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호

한국 조폭은 정치인이 키웠다

베테랑 ‘조폭검사’ 직격 발언

  • 글: 조승식 대전지검 천안지청장

    입력2003-02-25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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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력기관에서 호텔 파친코 지분 ‘교통정리’
    • 조직폭력배와 유착한 권력층 인사 반성해야
    • 공정경쟁 해치는 조폭들의 대금업·건설업 개입
    • 수사검사 괴롭히는 투서와 진정
    • 약점 안 잡히려 골프 안 치고 유흥업소 출입 안 해
    • 홍검사 사건은 ‘조사는 검사가 주도한다’는 원칙 지키지 않은 탓
    • 거물급 잡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권력 감시해야
    한국 조폭은 정치인이 키웠다
    지난해 발생한 서울지검 강력부의 살인용의자 가혹행위 사건으로 주임검사를 비롯한 수사팀이 독직폭행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검찰의 강력부 존폐가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1990년 5월 서울지검의 강력부 창설멤버로서 조직폭력배 수사에 참여한 이래 부산지검 강력부 검사, 대구·수원지검 강력부장, 또는 일선의 지청장 등으로 근무하면서 검찰의 조폭수사에 직접 참여하거나 강력부의 활약을 10여 년간 지켜본 검사로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강력부 출신 중간관리자로서 검찰 강력부의 탄생배경과 활약상, 조직폭력 현 실태, 강력수사의 문제점, 그리고 강력부의 향후 진로 등에 대해 숙고해보기로 한다.

    ‘레이건식 경호’ 선보여

    우리나라 조직폭력배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멀리 드라마 ‘야인시대’에 나오는 일제시대의 소위 협객스타일 폭력배까지 거슬러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검찰 강력부 출범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대체로 5공 이후의 조직폭력세계를 조명해보면 될 것이다.

    조직폭력배들은 5공 초기 계엄하에서 이른바 삼청교육을 실시하고 폭력사건에 연루된 조직의 몇몇 간부급에 대해 군법회의에서 중형을 선고하는 등 당국이 강경책을 펴자 한동안 자숙의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계엄이 해제되고 정부의 조직폭력 척결의지가 다소 약화된 듯이 보이자 다시 발호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980년대에 들어와 경제규모 확대, 소비향락산업의 발전에 궤를 맞추어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난 나이트클럽 등 대형 유흥업소와 성인오락실, 호텔 파친코 등에 직접 진출, 엄청난 불로소득으로 자금원을 형성했다.

    이들 폭력조직은 원래 잡초 같은 생명력을 갖고 있어 끊임없이 자생노력을 기울인다. 거기에 정치권뿐만 아니라 일부 기업인도 때로는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그들을 이용해왔기 때문에 광범위한 비호세력이 형성됐다. 나중에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개혁사정이 본격화되자 검찰, 경찰, 국가안전기획부 등의 고위간부들이 이들과 유착한 사실이 문제가 돼 사법처리된 것이 좋은 예다.

    이들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고 지연, 혈연, 학연 등을 내세워 정치인 또는 관계공무원들에게 접근해 설득, 회유, 매수, 협박 등의 방법으로 각종 문제를 해결한다. 또 조직간의 갈등이나 제3자와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조직원들로 하여금 상대방을 가해하도록 명령해 끊임없이 잔혹한 칼부림사건을 일으켜왔다.

    또한 이들은 저학력, 전과 등 수치스런 과거에 대한 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해 검은 돈으로 호화판 해외여행을 하고 고가의 외제물품을 구입하는 등 엄청난 과소비를 주도해왔다. 심지어 일본 야쿠자나 미국 마피아 등 외국 폭력조직의 행동양식까지 본떠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안기곤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초까지 조직폭력의 황금기에는 폭력조직의 두목이 경조사에 나타날 경우 소위 ‘레이건식 경호’가 펼쳐졌다. 이것은 두목이 호화 외제차를 타고 가면 깡패 특유의 복장을 한 조직원들이 사방에서 차량의 진행 속도에 맞추어 뛰면서 경호하는 것이다.

    1987년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이들은 자파의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국적 연합체를 결성해 폭력조직끼리 연대했다. 이로써 소위 전국구급 건달이 많이 탄생하게 됐다.

    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이 호남 출신 주먹계 거물 박종석(일명 번개) 등과 함께 조직한 신우회, 이리 출신 건달 김항락이 군산 출신 건달 형감(일명 형철우), 부산 영도파 두목 천달남 등과 연대해 만든 일송회, 전북 조직폭력배의 대부 이승완이 주축이 된 호국청년연합회,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환이 주축이 된 화랑신우회 등이다. 위 단체의 간부 대부분이 그후 검찰 강력부의 조직폭력 수사과정에서 사법처리된 바 있다.

    당시 이러한 조직폭력배의 발호는 정치권과 관련이 있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여당후보를 이면에서 지원하던 모 정부기관의 일부 인사가 이들을 우익단체화해 선거에서 그들의 도움을 받고자 이들 단체의 결성 초기부터 관여했던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조직폭력배들이 전국적 연합체를 결성하기에 앞서 그 기관의 고위간부급 인사가 거물급 조직폭력배들과 수차 회합을 갖고 우리나라에도 건달들이 일본의 야쿠자 같은 우익단체를 결성해야 한다고 조언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위에서 언급한 몇몇 단체의 결성식 행사장에 그 간부가 그 기관의 지역책임자를 통해 격려성 금일봉을 보낸 사실 등이 확인된 바 있다.

    ‘범죄와의 전쟁’ 당시 필자가 호텔 파친코 개입 혐의 등으로 조사했던 조직폭력배들의 말에 따르면 호텔 파친코 임대나 운영을 둘러싸고 조직폭력배들간에 분쟁이 생기면 모 기관에서 구체적으로 개입해 지분을 조정하는 등 ‘교통정리’를 해줬다. 그들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그 기관이 실제로 그런 권한을 가진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어느 정치인은 자신과 형님동생 하며 지내는 유수한 기업의 모 회장이 1980년대 후반 서울시내에 특급관광호텔을 신축한다고 하자 마침 호텔 파친코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소문을 듣고 그런 것 하나만 가지면 평생 정치 하는 데 돈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싶어 임대를 부탁했다.

    그런데 그 회장은 관광호텔이 비록 자신의 건물이긴 해도 파친코는 모 기관에서 관여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실토하더라는 것이다. 그 정치인은 나에게 문제의 그 기관이 실제로 그런 조정권한을 갖고 있냐고 물어왔다.

    이런 점에 비춰 그 기관에서 마치 최고위층으로부터 모종의 권한을 부여받은 것처럼 행동하고 그런 역할로 조직폭력세계를 조정·통제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나는 법률전문가로서 정부조직원리상 그 기관에 그런 권한이 부여됐을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는 군사정권시대로 그 기관이 법에 없는 권한도 행사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혹시 최고위층에서 그런 권한을 부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강력부 탄생과 ‘범죄와의 전쟁’

    그후 ‘범죄와의 전쟁’ 와중에서 그 기관의 간부로 있던 동창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면서 내막을 알아보았다. 그는 자신이 몸담은 기관에 그런 권한은 없다면서 그쪽이 이른바 대선(大選)팀인데 대선을 핑계로 그런 월권을 행사한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정치에 나선 일부 실세가 정치적 도움을 받기 위해 조직폭력배나 그 비호세력을 정략 차원에서 접촉한 사실도 있다. 이처럼 조직폭력배에 친화적인 일부 고위 공직자들의 처신이 그후 이들이 발호하게 된 여건을 제공한 것으로 생각한다.

    검찰은 조직폭력배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단발적으로 대처해오다가 조직폭력배 발호가 사회문제가 되자 전담부서를 창설했다. 1989년 초 당시 횡행하던 인신매매사범, 마약사범, 퇴폐사범 등과 함께 조직폭력사범을 국민생활침해사범으로 규정, 이에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형사부 주도의 민생침해사범합동수사부 또는 특수부 검사들이 주축이 된 민생특수부 등의 임시수사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다 한계를 느끼고 1990년 5월 전국 주요 6대 도시의 지방검찰청에 강력부를 신설해 조직폭력을 전담수사토록 했다.

    검찰 강력부는 이처럼 한국판 마피아 탄생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출범했다. 조직폭력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등에 업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조직폭력배 검거에 나섰다.

    전국 주요 도시의 기존 폭력조직을 범죄단체혐의를 적용, 사법처리해 와해시키고 폭력조직의 뒷전에서 조직을 비호하거나 조직의 힘을 이용해 각종 사업에서 부당하게 이익을 챙겨온 비호세력까지 대거 소탕하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마침 정부에서도 조직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1990년 10월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 조직폭력과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당시에는 강력부가 설치된 검찰청뿐 아니라 전국 모든 청의 강력 전담 검사가 나서서 조직폭력 수사에 전력을 다했다. 5공 초기의 소위 삼청교육은 옥석을 가리지 않고 선량한 시민까지 모함이나 헛된 소문에 의해 마구잡이로 붙잡아 적법한 재판절차도 없이 군부대 등에 수용, 지옥 같은 고통을 안겨줘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에 비해 검찰 강력부는 그때까지 전국 각지에서 활약하던 조직폭력배와 그 비호세력의 대부분을 은밀한 내사과정을 통해 증거자료를 완벽하게 수집, 검거해 중형을 선고받게 함으로써 번창일로에 있던 이들의 기세를 완전히 꺾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폭력세계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 검찰 강력부가 있는 한 과거와 같은 조직폭력의 전성시대는 다시 오기 어렵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성과를 거둔 이면에는 사법부의 공도 크다. 사법부가 조직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 척결의 필요성에 공감, 범죄단체조직죄의 적용을 엄격히 해 좀처럼 유죄를 인정하지 않던 종전의 소극적 태도를 바꾸어 몇몇 새로운 판례까지 남기면서 적극적으로 나선 데 크게 힘입은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개전은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이를 끝낸다는 선언도 없었고, 조직폭력세계의 무조건 항복도 없었다. 또한 검찰 강력부도 지금 이 시간까지 전담검사들이 머리를 싸매고 조직폭력 수사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1990년에 선포된 ‘범죄와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범죄와의 전쟁’은 언제 끝난 것일까. 조심스러운 관측이긴 하지만 나는 ‘범죄와의 전쟁’은 문민정부 출범으로 막을 내린 것으로 본다. 문민정부 출범 이전 강력부가 전국 각지에서 활약중인 거물급 조직폭력배 수사에 주력하고 또한 대부분의 조직폭력배들이 검거·수감돼 폭력조직이 와해되자 자연 ‘범죄와의 전쟁’은 소강 국면을 맞았다.

    조직폭력의 황금기

    이어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개혁과 공직자 사정을 역점시책으로 표방하고 나서자 검찰수사의 주안점도 공직자 사정 쪽으로 선회했다. 이에 따라 강력부도 공직자 사정과 관련된 비호세력 수사와 그때까지 잔존하거나 산발적인 조직폭력배들의 개별범죄 수사 쪽으로 질적 전환을 이루게 됐다.

    또한 이는 강력부 창설멤버로서 ‘범죄와의 전쟁’에 동원됐던 강력검사들이 검찰의 인사패턴에 따라 대체로 2년 정도의 근무 후 다른 청으로 전보돼 강력부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고 보겠다.

    조직폭력세계의 현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정부 5년간 폭력배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 시기가 조직폭력배들이 활동영역을 넓히기에 적합한 사회적 조건을 제공한 조직폭력의 황금기였다고 말하고 싶다.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정현준, 이용호 게이트 등 소위 권력형 비리에서도 오기준 여운환 등 ‘범죄와의 전쟁’ 당시 거명된 인물들이 관련된 사실이 확인돼 권력과 조직폭력의 유착에 대해 많은 국민이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이는 뒤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결코 국민의 정부 5년간 검찰이나 경찰이 조직폭력배 수사를 소홀히 했다는 말이 아니다. 또한 그것이 항간의 소문처럼 오로지 고위층 내지 권력실세가 조직폭력세계를 감싸주고 비호해준 결과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고위층이나 권력실세가 과거 인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리와 인정상 도움을 주었다 하더라도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맺어지거나 과거 어렵던 시절에 신세진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지 전국의 모든 조직폭력배를 돌봐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조직폭력의 황금기라는 판단이나 권력과 조폭의 유착을 걱정하는 시중의 소문은 근거 있는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정부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의 음해성 발언인가.

    그러한 주장이 근거가 있거나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은 시대적 조건과 상황에서 그렇게 됐으리라고 보고 있다.

    첫째,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1998년은 소위 환란이라는 IMF사태가 온 직후로 시기적으로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선포로부터 8년이 지난 시점이다. 따라서 이 시기는 ‘범죄와의 전쟁’ 당시 검거됐던 조직폭력배들 대부분이 비록 두목급이라 하더라도 특별히 무거운 별도의 범죄가 없었다면 5∼6년 정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후 출소해 재기를 노리던 때였다.

    또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종전과 같이 무모한 폭력행사로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폭력배들이 다시는 법망에 걸리지 않기 위해 더 한층 치밀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그들의 새로운 사업영역을 확장하려 애쓰던 시기다.

    한국 조폭은 정치인이 키웠다

    2002년 11월 조직폭력사건 피의자를 조사 도중 구타· 사망케 한 혐의로 구속된 서울지검 강력부 홍경령 검사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둘째, ‘범죄와의 전쟁’ 당시 1차 목표는 일선에서 활약중인 조직폭력배 소탕이었다. 수사 초점도 범죄단체조직이나 폭력행사에 맞췄고 짧은 시간에 많은 조직폭력배를 검거해 팽창일로에 있던 조직폭력과의 전쟁에서 강력부가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따라서 당시 조직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한 채 2선으로 후퇴해 사업가로 변신, 새로운 활동영역을 구축하고 사업상 필요한 경우에만 조직의 위세를 배경으로 힘을 과시하는 배후의 거물급 조직폭력배에 대한 단속은 일부 이뤄지긴 했지만 미처 뿌리를 뽑지 못하고 뒷전으로 미뤄졌다. 왜냐면 이들은 눈에 띄는 폭력을 잘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간의 추적과 집요한 내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부류의 보이지 않는 거물급 조직폭력배가 가장 큰 문제다. 이들은 이미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확고한 사업기반을 갖추고 있다. 또 대체로 지역에서 사업체의 대표나 체육단체장 등 그럴듯한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역의 정계 및 재계인사들과 친밀한 교분을 유지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폭력배들과 교분을 맺은 지역 정치인이 중앙 정치무대에 나서기도 하고 정치권의 실세도 된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수사는 ‘범죄와의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 무렵 강력부 1세대 검사들인 창설멤버들이 교체되거나 일선을 떠나는 바람에 추적의 끈이 끊겨 진전되지 못했다.

    아마 당시 전국적인 폭력조직의 계보와 역사를 입체적으로 알고 있던 강력부 1세대 검사들이 강력부에 오래 남아 수사를 했더라면 반드시 이들에 대한 추적과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 후 이들이 ‘범죄와의 전쟁’ 당시 처벌받고 나온 후배 폭력배들과 연결돼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것을 어느 정도 차단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셋째, 일반 국민들과 기업들에는 IMF 극복과정이 한없는 고통과 인내를 감당하지 않을 수 없는 인고의 세월이었던 반면 역설적이게도 조직폭력배들에게는 엄청나게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호기였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호황기에 돈벌이를 잘하지만 예외적으로 불경기에 특수를 노리는 직업이 있다. 비근한 예로 집행관이라는 직업은 불경기에 돈벌이가 잘 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빚을 못 갚는 사람이 많아져 강제집행이나 경매가 많아지면 수수료를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경매, 재개발사업 개입

    IMF사태로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은행돈을 끌어다 지은 대형 건물주들이 고금리를 견디다 못해 부도사태에 이르면서 수많은 부동산이 경매시장에 홍수처럼 쏟아져나왔다. 그 값이 3분의 1에서 심지어 10분의 1까지 폭락하는 바람에 싼값에 큰 부동산을 손아귀에 넣거나 큰돈 들이지 않고 기업을 인수할 기회가 생겼다. 그때까지 자금을 모아온 거물급 조직폭력배들은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 십분 활용해 많은 기업과 건물을 수중에 넣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IMF사태가 대충 진정되고 경기가 호전되자 기업사정이 나아져 기업가치가 올라가고 부동산들이 원래의 시세를 회복하면서 이들은 힘 안 들이고 돈방석에 앉게 됐다. 또한 이들은 이러한 불황기에 부동산경매나 세입자와 갈등을 빚는 대형건물 소유권 분쟁에 개입해 최종적으로 건물을 손아귀에 넣거나 관리권을 빼앗기도 했다.

    아울러 아파트붐이 일자 노른자위 공사를 하청받거나 분양에 관여하는 한편 재개발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기도 했다. 그 과정에 조직폭력배 특유의 힘이 작용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IMF사태를 극복한 기간은 국민의 정부가 벤처산업을 집중육성해 관련 업계에 풍부한 자금을 지원한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른 기업들은 구조조정으로 대량의 실직자를 양산하고 봉급동결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을 때 벤처 관련 산업만큼은 별나라에 있는 기업처럼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이러한 벤처산업 집중 육성 과정에서 다른 정책과 마찬가지로 그 부작용으로 벤처창업 붐을 파고든 벤처 비리가 생겨났다. 거기에 주식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살아났고 저금리정책이 정착되자 주가조작으로 연결됐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대표적인 재벌기업조차 주가조작에 뛰어들 정도로 주가조작이 횡행했다.

    조직폭력배들 중 일찍이 이 방면에 눈을 뜬 자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몫 챙겼다. 이러한 경제의 비균형 발전으로 전체적으로 극심한 불황임에도 고급 유흥업소 등이 불야성을 이루었고 고급 유흥업소일수록 사전예약 없이는 갈 수 없을 정도라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넷째, 조직폭력배들이 이처럼 주머니를 불리고 있을 때 강력부 검사들은 무엇을 했는가. 내가 알기로 강력부 검사들은 부서 창설 이래 지금까지 편안한 날이 없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느라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는 조직폭력세계가 질적·양적으로 변화했음에도 강력부의 조직이 이에 맞추어 탈바꿈하지 못한 데도 기인한다. 수도 서울의 인구가 1000만이 넘는데도 서울지검 강력부의 전담검사는 4명에 불과하다. 조직폭력배의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은밀해져서 수사의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아졌는데도 말이다.

    예전에는 초임검사 교육과정에 들어있는 강력 및 폭력범죄수사요령과 범죄단체조직죄에 대한 수사기법만 배우면 대부분의 조직폭력배 수사가 해결되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부닥뜨리면서 배우면 됐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정도로는 뒷골목을 배회하는 조무래기 폭력배를 수사할 수 있을 뿐이다. 뇌물공여, 탈세, 신용카드범죄, 주가조작, 신종 사기, 벤처기업 범죄, 부동산경매 또는 부동산 재개발 관련 범죄, 아파트 건설과 분양 관련 비리, 보험 범죄 등 특별수사영역을 아우를 정도로 거의 모든 범죄 수사기법에 정통해야 할 형편이다.

    또 검찰은 선거 때마다 밀어닥치는 선거사범 수사나 국민여론이 시끄러운 각종 게이트 사건에 수시로 휘말리는 바람에 수사인력을 빼앗겨왔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조직폭력배들이 은밀하게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건설업계 물 흐리는 조폭들

    전에는 검사가 형사소송법상 공사단체에 대한 조회권을 갖고 각종 사실조회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금융실명제법이나 통신제한조치 요건 강화 등 법령의 개혁으로 각종 수사여건이 악화된 것이다. 강력부 수사가 어려워진 이유 중 하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일각에서는 홍검사 사건 이후 강력검사를 줄이겠다던가 강력부를 없애는 것을 검토한다는 한심한 말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밖에도 멀리 또는 가까이에서 조직폭력배들이 성장한 배경과 원인을 생각해볼 수 있으나 지면관계상 생략하기로 하고 끝으로 시중에서 일반인들이 조직폭력배들의 현황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내가 보고 들은 대로 전달하고자 한다.

    시중의 경기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곳이 시장이다. 그러나 조직폭력배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를 금방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두 곳이 있다면 바로 술집과 골프장이다.

    내가 듣기로 고급 유흥업소에 출입하는 손님 중 기업인들의 비중은 줄어들고 조직폭력배는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많아졌다. 이는 바로 그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졌음을 의미한다.

    또한 마구잡이로 졸부가 된 조직폭력배들이 골프장에 무상출입하며 다른 손님들에게 사소한 이유로 시비를 걸어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폭언을 퍼붓는 꼴을 보고 골프장 다니기가 싫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나 자신도 한두 해 전 골프장에 나갔다가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다. 한눈에 조직폭력배임이 명백해 보이는 30대의 손님들이 내기골프를 하느라 진행이 늦어졌다.

    이를 보다 못한 뒤팀에서 “빨리 치자”고 한마디하자 30대들은 50대로 보이는 뒤팀 손님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며 경기를 중단시키고 클럽하우스로 데리고 가 손찌검 일보 직전까지 가는 행패를 부렸다. 골프장측도 이들의 막무가내식 부킹요구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경기에 민감한 건설업계는 또 어떠한가. 중견 또는 소규모 건설업체에서도 조직폭력배들이 든든한 배경을 등에 업고 업계에 등장해 은근한 협박과 압력으로 기존 건설업자들의 영역을 빼앗아 간다고 이구동성으로 하소연하고 있다.

    끝으로 호남 출신의 조직폭력 세력이 눈에 띄게 커졌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각종 게이트나 대형사건 때마다 약방에 감초식으로 한둘씩 거론되는 조직폭력배의 출신지가 호남지역 일색인 것에서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검찰과 경찰 강력수사 부서에서는 서울의 유흥가를 호남 출신 조직폭력배들이 장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견해에는 납득할 만한 두어가지 근거까지 제시되고 있다.

    호남은 5·16 이후 경제발전과정에 소외된 탓에 경제기반이 약했다. 그러다 보니 조직폭력배들의 자금원이나 서식처가 부족했다. 그래서 호남 건달들이 서울로 많이 진출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호남에 기반을 둔 정권이 들어서자 조직폭력배들이 동향 출신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로부터 직·간접으로 도움을 받아 이런저런 사업영역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권력층 인사나 공직자들이 그간의 처신을 반성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민주사회가 되려면 어느 분야든 공정경쟁이 필수적이다. 그런 이유로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불공정거래 규제를 점차 강화하고 있는 게 지배적인 추세다. 민주사회에서 공직자 부패와 조직폭력은 공정한 경쟁을 해친다. 유엔 결의에서도 이 두 가지를 민주사회의 2대 공적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불공정거래 분위기 조장

    그러면 왜 공직자 부패와 조직폭력이 공정경쟁을 해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첫째, 공직자 부패는 특정기업이나 개인이 공무원이나 공무원집단에 뇌물 및 향응 제공 등으로 특혜를 받거나 경쟁자보다 유리한 지위를 보장받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다. 뇌물이나 향응을 제공한 측은 제공하지 않은 기업이나 사업자에 비해 불공정하게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정부당국은 대기업의 독점적 지위나 경제력 집중에 의한 불공정거래뿐만 아니라 공직자부패와 관련한 불공정거래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 부패를 조장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도 사업상 각종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조직폭력이 어떻게 공정경쟁을 해치는지에 대해, 요즘 조직폭력배들이 이미 깊숙이 침투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금업이나 민간건설업 분야를 살펴보기로 한다.

    대금업의 경우 같은 규모로 자금을 조달해 비슷한 고율의 이자를 받을 때 사업의 수익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대손율이다. 즉 채무자에게 빌려준 돈과 회수한 원리금의 차액이 조수익이 되고 이것에서 조달한 재원에 대한 원리금과 영업비용을 제외하면 순이익이 된다.

    그런데 대금업에서는 대부분의 고객이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서민들과 저당권을 설정할 담보물이 없는 서민들이다 보니 원리금을 잘 갚지 못하는 불량채무자가 많다. 그런 이유로 고리의 이자를 받기도 하지만 대손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즉 100억원의 자금을 월 2%의 이자를 주기로 하고 조달한 후 월 이자율 5%의 소액대출을 실시하고 영업비용이 월 1억원이라고 가정하면 연 약 24억원의 조수익이 발생한다.

    그런데 여기서 대손율을 10%로 계산하면 그 수익이 약 14억원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이와 같이 회수불가능한 채권의 경우 일반적인 대금업자는 변제를 독촉하다가 안 되면 민사절차에 의존한다. 하지만 대부분 강제집행대상인 재산이 없는 채무자에게 특별히 돈을 받아낼 대책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조직폭력배들은 대금업을 하면서 채권회수가 어려워지면 법적인 절차 이전에 그들 특유의 폭력적인 채권회수방법(일명 진상처리)을 동원한다. 10%의 대손율을 5%로 낮춘다면 이익이 19억원으로 늘고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유흥업소나 윤락업소 종업원들을 상대로 좀더 고율의 이자를 받아내면 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건설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업계에서는 공사대금을 얼마나 잘 수금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갈린다. 돈을 받아내는 데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조직폭력배들이 매우 쓸모가 있다. 공사 중간에 설계변경 등으로 인한 공사비증액이나 인건비·자재비 상승 등으로 공사비를 둘러싸고 다툼이 생기면 그들 특유의 힘을 과시해 더 잘 받아낸다.

    그러니 그들이 어떤 사업영역에 진출하게 되면 일반인들은 도저히 선의의 경쟁을 할 수가 없어 도태되고 말 것이고, 결국 그들만이 판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법을 잘 지키는 선량한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활동분야에 대한 철저하고 끊임없는 감시가 필요하다.

    한국 조폭은 정치인이 키웠다

    6공 때 안기부 기조실장으로 폭력배들을 관리했다는 의심을 받은 엄삼탁씨는 1993년 5월 슬롯머신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흔히 조직폭력 수사에 큰 관심이 없거나 조직폭력의 실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 수사를 쉬운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적당히 정보를 얻어 파견경찰관이나 검찰직원을 시켜 내사를 하고 증거가 수집되면 검거·구속하는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조무래기 정도의 폭력배 수사에 해당하는 얘기고 거물급 폭력배에 이르면 사정이 180도 달라진다. 검찰의 인지수사에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증거수집과 범인검거과정이라는 두 측면에서 보면 조직폭력 수사만큼 힘든 수사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선 수사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거나 피해자 진술을 듣기가 어렵다. 수사대상 폭력배가 수사기관과 유착돼 있다고 믿거나 힘이 세다고 생각하면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에서, 그렇지 않으면 정보제공자의 신원이나 피해진술이 새어나가 보복이나 압력이 가해질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따라서 고도의 보안성과 수사의지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하면 정보를 얻기 힘들 뿐만 아니라 한번 얻은 신뢰가 흔들리면 한사코 진술을 번복하려 한다.

    다음 조직폭력배들은 대체로 번듯한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하는 사람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않고 돌아다니므로 생활에 일정한 패턴이 없다. 특히 행동대원급은 주소지나 주민등록지에 실제로 거주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동가식서가숙하는 자가 많아 소재파악이 어렵다.

    또 그들은 과거 여러 차례에 걸쳐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 은신처를 수시로 바꾼다. 통신수단이 발달한 요즘에는 연락수단인 휴대전화를 여러 개, 심지어는 10개까지 갖고 다니며 번갈아 통화해 추적을 피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조직폭력 수사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치열한 로비로 수사보안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개의 사람은 자기가 수사 대상이 되면 그 수사 결과에 자신의 사활이 달렸다고 생각한다. 조직폭력배 역시 왜곡된 사고방식과 잡초같이 끈질긴 생명력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력을 다해 수사진행 상황을 알아내려 한다.

    수사사실을 눈치챈 폭력배가 온갖 연줄을 동원해 수사진행상황을 파악하려 한다고 가정해보면 그 경로는 대개 결재라인에 있는 상사, 검찰 또는 법조 선후배 변호사나 동료가 될 것이다.

    누가 조직폭력배사건을 물어보겠느냐고 묻는 것은 순진해도 한참 순진한 얘기다. 조직폭력배는 직업도 아니고 누구나 식별이 가능하도록 써 붙이고 다니는 이름도 아니다.

    그들도 겉으로는 어엿한 사업체를 가졌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 직함도 있다. 가끔 언론에서 조직폭력배의 경조사에 웬 정·관계 화환이 그렇게 많이 답지하느냐고 꼬집기도 하는데 그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문제다.

    물론 그런 경로로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심각하거나 의미심장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사 여부 또는 무슨 내용인가만 간단히 알려달라거나 ‘소신껏 처리하되 체면이나 세워달라’는 정도다.

    그러나 이렇게 점잖고 예의바른 문의가 결과적으로 수사에 큰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사안에 따라서는 혐의내용을 발설하는 것 자체가, 또 때로는 수사여부 확인만으로도 수사에 큰 지장을 받게 되고 심한 경우 수사의 성패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수사검사의 처신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고 잘못하면 조직 내에서 인간성 문제로 두고두고 욕을 먹게 되는 수도 있다. 조직폭력배들은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더 큰 ‘빽’을 잡으면 해결될 것이라는 그릇된 사고를 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집요하게 로비를 시도하고 그만큼 조직폭력 수사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조직폭력 수사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모략이나 음해가 난무한다는 점도 수사의 큰 장애요인이다.

    이는 조직폭력 수사를 오래한 검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이들은 수사대상이 되면 우선 로비를 해보거나 거액을 주고 변호사를 선임해 로비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이것도 안 통한다 싶으면 모략에 나서는데, 주된 목적은 검사의 힘을 빼는 것이다. 공직사회에서는 ‘빈 총도 안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듯 대부분 사실이 아니지만 하도 그럴듯하게 진정을 내면 상부에서는 혹시나 하여 은밀히 감찰조사를 하게 된다.

    터무니없는 진정이라도 계속되면 상부로부터 ‘왜 이리 시끄럽게 수사하느냐’는 말을 듣게 된다. 열심히 수사하는 주임검사로서는 격려와 지원이 절실한 판에 감찰조사를 받거나 한마디 질책이라도 듣게 되면 그야말로 회의와 절망감에 힘이 빠져버리게 된다. 바로 이것이 폭력배들이 노리는 점이다.

    이러한 모략에는 대체로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철저히 익명으로 투서나 진정을 하는 경우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본명으로 하면 수사기관에서 진정인의 인적사항을 알게 돼 쓸데없는 모략이라는 것이 금방 탄로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나중에 허위인 것이 밝혀질 경우 무고죄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제3자의 이름으로 진정하면서 자신의 처벌이 반대파의 모략에 의한 것이고 수사검사가 반대파와 유착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처벌을 받는다는 생각은 애당초 없으며 배경이 부족하거나 반대파가 모략으로 수사기관을 움직였다고 굳게 믿는 왜곡된 사고의 소유자들이다.

    이때 혹시 반대파나 반대파와 아는 사람 중에 주임검사와 지면이 있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인맥까지 파악해 그럴듯하게 얘기를 꾸며낸다. 만일 검사가 고향이나 연고지에 근무하면 틀림없이 이런 내용의 진정을 당하기 쉽고, 만약 검사가 진정서에 거명된 사람과 단지 면식만 있는 사이라 해도 두고두고 오해를 풀기가 쉽지 않다.

    또 하나의 수법은 골프나 술대접 등 반대파로부터 향응이나 뇌물을 받았다고 진정하는 경우다. 이들은 검사가 어느 유흥업소라도 간 사실을 탐지하면 여자관계를 들먹인다. 나 자신도 조직폭력배를 수사하면서 숱하게 이런 진정을 당했다.

    어느 선배가 농담조로 나에 대한 진정서를 모아놓으면 캐비닛으로 하나는 될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언젠가는 부동산투기를 했다는 진정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땅 한 평 없이 살고 있으니까 그나마 그런 의혹에 휩싸이지 않은 것 같다. 깡패들과 골프 친다는 진정도 평검사 시절 골프를 배우지 못한 덕에 피해나갔다.

    나는 20여 년 전부터 폭력배수사를 시작해 일찍이 그들로부터 진정과 투서에 시달렸다. 덕분에 1983년부터 유흥업소에 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지금까지 지켜왔고 그런 원칙을 갖게 해준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강력검사는 특히 사람 만나 자리를 함께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집안의 경조사도 가급적 최소한의 사람에게만 알려야 한다. 집안행사가 외부에 알려지면 그들이 어떤 짓을 하고 어떤 소문을 낼지 두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한 검사는 결혼식을 올릴 때 자신이 다루던 사건의 당사자가 수천만원의 축의금을 몰래 내고 간 바람에 신혼여행 갔다 온 뒤 기겁을 하고 돌려준 일도 있었다.

    검찰이 조직폭력을 수사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여기서는 두어 가지만 언급하기로 한다.

    요즘같이 검찰이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큰 목소리로 말하기가 뭣하지만 누가 뭐래도 검사는 단독관청이다. 가끔 부 단위로 하는 팀수사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개별사건 수사의 주체는 주임검사로서 다른 수사 부서보다 보안유지가 훨씬 쉽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장기간 은밀한 내사가 필요한 조직폭력 수사에는 검찰이 경찰보다 효율적인 조직이다.

    또한 검찰은 모든 수사·재판기록과 형사판결문을 보존하고 있다. 따라서 폭력조직을 수사할 경우 조직원들의 범죄경력을 조회해 문제가 된 형사판결문과 수사 및 재판기록을 곧바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비해 경찰에서는 일단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면 의견서 사본만 보존되므로 사건의 전모를 즉각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검찰은 결재라인이 모두 수사 및 법률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반면 경찰은 수사 이외에도 관장하는 업무가 많으므로 결재라인에 반드시 수사전문가가 자리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또한 범죄단체조직 혐의나 복잡한 폭력사건의 경우 법률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검사는 법률전문가로서 내사나 수사를 진행하면서 그때그때 혐의 입증 여부를 비교적 정확히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수사력 낭비를 피할 수 있다.

    홍검사 사건에서 교훈 얻어야

    공소유지 측면에서도 조직폭력 수사는 검사가 주도하는 게 타당하다. 형사소송법상 사법경찰관 조서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반면 검사가 작성한 조서는 증거능력을 부여받아 범죄 입증에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아울러 경찰은 일선에서 직접 국민들과 접하기 때문에 정보 취득은 용이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유착 의혹을 완전히 씻기가 어렵다. ‘범죄와의 전쟁’ 때 검찰이 조직폭력배에 대한 직접수사에 나선 큰 이유도 국민들의 이런 우려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홍검사 사건은 우리 검찰이 두고두고 반성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건을 보는 시각 중 검찰을 가혹행위나 고문을 하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데 대해서는 강력검사 출신들이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이번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부 언론에서는 검찰에 가혹행위나 고문의 관행이 있는 것처럼 보도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국민들의 인권의식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고양됐듯 수사기관의 인권의식도 크게 높아졌다.

    ‘범죄와의 전쟁’ 초기만 해도 다소 모욕적인 언사나 고압적인 신문방법이 그런 대로 통했고 말썽 날 경우에도 검찰 내에서 수사의욕 과잉으로 이해해 주는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수사중 가혹행위를 둘러싼 고소·고발사건이 몇 차례 언론에 보도된 뒤부터 검찰 내부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대체로 문민정부가 출범할 즈음에는 가혹행위는 수사에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조직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검사나 검찰 직원들은 고문의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다. 고문이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심리적 육체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주되 가급적 신체에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검사가 되는 직업교육이라 할 수 있는 법과대학 교과과정이나 사법연수원 교과과정엔 고문은커녕 물리력 행사를 수반하는 범인 체포술 과목조차 들어 있지 않다. 또 군인이나 경찰의 교육과정에 있는 검도, 유도, 태권도 같은 체력단련과정조차 없다. 다만 피의자의 흉악한 범죄사실에 공분을 느끼거나 인간 같지 않은 행태에 혐오를 느껴 신문중 뺨이라도 한대 때려주고 싶거나 욕을 해주고 싶은 소박한 감정을 품는 데 그치고 만다.

    내가 알기로 경찰에서도 오래 전부터 가혹행위 탓에 적지 않은 경찰관들이 고소고발을 당해 수사를 받고 법정에 선 사례가 생기면서 조심하는 분위기다. 사건에 따라 불친절하거나 고압적인 언사를 사용하는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 조직 차원에서 가혹행위를 할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내 판단으로는 홍검사 사건에서 문제된 파견경찰관들이 소속서에 복귀해 자신들의 책임하에 유사한 사안을 수사했더라면 가혹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홍검사는 흉악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힐 첩보를 얻어 수년간 확신을 갖고 심혈을 기울여 내사했다.

    그러던 중 그 살인사건의 공범으로부터 진솔한 자백을 받고 나자 수사팀은 성공이 목전에 다가왔다는 기대감에 흥분돼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된다는 조급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 사건은 수사관들이 뒤에서 검사가 보호해줄 것이라는 안도감에서 과욕을 부려 단기간에 자백을 받아내려다 생긴 사고로 보인다.

    아쉬운 것은 검찰 강력수사의 경우 검거와 조사를 모두 파견경찰관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원칙이 지켜지기만 했더라도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범죄정보를 파견경찰이나 직원에게 수집하게 하고 그들에게 검거와 조사까지 모두 맡긴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검사의 수사가 아니다.

    검사는 원시적 범죄정보를 수집하면 이를 평가·검토·보완해 인지수사가 필요한 고급정보로 정제해야 한다. 수사에 돌입해서는 검거와 신병의 관리는 파견경찰에게 맡기되 조사는 어디까지나 검사가 주도하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검찰에 강력부가 설치된 지 벌써 13년이 됐다. 그동안 많은 검사들이 강력부에서 또는 강력 담당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국민생활을 침해하는 조직폭력배들을 수사해 국민들이 그만큼 편히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러면 그동안 일선에서 강력수사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검사들은 조직 내에서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공안이나 특수 또는 기획부서에 근무한 검사들과 비교해 ‘배려’가 몹시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중간관리직인 역대 대검 강력과장과 주요 지검 강력부장에 강력수사의 경험이 전혀 없는 검사가 경력관리차원에서 보직된 사례도 있다. 또 강력검사가 인사발령으로 타청에 전보된 후 다른 부서에 보직됨으로써 귀중한 경험을 살리지 못하고 사장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강력검사가 검찰의 3D업종으로 여겨져 기피 대상이 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얼굴’ 찾는 게 관건

    지금까지 강력부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조직폭력배는 ‘범죄와의 전쟁’ 이후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며, 강력부는 검사들의 수사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홍검사 사건을 맞아 마치 또 하나의 폭력집단처럼 매도되는 등 출범 이래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다시 한번 ‘범죄와의 전쟁’ 때 국민들로부터 받았던 전폭적인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강력부의 인력과 장비를 대폭 확충하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밤을 새면서 피의자의 입만 쳐다보고 그 진술에 의존해 수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합리적 과학수사의 길로 나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정한 인원에 충분한 장비를 갖춰야 한다.

    둘째, 보이지 않는 얼굴을 찾아야 한다. 이는 바로 거물급 조직폭력배, 즉 2선에 숨어 있으면서 휘하의 조직폭력배를 교묘히 조종하고 사업가로 위장해 힘 있는 자들과 유착해 검은 돈을 만지고 부정부패까지 조장하는 그러한 자들의 가면을 벗겨야 한다. 제한된 인력으로 수사할 때는 수사대상을 선별해 수사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인지수사의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제는 조무래기 폭력배나 누구나 수사할 수 있는 사안은 강력부가 반드시 나설 필요가 없다. 힘을 아껴야 한다. 가장 큰 협잡은 가장 큰 권력과 손잡아야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사기꾼이 말단 공무원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을 팔아 사기 치지 아니하듯 조직폭력배들도 항상 큰 권력과 손을 잡아 위세를 과시하고 사업에 이용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모든 권력이 깨끗해져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이상론이다. 어느 구석에서는 검은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강력부 검사들은 거물급 조직폭력배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동시에 현존하는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가장 큰 권력을 감시하지 못하고 쥐꼬리만한 권력을 가진 하위공직자만 쳐다본다든지, 힘이 빠져버린 과거의 권력에만 칼을 들이대서는 강력부뿐만 아니라 검찰 전체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강력부 위기의 시대에 강력부가 앞장서서 위기를 극복하고 검찰의 위상을 드높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와 국민이 검찰에 절실히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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