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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경영일기

ET 인형에 울고 휠라 신발로 웃고

휠라코리아 대표이사 윤윤수

  • 글: 윤윤수 휠라코리아 대표이사

ET 인형에 울고 휠라 신발로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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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보다 한발 앞서 그 사업을 생각해내고 라이선스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훗날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파트너가 된 호머 알티스다. 신발 샘플을 들고 이탈리아 본사로 찾아갈 예정이었으나 이미 라이선스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왠지 미련이 남았다. 라이선스를 받았다는 사람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어렵사리 알티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내 미국 볼티모어로 날아갔다.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휠라 최초의 운동화 샘플(비록 내 마음대로 만든 것이지만)을 가져왔다고 하니 그도 마음이 동했는지, 또한 밑질 게 없다는 심정에선지 나를 만나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밤10시 볼티모어 공항에서 그를 만났다.

거기서 참으로 기묘한 일을 겪었다. 알티스는 한국에 샘플을 주문할 생각이었고, 그 업체는 다름아닌 화승이었던 것이다. 내가 누군가. 화승의 현직 수출담당 이사가 아닌가. 두 사람의 묘한 인연에 우리는 너털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사업 구상을 들어보니 의문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의 사업마인드로는 도저히 성공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는 당시 신발제조업의 메카나 다름없던 한국이나 대만과는 함께 일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또 하나 비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자본력이었다. 제3자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다지만, 그 정도 규모의 돈으로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는 것은 ‘코끼리 비스킷’일 만큼 역부족이었다. 한마디로 영속적인 비즈니스가 불가능한 액수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왠지 허탈했다. 좋은 사업이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도 간발의 차로 놓쳤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랬기에 휠라는 그후로도 늘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기대되는 ‘3분의 1’의 삶

해운공사 2년, JC페니 5년, 그리고 화승에서 3년. 그렇게 10년에 걸친 직장생활을 끝내니 그야말로 섭섭했다.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수도 없어서 몸부림을 쳤다. 그러다 늘 마음에 담아뒀던 휠라에 대한 미련 때문에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비엘라를 찾았다. 미국 시장은 이미 알티스가 가져갔지만, 한국에서라도 라이선스 사업을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보잘것없는 비즈니스맨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알티스가 미국에서 어떻게 휠라 라이선스 사업을 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짐작했던 대로 그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1984년 봄 볼티모어로 날아가 알티스를 만났다. 그는 사업을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50만달러의 빚을 진 상태였다. 그래서 라이선스를 다른 곳으로 넘기고 자신은 월급쟁이 사장으로 일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그를 차분하게 설득해 나갔다. 나는 브랜드 회사와 라이선스 계약자, 그리고 새 재정 파트너와 제품 공급자, 이렇게 4자 간에 역할 분담을 하는 비즈니스를 염두에 뒀다. 일이 되려고 했던지 행운도 겹쳤다. 마침 재정 파트너로 삼을 쌍용 미국지사의 정영우 지사장이 나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었다. 새로운 네트워킹을 통해 판매전략도 바꿨다.

이러한 전략들은 그대로 적중하며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모두가 예상치 못한 수익에 흡족해했다. 특히 알티스는 나를 은인처럼 여겼다. 나는 에이전시로서 판매액의 3%를 커미션으로 받았는데, 그 액수는 근근히 내 회사를 꾸려가기에 적당한 액수였다.

그후 알티스는 휠라에서 손을 떼면서 필자에게 큰 도움을 줬다. 그가 본사에 조언을 해준 덕분에 나는 1991년, 연봉 100만달러를 받는 휠라코리아 사장이 됐다.

안타깝게도 알티스는 7년 전 폐암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휠라 신발사업으로 본인조차 예상치 못한 많은 돈을 벌어놓고는 세상과 하직하게 된 것이다. 그는 죽기 한 달 전에도 내게 전화를 걸어 “내가 큰돈을 번 것은 당신 덕분”이라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이제 내 인생의 3분의 2는 산 것 같다. 참으로 굴곡 많은 시간이었다. 나머지 3분의 1 인생에선 과연 또 어떤 우여곡절과 재미있는 일들이 펼쳐질지 사뭇 기대가 된다.

신동아 200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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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윤수 휠라코리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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