기자와 함께 넷이서 큰절을 하고 집 아래 토지문화관으로 내려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건강이 좋아 보인다”고 인사를 건네자 낯빛이 환해지면서도 “겉보기만 그래요”라는 말로 받았다. 혈압조절약을 먹고 있고, 당(糖)이 조금 나오고, 백내장 수술 날짜를 받아놓았다고 한다. 노인에게 흔한 퇴행성 질환들이다. 인터뷰 3시간 동안 줄담배를 태우면서도 기침 한번 안하는 걸 보면 아직 정정하다.

선생은 “정치와 문학 이야기는 묻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 생명·환경 이야기나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필자가 환경단체 대표도 아니고 대작가를 만났는데 문학 이야기를 건너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생은 인터뷰를 기피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작가는 얼굴이 필요없습니다. 작품을 내놓으면 그걸로 끝이죠. 문학작품에 모든 것이 들어 있고 독자가 읽어주는 것으로 족합니다. 사람마다 자기 눈으로 평가하면 됩니다. 작가가 이러쿵저러쿵 해명하는 것은 작품이 미진하다는 뜻이죠.

옛날 우리 선비들은 자기 얘기를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자랑은 어린애가 꼬까옷 입고 해야 귀엽지요. 지식인의 자기 합리화는 오히려 추해요. 내 작품을 읽고 마음대로 상상하면 됩니다. 굳이 내가 해명할 필요가 있겠어요?”

-SBS 드라마 ‘토지’는 보십니까.

“첫 회는 봤는데 그 뒤론 안 봐요. 내용이 너무 달라서….”

조 사장이 “소설에서는 직접 육성이 나오지 않는 별당아씨와 동학장군 김개주가 나와 이야기를 한다”고 거들었다.

“드라마에 기대를 걸었던 건 아녜요. 작가들이 토지문화관에 와서 집필을 하게 되면 방을 2개 차지해요. 무슨 행사가 있을 때는 불편하고 시끄럽고 창작에 방해가 되지요. 그래서 SBS에서 받은 원작료 2억원으로 창작실이 5개 딸린 별관을 바로 옆에 지었어요.”

-2억원밖에 못 받으셨나요.

“내가 그런 계약에 미숙해 다른 사람에게 맡겼더니 그이도 미숙해 그렇게 됐지요. 지나간 일을 후회해 무슨 소용 있겠어요. 내 손을 떠났으면 그만이죠.”

-집사람이 ‘토지’ 21권을 다 읽고 요즘 드라마도 빼놓지 않고 보는데 월선이 역을 맡은 배우가 소설에 나오는 이미지하고 다르다더군요.

“월선이가 소설에선 곱상하게 나오지요. 그림자 같은 여자인데 드라마에선 아주 윤곽이 팍팍 드러나더군요. 얼굴도 크고….”

김형국 교수가 “토지문화관 준공식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참석해 월선이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토지를 읽었는데 월선이가 용이 품에 안겨 죽는 장면이 토지의 백미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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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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