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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특집│대북 비밀지원 파문

DJ와 왕회장, 서로를 이용한 과욕의 드라마

남북정상회담과 대북비밀송금

  • 글: 이정훈 hoon@donga.com

DJ와 왕회장, 서로를 이용한 과욕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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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대북비밀송금은 1996년 대북 밀가루 지원 사건 再版
  • ●정주영과 김대중 경쟁시킨 북한의 꽃놀이패 전략
  • ●대출서류와 송금서류에 서명 거부한 현대의 김충식과 황순영
  • ●김대중 정부가 시행한 연결재무제표 제도 때문에 대북송금 단서 잡혀
  • ●대출금 받기도 전에 국정원에 환전 요청한 현대
  • ●임동원 “2억 달러는 6월9일 송금했다”, 감사원 “6월10일 송금했다”
  • ●북한의 SOC 건설 약속 어긴 김대중
2월14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對)국민 사과와 짤막한 기자회견을 지켜본 대북 전문가들 중에는 “어찌 그리 양김이 똑같은가. ‘머리가 좋다’고 하는 김대중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우(愚)를 그대로 반복했다.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우기는 것도 똑같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그 사례로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대북비밀송금 사건을 1996년 11월 국회에서 문제가 됐던 현대그룹의 대북 밀가루 비밀지원 사건(밀가루 사건)과 비교했다.

1995년 북한에 대한 쌀 15만t 지원을 추진해온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이 미처 쌀을 받을 준비도 하지 못한 6월25일 동해항에서 요란한 출항식을 가졌다. 김영삼 정부가 쌀 수송선 출항식을 서두른 이유는 이틀 후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방선거 당일인 6월27일, 북한은 첫 번째로 쌀을 싣고 청진항에 들어온 씨아펙스호에서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게양한 후 쌀을 하역케 했다. 그 결과 김영삼 정부의 성급한 쌀 지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여당(민자당)은 광역단체장 지방선거에서 참담하게 패배했다.

밀가루사건과 송금사건의 공통점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북한 조선아세아태평양위원회(아태) 송호경(宋浩景) 부위원장과 협상을 벌여온 박지원(朴智元)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남북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공표한 것은 2000년 4월10일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4월13일에는 16대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 선거에서 참패한 것은 공동여당인 민주당과 자민련이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비록 과반수는 확보하지 못했지만 공동여당을 누르고 원내 1당이 되는 데 성공했다.

1995년의 대북 쌀 지원 때는 삼선비너스호 선원이 몰래 청진항을 촬영했다고 해서 북한에 억류되는 등 사건이 많았다. 이로써 북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김영삼 대통령은 10월17일 ‘뉴욕타임스’와 기자회견을 갖고 “더 이상의 대북지원은 없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96년 11월 ‘YS의 청와대는 1996년 4월 월드컵 남북 공동개최를 추진하기 위해 현대그룹이 제공한 100만달러로 중국에서 밀가루 5000t을 구입해 비밀리에 북한에 제공했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이때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를 맡고 있던 야당인 국민회의는 총력을 다해 정부를 비판했다. 양성철(梁性喆) 의원을 필두로 한 국민회의 의원들은 “밀가루가 지원된 시점은 14대 총선(4·11총선) 직전이었다. 왜 정부는 대북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을 어기고 밀가루를 지원했는가. 밀가루소위를 만들어 진실을 규명하자”며 공격해 국회가 공전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03년 현대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5억달러를 북한에 송금한 것이 밝혀져 온나라가 시끄럽다. 이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통치행위’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완벽한 ‘공수(攻守) 교대’가 아닐 수 없다.

1996년 밀가루 지원 때 청와대가 직접적으로 현대를 도와준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전 임동원(林東源)씨가 이끄는 국정원은 현대의 대북송금을 위해 환전 편의를 제공해주었다. 정도로 따지면 2000년 사건이 훨씬 심각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으나, 김대통령은 “남북관계와 국익을 생각해 선처해주기 바란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러니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냐’는 빈정거림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한국의 지도자들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대북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정치인의 욕심’에서 찾는다. 이들은 “북한의 대남 전문가들은 수십년 간 같은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한국 언론의 보도내용을 분석해 한국 정치인들의 속내를 손금 보듯이 꿰뚫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한국 정치지도자가 가장 큰 보따리를 들고 오게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욕심에 눈이 어두워진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대북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마구 덤비다 본인까지도 다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북 비밀송금에 대해 김대통령과 임동원 외교안보통일특보·박지원 비서실장의 해명이 있었지만 이를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민의 궁금증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비열한 대북비밀송금은 어떤 관계가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라는 것이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숲을 보는 큰 시각이 있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통시적(通時的)으로 살펴보면서 작금의 문제가 터져나온 원인을 짚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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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훈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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