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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기업 관리의 리더십으로 재조명

동북아 제왕학의 성전

  • 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기업 관리의 리더십으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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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관리의 리더십으로 재조명

한비자
한비 지음, 김원중 옮김, 글항아리

10여 년 전 화제를 모았던 KBS 역사드라마 ‘제국의 아침’에는 고려 광종이 즉위 직후 신료 유신성으로부터 중국 고전 ‘한비자(韓非子)’를 전해 받는 장면이 인상 깊게 나온다. 광종은 ‘제왕학의 성전’으로 불리는 ‘한비자’를 읽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 글이야.” 그는 고려 건국 초기 중앙집권체제와 왕권 강화를 위해 과단성 있는 개혁정책을 펼친다.

‘제국의 아침’이 방영될 무렵, 때마침 16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노무현 당선자는 이상수 민주당 사무총장으로부터 ‘한비자’의 한 대목을 유념하라는 충언을 듣는다. “한비자에는 군주가 인사권을 남에게 이양하면 안 되며, 끝까지 인사 비밀을 지켜야 신하들이 자기 세력을 구축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노 대통령 취임 직후에는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가 ‘한비자’에 나오는 신하들의 여덟 가지 간사한 행동(八姦)을 경계하라는 내용의 칼럼을 한 일간지에 기고해 눈길을 끌었다.

‘한비자’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더불어 통치술의 명저로 꼽힌다. 제대로 된 군주라면 법(法)·술(術)·세(勢)라는 세 가지 통치도구를 모두 갖춰야 한다고 한비는 주문한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규칙이며, ‘술’은 소통 능력, ‘세’는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을 일컫는다. 제자백가의 한 유파인 법가(法家)에는 한비가 나오기 전 세 갈래의 큰 학파가 있었다. 법을 강조한 상앙, 술을 역설한 신불해, 세를 강조한 신도가 그들이다. ‘법’은 백성들의 사익 추구를 막고 나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원칙을 뜻한다. ‘술’은 신하들을 잘 조종해 군주의 자리를 굳게 다지는 인사정책이다. ‘세’는 군주만이 갖는 배타적이고 유일한 권세를 의미한다.

‘한비자’는 군주의 권력 유지를 위한 법치 리더십의 원조 격이다. 군주가 공포한 법은 지위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행위 준칙이다. 여기서 법은 만인에게 두루 적용되지만 군주는 예외다. ‘예는 일반 백성에게 미치지 않고, 형벌은 대부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유가(儒家)의 견해보다 한발 더 나간다.

이 책은 법을 이렇게 정의한다. “거울은 맑음을 지키는 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아야 아름다움과 추함을 있는 그대로 비교할 수 있고, 저울은 균형을 지키는 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아야 가벼움과 무거움을 있는 그대로 달 수 있다. 거울이 움직인다면 대상을 밝게 비출 수 없고, 저울이 움직인다면 대상을 바르게 달 수 없다. 법이 바로 이런 것이다.”

신상필벌(信賞必罰)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신상필벌(信賞必罰)’로 요약할 수 있다. 상벌 권한을 함께 구사해야 명실상부한 군주로 군림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작은 신의가 성취되면 큰 신의가 확립된다. 그러므로 밝은 군주는 신의를 지키어 쌓는다. 상벌을 행함에 신의가 없으면 금지나 명령이 행해지지 않을 것이다.” ‘한비자’는 덕을 베풀어 백성을 감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환상이며, 오로지 권력체계를 빈틈없이 정비하는 길이 통치의 요체라고 일깨운다.

이 책은 국가의 흥망에 관해 이렇게 주장한다. “항상 강한 나라도 항상 약한 나라도 없다. 법을 받드는 자가 강하면 나라가 강하게 되고 법을 받드는 자가 약하면 나라도 약해진다.”

‘한비자’는 신하를 다루는 세 가지 책략을 제시했다. 독단독람(獨斷獨攬)은 왕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신하에게는 단지 간언만 허락할 뿐 어떠한 권한도 나누어주지 않는 것을 뜻한다. 심장불노(心藏不露)는 왕이 자기의 견해나 감정을 감춰서 남으로 하여금 도무지 자기의 생각을 알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참험고찰(參驗考察)은 신하들의 과거와 현재, 성격의 특징과 심리상태를 조사·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조국 교수가 경계하라고 한 ‘팔간’은 나쁜 신하가 될 수 있는 전형적인 사례다. 잠자리를 함께하는 부인이나 후궁 같은 동상(同床), 군주를 가까이 모시는 측근인 재방(在傍), 뇌물 청탁의 대상이 되는 친인척인 부형(父兄), 백성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과중한 세금을 걷어 군주의 욕망을 충족해주면서 자신의 사익을 취하는 양앙(養殃), 국가 재산을 함부로 사용해 백성을 일시적으로 즐겁게 하고 군주가 아닌 자신을 칭송하게 만드는 민맹(民萌), 교묘한 언설로 군주의 판단을 흐리는 유행(流行), 위세를 빌려 권력을 휘두르는 위강(威强), 주변국 외세를 빌리려는 사방(四方)이 그것이다.

군주가 저지를 수 있는 열 가지 과오(十過)도 열거했다. 작은 충성, 작은 이익, 편협한 행실, 음악에 빠지는 것, 탐욕스럽고 괴팍한 것, 여색을 탐하는 것, 궁궐을 떠나 멀리 유람하는 것, 충신의 간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하는 것, 작고 힘없는 나라가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 등이다.

‘한비자’는 “시대가 다르면 일도 다르다”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방책도 달라져야 한다고 설파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즐겨 인용하는 ‘증자(曾子)의 돼지’ 이야기도 ‘한비자’에 나온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아내가 장을 보러 가려고 하자 아이가 울면서 따라가겠다고 보챘다. 아내가 “돌아와서 돼지를 잡아줄 테니 집에 있으라”고 달래자 아이는 말을 들었다.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오자 증자는 돼지를 잡으려 했다. 아내가 깜짝 놀라 “아이를 달래려 한 말인데 정말 잡으면 어떡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증자는 “아이에게 속임수를 가르치려고 하느냐. 어미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이 어미를 믿지 않게 된다”며 돼지를 잡았다는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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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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