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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走 삼성’ 견인하는 이건희의 ‘실세 대리인’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 글: 이형삼 hans@donga.com

‘獨走 삼성’ 견인하는 이건희의 ‘실세 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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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옛 비서실장들이 철저하게 회장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관리형 참모’였다면 이본부장은 회장의 ‘큰 그림’을 읽고 계열사 사장들을 직접 컨트롤하는 ‘경영형 참모’에 가깝다”는 게 삼성 안팎의 평가다.

계열사에서 제출한 여러 갈래의 기획안을 나열해놓고 회장의 ‘간택’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사장들과 머리를 맞대고 종합적으로 판단해 도출한 방안을 자신의 책임 하에 들고 가서 결재를 얻는다는 것. 그는 비서실 차장 시절에도 계열사들이 올린 사업 계획서를 검토한 후 미흡한 점이 있으면 현장에서 반려하는 등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오너의 ‘그림자’

1978년부터 1990년까지 최장수 회장 비서실장을 지내며 이병철 회장을 10년, 이건희 회장을 3년 동안 보좌한 소병해 고문의 위세도 대단했다. 그는 그룹의 전산화를 정착시키고 국제금융과 품질관리 개념을 도입해 삼성의 성장에 견인차 노릇을 한 것으로 인정받지만, 계열사 경영과 임원 인사에 입김을 미치면서 자신의 인맥을 형성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1990년 12월 그를 비서실장에서 퇴진시키면서 “소실장은 그룹 최고의 공로자”라고 치하했다. 삼성측은 “소실장은 1987년 이병철 회장이 사망한 후부터 그만두겠다고 했으나 이건희 회장이 만류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건희 회장이 “비서실의 과도한 경영간섭 등 월권행위 때문에 소신껏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장들의 불만을 받아들여 소실장을 물러나게 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미 그해 연초부터 소실장 계보의 임원이 소실장도 모르는 사이에 해외 지사로 발령나는 등 예사롭지 않은 조짐이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학수 본부장과 구조본이 계열사 경영과 인사에 개입한다고 해서 월권 시비가 일지는 않는다. 이본부장의 경우 이건희 회장에게서 상당한 폭의 ‘대리권’을 실질적으로 위임받았기 때문이다. 이본부장에 따르면 “1997년 말 외환위기를 전후해 그룹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때도 이회장은 ‘집중과 선택’이라는 원칙만 던져주고 실무는 구조본에 일임했다. ‘회사를 팔아야 한다고 판단되면 회장 눈치 보지 말고 과감하게 정리하라’고 했기 때문에 일을 처리하기가 무척 수월했다”고 한다.

그 무렵 삼성과 빅딜 협상을 벌인 대기업 임원들은 이본부장이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협상조건을 밀었다 당겼다 하자 놀라움과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자동차-대우전자 빅딜 협상 때는 그런 이본부장을 보고 대우 김우중 회장이 가슴을 쳤다고 한다. 삼성 구조본이 체계화한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한 단계별 협상안을 준비했을 뿐 아니라, 이본부장이 대우측 제안에 대해 그 자리에서 수용하고 거부하고 타협하고 결정하는 데 비해 대우 임원들은 사소한 결정사항도 일일이 김회장의 의견을 묻느라 협상을 주도하지 못했던 것.

당시 이본부장은 이른바 ‘처녀·과부론’을 내세우며 대우측을 몰아붙였다. 삼성차는 실사를 통해 어떤 회사인지 투명하게 드러났지만, 대우전자는 어떤 ‘과거’가 있는지 알 수 없는 회사기 때문에 맞교환은 불가하다는 논리였다.

비서실 차장이던 1996년 12월, 이본부장이 직접 작성한 비서실 개편안과 사장단 인사안을 들고 당시 일본에 머물던 이건희 회장을 찾아 승인을 받아온 것도 그의 파워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당시 그가 차기 비서실장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현직 비서실장을 제쳐두고 차장이 그런 임무를 수행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가 일본을 다녀온 직후 삼성은 사장단 인사를 단행, 이학수 차장을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현명관 비서실장은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옮겼다.

이본부장의 입지는 언론보도 등과 관련해 그를 배려하는 삼성측의 세심한 ‘의전(儀典)’에서도 감지된다. 한때 삼성은 기자들이 삼성 구조본 기사를 쓸 때 ‘구조본’ 앞에 ‘이학수 사장이 이끄는’이라는 수식어를 넣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학수 본부장은 그룹 내에서 이건희 회장에게 직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적어도 구조본만큼은 회장에게 ‘노(No)’라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것. 이본부장은 지난해 7월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구조본이 호텔신라에 대해 강도 높은 감사를 실시했더니 이회장 장녀인 부진씨가 ‘내가 입사하려는 회사를 어떻게 그처럼 흔들어놓을 수 있느냐’며 내게 불만을 터뜨렸다.”

오너의 딸이 싫은 소리를 하더라도 할 일은 한다는 얘기다. 구조본은 이회장이 어쩌다 개인적으로 민원을 받아 추천한 인물도 검증을 거쳐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안 된다’고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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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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