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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취재

꽃동네, 화려한 신화의 그늘

복지시설 성장제일주의 시대의 종언?

  • 글: 정호재 demian@donga.com

꽃동네, 화려한 신화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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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 화려한 신화의 그늘

꽃동네 신화는 걸인 최귀동 할아버지(왼쪽·1990년 작고) 와 오웅진 신부와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1월21일 수사 착수 사실이 알려지자 검찰이 언론과의 접촉을 일절 끊은 사실로도 알수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가 한계에 부딪칠 것으로 내다본다. 우리나라에서 종교와 사회복지시설 문제는 다분히 정치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꽃동네와 오웅진 신부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극단을 달린다. 오신부의 손을 한번 잡아보기 위해 멀리서 꽃동네를 찾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종교에 기대 ‘복지사업’을 하는 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그 배경에는 양적으로 팽창하는 꽃동네를 중심으로 10여 년간 쌓여온 의혹과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한 지역언론 기자는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결국 터질 게 터졌을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귀띔한다. 문제점은 이미 오래 전 노출됐지만 수습할 길이 없어 수수방관해오다 마침내 고름이 터졌다는 얘기다.

위법인가, 관행인가

‘꽃동네 위기’를 초래한 첫 번째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끊임없는 확장정책. 꽃동네가 공룡처럼 비대해졌다는 것은 사회복지계와 천주교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문제다. 둘째는 이같은 성장을 이끌어온 강력한 1인 보스체제. 세 번째는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침묵의 카르텔’이다. 버림받은 이들을 먹이고 재우는 데 급급하다 보니 복지시설을 둘러싸고 제기된 문제를 공론화하고 시정할 겨를이 없었다.

꽃동네 의혹에 대한 고소·고발 및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볼 때 검찰의 수사방향은 크게 다음의 네 가지로 추측된다. 첫째 국가 보조금과 민간 후원금을 오신부 가족에게 빼돌린 사실이 있는지 여부, 둘째 오신부의 가족 및 수도사 명의로 집중적으로 땅을 산 것과 꽃동네의 땅투기 의혹과의 연계성, 셋째 꽃동네를 운영하면서 실정법을 위반하고 이용자들의 인권을 침해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 넷째 후원 형식을 빌려 관련업자들에게 탈세를 부추긴 사실 여부이다.



이런 행위는 대규모 민간 사회복지시설 및 재단, 사립학교재단 등에서도 왕왕 일어나는 고질적 병폐다. 따라서 위법이냐 아니냐를 칼로 무 베듯 갈라놓기 어렵다는 데 검찰의 고민이 있다. 꽃동네는 사회복지시설과 종교단체라는 두 가지 성격을 함께 갖고 있다. 따라서 그간 종교단체에 적용해온 무감사(無監査) 관행과 면세 혜택 등을 감안하면 위의 4가지 의혹은 별다른 문제가 아닌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화상환자 은폐 의혹

우선 꽃동네의 ‘어두운 역사’부터 살펴보는 것이 지금의 꽃동네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러 의혹에 대한 꽃동네의 반론은 뒤에 소개하기로 한다.

1993년 초, 음성 꽃동네 심신장애자 요양원에 18명의 장애인이 목욕을 하기 위해 모였다. 그런데 이들을 목욕시키려고 뜨거운 물을 받아둔 대형 고무통이 터지는 사건이 생겼다. 이들은 워낙 중증 장애인들이라 제대로 피하지도 못한 채 80℃가 넘는 뜨거운 물세례를 받았다. 결국 김정옥(여·당시 31세)씨 등 12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문제는 꽃동네측이 이 사건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수습하려 한 것. 이 때문에 그후 1년 동안 김씨를 포함한 10명의 화상 환자가 화상에 의한 합병증으로 죽어갔다. 꽃동네는 이들을 내부 묘지에 매장했다.

이 사건은 1994년 2월 한 자원봉사자의 제보에 의해 밝혀졌다. 더욱이 꽃동네는 결핵 환자 병동에서 비닐로 주변을 가려놓고 환자를 치료한 사실이 밝혀져 꽃동네 또한 감금 위주의 수용과 ‘비밀주의’에서 여느 복지시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당시 경찰과 보건사회부는 진상 조사를 한다며 법석을 떨었으나, 조사 결과 “사고사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군청에만 알리는 ‘실수’가 있었지만, 사건을 고의로 은폐한 의혹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건 제보자가 꽃동네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인권 침해 사례들도 함께 공개했지만, 이내 흐지부지됐다. 당시는 ‘꽃동네 신화’가 절정을 향해 가던 시기였다. 결국 꽃동네의 주민등록 담당수사만 입건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이를 기화로 꽃동네에 대한 의혹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꽃동네측은 이 사건을 재론하는 것이 꽃동네를 음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꽃동네 윤시몬 수녀는 “10년이나 지난 일을 다시 끄집어내는 의도가 뭐냐”고 반문하면서 “과거에 일어난 일로 현재의 꽃동네를 일방적으로 재단해선 안 된다”고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내 사회복지시설의 대명사로 떠오른 꽃동네는 1990년대 들어 적극적인 확장정책을 펼쳤다. 언론은 연일 꽃동네의 미담을 발굴해 보도했고, 그 뜻에 동참해 후원금을 내는 회원들도 늘어갔다.

그러다 보니 유명세도 톡톡히 치렀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병든 노인을 꽃동네 근처에 유기하는 일이 빈번해진 것. 그래서 매일 새벽 자원봉사자들이 조를 짜서 순찰을 돌아야 했다. 이는 꽃동네의 위상이 그만큼 공고해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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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호재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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