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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 성공학

쑥국수 뽕잎냉면 땅콩떡볶이를 아십니까

전통음식 개발한 송학식품 성호정 사장

  • 곽희자 자유기고가

쑥국수 뽕잎냉면 땅콩떡볶이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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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장은 나름대로 시장조사를 한 결과 국수 소비가 많은 곳이 재래시장임을 알게 됐고 이에 따라 시장 상점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첫 단계로는 가격을 다른 곳보다 싸게 해줬고, 다음에는 ‘송학’이라는 이름의 친목회를 만들면 친목회 운영비 전액을 대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상인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한 집, 두 집 거래처가 생겨나더니 나중에는 시장 내 23개 상점이 모두 송학식품 국수를 받아 팔게 됐다.

뒤에 그는 사업이 커져 직원을 두고 일할 때도 수금만큼은 꼭 자신이 직접 하러 다녔다. 수금하면서 상인들과 얼굴을 익히고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같은 맨투맨식 거래처 관리와 적극적인 판로 개척에 힘입어 성사장은 몇 년 지나지 않아 2000평 규모의 시장 전체를 세내 공장으로 사용할 만큼 사업이 번창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실내 건조실이 따로 없었고 건조법도 몰랐기 때문에 국수를 뽑으면 모두 햇볕에 말렸다. 그래서 날씨가 조금만 좋지 않아도 국수를 뽑을 수 없었다. 특히 장마철이나 샛바람이 부는 이른 봄과 가을은 국수를 뽑기가 가장 나빴는데, 이런 날이면 손을 놓고 놀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국수를 널어놓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국수가 홀랑 젖어 땅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이른 봄이나 가을에는 아무리 햇볕이 좋아도 바람이 세게 불기 때문에 국수를 말릴 수가 없었다. 국수는 서서히 말라야 발도 단단하고 맛도 좋다. 센 바람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마르면 바삭바삭 부서지기 때문에 내다팔 수가 없다.

날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탓에 주문이 쇄도해도 많은 양을 만들 수가 없었다. 60∼70년대에 쌀이 부족한 나머지 ‘분식의 날’을 정해 일주일에 두 번씩 밀가루 음식을 먹게 한 때가 있다. 이 시기에 걸핏하면 국수가 동나기 일쑤였다. 고르지 못한 날씨 탓에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실내 건조법이 개발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그런 어려움은 완전히 해소됐다. 실내 건조법 개발은 우리 식품업계가 위생적으로도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요즘엔 모두 실내 건조실에서 국수를 말린다. 온수 보일러에서 뜨거운 물을 계속 데워 여기에서 발생하는 열을 선풍기를 이용, 국수에 골고루 퍼지게 해 적당한 습도와 바람을 쏘여 말린다.

성사장은 국수에 이어 떡국용 쌀떡도 생산했다. 그러나 쌀떡 역시 거래처를 뚫기가 쉽지 않았다. 생각 끝에 그는 매일 새벽녘이면 따끈따끈한 가래떡을 썰어 설탕과 함께 들고 다니면서 이른 시간에 빈 속으로 시장에 나온 상인들에게 요기를 시키며 떡 선전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래떡은 건국수와 달리 어느 정도 수분이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에 방부제를 넣지 않으면 한여름에는 2∼3일, 겨울에도 5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기껏해야 하루에 팔 양밖에 생산할 수 없었다. 게다가 유통기간이 이렇듯 짧으니 거래처도 서울과 경기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곳으로 팔려간 물건들도 걸핏하면 유통기간을 넘겨 반품되곤 했다. 그래서 반품률이 20∼30%에 이르렀다.

바늘귀만한 틈도 없어야

그러나 성사장은 92년 주정살균법을 개발, 적용하면서 반품률을 2∼3%선으로 떨어뜨렸다. 주정살균법은 99% 알코올 원액에 제품을 담그거나 원액을 제품에 뿌려 방부성을 높인다. 성사장은 일본 식품업계에서 이 기술을 배워와 직접 실험해봤다. 이는 병원에서 소독을 위해 알코올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살균효과와 함께 방부효과도 컸다.

또한 기존 비닐 포장을 진공 포장(비닐봉지를 한 번 더 코팅함)으로 바꾸고 포장지 속에 탈산소재를 넣어 봉지 속에 남아 있는 산소를 모두 흡입해 세균이 살 수 없게 했다. 이렇게 하자 유통기간을 2개월로 연장할 수 있었다. 방부제를 전혀 넣지 않고도 유통기간이 길어지자 대량 생산은 물론 전국 중·소도시 판매도 가능해졌다.

성사장은 이 기술로 국내 식품업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키면서 사업을 크게 키웠다. 주정살균법에 힘입은 대량 생산으로 전국 판매망을 갖추고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매년 2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94년에는 생산품목을 더 늘리느라 충북 청원에 제2공장을 설립했다.

92년 성사장은 쌀국수를 개발, 남아도는 쌀 문제를 해결했다는 공로로 농림수산부가 주는 석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쌀이 모자라던 시절, 정부는 재래종 벼보다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를 장려했는데, 이에 따라 많은 농가에서 통일벼를 심어 쌀 수확이 크게 늘었다. 통일벼는 정부에서 전량 수매해줬는데, 나중엔 쌀이 남아 돌아 창고에서 썩는 지경이 됐다. 그래서 쌀막걸리와 쌀과자들이 생산됐는데, 소비는 미미했다. 이때 성사장은 쌀로 국수를 만들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성사장이 만든 쌀국수는 정부의 대대적인 홍보와 매스컴에 힘입어 92년 예비군 훈련장에 처음 납품됐다. 이듬해에는 육군에 이어 해군과 공군에까지 납품됐다. 당시 3군 장병은 60만명. 이들에게 한 달에 네 차례씩 쌀국수를 먹였으니 매달 60만kg(80kg짜리로 7500가마니)의 쌀이 소비됐다. 당시 정부는 이런 제품을 개발한 업체에 2년간 독점 납품할 수 있는 혜택을 줬다. 송학식품은 군 납품을 통해 매출을 크게 늘린 것은 물론 제품 홍보효과도 톡톡히 봤다.

또한 그해부터 감자 수제비와 호박 수제비를 만들어 국수류와 함께 미국 일본 중국 등지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수출 제품 수송은 냉장 컨테이너를 이용하는데, 그 경비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성사장은 상온에서 일반 컨테이너로 운송할 수 있고 2개월의 유효기간을 6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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