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호

발목잡고 밀어내고 흠집내고… 민주당 당권 싸움

  • 글: 정용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ongari@donga.com

    입력2003-02-24 18: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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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권을 둘러싼 민주당 내 갈등이 시간이 흐를수록 첨예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신·구주류간의 갈등에서부터 신주류 내부의 신주류-개혁파간, 또 신주류 양대 실세인 김원기 고문-정대철 최고위원간의 갈등으로 번져가고 있는 것. 당 지도부 교체 및 인적청산을 통한 개혁작업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불거진 이 같은 파열음은 민주당의 앞날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는데….
    발목잡고 밀어내고 흠집내고… 민주당 당권 싸움

    2003년 1월20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살생부 파문’과 관련,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살생부 파문’은 당내 신·구주류간 갈등을 촉발시켰다.

    민주당은 요즘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선거에 이기고도 당의 개혁방향을 놓고 한나라당 못지않은 내홍(內訌)을 두 달째 겪고 있다. 신·구주류간 갈등 때문만은 아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를 도왔던 이른바 친노(親盧)파 내에서도 심상치 않은 갈등기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핵심은 당권이다. 당의 주도세력 교체를 놓고 민주당에서는 신·구주류라는 이분법을 넘어선 복잡한 ‘4차원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개혁특위(위원장 김원기·金元基 고문)가 현행 최고위원제도 폐지 및 지역대표 청년·여성 대표 66명으로 구성되는 집단지도체제 도입, ‘제왕적’ 지구당위원장제도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당 개혁안을 마련하고 며칠 지난 2월13일 저녁.

    한화갑(韓和甲)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최고위원들이 서울 신문로의 한 유명 한정식집에서 오랜만에 만찬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는 김태랑(金太郞) 최고위원이 주선했는데, 참석자들은 발렌타인 21년산을 반주로 곁들이며 2시간여에 걸쳐 회포를 풀었다.

    당 개혁안을 놓고 논란이 불거진 상태였고 노당선자 취임 전 한대표 사퇴설까지 나돈 시점이었기에 기자들의 관심을 모았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에 대해서는 모두 함구했다. 개혁안이 최고위원회의에 공식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얘기할 게 없다는 이유였다. 다만 한대표는 사퇴 얘기가 나왔느냐는 질문에 웃으며 “ㅅ자도 안 나왔어요”라고 했고, 김태랑 최고위원은 “기사가 될 만한 얘기는 없었고 화기애애한 자리였다”고만 전했다.



    그러나 이날 최고위원 만찬 회동의 의미는 바로 이튿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정식 최고위원회의에서 드러났다. 한대표는 천정배(千正培) 개혁특위 간사로부터 개혁안을 보고받으며 “이것이 개혁신당안과 같은 것이냐”고 물었고, 천간사가 “유시민당을 말하느냐”고 되묻자 “그렇다. 이 안이 통과되면 우리가 처음 시행하게 된다. 유시민당도 그 같은 안을 아직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쏘아붙인 것.

    특히 당 개혁특위가 당무위원회의에서 현 지도부 사퇴를 전제로 임시집행부를 구성,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구성할 때까지 6개월간 당을 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건의한 데 대해 한대표는 “당무회의에서 지도체제를 바꾼 예가 정당사에 없다. 직선 최고위원들을 당무회의에서 정지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한대표는 한 측근을 통해 “당무위원회의에서 과도 지도부를 구성하고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과도 지도부가 6개월간 당무를 집행토록 한다는 것은 쿠데타적 발상이다”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김원기 고문이 만든 당 개혁안이 최고위원회의에서 제동이 걸리는 순간이었다. 이는 물론 전날 최고위원 만찬회동에서 걸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최고위원들은 당 개혁안에 대한 반격을 위한 의견 조율을 한 것이다.

    삐걱대는 김원기와 정대철 쌍두체제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대선 이후 김원기 고문과 함께 당내 신주류의 쌍두마차로 떠오른 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개혁특위가 개혁안을 확정하자 당 안팎에서는 “김원기 고문이 정대철 최고위원에게 물을 먹인 것 아니냐”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정최고위원은 사실 당권에 큰 의지를 갖고 있었다. 정최고위원은 대선 이후 공공연히 “총리는 ‘원기 형님’이 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는 고건(高建) 전 서울시장이 총리에 내정되기 직전인 1월 중순까지만 해도 “새 정부 첫 총리는 정치력 있는 인사가 맡아야 한다”며 “노당선자를 만난 자리에서 총리 후보로 김고문을 추천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히기도 했다.

    이는 뒤집어 얘기하면 당권은 자신이 맡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신주류측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이 “선거가 끝난 후 선대본부장들이 의견을 모아 노당선자에게 김고문을 총리 후보로 천거했다”고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고문을 당 개혁특위위원장으로 민 것도 정최고위원측이었다. 특위위원장을 맡게 되면 당권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고문이 특위위원장을 마지못해 맡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최고위원측은 나아가 “총선을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단일성 집단지도체제가 현실적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고문은 정최고위원의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 근거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먼저 개혁특위는 정최고위원이 노당선자의 방미단 대표로 미국에 가 있는 동안 단일성 집단지도체제 대신 66명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최고위원 입장에선 정치인생 30여년 만에 당권을 잡을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특위안대로라면 당권을 잡을 가능성이 멀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최고위원측에서는 “김고문이 당권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비난 발언이 노골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이에 앞서 전당대회 시기와 방법을 놓고도 김고문과 정최고위원 사이에는 갈등 기류가 감지됐다. 정최고위원측은 서열 2위인 정최고위원이 당권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관측이 나오던 올 초 노당선자 취임전 ‘조기 전당대회론’을 제기했다. 노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서 대선 승리에 기여한 여세를 몰아 당권에 도전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특위에서 느닷없이 ‘2단계 전당대회론’이 제기됐다. 노당선자 취임 전에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과도체제를 구성, 대의원 교체와 지구당 개편 등을 마무리한 뒤 하반기에 다시 전당대회를 열어 지도부를 선출하자는 내용이다.

    김고문은 이때 “개혁안을 단기간에 매듭짓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2단계 전당대회론에 힘을 실어줬다. 반면 정최고위원측은 “특위위원장을 맡아 당장 당권 도전에 나설 수 없게 된 김고문이 개혁파를 등에 업고 시간 벌기를 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 시작한 것.

    김고문은 이를 일축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거취에 대한 논란이 일자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당에 남아 전체를 아우르는, 한마디로 형 같은 역할을 하려고 한다”며 “어떤 자리에 구애받지 않고 전체적으로 우리가 힘을 합쳐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하겠다. 노당선자를 배출하는 데 힘을 합한 세력들이 초심을 갖고 뭉쳐 정치를 새롭게 바꿔가는 것이 지금 할 일이다. 이것을 하는 데 충돌이 있을 수도 있지만, 흩어지지 않도록 모아내고 또 제대로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양측의 신경전은 갈수록 가열되는 조짐이다. 정최고위원 및 이른바 선대위 본부장급 인사들은 김고문이 ‘국민통합추진회의’를 배경으로 궁극적으로 당권을 노리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고, 김고문 측은 “노무현 정권의 안착을 위해 사심없이 일할 뿐이다”는 입장이다.

    정최고위원을 위시한 신주류와 개혁파의 물밑 신경전도 볼만하다. 신기남(辛基南) 추미애(秋美愛) 천정배(千正培) 정동채(鄭東采) 정동영(鄭東泳) 의원 등 개혁파는 대선 직후 당의 주도세력 교체를 위한 은밀한 작업을 도모해왔다는 게 정설이다.

    이들은 민주당을 확실한 개혁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하며 대선 승리 직후인 지금이 적기라고 보고 있다.

    신주류와 개혁파의 암투 본격화

    대선 직후인 12월22일 조순형(趙舜衡) 의원을 비롯한 개혁 성향 의원 23명이 “사람의 교체가 가장 시급한 일이며 과거 인물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며 당의 발전적 해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그 시발탄이었다.

    이들은 노당선자의 뜻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대적인 세몰이에 나선다. 특히 노당선자에 의해 차세대 주자로 지목된 정동영 의원도 1월초부터 슬슬 당권을 향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최고위원이 사석에서 정의원을 향해 “벌써부터 당권을 노리고 다닌다”며 견제하고 나선 것도 그 시점이다. 신주류측은 “개혁파 의원들이 노당선자의 뜻을 잘못 읽고 지나치게 앞서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1월초 노당선자가 참석한 워크숍에서 반격을 꾀했다. 즉 ‘개혁 속도조절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추미애 정동영 의원이 워크숍 도중 자리를 빠져나온 것도 심상치 않은 부분이었다.

    노당선자는 신주류와 개혁파의 한판 승부에서 일단 신주류의 손을 들어줬다. 당에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더욱이 호남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개혁파의 인적청산 요구는 자칫 정치적 기반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당 개혁특위 논의 과정에서 몇 차례 우회적으로 전달됐다. 이상수 사무총장이 1월26일 노당선자를 만나고 온 뒤 “노당선자와 중앙위 체제를 얘기하면서, 작은 단위에서 너무 경쟁이 치열할 수 있고, 우리 당이 권역별로 균등하지 않아 대표자의 급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공개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총장은 “노당선자는 당 대표든 중앙위 의장이든 당을 대표하는 사람은 직선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는 집단지도체제 보다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가야 한다는 신주류측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혁특위 간사인 천정배 의원 등 개혁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번에 확 바꾸지 않으면 국민 지지를 받기 어렵다”며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되 중앙위의장을 직선으로 선출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한 것.

    그러면서 임시 지도부가 6개월간 당을 이끌도록 하고 임시 중앙위의장은 당권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회심의 카드를 내놓았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정최고위원과 신주류측은 겉으로는 “당무위원회의에서 통과되겠느냐”는 말만 했다. 그러나 내심 “개혁파의 의도가 구주류는 물론 자신들까지 물갈이 대상에 포함시키려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신·구주류 중진간 연대 움직임

    정최고위원과 가까운 한 신주류 중진 의원은 “반(反)개혁적 인사로 몰리는 게 가장 두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집단지도체제 및 원내정당화라는 명분으로 개혁파들이 개혁안을 밀어붙여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듯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얘기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구주류 중진간 모종의 연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정최고위원이 한대표와 은밀한 접촉을 강화하고 있으며, 박상천(朴相千) 최고위원과의 관계 회복에 나서고 있는 데는 이런 정치적 흑막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상수 사무총장이 최근 전당대회 시기와 관련해 “꼭 취임식 전에 결론을 내려 하지 말고 3, 4월에 전당대회를 하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하고, 한대표측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도 심상치 않다.

    이는 한대표의 명예로운 사퇴를 보장하되,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노당선자 취임 후 새 지도부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임시 지도부를 구성한 뒤 지구당위원장 물갈이를 거쳐 8월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구성하자는 개혁파에 대한 조직적인 역공으로 풀이될 수 있다.

    지난 1월 불거진 ‘인터넷 살생부’는 민주당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특히 역적, 또는 역적 중의 역적으로 몰린 구주류 중진들과 일부 개혁강경파 의원들간의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이다.

    게다가 대선 때 노후보를 도왔던 신주류와 개혁파와의 갈등도 심상치 않은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대선 직후 민주당에서 ‘민주당의 승리냐’ ‘노무현의 승리냐’의 논쟁이 붙은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개혁파 의원들은 당시 당 해체와 인적청산을 요구하며 “노대통령 당선은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노무현의 승리이고,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세력들의 승리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제 민주당은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며 ‘민주당 사망론’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동교동계를 비롯한 구주류가 “무슨 소리냐. 민주당이 없었다면 노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겠느냐”고 거세게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이 논란에서 신주류는 “노무현의 승리이고 민주당의 승리다”며 중간적 입장을 취했다. 민주당을 리모델링해서 당의 주도세력을 점진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주류와 개혁파 의원들의 현격한 시각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요즘 “탈레반(개혁파 의원들을 지칭하는 이름)들이 개혁신당을 만들려 한다”는 얘기까지 흘러다니고 있다. 한 구주류 당직자는 “탈레반들이 어차피 당무위원회의에서 통과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무리한 개혁안을 만들었다. 이는 개혁신당 창당을 통한 정계개편의 명분 쌓기용이다”고 말했다.

    민주당, 어디로 가나

    사실 개혁신당 창당 움직임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6·13 지방선거와 8·8 재·보선 참패 이후 후보 지위를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던 노후보는 몇몇 개혁파 의원들과 개혁신당 창당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물론 김원기 고문이 서둘러 진화하는 바람에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정치권 개혁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또 민주당 개혁파 의원들이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 개혁적 국민정당과 힘을 합쳐 개혁 세력 위주의 정계개편을 시도할 경우 내년 총선에서 일대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개혁파 의원들이 시민단체와 함께 ‘정치개혁추진 범국민협의회’(가칭)를 결성키로 한 것이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물론 개혁파 내에서도 궁극적으로 탈당 및 개혁신당 창당까지 각오하고 있는 의원들의 수는 현재로선 소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개혁파가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각 계파별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빠져 있는 민주당의 앞날은 예측불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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