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호

“개혁신당 뜨면 즉각 합류”vs“민주당이 개혁당, 우리에게 오라”

한나라·민주당 개혁파의 같은 고민, 다른 대안

  • 글: 김기영 hades@donga.com

    입력2003-02-24 1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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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권 개혁의 소리가 드높다. 여야를 막론하고 개혁파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같은 개혁파라도 처지에 따라 고민도 선택도 다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개혁국민정당에 흩어진 개혁파들은 어떤 정치적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그들이 희망하는 한국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개혁신당 뜨면 즉각 합류”vs“민주당이 개혁당, 우리에게 오라”
    노무현 정권의 출범이 던져준 사회적 파장은 적지 않다.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역시 정치권이다. 2002년 12월19일 이전까지 정치권 비주류였던 노무현(盧武鉉)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가의 통념은 허물어지고 말았다.

    승패가 갈린 싸움터가 늘 그렇듯, 승인(勝因)과 패인(敗因)을 분석하는 지략가들의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이긴 민주당도, 패한 한나라당도 내부 정비에 한창이다. 지금 정가의 최대 화두는 개혁이다. 생존을 위한 개혁, 변화를 위한 개혁, 도약을 위한 개혁 등등 명분은 다양하지만 기성의 패러다임이 파괴된 이상 “변해야 산다”는 외침은 여야를 떠나 정치권이 공유하는 유일한 복음(福音)이다.

    그 변화의 선두에 서 있는 정치세력을 ‘개혁파’라 부른다.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를 통해 조직 내에서 분명한 입지를 확보하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진 이들. 이들이 어디로 움직이느냐는 곧 노무현식 정치개혁과 변화의 방향을 읽는 잣대가 될 것이다.

    대선 직후 여야 개혁파는 본격적으로 당내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국민속으로’라는 개혁블록을 만들었다. 지난 1월5일 이부영(李富榮) 이우재(李佑宰) 김홍신(金洪信) 서상섭(徐相燮) 안영근(安泳根) 김부겸(金富謙) 김영춘(金榮春) 원희룡(元喜龍) 이성헌(李性憲) 조정무(曺正茂) 의원 등 개혁성향 의원 10명이 모여 결성한 이 모임은 한나라당 개혁특위와는 별도로 당 개혁방안을 내놓고 개혁여론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부정적 유산 청산을 위한 주도세력의 교체 ▲대선 패배 인물 2선 후퇴 ▲대의원 대폭 확대 ▲원내 정책정당을 위한 국회 독립운동 착수 등을 목표로 내걸었다.

    민주당은 ‘열린개혁포럼(열개포)’이라는 신주류 모임을 결성했다. ‘열개포’ 외에도 성향에 따른 모임이 잇따라 열려 당개혁을 압박해왔다. ‘열개포’에는 현재 60여 명의 현역의원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이 사실상 당의 주류로 들어서면서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한 발 앞서 개혁 플랜을 만들 수 있었다.



    지난 2월10일, 사실상 개혁파들이 주축이 된 민주당 개혁특위(위원장 김원기)는 내부 토론을 거쳐 최고위원제도를 폐지하고 중앙당을 사무기능만 갖는 기구로 축소하고, 원내총무의 위상을 강화하고 정책기능을 원내로 이관하는 한편, 지구당위원장직을 폐지하고 대신 중립적인 운영위원장을 신설하는 등의 당 개혁안을 마련했다. 한나라당 개혁파들이 당내 소수파라는 한계에 묶여 여론조성에 애를 먹고 있는 사이 민주당이 선수를 치고 나온 것이다.

    사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개혁파들은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격려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한나라당 개혁파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민주당 개혁파가 토론자로 참석하는가 하면 그 반대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을 만나면 ‘민주당이 잘해야 우리도 자극 받는다’며 격려의 덕담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당을 떠난 개혁파들 간에 연대가 확산되면서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아무개, 아무개 의원의 탈당이 임박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던 중, 민주당의 개혁안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정치권에 격랑이 일었다. 파문은 민주당 내부에서 시작됐다.

    “개혁신당 뜨면 즉각 합류”vs“민주당이 개혁당, 우리에게 오라”

    이종걸 의원: “민주당은 누가 개혁적인지, 아닌지 구별 안된다. 우리 당과 다른 당 개혁세력 합치는 것 선뜻 동의 안 한다.”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특위의 개혁안에서 주목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구당위원장제의 폐지, 또 하나는 지도체제개편과 중앙당의 축소다. 두 가지 모두 현역 정치인들의 ‘밥그릇’과 관련된 사안들이다.

    지구당위원장직이 없어지면 현역의원이든 원외든 총선을 겨냥해 뛰고 있는 지역구 정치인 입장에서 당장 현장 활동에 애를 먹게 될 터. 민주당의 영남 지역 지구당위원장 가운데는 중앙당 지원금 300만원으로 사실상 생활을 유지해온 이도 있는데, 이들에게 지구당위원장제 폐지는 정치활동을 포기하라는 요구에 다름아니다. 지도체제가 바뀌면 당권을 향해 뛰었던 중진들은 원점에서의 전략 재점검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중앙당이 대폭 축소된다면 중앙당의 당직자들은 당장 생계 문제에 부딪칠 처지다.

    특위안이 공개된 다음날부터 여의도 민주당사는 개혁안에 반발하는 이해관계자들의 항의 집회와 성명서 발표 등으로 어수선하다.

    한나라당이라고 조용할 리 없다. 내심 민주당 개혁안의 수위를 눈여겨보던 한나라당도 민주당 개혁안이 공개된 뒤 또 다른 이유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구당위원장제 폐지 같은 민감한 안이 민주당 개혁안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파장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국민속으로’ 회원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주장했던 제왕적 지구당위원장 폐지 주장이 민주당 안에 포함된 만큼 이전보다 분명하게 우리당 개혁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여기까지 정치개혁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대략적인 분위기를 살펴봤다. 지금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민주당 발(發) 개혁안에 대해 정치 현장의 개혁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개혁파라면 누구든 지구당위원장 폐지로 대표되는 ‘기득권 포기’에 동의하는 걸까. 지구당위원장 폐지 자체가 정치수준을 도외시한 과욕은 아닌가. 과연 민주당 특위안은 당내 반대세력의 저항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아가 여야 개혁파들은 노무현 정권의 등장으로 달라진 정치 환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달라진 민심과 변화를 바라는 국민적 요구에 어떤 대안을 준비하고 있을까. 민주당·한나라당 등 기성정당의 틀을 깨고 명실상부한 ‘개혁세력’을 만드는 거대한 정계개편은 가능할까. 그리하여 정치권은 마침내 보수와 진보로 재편될 것인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수도

    민주당 이종걸(李鍾杰) 의원(경기 안양·만안)은 특위 위원으로 민주당 개혁안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당 개혁안에 대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특위안과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개혁 방안이 거의 비슷하다. 당무회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위 안 가운데 가장 개혁적인 방안은 무엇이라고 평가합니까.

    “지금까지 지구당은 지구당위원장의 선거운동조직이었습니다. 지구당위원장제의 폐지는 지구당을 당원에게 돌려주겠다는 뜻입니다. 특위안이 채택된다면 이제 중앙당은 상명하복(上命下服)식으로 지구당을 지도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지구당의 연합체적 성격을 갖게 되고 중앙당의 정책기능도 국회로 들어가 원내정당이 됩니다. 이로써 평상시에도 선거조직으로 운영되던 중앙당의 규모가 줄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고비용에서 저비용으로, 정책중심·지역중심의 정당체제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의원은 낙관론자다. 당내 반발이 있기는 하지만 특위의 개혁안은 “관철될 것으로 본다”는 입장이다.

    “열린개혁포럼 현역의원만 60여 명입니다. 이미 우리가 당의 주류가 된 것입니다. 열개포만 개혁특위 입장을 지지해도 당무회의에서 통과되지 않겠습니까.”

    “개혁신당 뜨면 즉각 합류”vs“민주당이 개혁당, 우리에게 오라”

    안영근 의원:“낡고 수구 냉전적인 사고의 소유자가 한나라당 지도부가 되면 희망이 없다. 그래서 인적청산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낙관만 있는 게 아니다. 역시 개혁특위 위원이지만 송영길(宋永吉) 의원(인천 계양)은 다소 비관적이다. 송의원은 특위안이 당무회의 통과 여부도 불투명할 뿐 아니라 우리 정당정치 수준을 지나치게 높게 잡은 혁신적 안이라고 보는 듯했다.

    “개혁을 위해서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개혁은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과 참여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됩니다. 자칫 국민의 참여가 미미할 경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의도한 바와 다른 현상이 발생할 개연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지구당 자체는 폐지하지 않으면서 지구당위원장 대신 운영위원장을 두고 공직후보 선출과정에서 선거관리를 시키겠다는데, 출마자격도 없는 사람이 당 관리를 제대로 할지 의문입니다. 헌법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권한을 보장해도 편파성 시비가 생기는데, 대충 뽑은 운영위원장에게 지구당의 공직후보 선거관리를 맡길 경우 오히려 문제가 커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득권을 버리면 국민이 온다지만, 결과는 원외 지구당위원장만 무장해제당하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송의원은 “상향식 공천을 강화하려면 지구당을 강화해야 하지만 국민 참여를 늘리려면 지구당을 없애야 한다”며 “우리당의 개혁안은 둘을 같이 추진하고 있다. 지구당을 중립적 입장에서 관리해줄 원로급 인사가 부족하고 당원들의수준도 낮고 국민들의 참여도 부족한 상황에서 지구당위원장제 폐지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정당개혁의 당위에 대해서는 이종걸 송영길 두 의원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구체적 사안을 놓고 보면 이렇듯 판단의 편차가 드러난다.

    천정배의 외로운 저항

    두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민주당 개혁파 내부의 생각이 다르고 개혁파에서 신주류로 그 범위를 넓히면 시각차는 더욱 두드러진다. 동교동계 중심의 구주류까지 포함하면 민주당은 100인 100색의 의견으로 충돌한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개혁안을 사실상 주도했던 천정배(千正培) 의원 등 일부만이 외롭게 ‘개혁안 사수’를 주장할 뿐, 재검토하자는 여론이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고 있다.

    개혁은 현실이다. 현실에는 반드시 이해관계자가 있게 마련. 그래서 의견대립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개혁파 내부의 미세한 의견차이가 당 전체로 범위를 넓혀 조율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면 어떻게 되는가. 실제 민주당은 지금 사실상 내홍(內訌)상태에 빠져들었다. 당권을 노리는 중진은 중진대로, 현역의원과 원외 지구당위원장은 그들대로, 당직자는 당직자대로 특위안에 대한 찬반의견을 내놓으며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개혁의 당위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이해관계에 따른 의견대립으로 혼란스럽다.

    승자(勝者)의 개혁이 요란한 데 비해 패자(敗者)의 개혁은 다소 맥이 빠진 듯하다. 한나라당도 당 개혁특위(위원장 홍사덕 현경대)를 가동해 대선패배 이후 흐트러진 당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한나라당 개혁특위의 최대 관심사는 사실상 당을 홀로 지배해온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이냐다. 당의 지도체제와 대표 선출방법이 최대 쟁점이다.

    이런 주류의 논쟁에 반론을 들고 나온 세력이 ‘국민속으로’로 대표되는 당내 개혁파들이다. 한나라당 개혁파가 가장 앞세우는 개혁의 화두는 ‘인적청산’이다. 한나라당 안영근 의원(인천 남을)이 그 대표적 논객이다.

    안의원은 지난 1월말부터 줄기차게 당내 민정계 중심의 구정치인이 퇴진하지 않는 한 정치개혁은 없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는 기자를 만나서도 “현 시기 정치개혁의 핵심은 사람이 바뀌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말문을 열었다.

    “현재 여야 모두 정치제도 개혁을 논의중인데 사람 바뀌는 게 핵심입니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는 대단했습니다. 지난 대선 투표율도 10%이상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구태정치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신당 뜨면 즉각 합류”vs“민주당이 개혁당, 우리에게 오라”

    김영춘 의원: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았다. 지역주의 구태 벗어난 개혁정당이라면 힘 합쳐야”

    낡고 수구 냉전적인 사고의 소유자들로 또다시 한나라당의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은 정치개혁이 아닙니다. 외피만 바꾼 신장개업에 불과합니다.”

    안의원은 인적청산을 위해 필요하다면 ‘연판장’을 돌려서라도 여론몰이를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2월10일 안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뜻을 공개했는데, 이 때문에 다음날 국회 본회의장 주변에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연판장의 효과에 대해 묻자 “효력 여부도 중요하지만 오죽했으면 인적청산을 요구했겠느냐, 우리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총회를 하면 청와대를 친북세력이라 하고 노무현 정권을 좌파라고도 하고 노동당2중대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막말이 나와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선 뒤 의원총회에서 한 의원이 인수위 통일외교분과 위원들을 주사파라고 몰았습니다.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라면 이런 말을 못하도록 말렸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분위기였습니다. 요즘 같은 변화의 세계에서 수구냉전의 논리를 즐기는 세력이 당지도부가 되면 한나라당의 미래는 암울합니다. 그래서 환골탈태하자는 뜻에서 연판장을 제안했습니다.”

    -연판장 작성과 서명은 시작했습니까.

    “아직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연판장에는 (청산해야 할 사람) 이름을 거명할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낡고 부패한 한나라당의 수구이미지를 탈색해야만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들의 은퇴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을 계획이었습니다.”

    -연판장에 서명 의사를 밝힌 의원들은 있었습니까.

    “‘오마이뉴스’에 기사가 나온 뒤 국회에서 김무성 의원과 한바탕 소동이 있었습니다. 김의원은 내가 연판장에 청산해야 할 의원으로 자기 이름을 적었다고 오해를 했던 겁니다. 그 무렵 나를 찾아와 인적청산 주장에 대해 ‘맞는 얘기다’하고 속삭이듯 얘기하는 의원이 있었습니다. 심정적으로 내 주장에 공감하는 의원들은 꽤 있습니다. 내가 연판장 작성을 제안한 뒤 한 일간지에 한나라당에서 청산해야 할 인물 5인방, 10인방 관련 기사가 나왔습니다. 내 입으로 일절 사람 이름을 거명한 적이 없는데도 연판장에 청산해야할 사람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으로 오해했는지 지금은 다소 위축된 분위기입니다.”

    -현재 한나라당 자체적으로 개혁 작업이 진행중이지 않습니까. 이런 때 안의원이 왜 다른 목소리를 내느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 얘기도 옳습니다. 하지만 지도체제 변화만이 개혁과제는 아닙니다. 바뀐 지도체제에서는 바뀐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에게 기대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부정적 이미지의 인사들이 다시 지도부를 차지한다면 실망만 안겨줄 것입니다. 자기 살을 도려내는 개혁을 해야 합니다.”

    개발독재 상속자 물러나야

    한나라당 김영춘 의원(서울 광진갑)도 비슷한 주장을 전개했다. 개혁파 입장에서 한나라당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권위주의와 지역주의에 기대 정치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우리 문제만 보면 한나라당은 과거의 부정적 패러다임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권위주의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지역주의 정치에 의지해왔다는 겁니다. 권위주의와 지역주의에 의지해 이력을 쌓아온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이런 인적 구조를 청산하지 않고는 진정한 당 개혁을 했다 할 수 없습니다. 개발독재 상속자들의 2선 후퇴 없이는 한나라당 개혁도 없습니다.”

    민정계 퇴진을 위해 연판장을 돌리겠다는 안영근 의원의 주장도, 개발독재 상속자들의 2선 퇴진을 주장하는 김영춘 의원의 주장도 어딘가 공허하다. 연판장을 돌리고 퇴진을 주장한다고 그들이 말하는 ‘구태정치인’들이 알아서 물러날까. 솔직히 이 물음이야말로 한나라당 개혁파들이 가장 뼈아프게 느끼는 대목이다. 150명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국민속으로’를 결성한 10명의 의원으로는 중과부적(衆寡不敵), 인적청산 구호는 국민을 상대로 개혁파들의 자기존재 알리기 이상 의미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의원의 이어지는 주장이다.

    - ‘국민속으로’ 의원들이 인적청산을 중요한 개혁화두로 제기하는 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적청산을 하자는 겁니까.

    “개발독재의 상속자들이 책임있는 자리나 요직에 못 나가도록 하는 문제제기를 거대 담론으로 키워야 합니다. 공감된 합의라면 지도부가 그런 사람을 섣불리 요직에 임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개혁신당 뜨면 즉각 합류”vs“민주당이 개혁당, 우리에게 오라”

    송영길 의원: “한나라당 개혁파의 입당은 그들 스스로 결정할 문제. 총선 앞두고 우리 당 지역 경선에 참여하면 될 것.”

    -하지만 새로 선출된 지도부 역시 구시대 인물이라면 어떻게 할 겁니까.

    “직선으로 뽑은 대표에게 힘이 쏠리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지역 대표에 의한 간접선거를 하더라도 지역의 유력자들이 지역을 대표하는 집행위원에 선출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역대표를 뽑는 당원 구성부터 바꿔야 합니다. 당원의 노령화를 극복하고 성별·연령별·지역별로 균형을 갖추도록 당원비율을 조정해 경선절차를 사회의 구성원 수준에 맞게 하면 그나마 문제점이 최소화될 것입니다. 민주정당에서 출마지역 제한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합의한 수준의 개혁 작업만 이루어진다면 안될 것도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한나라당의 개혁안은 곧 확정될 것이고 곧바로 지금의 주류들 중심으로 새 지도부가 구성될 것이다. 김의원은 “역사는 하룻밤에도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하룻밤에 상황이 변하기에는 한나라당의 주류는 강고하고 흔들림이 없다.

    이런 이유로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국민속으로’의 일부 의원들이 사실상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당에 남아 다른 얘기하지 말고 하루라도 일찍 당을 떠나라”는 주류 의원들의 비아냥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일부 의원들은 ‘국민속으로’ 의원의 이름을 들어가며 “대선 직전, 이회창 후보 대세론이 한창일 때는 아무 얘기 없다가 왜 지금에서야 당 개혁을 떠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김영춘 의원은 “대선 때는 조직인으로서 당이 내세운 후보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 이전에도 개혁파가 단결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혁파 각자는 지금의 한나라당으로는 안된다고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봄 어려운 싸움이었지만 소수의 개혁파가 밀어붙여 일정정도 당 개혁을 이루지 않았나. 국민들은 기억 못 해도 정치와 관련된 분들은 잘 기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의 개혁을 외치면서 당내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과연 이들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속마음은 어떨까. 앞서 한나라당 주류의 관측처럼 당내 개혁을 외치지만 내심 탈당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국민속으로’ 의원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당장은 당내개혁을 위해 힘쓸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들은 새로운 정치적 선택을 앞두고 심각한 고민을 해왔고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안영근 의원.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뭐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우리 당은 개혁적 보수를 표방해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수일 뿐이었습니다. 외부사람 누구는 꼴통보수라고도 부르더군요. 합리적 보수라도 하려면 당내에서 개혁적인 목소리가 나와야 하고 이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돼야 합니다. 개혁을 주장해야 브레이크 없는 보수로 가지 않습니다.”

    -민정계를 인적청산의 대상으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민정계라고 해서 다 낡은 수구세력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들도 한때 국가경영에 역할을 했고 그 중에는 합리적 보수라 할 만한 인물도 있지 않습니까.

    “민정계도 옥석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정계는 동교동계와 흡사합니다. 민정계는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의 잔재라는 느낌을 줍니다. 민정계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국민에게는 그렇게 인식돼 있습니다. 총칼로 국민을 억압했던 세력으로 광주학살 주역의 이미지로 남아있습니다. 이에 대한 반성이 없습니다. 그런 민정계는 은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혁신당 뜨면 즉각 합류”vs“민주당이 개혁당, 우리에게 오라”

    김원웅 의원: “민주당은 호남 향우회당,여·야에서 의원 선별 영입해 5~8석 정당으로 바람 일으키겠다.”

    -인적청산을 위해 한나라당의 개혁을 요구했지만 개선의 정도에 머물 경우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러면 암담하죠. 지금 우리 사회의 주류가 바뀌고 있습니다. 5·6공 세력이 물러나고 새로운 주류가 형성됐다는 것입니다.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이후 진행될 개혁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바꿔놓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에게 도덕성과 성실성을 요구할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지금 같은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개선 정도에 그친다면 차기 총선에서 참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혁은 변화의 기운을 미리 감지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끼리 집안싸움에만 몰두하면 국민에게 실망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가봐서 (정치적)선택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당내 개혁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안영근 의원은 “차제에 정계개편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는 질문에 “예민한 시기라 선명한 답변을 하기가 어렵다”고 전제한 뒤 말을 이었다.

    “정계개편도 도덕적 명분을 가져야 합니다. 자칫 여당의 품으로 가는 것으로 비친다면 절대로 안 됩니다.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한 정계개편이어야 국민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한 정계개편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금 같은 양당 구도는 문제가 많습니다. 국민의 선택폭도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한나라당과 민주당 외에 새로운 개혁신당이 만들어진다면 어떨까요.

    “의원수 20명이 넘어야 힘을 가질 겁니다. 그런 신당이 만들어져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위협하면 화끈한 개혁도 가능할 겁니다.”

    김영춘 의원의 대답은 좀더 직선적이었다. 그는 때가 되면 “민주당으로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경우를 다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만약 한나라당의 개혁이 김의원의 기대에 못미친다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2월18일 연찬회가 있는데 18일까지 지켜보고 ‘국민속으로’의 전체입장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상황을 지켜볼 생각입니다. 당 잔류와 떠나는 경우 모두를 상정하고 전심전력으로 부닥쳐야지 쭈뼛거려서는 안 바뀝니다. 민주당으로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경우를 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의원은 “그럴 경우 ‘국민속으로’ 소속 의원 몇 명이나 함께 행동할 것으로 보는가”라는 물음에 “근본적 문제의식은 비슷하다. 자기희생을 포함한 결단을 내리자고 하면 쉽게 장담하지는 못하겠지만…. 털어놓고 그런 얘기를 해보지는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탈당파, 2~3명보다는 많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한나라당 상황이 개혁파들에게 불리하더라도 탈당의원은 많아야 2~3명에 그칠 것으로 보던데요.

    “(웃으며)2~3명보다는 많을 겁니다. 탈당을 하게 되면 미아가 되거나 정치를 그만둔다는 각오로 나서야겠죠. 그런 각오로, 내가 왜 정치를 시작했는지, 자신의 신념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념과 성향에 따른 정계개편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당은 사람중심으로 이합집산을 해왔습니다. 대통령이 만든 정당, 지도자가 만든 정당으로 구성돼 왔습니다. 그런 정당이어서 각종 성향의 사람들이 뒤섞였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념과 철학 중심으로 정치권이 재편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정치인이 인연과 정치적 관계의 사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방향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노무현 정권의 출현이 본격적인 이념정당의 등장을 앞당길 것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민주당도 과거 양대 정당의 일원으로서 누렸던 기득권에 연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민주당에서 개혁파가 탈당해 별도 신당을 만든다면 참여할 용의가 있습니까.

    “최선의 상황입니다. 역사의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주의 구태에 기반하지 않은 개혁정당이라면 어떤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힘을 합쳐야 합니다.”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정서는 분명해졌다. 당내개혁에 우선 최선을 다한다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개혁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결의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탈당이라는 극단적인 정치적 선택을 하더라도 민주당에 바로 입당하는 경우는 없다는 점도 분명했다. 민주당으로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민주당도 지역주의 정당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민주당에 뿌리내릴 만한 기반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김원웅(金元雄) 개혁국민신당 대표(대전 대덕)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절대 민주당으로는 못 간다”고 장담했다. “아무리 개혁해도 민주당으로 가는 순간 그 당에 흡수되는 것 이상은 아니다. 또 다른 신장개업 정당에 들러리를 서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 민주당은 어떤가. 한나라당 개혁파가 절박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면 이들의 ‘정서적 동지’인 민주당 개혁파 역시 그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터. 하지만 아직까지는 한나라당 개혁파의 좌충우돌하는 당내투쟁이 민주당 개혁파에겐 ‘강건너 불’ 이상은 아닌 듯하다.

    이종걸 의원은 여야를 초월한 정계개편 필요성에 대해 “우리 당과 다른 당의 세력이 합치는 것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사정은 잘 모릅니다. 민주당의 경우 누가 개혁적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세대간 차이, 국민을 위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지역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정계개편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안타까운 것은 1987년 양김 분열로 영호남의 민주세력이 분열된 것입니다. YS는 영남 민주세력의 정당을 만들었고 DJ는 호남 민주세력의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민주 대 반민주 대결구도가 영호남 대결구도로 이어졌습니다. 그게 벌써 16년째입니다. 그러다보니 민주당의 경우 호남중심이고, 수도권 의원들 가운데도 호남출신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역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호남)지역이 갖는 개혁성, 그 장점도 외면하면 안됩니다. 우리 당의 개혁성에 동의하는 분들을 지역을 가리지 말고 이번 정당 개혁 때 적극 영입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지역성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지역 인재영입을 진행하고 있다는데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습니까.

    “당연히 준비중입니다. 개혁적인 경기 강원 영남 지식인들을 대거 받아들임으로써 형식적인 지역 치중은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나라당의 개혁파 의원들을 적극 영입하는 것도 한 방법일 텐데요.

    “민주당에도 양김 분열에서 비롯된 구태의 잔재들이 뿌리 깊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DJ 중심의 당 얼개가 달라진 시대에 맞지 않아 재창당에 가까운 개혁을 하는 상황입니다. 신당창당의 방식으로 각계각층의 인재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온다면 그들 역시 창당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군부독재와 싸우던 시절에는 절차의 민주주의보다 수단의 강고함이 강조되었습니다. 이제는 절차에 있어서도 민주화되는 성숙한 민주세력이 전면에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송영길 의원은 민주당의 흡인력도 중요하지만 한나라당 개혁파의 자발성이 보다 본질적 요인이라고 말한다.

    한나라당 의원 영입 유도할 수 없어

    “(한나라당 개혁파의 영입은) 우리가 유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나라당 개혁파가 스스로 결정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을 탈당할 경우 무소속으로 있으면서 교섭단체를 만들 수 도 있겠죠. 그리고 사안별로 우리 당과 협의하는 공조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지구당위원장 제도가 폐지되고 운영위원장 체제가 되면 국회의원 선거를 6개월 앞두고 공직후보를 모집할 텐데 그때 지구당별로 후보단일화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나라당 개혁파들이 민주당의 당내경선에서 이기고 싶으면 지지자를 데리고 입당하면 됩니다. 당원과 국민선거인단이 5대5로 구성되니까요.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아닌 중립세력이라면 누구나 선거를 앞두고 우리 당에 들어와 국민참여경선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절박한 한나라당 개혁파

    확실히 민주당 개혁파들은 한나라당 개혁파에 비해 절박하지 않다. 당의 주류로 당개혁을 주도해가는 쪽과 소수파로 악전고투하는 처지의 차이만큼이나 정계개편에 대한 시각도 달랐다. 바로 이런 차이 때문에 본격적인 정계개편이 일어나기에는 조건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개혁파가 ‘인적청산’을 화두로 내세웠지만 정작 인적청산의 이유가 분명한 곳은 민주당이다. 대선 직후 ‘노무현 흔들기’에 참여했던 구주류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민주당 일각에서 줄기차게 제기됐다.

    천정배 의원은 지난 2월호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후보를 흔들어대는 것 자체가 후보의 지지율을 떨어뜨린 요인이 됐다”며 “대표적으로 책임이 큰 분들이 책임을 지도록 범위를 최소화하는 게 좋다. 나머지 분들은 내년 총선 등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심판받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어떻게든 책임을 묻겠다는 천의원의 생각과 초선 개혁파들의 생각은 어떻게 다를까.

    이종걸 의원은 “동교동계 등 당내 구주류들은 끝까지 안고 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과거보다 미래에는 어떻게 하겠다는 열린 정당으로 가는 마당에 수용하는 관점에 서야 하지 않겠나. 새로운 정당으로 가는 큰 흐름에서 볼 때 동교동계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당내에서 노무현 후보를 흔들었던 세력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데요.

    “국민이 보기에 반역사적인 인물은 국민이 심판할 것입니다. 정치권에서 누가 이들을 심판할 자격이 있습니까. 명확한 답을 갖고 있는 이들이 바로 국민입니다.”

    송영길 의원도 비슷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특위가 내놓은 지구당위원장제 폐지 등의 제도가 정착된다면 “자연히 물갈이가 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은 단순한 개인이 아닙니다.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당내에서 노무현 후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흔든 것도 역시 그런 생각을 하는 국민과 세력의 정서를 대변한 것입니다. 그런 고난을 극복하고 당선되지 않았습니까. 그 과정에서 반대하던 사람들도 포섭하게 된 것입니다.”

    승자의 여유는 인적청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개혁파는 개혁특위 안대로라면 오는 8월 치러질 전당대회가 정치권 변화의 중대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그때쯤이면 민주당은 재창당에 가까운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3월이면 갈 길 정해져

    반면 한나라당 개혁파들은 당장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 내몰릴 처지다. 2월18일, 19일로 예정된 의원 연찬회에서 당 개혁방안이 채택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주류가 어떤 개혁방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떤 인물이 당의 간판이 되느냐에 따라 당내 갈등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국민속으로’의 한 관계자는 “당개혁 방안이 확정되고 3월쯤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쯤이면 우리의 진로도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계개편은 한나라당·민주당에서만 일어날까. 또 다른 정계개편의 진원지는 없을까. 아예 개혁을 당의 모토로 내건 개혁국민정당 김원웅 대표는 “브라질에 나비가 날면 텍사스에 토네이도가 일듯, 향후 정치권 재편에 우리 개혁국민정당의 역할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단 1석의 의원뿐인 개혁정당의 역할에 주목하는 정치권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개혁에는 동의하되 민주당 중심의 개혁에는 회의적인 친(親)노무현세력이 존재하는 한 개혁정당의 움직임을 예사로 볼 일은 아니다. 김대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개혁세력의 연대 방안에 대해 물어보았다.

    -개혁정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노무현정권의 개혁을 도우려면 개혁핵심이 모여야 하지 않습니까.

    “정치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개혁입니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개혁특위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개혁특위의 활동성과에 나는 회의적입니다. 올 3~4월쯤 개혁특위가 그린 그림이 드러날 겁니다. 하지만 그걸로 국민들은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분칠수준에 그칠 것입니다. 지역주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의 소선거구제 고집도 기득권 유지발상입니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중 대선거구제를 주장하면서 내심 ‘되겠나’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세력입니다. 민주·한나라당내 개혁파들도 당의 변화가 없는데도 그 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가끔 공허한 목소리나 내면서 인기관리하려 든다면 국민에게 외면당할 것입니다.”

    -민주당이 개혁세력의 구심이 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민주당이 아무리 개혁한다고 해도 민주당 간판으로 영남에 들어가 당선될 수 있습니까? 현재 민주당원의 90%가 호남사람입니다. 서울 민주당원의 90%도 호남출신입니다. 지난번 지자체 후보 선출 때 유력한 비호남인이 당내 경선에서 지기도 했습니다. 호남향우회가 미는 후보가 자질과 상관없이 당선됐습니다. 원혜영 부천시장이 지구당 후보 경선에서 낙선한 것이 그 한 예입니다. 물론 뒤에 중앙당이 개입해 원시장을 공천 했지만요. 민주당은 국민회의의 ‘신장개업당’입니다. 국민회의는 통합민주당을 분열시킨 호남향우회당입니다. 그 뿌리를 가진 정당에서 당내민주화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민주당은 해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지역주의 혁파는 어렵습니다. 호남표에 개혁표를 붙이자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국민회의의 지역주의 원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민주당 개혁안을 보면 지구당 후보경선부터 국민 참여로 호남 일색을 희석하려는 노력이 보이는데요.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인 이미지가 강한 사람입니다. 호남의 지지는 물론 개혁세력의 표도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이기 때문에 국민경선에서 상품성을 가졌던 겁니다. 다른 경선에서도 비호남 출신이 입당해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김원웅 의원의 주장처럼 민주당의 호남 당원들은 향우회 수준의 정치의식을 갖고 있는 것일까. 민주당 의원들은 호남의 개혁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몽준 나왔어도 호남은 밀었다”

    -호남 유권자들의 개혁성도 인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호남이 오랫동안 소외당했기에 소외자의 고뇌가 가해자의 고뇌보다는 깊고 심각하다는 점에서 호남의 진보성을 인정합니다. 호남에서 노무현 후보가 90%이상의 지지를 얻었는데 만약 이인제나 정몽준이 단일후보였어도 호남은 90%이상 지지했을 것입니다. 이는 영남정권 출현에 대한 호남인들의 공포감 때문입니다. 호남이 개혁적이라면 김대중씨가 통합민주당을 깨고 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DJ를 지지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김대표의 개혁국민정당은 오는 4월 경기 고양 덕양갑 보궐선거에서 유시민씨를 후보로 내세울 예정이다. 민주당과 개혁국민정당은 이 문제를 두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굳이 개혁후보를 분열시킬 필요가 있느냐. 유시민씨가 민주당 후보로 나서면 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개혁국민정당은 민주당과 분명한 선을 긋고 나섰다.

    당락에 연연하지 않는다

    “덕양갑 보궐선거에서 당선도 중요하지만 우리 목표는 인지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현재 5% 수준인 인지도를 50% 수준까지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우리당 자체 ARS조사 결과 덕양갑에서 우리당 인지도가 51%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당에 대한 지지도도 15~20%였습니다. 새 정치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높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락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내년 총선에 대비해 원칙적으로 접근하겠습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모두 해체해야 할 낡은 기득권 세력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등거리정책을 유지할 것입니다.”

    -한나라당 ‘국민속으로’ 의원들과는 교류를 하고 있습니까.

    “탈당 직전인 지난해 10월,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 가운데 몇 명과는 개혁파의 당내 입지와 관련, 깊이있는 상의를 했습니다. 함께 개혁정당으로 가자고 권유했습니다. 이부영 서상섭 김홍신 안영근 김부겸 의원 등과 차례로 만나 두 가지를 상의했습니다. 하나는 한나라당을 개혁으로 견인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대부분 회의적이었습니다. 지금이 당을 뜰 시점 아니냐는 내 제안에는 대부분이 신중론을 폈습니다. 최근 한나라당 보수파 의원을 만나보면 ‘국민속으로’에 대한 불신이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이회창 후보가 잘나갈 때 이회창 대세론에 편승하지 않았느냐, 그러다가 대선에 지니까 개혁을 외치고 있다’고 공격하더군요. 솔직히 개혁파 중 일부는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면 이상적인 개혁세력 연대방안은 무엇입니까.

    “민주당의 개혁파와 한나라당 개혁파, 개혁당과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합류해 일거에 거대 개혁세력을 만드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그림이죠. 그래서 우선 한나라당과 민주당 내에서 색깔이 분명하고 대중적으로 지지받는 소수 개혁파를 우리당으로 선별 영입하고 싶습니다. 5~8명의 현역의원만 있으면 내년 총선에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낡은 정치를 끝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단 선명해야 합니다. 1명이라도 선명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기회주의자 10명보다 선명한 사람 1명이 낫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3~4월쯤이면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김대표는 현재 대상자를 선정하고 접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입 대상자는 민주·한나라당 가운데 어느 쪽입니까.

    “양쪽에 다 얘기했습니다. 현 시점은 두 당 모두 당내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당 개혁은 절망적일 때 나오는 것이 순리 아니겠습니까. 우리 정치권에서 개혁세력은 셋방살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민주당에서는 전세를 살지만 한나라당에서는 사글세 신세입니다. 개혁국민정당은 작지만 우리 집을 가진 정당입니다. 개혁세력은 기존정당이 선거 때 활용하는 장식 역할만 할 뿐 본질은 바꾸지 못했습니다. 본질을 바꾸려면 독자세력화해야 합니다.”

    ‘준비된 개혁세력’이 필요한 이유

    -하지만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개혁국민정당의 등장은 또 다른 분열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호남이 민주당 포기하지 않으면 영남이 한나라당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호남에 가면 호남이 먼저 민주당을 포기하라고 얘기합니다. 호남은 두 번이나 정권을 창출했으니 여유가 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부산에서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5년 뒤에도 영남정권은 창출할 수 없다, 한 세대가 지나도 안된다’고 말입니다. 이유는 영남이 키운 정치인이 수구냉전세력이기 때문입니다. 4선 5선 의원도 영남 경계만 벗어나면 표를 못 얻습니다. 수구냉전세력이 영남지역주의와 결합했고 그게 한나라당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으로는 절대 정권 창출 못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영남 정치인들은 반DJ정서로 표를 모아왔는데 그런 인물로는 정권창출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김대표는 개혁세력만이 국민의 대안이라는 생각을 신념처럼 품고 있다.

    “노무현이 실수하면 보수로 표가 갈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DJ의 실수에 실망한 표가 보수 세력으로 가지 않았듯, 노무현에 실망한 표는 더 다듬어진 개혁세력에게 갈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된’ 개혁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각각의 정당에서 개혁을 표방하는 정치인들은 ‘개혁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에서는 ‘신주류’로, 한나라당에서는 ‘소수파’로 불린다. 개혁파가 모여들어 덩치를 불릴 때 ‘개혁세력’이라 부른다.

    지난 두 달간의 인수위원회 활동과 청와대 인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그 어느 정권보다 분명하게 개혁세력을 중용하고 그들을 배경으로 정치를 할 생각임을 분명히 했다.

    과연 개혁파는 노무현정권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력인 ‘개혁세력’으로 성장할 것인가. 올 봄은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정치의 계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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