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6일로 김동식(金東植·지금 생존해 있으면 57) 목사가 행방불명된 지 만 3년이 되었다.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시에서 고아원 겸 선교센터로 ‘사랑의 집’을 운영했던 김목사는 2000년 1월16일 12시30분쯤 옌지시 예림불고기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다 일단의 젊은이들에게 납치된 후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2000년 10월23일 통일부는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김목사가 북한에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 자료에서 통일부는 1970년 이후 북한으로 납치된 한국인은 김목사를 포함해 217명이고(해외에서 납치된 사람 포함), 김목사는 1995년 발생한 안승운 목사 납치사건 이후 두 번째로 북한으로 납치된 목사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북한으로 납치된 한국인이 486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김목사가 어떻게 납치되었고, 김목사의 송환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사실은 김목사의 송환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인 바 없다).
이춘길, 김목사 납치조 명단 공개
북한은 김목사를 어떻게 납치해 갔을까. 지난 1월호 ‘신동아’에는 북한 보위부(국정원에 대응하는 북한의 비밀 정보수사기관) 소속 공작원 이춘길(33)씨의 수기 ‘나는 공화국의 저승사자였다’가 실렸다. 중국 내 탈북자들을 체포,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이씨는 이 수기에서 ‘김목사는 탈북자들에게 종교의식을 심어준 후 북한에 성경을 들어가게 한 혐의가 있다’며 북한에서 온 공작원 세 명과 조선족 협조자 여섯 명 등 도합 아홉 명이 김목사를 납치하는 데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김목사를 납치하는 데 사용된 차량은 회색의 중국제 산타나 승용차로 ‘吉 H 423-23’이라는 번호판을 달고 있다고까지 밝혔다. 수기를 통해 김목사의 납치 경위를 밝힌 이씨는 지난 1월22일 항공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해 귀순의사를 밝히고 현재 관계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러한 이씨는 한국으로 귀순해 들어오기 전, 보위부의 지시를 받으며 중국에서 활동해온 북한 공작조와 조선인민군 보위사령부(한국군 기무사에 대응하는 군 비밀 정보수사기관)의 지시를 받으며 중국에서 활동해온 공작원들의 명단을 보내왔다(사진 참조). 이씨는 이 명단에서 김목사의 납치에 관여한 북한 보위부 공작원 세 명과 조선족 여섯 명의 이름도 함께 밝혔다.
이씨가 김목사 납치에 관여했다고 밝힌 북한 보위부 공작원 세 사람의 인적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③번의 지광철은 중국 국적의 조선족이지만 이씨는 북한인으로 정리했다).
이어 이씨는 김목사를 납치하는 데 도움을 준 여섯 명의 조선족에 대해서는 이렇게 밝혔다.
이씨는 김목사가 지팡이에 의지해 걸음을 옮기는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이들이 예림불고기집 앞에 세워놓았던 차에 태워져 바로 북한으로 납치되었다고 설명했다. 북한 보위부는 왜 김목사를 납치해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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