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데릭 베그브데
프레데릭 베그브데의 경우 1990년 발표한 첫 소설이자 ‘올해에 나온 가장 속물스러운 소설’이란 평을 받은 ‘정신 나간 한 젊은 남자의 회고록’은 작가의 자전적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24세의 마르크는 ‘체크 무늬 와이셔츠와 포스트모던한 허무주의가 유행하는 시대’에 술과 여자와 나이트클럽에서 젊음을 탕진한다.
‘결코 세계 일주를 못할 것이며, 인기가수 50위 안에 들지 못하며, 대통령이 될 수 없고, 헤로인 중독자도 안 될 것이며, 관현악단 지휘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사형선고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정크 푸드의 과용으로) 자연사할 것이다.’(베그브데 ‘정신 나간 한 젊은 남자의 회고록’ 중에서)
세기말을 사는 프랑스 젊은이의 앞날에는 이렇듯 아무런 모험과 열정도 예정되어 있지 않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화자는 ‘좌익 신문에 우익적 글을, 우익 신문에는 좌익적 글’을 기고하며 연명한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열정은 파티뿐이고 연일 축제가 벌어지는 나이트 클럽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모험의 세계다. 인공 낙원에서 만나는 여자들만이 당시 유행하는 포스트모던한 허무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이지만 해가 중천에 뜬 뒤에야 술이 깨는 생활도 그리 신명나는 일은 아니다.
그들에게 삶이란 ‘태어나고, 뛰어다니고, 허둥지둥 살아가면서, 책도 읽고 극장도 가고 아침식사도 하고, 그러다가 죽는다. 가끔 자기는 독신생활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자칫하면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과 예쁜 여자에게 동시에 거짓말을 하는 때도 있는 것’에 불과하다. 여럿이 모여 자기만의 고독을 확인하는 파티에 싫증난 인물들은 약물중독, 자살을 택하기도 하지만 대개 그들이 일컫는 지루한 포스트모던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999년에 발표한 ‘99프랑’은 물신주의에 찌든 현대 프랑스의 아픈 데를 꼬집은 베그브데의 대표작이다. 표절 혐의에 휘말리는 바람에 더욱 큰 화제를 모았다. 베그브데는 글솜씨가 있는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를 이렇게 되돌아본다. 17세기에는 12음절로 희곡을 쓰고, 18세기에는 철학적 에세이, 19세기에는 부르주아의 여흥거리인 소설을 쓰며 연명했다. 그러던 문학이 20세기에는 무슨 장르로 눈을 돌렸을까. 글쟁이에게 가장 수익성이 높은 장르는 광고 문구라는 것이 ‘99프랑’ 주인공의 생각이다.
단 몇 줄의 광고로 거액의 글 값을 챙기는 주인공은 매일 밤을 파티로 즐기지만 사는 것이 그리 재미있지 않다. 베그브데 작품의 인물들의 신조는 ‘①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②사랑은 불가능하다 ③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유에 대해서는 길게 고민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베그브데의 소설이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서 흥청거리는 광고업계를 그렸다면 우엘벡의 처녀작 ‘투쟁 영역의 확장’(1981)은 컴퓨터 산업에 종사하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나중에 더욱 다양하게 펼쳐질 우엘벡의 생각은 이 처녀작의 제목에 잘 요약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갈등과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 투쟁의 양상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광고와 마찬가지로 각광받는 분야인 컴퓨터 업계에서 일하며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인물이 ‘포스트모던한 허무주의’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투쟁 영역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이 인간 사이의 갈등을 그리는 장르라면 그 갈등이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성격도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