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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⑫

‘사이’의 존재들을 향한 공포와 매혹

드라큘라 vs 프랑켄슈타인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사이’의 존재들을 향한 공포와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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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존재들을 향한 공포와 매혹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드라큘라’의 한 장면.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또 다른 공통점은 그들 또한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에게 배척당하지 않고, 인간들 속에서 인간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인간 세계를 향한 입장권’을 끊어주지 않는다. 인간을 질투하지만 인간이 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은 복제인간을 주인공으로 삼은 수많은 SF영화의 문화적 기원이기도 하다.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결정적인 공통점은 그들이 인간의 지식과 문화를 갈망한다는 점이다. 조나단은 드라큘라의 방대한 서재를 둘러보며 놀란다. 역사, 지리, 정치, 법학 등 ‘영국식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영어로 인쇄된 책과 잡지, 신문들로 가득 차 있는 드라큘라의 서재. 드라큘라는 “이 책들을 통해 ‘당신들의 위대한 영국’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드라큘라는 런던의 북적이는 거리를 보통 사람들처럼 쏘다니고 싶고, 지금의 영국을 있게 만든 모든 것을 인간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교육받은 중산층인 조나단의 영어를 모방하고자 하고, 기득권 내로 영입되기 위해 ‘영국식 억양’을 포함한 표준어를 습득하려고도 한다. 자신의 조국에서는 귀족이지만 타국인 영국에서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드라큘라의 슬픔은 프랑켄슈타인의 고독처럼 대중화되지 않은 ‘비-인간’의 고통이다.

여기서 나는 귀족이오.…보통 사람들은 모두 다 날 알고 있고 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단 말이요. 그러나 낯선 고장에 몸 붙여 사는 식객은 보잘것없는 존재요. 사람들은 그를 알아주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보살펴주지도 않소. 나는 이방인처럼 보이고 싶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보이고 싶소. …난 여태까지 주인이었고 앞으로도 주인으로 남아 있을 거요. 적어도 그 누구든 나를 소유할 수는 없소.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 중에서

인간 옆에 살면서 인간에게 ‘공존’을 요구하지만 결코 허락받을 수 없는 존재들. 인간이 그들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단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처럼’ 될까봐일 수 있다. 우리 자신이 그들을 닮고 싶은 욕망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은 우리 안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좀처럼 꺼내보기 싫어하는 암울한 분신일지도 모른다. 우리 안의 괴물을 단지 삭제하고 억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괴물을 때로는 똑바로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 안의 괴물은 더 이상 ‘적’이기를 그치고 우리 안의 창조적 타인으로 기능을 발휘하지 않을까.



인간을 닮은 괴물

나는 나의 출생과 창조자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지만 내게는 돈도 친구도 재산 따위도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소. 게다가 나는 소름 끼치도록 흉측하고 역겨운 모습을 하고 있었소. 심지어 본성도 인간과 달랐소. 나는 인간보다 민첩하고 더욱 거친 음식으로도 살아갈 수 있었소. 극한 더위와 추위에도 몸에 큰 상처 없이 견딜 수 있었고 체구는 인간보다 훨씬 더 컸소.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나와 같은 존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소. 그렇다면 나는, 모든 인간이 달아나려고 회피하려 하는 괴물, 이 세상의 오점이란 말인가?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중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들에게 ‘인간과 다른’ 면보다는 인간과 비슷한 면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는 인간에게 전혀 없는 특성들을 보여주는 존재들이 아니라 인간의 장점과 단점을 극대화하는 존재들인 것 같다.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는 인간의 마력과 인간의 슬픔과 인간의 고통을 극대화한 존재들이기에,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우리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증언하기에, 더욱 두렵고 그리하여 더욱 매혹적이었던 것이 아닐까.

드라큘라가 매년 여름 다시 돌아오는 이유도, 창조주와 피조물,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다채로운 프랑켄슈타인의 후손이 매년 새로운 SF영화로 변신해 다시 돌아오는 이유도 바로 이 ‘공포’보다 더 큰 ‘매혹’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매우 비슷하지만,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들’에 대한 공포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퇴치해도, 아무리 죽여 없애도, 우리 안의 드라큘라, 우리 안의 프랑켄슈타인의 본성은 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들은 ‘우리’를 삭제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더욱 극대화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어두운 내면을 실천하는 존재들인지 모른다.

신동아 201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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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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