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23일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와 고건 총리후보(왼쪽부터),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맨오른쪽)가 인수위 사무실에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둘째,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두 문민대통령과 정치적 뿌리가 비슷한 듯하지만 철저히 다른 인재풀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정권이 지역기반이 분명한 탓에 인사의 특정지역 편중이 분명했다면, 현재까지 드러난 노무현정권의 인사결과에는 과거 같은 쏠림현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노대통령은 두 전직 대통령과 비교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정치 이력이 짧은 탓에 ‘신세를 갚아야 할’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신세를 갚을 사람이 많으면 자리보다 사람 우선의 인사를 하기 쉽다. 하지만 이번 청와대 비서관 인선을 보면 사람 우선의 인사는 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원칙이 대체로 준수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도, 청와대 인사에 관해 “생소하다” “젊다” “여성이 많다”고는 하지만, “문제 있는 인사가 기용됐다”는 적극적인 흠결을 지적하는 기사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잡음 없는 인사의 비결이 뭘까. 대통령직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이렇게 정리했다.
잡음 없는 인사의 비결
“노무현 대통령은 철저히 기준을 제시하는 스타일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부총리에 대해서는 ‘국민이 안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능력을 우선하고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을 물색해 달라’고 인사 보좌관에게 주문을 합니다. 그러면 인사팀은 각종 채널을 활용해 이런 기준에 맞는 인물을 찾아냅니다. 그런 뒤 인사팀 내부에서 노대통령이 제시한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을 거론하고 검토합니다. 그때 거명된 인물이 언론에 마치 입각추천을 받은 인물인 것처럼 보도됩니다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죠. 하여간 그런 식입니다. 경제부총리 후보로 김종인(金鍾仁)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김진표(金振杓) 인수위 부위원장, 장승우(張丞玗) 기획예산처 장관 등의 이름이 언론에 거론된 것도 이런 절차를 거쳐서죠.”
이런 식으로 노대통령은 부처별 장관후보의 자격요건을 공개했다.
예를 들어 교육부총리감으로 노대통령이 내세운 기준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첫째, ‘한 줄 세우기’ 문화와 학벌사회 타파, 둘째, 실력경쟁 사회 구현을 위한 개혁성 등이다. 인사팀은 이런 조건에 일치한다고 평가받은 교육계 인사들을 추천받기도 하고 찾아 나서기도 한다.
법무장관의 조건에 대해 노대통령이 던진 화두는 ‘법무부 문민화 및 사시 기수 불(不)고려 원칙’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非)검찰 출신 발탁 관측이 유력하게 나돌기도 했다.
옷로비 특검을 지낸 최병모(崔炳模)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회장과 강지원(姜智遠) 전 청소년보호위원장이 새 정부 첫 법무장관 후보로 거론됐던 것도 법무장관 자격 조건에 관한 노대통령의 발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의 인수위 관계자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자리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의 특성을 먼저 검토한 뒤 적임자를 고르는 인사 방식 때문에 실제 예상외의 인물이 속속 기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송경희 청와대 대변인이다. 송대변인은 KBS아나운서를 시작으로 미주 동아일보 기자, 호텔 홍보실장 등을 지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출신으로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방송정책관련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대변인에 발탁됐을 때 언론에 공개된 이력에는 노대통령과의 ‘정치적 인연’도 찾아볼 수 없다. 송대변인 스스로도 “내가 왜 발탁됐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내정 직후 “노무현의 국정철학이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노당선자를 만나지 못해 모르겠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런데 대변인의 조건에 대한 노대통령의 주문을 보면 왜 그가 대변인에 임명됐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